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장춘역과 장춘 서역
웨이만황궁박물원(僞滿皇宮博物院)을 다 볼 즈음 벌써 시간이 그리 됐는지 마감시간이다. 자리를 지키는 근무자들의 성화가 눈에 보여 더 이상은 머물 수가 없었다. 우리는 깔끔하게 꾸며 놓은 정원을 마저 보고 박물원을 나와야 했다. 추운지역에 어울리지 않는 일본 다다미 방 모습과 중국 당서기 강택민의 9월 18일을 잊지 말자는 글자가 긴 여운으로 남는다. 광장 앞에 선 증기기관차를 쳐다보았다. 장춘은 당시 가차 갈림길이고 중심지였다. 저 기차 때문 만주사람들은 속는 줄도 모르고 마냥 들떴을 것이다.
황혼이 짙게 물든다. 만주국에 물든 황혼에 소주 생각이 갑자기 절실해진다. 속이 쓰려서 일게다. 이동네 어딘가에 인간마루타로 유명한 731부대도 있을테다. 우리의 독립은 요원하다 생각한 많은 인사들이 일본 앞잡이 노릇을 했었다. 문인, 학자, 기업인 등등 셀 수없이 많다. 하다못해 동네 군청에 서기, 그들말로 꼬스까이 감투를 씌워 붙여두었더니 나까무라 순사 짓을 알아서 척척해냈다. 감동인의 감자라는 소설이 실상을 말한다. 하굳이 일본사람들을 많이 투입할 필요도 없이 독립군, 반동분자를 잘 골라냈다. 쇠망하는 국가는 백성을 속이고 울리고 파란만장한 생을 만든다. 청나라 서태후도 그러했고 조선도 그랬다. 그들이 9 18을 잊지 말자하듯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8월 15일을 기념하듯 경술 국치일 8월 29일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도에 따르면 박물원 담 너머에 바로 전철역이 있다. 담을 넘을 수도 없고 우리는 지친 발걸음을 터덕대며 옮길 수밖에 없었다. 꼭두새벽 기어 나와 하루 종일 걷고 타고 하다 보니 지치고 만다. 오늘 하루 이동거리가 자그마치 천 킬로도 넘는다. 길거리 음식점은 양꼬치를 구우려고 숯을 피우고 있었다. 추운지역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너무들 지방질을 즐겨 먹는다. 하얼빈 광장에서 드레스 입은 여자 빼고는 딱 잘라 말해 호리호리한 여인들을 한 번도 못 봤다.
그런데 정류장에 부쳐 놓은 선전 광고물이 놀랍다. 의사 여섯이 방긋 웃는 모습, 한국의 유명한 성형전문 의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대단한 광고다. 한국의사가 장춘에서 정형수술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해외로 나갈 정도로 우리 의술은 알아줄만하다. 콧잔등에 반창고 부치고 강남을 누비는 요우커는 모두 병원을 들른 사람들이다. 하지만 미안한 말이지만 이곳 여인들에게는 얼굴이 아니라 지방질 흡입이 더 필요할 것만 같다.
( 버스정류장에 걸린 한국 정형외과의사 선전 광고물)
우리는 전철에 올랐다. 한 정거장을 가서 바로 내렸다. 장춘역 까지는 안가고 가깝다고 해서 그냥 내린 것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장춘서역이다. 아까 그곳에서 내려 박물원을 들렸으니 다시 돌아갈 곳은 당연 그곳이다. 내심 장춘역에서는 버스도 많고 택시도 많을 것도 같아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내린 것이다. 장춘역 가는 길은 영 시원치 않았다. 전철에서 내려 걷는 내내 장춘역으로 가는 것이 맞는지 의심이 날 정도였다.
(장춘역 )
우리의 기간산업에 해당하는 큰 공장이 철도로 연결되었듯이 큰 시멘트 공장을 보고 역이 그 근처에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는데 역시 그대로 들어맞았다. 20분쯤 걸으니 드디어 장춘역이 나타났다. 어마어마하게 큰 건물이다. 이 사람들은 역이 아니라 대궐을 지어 놓았다. 저 큰 공간을 추운 날 어찌 난방을 다할 것인가. 그래서 미세먼지가 끝도 없이 우리한테 날아오는지 모르겠다.
택시가 거의 3백 미터 가까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택시기사들은 뭐라 떠드는 데 아마도 장거리를 뛸 손님을 부르는 것 같았다. 배낭을 멘 친구들이 보였다. 백두산을 향하는 등산객이란 생각이 들었다. 장춘 서역 행 버스 노선을 찾지 못해 결국 우리는 택시를 탔다. 35원이 나왔다. 아무튼 우리는 장춘 서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심양 행 기차를 타려면 한 시간이 남았다.
“혹시 앞차가 있다면 당겨서 갑시다.”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몇 시로 바꾸면 좋을까.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순간 역관이 말을 했다. “어! 우리 기차번호가 안 보이는데.” 그 순간의 아찔함이란. 다들 놀라서 차표를 살펴보았다. 이럴 수가! 차표는 장춘 서역이 아닌 장춘역 출발이었다. 당황했다. 이제 막 장춘 역에서 택시타고 왔는데, 다시 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그보다는 제 시간에 갈 수나 있는가 말이다. 우리처럼 고속열차는 늘 정해진 역에서만 운행이 되는 줄 알았는데 여기는 그게 아니다.
더욱이 하얼빈에서도 서역이었고 장춘에서도 서역에서 내려 의당 서역에서 출발하는 줄 알았더니, 우리의 어리석은 관성이 착각을 한 것이다. 초짜답게 꼼꼼히 챙기지 못한 탓에 아쉬운 결과를 자초하고 말았다. 그나저나 대국이라고 통도 크다. 고속철을 한 동네에 두세 개 만들 이유가 있을까. 이건 낭비다. 하기야 인구수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기는 하다.
(거금 들여 산 고속열차 표)
이제 시간에 쫓긴다. 우리는 허겁지겁 택시를 탔다. 두 대의 택시, 역관이 먼저 출발한 택시를 쫓아서 가라고 했는데 이상하게시리 택시기사가 미터기를 안 꺾는다. 이방인인 줄 알고 바가지를 씌우려는 것 같다. 앞서 가던 택시가 잠시 멈춰 섰다. 큰 소리가 들리는 듯싶었다. 나중에 내려서 안 사실이다. 두 택시는 아마도 작당을 하였던 모양이다. 방금 우리가 그곳에서 35원을 주고 온 것을 모르고 미터기를 안 꺾고 50원을 달라고 했다고 한다. 다시 역 앞으로 돌리라고 했더니 그때서야 우리가 빠삭하게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제 값을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앞차가 갑자기 선 것은 50원이 아니라 35원임을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온 길을 되돌아가 속상한데 그런 녀석들이 걸려들다니. 녀석들이 미터기를 안 꺾은 것은 합승까지 해 착복을 하려고 그런 것 같았다. 녀석들은 가는 내내 합승 손님을 찾으며 달렸다.
다시 돌아온 장춘역. 전광판에서 G8032 기차번호를 발견 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한 상황이었다. 추측하건대 우리가 황궁에서 곧 바로 택시를 타고 장춘서역으로 갔다면 아마 그날 저녁 심양 행 기차를 놓쳤을 확률이 높다. 남은 무료한 시간, 맥주를 마신다고 어딘가로 직행해서 술잔을 비우고 있었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30분도 채 안남기고 장춘 서역에서 장춘역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거리상 우리는 기차를 놓쳤을 것이다. 이 확률도 만만치 않다. 그러한 경우 비용은 비용대로 깨지고, 문제는 다음기차가 언제쯤이냐 하는 것이다. 생각보다는 고속열차가 자주 없다. 장춘에서 심양까지 350킬로가 넘는다. 터덜대는 밤기차로는 침대차가 필요하다. 아찔했다. 그 다음 일정에 큰 차질을 빚을 뻔 했다. 한바탕 쇼를 치르고 우리는 8시 15분 기차에 “무사히” 올라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이 기차는 길림시에서 출발하여 안산까지 가는 기차다. 중국 고속열차는 우리와 달리 노선도 많고 출발역도 다른 것이 대단한 수송능력이다. 기차도 덜커덕 거리거나 진동이 없다. 얼마 안 있어 우리나라와 전혀 차이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시속 303킬로,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배가 고팠다. 도착하면 9시 반도 넘어 식당 찾기도 애매하다. 오늘 하루 못해도 1천 2백 킬로를 뛰었으니 다들 지쳐서 빨리 쉬고 싶을 것이다. 기차 안에서 민박 아줌마에게 문자를 보냈다. 지치고 배고프니 밥 좀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밥은 너무 늦어서 곤란하다고 한다. 묘안이 없을까. 어찌하든 아줌마를 끌어들이는 게 좋을 것 같아 다시 문자를 날렸다. 우리가 라면을 사 가지고 가 끓여먹어도 되느냐는 내용이었다. 내심 이렇게 하면 끓여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먼저 작용했다. 하지만 말투로 봐서는 쌀쌀한 기력도 있는 여인네라 기대할 수만도 없다.
문자가 날아왔다. 라면을 사오면 끓여주겠노라고 했다. 생각대로 걸려든 것이다. 그럼 그렇지, 라면이 있다면 그 다음은 밥이다. 라면에 밥을 말아 김치와 먹는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그 집의 고소한 밥과 물컹한 김치가 떠올랐다. 햅반을 준비하려는 데 전자레인지가 있느냐고 문자를 날렸다. 나는 햅반을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답이 왔다. 찬밥은 많아요. 내가 원하는 대로 된 것이다. 들어가는 길에 우리도 먹고 아줌마도 줄 겸 과일을 잔뜩 샀다. 급히 씻고 식탁에 마주 앉았다. 이렇게 맛있는 라면은 태어나 처음 먹어본다. 맛이 없어도 성의를 보아 맛이 있다고 해야 할 판국,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극찬을 아끼지 않으니 아줌마도 싫지는 않았는지 활짝 웃는다. 오늘하루 비록 고단했지만 간 거리만큼 본 것도 많고 의미도 있고 인상적이었다. 만주를 종횡무진 누비지 않았는가. 내일은 느긋하게 심양시내를 돌기로 했다. 오늘 너무 무리했기 때문에 완급조절을 하자는 것도 포함해서 정한 것이다. 아마 내일도 우리의 실수는 또 계속될 것이다. 여행은 실수가 한 맛 차지하며 예기치 않은 또 다른 여정을 소개하고 추억을 만든다. 아니 인생이 또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