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악회가 아닌 우리들의 자유로운 산모임 <산에 대하여>의 28차 정기산행지는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의 경계에 있는 강천산이다. 원래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으로 가려고 했으나 출입 통제가 되어 갑작스럽게 행선지를 바꾼 것이다. 강천산도 가리왕산과 비슷하게 먼거리에 있어 접근이 쉽지 않으나, 보고싶은 친구들 만나고 싶은 마음에, 하나같이 서울과 이천과 경주에서 새벽을 달려 아침 10시경에 전북 순창 강천산 입구에 모였다. 원래 고정 멤버들인 기타맨과 시끄새, 그리고 창명이 빠져 분위기가 새로워지거나 달라질 것이라 예상했으나 전과 큰 차이는 없었다. 다소 조용해진 반면에 나름 색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오랜만에 호남지방의 산을 한번 같이 들어가 보자!
아침 10시 반경에 전북 순창에 있는 강천산 주차장에 모여 모두가 반갑게 인사를 한 뒤 산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처음 산행에 참여한 친구가 있으니 서울의 녹천(변영온)이다. 녹천도 우리와 무학초등학교 동기인지라 56세일 것인데도 산행력을 만만치 않은 친구였다. 산행 구력이 깊다는 얘기겠지.
전북 순창군 전체의 모습이다. 호남지방은 들이 넓다하지만 여기는 산이 많다. 위에 보면 알겠지만 전부 산으로 덮여있다.
자! 산행 시작! 모두들 표정들이 밟다.
병풍바위를 비단처럼 휘감고 있는 병풍폭포는 40m의 높이에서 물폭 15m로 떨어지는 폭포와 30m의 높이에서 물폭 5m로 떨어지는 두 줄기의 폭포로 되어 있다. 죄 지은 사람도 이 병풍바위 밑을 지나오면 죄가 깨끗해진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폭포이다. 가물어서 수량이 부족하다.
강천산(583.7m)은 전북 순창과 전남 담양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원래는 생김새가 용이 꼬리를 치며 승천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용천산(龍天山)이라 불렸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호남정맥이 이 강천산 산줄기를 휘감아 지나가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이다. 광덕산(565m)·산성산(603m)과 능선으로 길게 이어지는 이 산은 깊은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과 절벽이 어우러져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기도 한다. 강천산은 1981년에 한국 최초의 군립공원(순창군)으로 지정되었으며, 비교적 높지는 않지만 병풍바위·용바위·비룡폭포·금강문 등 이름난 곳이 많다. 또 광덕산·산성산에 이르기까지 선녀계곡·원등골·분통골·지적골·황우제골 등 이름난 계곡만도 10여 개나 된다. 비룡계곡을 계속 들어가다 보면 길이 50m에 이르는 구름다리인 현수교가 놓여 있는데 이것이 강천산의 명물이다.
고찰 강천사로 들어가는 강천문이다.
강천사 지나 좀 가다보면 우측 왕자봉으로 올라가는 나무계단이 나오고, 이곳으로 올라가면...................
강천산의 명물, 현수교가 나온다. 현수교에서 더 오르면 View Point(전망대)가 나온다. 서로 뒤돌아 걷고 있는 녹천과 단미는 무슨 dual이라도 벌이려는 걸까?
현수교 건너 좌측 봉우리가 신선봉으로 그 정상에 정각이 있다.
View Point(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현수교
View Point에 선 부르스김, 이명자, 청산녹수 부인, 지루선수...................
현수교를 건너고 있는 단미. 강천산은 그녀에게 66번째의 100명산 등반이다.
현수교 건너 좌측으로 신선봉을 오르다 내려다 본 현수교.
신선봉을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팀.
신선봉 정각에 선 팀. 근데 이명자 얼굴이 왜 저렇지?
아래에 내려다 보이는 고찰 강천사
이제 신선봉에서 관광객들과 떨어져 우리끼리 본격적인 산행에 나선다. 우리는 삼인대로 떨어지지 않고 광덕산으로 나아가면서 강천산을 반 종주할 생각이다. 자! 광덕산으로 가자.
강천산은 수려한 산세와 울창한 숲, 기암괴석과 수십 리에 이르는 깊은 계곡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가지고 있어 1981년 국내 최초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강천산은 산세가 높지 않고 웅장하지도 않지만, 사시사철 끊이지 않고 흐르는 계곡의 맑은 물과 빼어난 봉우리, 15개가 넘는 크고 작은 계곡이 곳곳에 산재하고, 순창 삼인대(三印臺:전북유형문화재 27)·신선대(神仙臺), 병풍바위·범바위·어미바위·부처바위, 비룡폭포·구장군폭포·약수폭포 등 이름난 곳이 많다.
봄이면 진달래·산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에는 많은 피서 인파가 계곡을 찾는다. 특히 11월 초순에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아기단풍 등 활엽수가 만들어 내는 단풍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산 입구와 해발고도 300m 능선에 각각 호수가 있는데, 전자를 강천1호, 후자를 강천2호라고 부른다.
광덕산이 가까와지면서 나타나는 시루봉, 금성산성으로 나아가는 산줄기
드디어 광덕산, 이곳이 오늘 산행의 사실상의 강천산 정상이다. 지도에는 강천의 정상이 왕자봉으로 되어 있으나 그 쪽은 경관과 등반성이 떨어져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고 이곳으로 많이들 오른다.
찬 바람이 불어 바람을 피하려다 보니 할 수 없이 임도 안부지역에 식사용 보를 깐다.
식사를 마친 후, 다시 돌격 앞으로.........................
다소 시간이 지체되는 감이 있어 리더를 맡은 내가 치고 나간다. 이때 리더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쉬지 않고 조금 속도를 내어 30분 바짝 쳐오르니 금방 시루봉이 눈앞에 나타났다.
오르고................또 오르고.............
바위구간은 철계단으로 오르고..............
경관이 좋은 곳에서는 찰칵, 찰칵! 여성동지들의 山心 모으기.............
거대한 시루봉은 정상부에 와서 보면 요렇게 초라하게 생겼다.
그리고 강천산 금성산성..............금성산성은 사적 제353호이다. 삼국시대에 처음 축조하였으며 조선 태종, 임진왜란 후 1610년(광해군 2), 효종 때에 성첩(城堞)을 증축, 중수하여 견고한 병영기지로 규모를 갖추었다.
금성산성은 호남의 3대 산성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담양읍에서는 동북쪽으로 약 6㎞ 떨어져 있다. 외성은 6,486m, 내성은 859m에 이르며 돌로 쌓았다. 성안에는 곡식 1만 6천 섬이 들어갈 수 있는 군량미 창고가 있었으며 객사, 보국사 등 10여 동의 관아와 군사 시설이 있었으나 동학농민운동 때 불타 없어졌다. 동서남북에 각각 4개의 성문터가 있는데 통로 이외에는 사방이 30여m가 넘는 절벽으로 둘러싸여 통행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이 근방 산줄기의 주봉인 철마봉을 비롯하여 일대의 산지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다. 또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성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가운데는 분지여서 요새로는 완벽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다. 이같은 지리적인 특성으로 임진왜란 때는 남원성과 함께 의병의 거점이 되었고,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치열한 싸움터가 되어 성안의 모든 시설이 불에 탔다. 내성 앞에는 별장(別將)을 지낸 가선대부(嘉善大夫) 국문영(鞠文榮)의 비가 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산성산으로 나아가지 않고 금성산성 동문에서 아래 계곡으로 떨어진다.
하산..................
또 하산.................
드디어 계곡이 나오고.............
약수터도 나온다.
맑고 투명한 계류
중간에 설치된 화장실의 표지판이 이채롭다. 여자들은 앞 배설을 할 때 머리에 소름이 지릿지릿 돋는가?
절륜이군. 위로 치솟다니................
이 여성의 폼이 이채롭고...............밑이 뻐끔하게 벌어졌네.
여성상의 바로 앞에 선 남성의 표정이 묘하고.................아래에..................
육중한 육봉.....................거기다 천하 명기인 根頭에 혹(?)까지................저걸로 슬슬 긁어대면 여자들 뻑 가겠네. 끙~~~~~~~~~~~~아무래도 사대부가 융성했던 영남지방 보다는 호남지방의 문화가 좀더 서민적, 세속적, 외설적으로 강하게 나타나 보인다.
그리고 구장군폭포.............그 앞에 강철사나이............막걸리김!
나이 들어 친해진 친구들..............결코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친구들!
저런 구멍(?)도 있고............
강천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말사로, 887년(진성여왕1)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 고려시대인 충숙왕 3년에 덕현이 사세를 확장, 조선시대 성종 13년에 신말주의 부인 설(薛)씨의 시주로 중창하였다. 후삼국의 분쟁이 한창이던 때에 왕건이 이 절의 암자에서 유숙하였다 하고, 그뒤 임진왜란 때 태능(太能)이, 철종 때 금용당이, 6.25뒤 주지 김장엽이 1959년에 첨성각, 1977년에 관음전을 신축한 뒤 비구니의 도량으로 전승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대웅전과 보광전, 관음전, 요사채 등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현존하는 문화재로는 대웅전 앞에 있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92호인 3층석탑과 금강문, 삼인대(三印臺, 세 사람의 관인을 소나무에 걸었던 곳이라 하여 붙은 이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27) 등이 있다. 또한, 삼층석탑 북쪽 약 1m 지점에는 중대석과 보주만이 남아 있는 석등이 있다.
메타세콰이어 길
그리고 라스팅....................
5,000원짜리 밥이라도 먹을만하다..................서울 친구들과 헤어진 아쉬움을 뒤로 한채 우리는 담양으로 들어간다. 내일은 추월산을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