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지 묘소의 혈처 진위 논쟁
위치 : 괴산군 불정면 외령리 산44
정인지 묘소는 청주한씨 시조 한란 묘소와 흡사한 형태다. 묘지 앞이 젖가슴처럼 솟은 모습이기 때문이다. 세간에서 말하기를 이곳 묘는 노서하전형(老鼠下田形)이라고 한다. 늙은 쥐가 먹이를 찾아 밭으로 내려온 형국이라는 것이다. 이때 전면에 있는 봉우리를 고양이에 비유하여 묘소는 납작 엎드려 몸을 사리는 형태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에는 크고 높은 안산으로 인해 묘소는 좌불안석의 처지가 되었다. 위압적인 안산이 가깝기 때문이다. 정인지 선생은 이곳 묘소를 충청도 관찰사 시절 스스로 정했고, 1396년 丙子生으로 83세까지 장수하기 때문에 묘소에 노서하전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이곳은 혈의 진위와 가부에 대해서 오랜 세월 갑론을박이 있던 곳이다. 대체로 긍정적으로 보는 경우는 묘지 앞 볼록하게 솟은 D부분이 혈처라는 주장인데, 전면의 조망이 후련하고 통통하게 맺혔다는 것이다. 혹자는 부인 묘에서 혈이 맺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인지 묘에 대해서는 여러모로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묘 앞에서 용맥이 다시 솟았기 때문에 기의 멈춤이 없을 뿐 아니라, 좌우가 오목한 형태여서 기맥이 옹색하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모두 맞는 말이다. 따라서 이를 좀 더 학문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형세론에서는 혈의 가부를 판단하는 세 가지 원칙이 있는데, 이를 간혈지삼증론(看穴之三證論)이라고 한다.
첫째, “기지자 일증”(氣止者 一證)은 기의 흐름이 차분하게 멈춰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곳은 묘지 앞이 솟으면서 氣止者를 못했다. 이러한 경우 기맥이 설기되었다고 한다. 혹자는 길게 설기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정도는 무방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다음 두 가지를 더 살펴보도록 하자.
둘째, “맥자자 이증”(脈䐉者 二證)은 혈이 맺히면 기맥이 농축되어야 한다. 이를 현장에서는 기가 뭉쳤다고 한다. 그러나 정인지 묘는 좌우가 오목한 지점에 자리하였다. 마치 속기처(束氣處)와 같은 모습이다. 그러한 까닭에 묘 좌측은 비가 오면 자주 사태가 난다. 결국 脈䐉者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䐉 : 살찐 모양 자)
셋째, “작순자 삼증”(作脣者 三證)은 혈을 맺고 남은 기운이 전순을 형성해야 한다는 말이다. 즉 묘지 앞에 평탄한 제절을 확보해야 진혈이 된다. 그러나 이곳은 묘 전면에서 볼록 솟은 다음 급하게 떨어지면서 불안한 급락처가 되었다. 혹자는 볼록 솟은 부분이 혈처라고 주장하지만, 혈은 이토록 위험한 곳에 머물지 않는 법이다.
기맥을 유기체에 비유한다면 D처는 전면의 바람에 속수무책 노출될 뿐 아니라, 높은 안산이 위압적이기 때문에 불편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정인지 묘는 간혈지삼증론(看穴之三證論)에서 氣止者와 脈䐉者를 충족시키지 못했고. D처는 作脣者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두 곳 모두 혈이 될 수 없다.

形勢不止 氣脈不聚 (형세가 멈추지 못하면 기맥을 모으지 못한다)
山勢土脈未止 非穴也 (산세와 맥이 그치지 않으면 혈이 아니다)
이쯤에서 이곳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겠다. 이곳 용세는 주산으로부터 여러 차례 기복변화를 거치면서 마치 구슬을 꿴 듯 한 모습이다. 특히 묘 뒤편에서 결인처를 이루고 치솟는 모습은 강회백 묘가 연상되듯 압권이다. 그 흐름이 맵시 있는 모습으로 貴龍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고서에서 말하기를 생룡을 이루었으면 반드시 혈을 맺는다고 하였다. 이곳은 주봉에서 결인처를 지나 입수까지 이르는 용은 흠 잡을 곳 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참된 혈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산에서 조부자손(祖父子孫)의 인과관계가 결코 바꾸지 않는 다는 것을 감안하면 석연치 않은 것이다.
다시 한 번 점검하면 주봉에서 입수까지는 역동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입수처에서 C까지는 졸렬하기 짝이 없다. 많은 사람을 혼돈에 빠지게 하는 요인이다.

이때 입수처를 자세히 보면 D와 E로 나누어진다. 이와 같이 분맥되는 곳에서는 정룡과 방룡의 구분에서 실수가 없어야 혈의 가부와 진위 분석에서 실패하지 않는다.
그런데 E로 뻗은 것은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정룡과 방룡의 판단은 길고 짧음의 문제는 차선이고, 어느 쪽이 높고 중후하게 형성되었는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한다.
필자가 보기에 D줄기는 낮고 산만하다. 반면 E줄기는 중후하면서도 평탄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E줄기가 정룡이고, D줄기는 방룡이 된다. 따라서 혈은 E줄기에서 남향으로 맺힌 것이고, D줄기는 관성(官星)이 되어 전면의 흉살을 막아주는 역할인 것이다.
유기체인 혈은 결인처를 지나 솟구치기까지 역동적인 행보를 보였으나, 불현 듯 높은 안산이 가로막자 방향을 바꾼 것이다. 그러자 D줄기는 안산을 경계하면서 혈을 보호하는 형태가 되었고, 높은 안산은 외방에서 水口砂의 모습으로 역할이 바뀌었다.
좌향을 약간 바꾸자 혈처의 수척함을 걱정할 필요가 없고, 용의 급락처를 우려할 필요가 없으며, 안산의 위협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곳에서 간혈지삼증론을 대입하면 氣止者, 脈䐉者, 作脣者 세 가지 요인을 모두 충족시킨 것이니, 절묘한 용과 혈의 배합이다. 四象穴로는 돌혈이 되었다.

현재 그 지점은 앞으로 누구도 취할 수 없는 금기의 땅이 되었다. 정인지 묘소 뒤에 묘를 쓸 사람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답사한 사람은 누구라도 밟을 수 있다. 정인지 선생은 자신의 묘를 방문한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가장 소중한 터를 기꺼이 내 준 셈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묘소 뒤편의 용세가 매끈하게 치솟는 모습으로 매우 역동적인 형태를 보이는데, 잡초와 넝쿨이 우거진 상태로 관리가 안 된다는 점이다. 사람들 눈에 띄는 묘소 전면만 관리할 뿐 보이지 않는 후면은 방치해 두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용맥은 좀처럼 보기 드문 것이니 잡초와 넝쿨을 제거해 잔디를 심는다면 방문객들의 감탄을 자아낼 것이다. 마치 용이 하늘로 솟구치듯 승승장구하는 모습이니 가문의 자긍심을 나타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아래는 진주강씨 강회백 묘인데, 이곳과 마찬가지로 돌혈의 모습이다. 묘소 뒤편에서 치솟는 부분을 모두 잔디로 조성해 묘지의 품격을 더욱 가치 있게 하였다. 이러한 모습으로 인해 강회백 묘는 수많은 사람이 답사하는 명소가 되었음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첫댓글 정인지 묘역에 많은 풍수인들이 다녀갔지만 제대로 된 평가는 들어보지 못해
많은 의문을 남기는 자리였습니다.
교수님의 합리적이고 명쾌한 설명을 보니 많은 궁금증과
더불어 돌혈에 대한 확신을 갖게되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교수님의 논리적이고 명확한 해설에 감사드립니다. 큰공부가 되었습니다. ^^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정보도 많고 학식이 풍부하시네요
저의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지기를 눈에 보이는 것만 봐서는 안됍니다. 이어보고 덧데어보고 잘라도보고 해야 보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뒤통수에 머리카락이 길다고 바짝 자른다면 풍취하여지지 않을까요?
뒷 머리가 시렵고, 바람이 불어 따뜻함이 없어질 꺼라 저의 생각 입니다.
보기 좋게 잘라 깨끗하게하여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좋겠으나 저의 의견은 다릅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교수님 글잘보았습니다. 정룡과 방룡은 길고잛음은 차선이고 높고 중후하게 형성되었는지를 우선적으로 판단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