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킬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우리는 족장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175세를 살았고, 야곱은 147세, 요셉은 110세를 살은 반면에 창35:28~29절에 의하면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세라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라고 하였습니다. 창12장에 보면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신 것은 75세 때였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
그리고 가나안 땅에 도착하게 될 때에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아브라함은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쉽게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창15장에서 하나님이 다시 찾아 오셨을 때 아브람은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 나의 상속자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람을 통해서 자식을 얻지 못하자 부인 사라가 자신의 몸종인 하갈과 아브라함을 통해서 자식을 얻고자 남편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함께 잠자도록 권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들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창17:18-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계자로 이스마엘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맹세까지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이 네 후계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후계자는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사라를 통해서 낳는 아들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이삭에게는 어떤 인생이 기다리고 있었을까요? 이삭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이삭은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에 의해서 이삭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삭은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아들을 주시겠다고 하셨을 때 아버지 아브람과 어머니 사래가 웃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대로 1년 뒤 태어났고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① ’아들(벤)‘이라는 말씀이 10번이나 거듭 사용하였습니다.
창22:2-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3- ~그의 아들이삭을 데리고,
6-~그의 아들이삭에게..., 7-~ 내 아들아, 8-~내 아들아, 9-~그의 아들이삭을,
10-~그 아들을 ..., 12-~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13-~아들을 ..., 16-~네 아들 네 독자도....
② ’독자‘라는 말씀도 3번 기록되었습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에게는 축복의 열매요 후계자였습니다.
마3:16~17에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하늘로부터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나 자신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요 자녀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2. 이삭은 제단에 드려진 사람입니다.
성경에서 이삭의 출생부터 성장까지의 말씀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이삭이 젖을 뗄 때 즉 약 세 살이 되었을 때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유일하게
창21:8~’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젖을 떼었다는 말은 유대인들은 만3~5세를 가리킵니다. 사무엘이 젖을 떼고나서 성전의 제사장에게 맡겨지게 되었습니다.
젖을 뗀다는 의미는 이제는 아이를 부모가 아닌 외부사람에게 맡겨도 좋다는 의미입니다. 외부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이 아이를 훈련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 아이를 맡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다가 창12장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러자 아버지는 나귀와 나무를 준비해서 아들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을 향해 출발합니다. 그리고 모리아에 도착해서 이삭은 아버지에 의하여 결박되어 제단에 드려졌습니다. 이삭은 마치 희생제물이 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삭이 아버지를 능가하는 힘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에 의하여 결박당한 사실을 봐도 이삭은 아버지와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창22:19-‘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 하였더라‘. 번제사건이후 아브라함은 혼자 돌아갔고 이삭은 그곳에 홀로 남았습니다. 이삭은 모리아 산의 제단에서 하나님 앞에 드려졌던 순간은 하나님께 순종이었지만 이삭 편에서는 죽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죽이려 했다는 극도의 배신감, 유기감, 충격, 무력감, 분노, 충격, 공포가 이삭을 괴롭혔을 것입니다. 이삭에게는 큰 고통이 치료되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브엘라해로이 부근의 광야에서 자신이 제단에 드려졌던 것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찾기 위해서 홀로 생각하며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 뒤 창23장에서 사라는 죽습니다. 여기에 이삭이 상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혼자서 사라를 헤브론에 있는 막벨라 굴에 사라를 장사지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떨어져 살고 있었지만 어디에 살고 있었는지는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20여년의 세월이 지나갑니다. 이삭은 더 이상 18세의 청소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버지 아브라함은 종을 시켜서 이삭의 아내를 구하러 라반의 집으로 보내게 되었습니다. 창24:67-’이삭이 리브가를 인도하여 그의 어머니 사라의 장막으로 들이고 그를 맞이하여 아내를 삼고 사랑하였으니 이삭이 그의 어머니를 장례한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고 하였습니다.
3. 이삭은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거부였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재벌이었습니다.
이삭은 부자집 아들이며 지금 말로하면 금수저입니다. 하나님은 이삭이 아내를 얻기 위하여 직접 먼 여행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인생의 회오리나 폭풍우를 감당할만한 배짱이나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고전10장 13절에서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 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성경 창24장 63절에서는 이삭에 대해서 ’이삭이 저물 때에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반면에 리브가는 64절에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묵상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그 하나님과 갖는 기도의 심층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즉 ’나를 자녀로 부르시고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하아님을 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였습니다. 창25:5-’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의 모든 소유를 주었고‘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삭의 결혼은 늦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하나님이 ’바닷가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자식들을 번성하게 주시겠다‘라는 말씀을 거듭 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는 쉽게 태어나지 않았습니다. 20년 동안 자녀가 없었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처럼 새로운 여인을 찾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습니다. 창25:21- ’이삭이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이삭은 나이가 많고 눈이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고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 되자 자녀들을 축복하기를 원했습니다. 음식을 가지고 온 야곱에게 창27:27이하의 말씀 ’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축복하였습니다. 히11:20-’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라고 하였습니다. 사랑받은 이삭, 순종의 사람 이삭, 묵상하는 이삭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이삭(창22:9-12)
1. 이삭은 사랑받는 아들이었습니다.
2. 이삭은 제단에 드려진 사람입니다.
3. 이삭은 묵상하는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