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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은 예수님부활신앙을 통해서 우리의 부활신앙을 진단하고 재충전하는 은혜주일이었습니다. 한 주간도 부활신앙을 붙잡고 생기 넘치는 봄과 함께 주일예배에 오셨습니까? 할렐루야!!
오늘 본문말씀 시작은 때를 주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1절..... “그 후에” 우리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부활 하신 후 얼마나 지났는가를 대강 짐작 할 수 있는 기간 입니다.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때 시간에 대한 의미를 알 수 있는 성경 구절이 세 곳이 나옵니다.
먼저 1절.....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때에 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 장사되어 삼일 만에 다시 사신 안식 후 첫날 그날입니다. 우리로 말하면 주일을 말합니다. 우리가 매일 주일을 맞이 하는데 언제나 어떤 예배 자세로 참여합니까? 부활신앙을 매주 마다 고백하고 만나는 주일로 예배합니다. 그래서 안식 후 첫날이 그런 의미가 있구요
다음 19절에..... 안식 후 첫날 저녁때라고 했습니다. 아직 하루가 지나지 않았어요 이 때 방문이 닫혀 있는데 부활의 예수님이 오셔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6절....여드레를 지나서 2번째 도마에게 나타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 때가 예수님 부활하신 후 8일째가 된다고 볼수 있지요
이런 기간을 살펴보고 21장 그 후에.......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 부활하신 후 최소한 8일째가 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주일은 부활절후 7일째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본문에 나타난 예수님제자들의 영적상태를 한번 보시면 좋겠습니다. 제자들의 영적상태!!.....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고 뭔가! 속 시원하게 부활의 주님을 높여드리며 영광 돌리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았으면 좋은데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하나 같이 믿음이 약하고 부족한 모습을 볼 수가 있지않습니까?
그런데 정말 디베랴호수에서 매우 충격적인 일을 보게 됩니다. 여기 디베랴바다는 갈릴리바다라고도 하고 게네사렛 호수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처음 예수님을 만났던 그 장소에 베드로를 비롯해서 6명의 제자들이 함께 있습니다. 6명의 제자중에 다 어부가 아닙니다. 베드로외에 몇 사람만 있고 나머지는 물고기 잡는 방법도 모르는 제자들인데 베드로가 고기 잡으러 간다고 하니까 그냥 덩달아 따라 나서는 겁니다.
이 말씀을 묵상 할 때마다 느낀 마음이지만 참 한심하고 기가 막힌 제자들의 모습이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천사들이 메시지를 제자들에게 여인들에게 전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나신 이는” 너희 들보다 먼저 갈길리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8일이 지났으니까 지금 제자들이 갈릴리호수에 왔다면 부활의 주님을 기다리고 사모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은 없고 오직 고기 잡겠다는 것은 무슨 속셈입까요?
그런데 보십시오 고기를 잡는다고 잡는데 고기가 잡힌가요? 고기 잡지 못한 것이 당연한지 모릅니다. 3년 동안이나 주님 따라 다닌다고 하다가 고기를 잡는다고 하니 그물 던지는 자세가 제대로 될 수가 없지요
한마디로 제자들은 지금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지 못했던 믿음에 대한 죄책감.....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 버려두고 다 도망가 버린 죄책감..... 예수님을 부인했던 죄책감이 그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니 물고기를 제대로 보이겠습니까? 갈릴리바다는 물이 맑습니다. 그래서 물방울이 튀기면서 고기가 놀고 있는것을 보는데 지금 베드로의 눈에는 맑은 물 속에 물고기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밤새도록 그물 던지고 찾아 헤멧지만 한 마리도 고기를 잡지를 못했어요 정말 피곤한 새벽이었습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져 지쳐있는 제자들입니다.
좀더 원색적으로 지적한다면 사람 낚는 어부로 출발했다가 물고기 잡는 어부로 되돌아 왔습니다. 복음을 전하며 주님 사역을 하겠다는 원대한 소명을 가지고 나갔다가, 이제는 다 내버리고 본래의 세속적인 직업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주의 일을 하겠다는 높은 이상은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오직 먹고 사는 일에만 급급한 현실 안주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상과 꿈을 다 접었습니다. 사명과 비전을 추구하는 일을 다 내 던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자포 자기 하는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순간에 한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분은 누구입니까? 4절입니다.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주향성도여러분!! 주님은 언제나 찾아오신 것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최초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도 그렇습니다. 최초의 살인극이 가정에서 벌어질 때도 하나님께서 동생을 죽인 가인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인아,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의 찐한 감동을 더욱 더 느낄 수 있습니다. 가출한 둘째 아들 언제나 돌아올까 집 앞에서 자식을 기다리며 먼저 애타게 찾으시는 아버지마음이 누가복음 15장 20절에.....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버지가 먼저 다가가 목을 안았습니다. 그리고 입 맛추었습니다. 사랑의 절정입니다. 이런 아버지의 마음이 디베랴호수에서 우리예수님 먼저 제자들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주향성도여러분!!.... 오늘 주님이 먼저 나에게 찾아오심을 믿습니까? 지금 어렵습니까?.... 지금 하는 일이 잘 풀리지를 않습니까?...... 가까이 계신 주님은 내 중심에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지금” 주님께서 내 중심에 오셔서 내가 주님께 드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줄 믿습니까? 아멘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제자들앞에 서 계셨지만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4절 하반절...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지난날 저들이 믿음이 있어서 주를 위해 헌신하며 죽도록 충성하며 주님을 따랐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고기 잡는 어부로 변신했습니다. 이런 상태가 되면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는 불 신앙으로 추락한 것입니다. 그러니 알아 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 일에 바쁘고 내 일에 충성하면 주님이 보일 것 같지만 자기만 보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주신 일을 감당 한다고 해서 주님만 보일 것 갖습니까? 절대로 그렇치 않습니다. 교회 일을 해도 자기 영광만 드러나면 주님이 보이지 않고 자기만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자들의 영적 함정 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주님 앞에서 얼마나 자기 자신을 드러냈습니까? 동료제자들앞에서 그랬습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저는 절대로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예수님 체포 될 때도 용감한 무사처럼 말고의 귀를 칼로 잘라버렸습니다. 설익은 행동하다가 주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들어나면 주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이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주님을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먼저 애들아! 이렇게 부르시고 계십니다.
성도여러분!! 이름을 부르는 것과 애들아 이렇게 부르는 것과 부르는 어감이 어느 쪽이 더 친근 합니까? 제가 청년들을 부르고 카톡으로 문자할 때 호칭을 사용할 때 주로 아들 예쁜 딸 이렇게 보통 부르는데 애들아! 하고 부르면 어떠습니까?
사실 이름을 부르면 좀 딱딱하고 친숙한 관계가 아닌 사무적으로 부르는 호칭이 아닐까요? 그러나 애들아!! 이런 호칭은 더 친근한 필링이 있습니다.
예수님 그렇게 제자들을 부릅니다. 애들아! 고기가 있느냐 저들이 필요한 것을 아시고 어쭙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끝임 없이 우리에게 필요 것 아시고 물어보시지 않습니까?...... 아픈 것을 다 아시고 얼마나 아프니!! 이렇게 물으심을 경험하시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성령님의 내재하심을 통하여 친밀하게 말을 걸어오십니다. 나에게 속삭이십니다. 언젠가 제가 기도할 때 느꼈지만 마치 제 귀를 잡고 속삭이면서 말씀하실 때가 있었습니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에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 하시네/ 나에게 실망하며 내 자신 연약해 고통 속에 눈물 흘릴 때에 못자국 난 그 손길 눈물 닦아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너는 내 아들이라 나의 사랑하는 내 아들이라♭♩♩
예수님 비록 저들이 알지 못해도 깨닫지 못해도 절대로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저들이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아시고 세밀하게 가르쳐주십니다. 허탕쳤지만 다시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렴
6절.....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제자들은 예수님이신 줄도 모른 채 말씀을 따라 이미 내려보았던 오른편이지만 그래 순종하고 다시 던지자 그물을 던졌는데 놀랍게도 많은 물고기를 잡아 올립니다.
우리는 괜히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기도하게 됩니다. 아프면 기도하게됩니다. 힘들면 기도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그 기도를 시키신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그냥 기도합니다. 마찬가지로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시키는대로 그대로 그물을 던지고 엉짜! 그물을 들어 올렀더니 물고기 153마리가 잡힌 겁니다.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영적 눈을 뜨게 하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심을 믿습니까?
저들이 필요한 고기를 잡았는데 고기 많이 잡은 것에 대해 기뻐하기보다 영적인 눈이 열리니까 이제 예수님을 보게 된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 요한이 7절에..... 주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여기 주님이라고 고백한 요한은 십자가 밑에서 마지막까지 지켜본 한사람 요한입니다. 요한만큼은 끝까지 예수님 곁에서 지켰습니다. 그만큼 사랑하는 마음이 일편단심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을 알아 봅니다. 사랑하는자 만이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미워하고 오해하는 마음로 가득차 있으면 아무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성도여러분!! 오늘 어떤 일을 만났습니까? 나의 구제적인 생활속에서 지난날 내게 주신 은혜를 기억해낼 수 있어야합니다........ 언젠가 하마터면 고통사고로 죽을 뻔 했는데 그때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 한 일이 있어야합니다...... 오늘 감기만 걸리더라도 그때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던 일이 기억나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제자들이 다 있는데 왜 요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베드로를 향하여 주님이시라 하니까 베드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베드로 곧 바로 디베랴호수에 뛰어들었습니다. 베드로 다운 행동입니다. 앞 뒤가 없습니다. 주님이라는 소리하나 때문에 뛰어든 것입니다. 고기가 많이 잡혔든 적게 잡히든 생각할 시간이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시라는 그 음성만 듣고 그냥 바다에 뛰어든것입니다. 어쩌자고 무모한 행동을 합니까? 베드로!! 오직 주님이시라는 음성 때문에 주님 만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그냥 뛰어든 겁니다. 언제든지 주님사랑하는 마음 최고로 갖겠다는 제스처일까요?
주님은 베드로의 모습을 다 보고 계셨습니다. 이제 베드로와 제자들 육지와는 50간쯤 떠어져 있으니까 약100M 정도된 거리인데 150마리 가득 잡힌 고기 그물을 끌고 육지로 내려 놓았습니다. 이때 베드로와 제자들의 모습이 어떠 했을까요? 아직까지도 요한만 빼고 비몽사몽 정신이 없어요 주님이라는 음성은 들었지만 정말 주님이실까? 피곤에 지쳐있는 모습으로 새벽아침 육지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앞에 누가 계십니까? 이미 예수님께서 미리 숯불을 피워 놓으시고 그 위에 생선과 떡을 올려놓고 고기잡느라 힌들게 지쳐있는 제자들을 부르시며 저들을 영접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12절-14절.....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이 말씀은 오늘 본문 말씀에 가장 크라이막스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12절..... 주님이시 줄 아는 고로 부활의 주님을 이제야 알아보았기 때문입니다. 4절....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한 제자들이 12절..... 주님이시 줄 아는 고로 예수님을 알아 본것입니다. 주님이 주신 떡과 생선을 받아 먹었습니다. 식사공동체 자리에서 실패한 인생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시는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회사가 부도가 나 실패하는 것만이 실패자가 아닙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고기 잡는 세상으로 나가는 불신앙 정말 씻을 수 없는 영적 실패자라 할지라도........
그러나 다시 찾아오신 예수님.... 그리고 모른 척해 주시는 예수님....먹을 것을 미리 준비해주신 자상하신 예수님...... 그리고 함께 나누시는 예수님..... 이런 변함없는 사랑과 위로와 격려가 있기에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부활절후 첫 주일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 주님과 함께 손잡고 나아가 승리하시기를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