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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의 구도의 길은 멀고 아득하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데미안』의 구절을 암송하던 시기를 지나왔다. 『수레바퀴 아래서』, 『인도에서』 몇몇 작품을 어정거리고, 『싯다르타』에 푹 빠지기도 했다.
헤세의 책을 몇 권 못 읽었지만, 그는 참으로 반듯하고 착하다. 반항의 키워드, 카뮈를 읽은 후라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드는 지도 모르지만 .. .
그의 작품에는 에밀 싱클레어와 데미안, 싯다르타와 고타마, 골드문트와 나르치스 같이 상반된듯하지만,결국 하나로 모아지는 구도자의 모습들이 등장한다.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친구관계도 서로 어우러져 윤회의 고리를 떠올리게 한다.
새로 잡은 『유리알 유희1,2』는 그동안 읽은 헤세의 총결판이란 생각이 든다.
'요제프 크네히트'라는 인물의 전기와 3편의 유고 (기우제, 고해사, 인도의 이력서)로 구성되었는데, 이것도 분명 다른 이야기인데도 정신이 한곳으로 모아진다. 꼭꼭 씹어서 음미하며, 다시 앞 장을 들춰보면서 읽었다. 제법 시간이 걸렸다.
어려서부터 훈련하여 검증된 완벽한 한 사람 (유리알 명인)이 혼란에 빠진 세상을 구원할 수 있을까. 공감각적 멀티미디어, 가상현실, 환상기법으로 쓴 미래소설이다. 헤세의 혜안이 놀랍다.
1932년 집필해서 1943년 출간했다.
- 유리알 유희의 역사를 일반인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쓴 서문이 55쪽에 달하는 것을 보면 이 이야기가 평이하지 않다는 걸 예고한다.
* 요제프 크네히트가 번역한 자필 원고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 어떻게 보면, 경박한 사람들에게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보다 존재하지 않는 사물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더 쉽고 책임이 덜 느껴질지 모른다. 그러나 경건하고 양심적인 사가 史家에게는 정반대이다. 즉 있음을 증명할 수도 없고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어떤 것을 경건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어느 정도 실재하는 것처럼 다룸으로써 그것이 실제로 존재하고 생겨날 수 있는 가능성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들만큼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것도 없지만 또 그만큼 절실히 사람들 눈앞에 그려 보여 주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도 없다.
- 알베르투스 2세
정신형성에 관한 논고 제 1권 제 28장
* "음악을 연주하는 것만큼 두 사람을 가깝게 하는 게 없지. 참 아름다운 일이야. 우리는, 너하고 나는 언제까지나 친구로 남겠지., 너도 푸가 만드는 법을 배우게 될 게다. 요제프." 이 말과 함게 노인은 소년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곤 방을 나갔다. 문간에서 그는 한 번 더 뒤돌아보고 머리를 정중하게 약간 숙여 보이며 눈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1권 70쪽)
* 음악 명인은 " 진리는 분명 있네. 그러나 자네가 바라는 '가르침',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그것만 있으면 지혜로워지는 가르침이란 존재하지 않아. 자네는 완전한 가르침이 아니라 자네 자신의 완성을 바라야 하네. 신성은 개념이나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네 안에 있어. 진리는 체험되는 것이지 가르쳐지는 것이 아니야. 싸울 각오를 하게. 요제프 크네히트. 보아하니 투쟁은 벌써 시작됐네." (107쪽)
* 노인은 농담이라도 하듯이 말했다. "듣자 하니, 무슨 외교관처럼 된 모양이던데, 그것은 사실 별로 아름다운 직업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모두 자네에게 만족해하는 것 같더군. 그 점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생각하게! 그러나 그 직업에 영원히 남는 게 자네 야심이 아니라면, 조심하게, 요제프. 사람들은 자네를 잡아 두려고 하는 것 같더군. 저항하게. 자네에겐 그럴 권리가 있어. 아니. 묻지 말게. 더 이상 말하지 않겠어. 자네도 알게 될 거야."
이 주의는 그의 가슴에 가시처럼 박혔으나, ... 고향에 돌아와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기쁨을 느꼈다.
(237쪽)
* 어느 날 드디어 크네히트는 그의 부고를 받았다. 서둘러 여행을 떠난 그는 자리에 누워서 고요히 잠든 사람을 보았다. 그의 조그만 얼굴은 오그라들고 쇠하여 신비로운 루네 문자나 아라베스크 무늬처럼 어떤 마법의 기호로 바뀌어, 이미 그 뜻은 읽을 수 없어도 미소와 완성된 행복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묘 앞에서 크네히트도 음악 명인과 페로몬테에 뒤이어 인사말을 했는데 그는 음악을 깨우친 한 사람의 현인이나 위대한 교사나 최고 관청의 자상하고 영민했던 고참 동료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의 노년과 죽음의 은총에 대해서, 최후의 날들에 그 곁을 지켰던 동료들 앞에 드러났던 정신의 불멸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1권 369쪽)
* .... 내가 바라는 일은 작은 것이야. 작은 방과 매일 먹을 빵, 그러나 무엇보다 교사이자 교육자로서의 일과 임무가 필요하네. 함께 생활하면서 감화를 줄 수 있는 한 명 혹은 몇 명의 어린 학생이 필요해. 이런 경우 대학은 가장 내키지 않는 곳이지. 한 소년의 가정교사나 뭐 그런 일이라도 좋겠네. 그 편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아. 내가 찾고 필요로 하는 것은 단순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야. (2권 30쪽)
* 크네히트는 엄격한 리듬에 맞춰 구령을 붙여 가며 호흡 연습을 시킴으로써 친구를 자기 학대로부터 빠져나로게 해 주었다. 그러자 친구는 자진해서 합리적인 근거에 귀를 기울였으며,쓸데없는 두려움과 걱정을 떨쳐냈다. 두 사람은 티토의 방으로 올라갔다. (134쪽)
* " 그리고 한 가지 친절을 베풀어 주었으면 좋겠네. 식물채집 한 것을 보고 자네가 고산식물에 대해 나보다 훨씬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 우리가 함께 지내는 목적 가운데는 알고 있는 지식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대등하게 되는 일도 들어 있다네. 그러니 우선 자네가 내 빈약한 식물학 지심을 검토해 보고 내가 이 분야에서 웬만큼 진전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하세."
서로 잘 자라는 인사를 나눌 때즘에는 티토도 매우 만족하여 호의를 품게 되었다. (142쪽)
* 헤엄치던 젊은이는 가끔 뒤돌아보며 명인이 자기를 따라 물속에 들어온 것을 보고 만족스러워했다. 그러나 다시 살폈을 때 상대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불안해졌고, 계속 살피고 부르다가 방향을 돌려 그를 구하려고 급히 헤엄쳐 갔다. ....
티토는 몸서리쳤다. 나는 그분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 그는 더 이상 자존심을 세우거나 저항할 필요가 없진 지금에야 비로소 놀란 마음의 슬픔 속에서 자기가 그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느꼈다.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명인의 죽음에는 자기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티토는 신성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그 빚이 자신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그가 이제껏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것을 요구하게 되리라는 예감이 밀려왔던 것이다. ( 2부 153쪽)
* 두려움은 인간의 삶을 짓누르는 압박이었는데, 이 무거운 압박이 없었다면 그들의 삶에서는 공포뿐만 아니라 강렬한 맛까지도 함께 없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두려움의 일부를 외경심으로 승화시키는 데 성공한 사람은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이런 부류의 인간, 즉 두려움을 경건으로 바꾼 사람은 그 시대에도 훌륭한 인물이자 진보한 인물이었다. 많은 것이 갖가지 형태로 제물로 바쳐졌는데, 이와 같은 제물과 제사 의식의 일정 부분이 기우사의 직무 영역에 속했다. ( 유고 2부 202쪽)
* 자신이 빠져나와 달아난 그곳이 지옥이라는 사실을 뚜렷이 깨달을수록 그의 마음속에는 수치와 슬픔이 더해 갔다. 결국 자신의 가련한 상태가 마치 목에 걸린 음식물처럼 목구멍을 틀어막으며 참을 수 없는 절박함으로 치밀어 오르더니 왈칵 쏟아지는 눈물에서 출구와 구원을 찾아냈다. 놀랍게도 눈물이 쏟아지자 그는 마음이 편안해졌다. (고해사 251쪽)
* 이러한 눈길만으로, 호의적인 관심의 흔적과 그들 사이에 생겨난 관계, 즉 스승과 제자라는 관계의 암시를 포함하고 있는 - 이러한 눈길만으로 요가 수도자는 제자의 입문을 수행하였다. 이 눈길은 제자의 머릿속에서 쓸데없는 생각들을 쫓아버리고, 교육과 봉사 속으로 그를 맞아들였다. 다자의 인생에 관하여 더 이상은 이야기할 것이 없다. 나머지 삶은 여러 그림과 이야기들 저편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는 그 이후 이 숲을 떠나지 않았다. ( 인도의 이력서 2권 336쪽)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헷세를 만나고싶군요.
많은 책이 기다리고 있네요. ^^
지금 <헤르만헤세 시집>을 읽고 있어요.
선배님 덕분에 헤르만헤세를 다시 공부합니다.
김대규 선생님이 헤르만헤세에 대해 수없이 말씀하셨는데
세월이 흐르니 기억에 없네요.
선배님
감사합니다.
사후에 가장 사랑받은 작가가 헤르만 헤세라고 하는군요.
다시 읽으니 더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