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스페인 여행 중 알게 된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들 이야기를 전해 본다.
그 배경 도시는 스페인 북동부 아라곤 지방, 과달라비아르 강과 두리아 강의 합류 지점에 있는 소도시 테루엘이다.
이곳은 8세기 이후 무어인들의 본거지가 되었다가 1171년 레콩키스타를 전개한 아라곤 왕국의 알폰소 2세에 의해 되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도 많은 무어인들이 남아 있어, 두 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무데하레스 건축 양식이 이루어져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이 도시에는 스페인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불리는 비극적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매년 2월 그들의 사랑을 기리는 축제가 열리고 있다. 테루엘 역 앞 계단의 중심 부분에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조각상이 남아 있고, 수많은 작가와 화가의 작품에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 지역을 대표하는 두 가문에 속했던 주인공 후안 디에고와 이사벨 세구라 두 연인은 13세기에 이 도시에서 태어났다. 소꼽동무로 시작해서 청년으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연인으로 발전했다. 이사벨은 부유한 상인의 딸이었고, 후안은 귀족 가문에 속하기는 했지만 몇 년 계속된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이 지역의 농작물이 황폐화되어 몰락하고 말았다.
그러자 이사벨의 집안에서는 후안과의 결혼을 극력 반대했다. 후안은 성공하여 돈을 벌어 올 것이라며 5년만 기다려달라고 부탁하고 도시를 떠난다. 이사벨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라는 집안의 요구에 완강히 버티며 후안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5년이 지나고도 후안이 돌아오지 않자 이사벨의 아버지는 강제로 다른 남자와 결혼시켜버리고 만다.
그 사이에 후안은 십자군 전쟁에 출정하여 공을 세우고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게도 이사벨의 결혼식이 있는 날에야 돌아오게 되었고, 모든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그녀의 신혼집을 몰래 찾아간 그는 5년 동안 기다린 마지막 키스를 부탁하지만, 이미 결혼한 몸인 이사벨은 그 부탁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후안은 모든 희망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져 목숨을 잃고 만다.
후회와 절망, 죄책감에 빠진 이사벨은 후안의 장례식에 가서 진정한 연인이었던 후안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하고 나서 그녀 또한 죽음을 맞는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본 가족과 이웃들은 두 연인을 한 자리에 묻어 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