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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사(道士)가 되는 왕도(2) - 최고의 명리대가 박재현(朴宰顯)
조용헌 원광대 동양대대학원 교수
한번 읽으면 그 내용을 모두 외워 버리는 일람첩기(一覽輒記)의 소유자
한국 명리학계의 빅3 가운데 한 사람인 제산(霽山) 박재현(朴宰顯, 1935~2000). 경남 함양군 서상면의 극락산 자락에 맺혀 있는 을해명당(乙亥明堂)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제산은 과연 비범했다. 몸도 약하고 성격도 내성적이고 얌전해 언뜻 보기에는 평범한 아이로 보였지만, IQ만큼은 대단했다.
‘서상에 신동 났다’는 소문은 헛소문이 아니었다. 제산의 유년시절 이름은 광태(光泰)였다. 광태는 어렸을 때부터 ‘일람첩기’였다. 한번 죽 훑어보고 단박에 암기하는 능력을 가리켜 일람첩기라고 한다. 말하자면 인간 스캐너(scanner)인 셈이다. 을해명당의 기운을 받은 인물을 수십년간 고대했던 광태의 조부는 신동 손자를 끔찍하게 아꼈다고 한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던 전설이 드디어 현실로 나타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손자인 광태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이야기다.
광태가 학교에 가면서 혹시 도시락을 안가져가는 날이 있으면, 조부는 직접 도시락을 가지고 학교 문앞에 가서 기다렸다. 손자가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조부가 당신 방으로 불러 공부를 시켰다. 극성스러울 정도의 손자 사랑에 광태의 어머니는 아들을 시아버지에게 빼앗겼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래서 지나치게 손자를 감싸고 도는 것 아니냐고 말하면 “너희가 무엇을 안다고 광태를 나무라느냐”고 호통치곤 했다.
후일 광태가 정상적인 인생행로를 포기하고 지리산 일대의 산천을 정처없이 유랑하는 낭인으로 전락했을 때도 손자에 대한 조부의 믿음은 흔들림이 없었다.
“너희 안목으로는 광태를 모른다. 내 말만 들어라. 산으로 가서 공부하겠다면 잡지 말아라. 가 하는 대로 가만히 둬라.” 이 말이 아들·며느리에게 남긴 조부의 유언이자 당부였다.
제산은 서상초등학교를 마치고 진주농림중학교에 진학하였다. 진주농림은 당시 5년제였는데, 제산은 공부를 잘해서 장학생으로 뽑혔다. 하지만 운명의 신은 제산으로 하여금 조용히 공부나 하게 놔두지 않았다. 중2때 6·25가 터진 것이다. 피난을 가야 했다. 부랴부랴 진주에서 고향인 서상으로 올라오기 위해 목탄으로 불을 지펴 움직이는 목탄차를 탔다.
서상으로 오던 도중 이 목탄차가 비행기 폭격을 피하려다 비탈길에서 그만 엎어져 버렸다. 그 바람에 제산은 다리가 부러졌고, 전쟁 와중에 변변한 치료를 받지 못한 제산은 그만 앉은뱅이가 돼 버렸다. 3년 동안 집에서 앉은뱅이로 있던 제산은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집에서 놀아야만 했다. 그후 물리치료를 받아 겨우 몸이 회복되었을 때는 동년배 또래들과 많은 격차가 나 있었다. 집안의 다른 사촌들은 정상적인 과정을 마치고 이미 서울의 명문대학에 다니고 있던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광태(제산)는 시골의 거창농고에 다녔다.
거창농고의 선생들은 수업시간에 제산 학생의 날카로운 질문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거창농고 재학시절 제산과 같은 하숙방을 썼던 동기는 다음과 같은 술회를 남겼다. 하숙방에서 친구가 시험공부를 하고 있으면, 제산은 방에 누워 친구가 책 읽는 소리를 들었다. 제산은 몸이 약해 오랜 시간 앉아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산은 친구의 중얼거리는 소리를 모조리 암기해 버렸다. 시험공부를 열심히 한 친구는 70점을 받은 데 비해 누워 있던 제산은 만점을 받는 희극이 연출되었을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였다. 하지만 제산은 보편적인 학문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런 공부를 해서 무엇하느냐 하는 회의가 끊이지 않았다.
제산을 키운 것은 8할이 지리산이었다
거창농고 졸업 후에는 정상적인 궤도에서 완전히 이탈해 이 산 저 산을 떠도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소위 말하는 ‘낭인과’(浪人科)에 입학한 것이다. 머리 좋은 천재가 낭인과로 들어가면 관심 갖는 분야가 바로 도통(道通)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시작하여 나는 왜 이런 팔자인가 라는 의문을 거쳐 이 세상과 우주가 돌아가는 이치가 도대체 무엇인가에까지 이른다. 한마디로 압축하면 도를 통하고 싶은 대원(大願)이라고나 할까. 청년 제산은 ‘그것이 알고 싶다’는 불타는 욕망을 가지고 지리산 일대의 도인들을 만나러 다녔다. 지리산이 어떤 산인가. 역사 이래 한국 최대의 ‘도인구락부’가 아니던가. 지금도 어림잡아 2개 대대 병력에 해당하는 2,000명 정도의 낭인과가 운집해 있는 산이 지리산이다.
이 시절 청년 제산의 모습은 거렁뱅이에 가까웠다. 춥고 배고프고 노잣돈도 떨어진 상황이었다. 완전히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외로운 구도자의 길을 걸었다. 불가의 의례집인 ‘석문의범’(釋門儀範)에서는 이처럼 외로운 구도자의 심경을 ‘독보건곤 수반아’(獨步乾坤 誰伴我)라고 읊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오로지 나 홀로 걸어가니 그 누가 나와 함께 할 것인가!’라는 뜻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를 일러 단독자(憺者)의 삶이라고 하였던가! 하지만 머리에 기름을 부은 자는 그 길을 회피할 수 없는 법.
제산은 지리산 둘레의 산청·함양·운봉·구례 등지를 방랑하면서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숨어 사는 수많은 기인·달사들과 교류를 가졌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유교·불교·도교를 섭렵하게 되었다. 유교의 사서삼경과 불교의 ‘금강경’ ‘화엄경’ ‘능엄경’을 비롯한 제반 불경, 도교의 벽곡(酸穀)·도인(導引)을 비롯한 호흡법과 ‘성명규지’(性命圭旨) 같은 비서(秘書)들을 접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말로만 듣던 천문·지리·인사로 통칭되는 재야의 학문에 대해서도 눈을 뜨게 된다.
이러한 기인·달사들과 만남을 가지면서 제산은 어느새 영기(靈氣)가 개발되었던 것 같다. 대체로 머리 좋은 사람들은 영기(靈氣), 즉 직관력이 부족한 수가 많다. 분석적이기 때문이다. 매사를 하나 하나 논리적으로 따지기 좋아하는 사람은 영기가 쇠퇴한다. 마치 모래시계의 양면과 같아서 논리가 강하면 반대쪽 사이드인 직관쪽 기능은 퇴화되게 마련이다.
반대로 직관이 강하면 논리가 약해진다. 필자가 많은 도사들을 만나본 경험에 의하면 산에서 ‘기도발’이 잘 받는 사람은 성격이 단순해 깐깐하게 따지지 않는 경향이 있다. 쉽게 상대방의 말을 받아들인다. 반대로 대학에서 논문 많이 쓰는 교수들을 만나보면 논리적이기는 한데 시원하게 터진 맛이 없다. 물증(物證)만 중시하고 심증(心證)은 무시해 버리는 경향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답답하다. 기도만 많이 하고 학문을 하지 않으면 부황해지기 쉽고, 반대로 학문만 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성품이 속되게 변한다.
그래서 조선 중기의 서산대사(西山大師)는 ‘사교입선’(捨敎入禪)을 강조했다. 학문을 어느 정도 연마했으면 마지막에는 이를 버리고 선정(禪定)에 들어가는 것이 순서라는 말이다. 제산은 타고난 명민함에 이 산 저 산을 순례하면서 기도와 선정의 묘미를 터득하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되면 쌍권총을 찬 격이다. 제산의 지리산 시대를 계산해 보니 대략 10년 정도 된다. 31세에 결혼하면서 지리산 시대를 마감하였다고 보면 대략 20대 초반부터 30세까지 지리산 일대를 방랑한 셈이다. ‘나를 키운 것은 8할이 바람이었다’는 말이 있듯 ‘제산을 키운 것은 8할이 지리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정희의 제안 “함양군수를 시켜 주마”
제산의 지리산 시대에서 한가지 주목할 점은 박대통령과의 만남이다. 제산은 지리산 시절 중엽인 22~30세 무렵 군대에 갔다 와야만 했다. 그가 군대생활을 한 곳은 부산의 군수기지였다고 전한다. 필자가 정확한 기록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주변사람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제산은 부산의 군수기지에서 군대생활을 하면서 당시 군수기지사령관으로 있던 박정희 장군과 인연을 맺었던 것 같다.
그 시기가 1950년대 후반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제산은 졸병으로 군대생활을 하고 있었다. 사령관인 박정희 장군과 졸병이었던 제산이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운명’이 작용했을 것이다. 비록 계급으로는 졸병에 지나지 않았지만, 사람의 운명을 감정하는 데서는 이미 경지에 올라 있던 제산은 박장군과 계급을 떠나 인간적으로 만날 수 있었다. 군대 계급으로 따지면 장군과 일등병의 관계였지만, 운명이라는 주제를 앞에 두고는 카운셀러와 내담자의 관계로 전환되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역술가 앞에서 운명을 문의할 때는 지도받는 학생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제산은 이때 박장군에게 특별한 운명을 예언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신은 장군에서 끝나지 않고 앞으로 제왕이 될 수 있는 운명의 소유자’라고 말이다. 박장군도 자신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점쟁이 일등병의 헛소리로 흘려듣지 않고 상당히 현실성 있는 예언으로 받아들였다.
후일 제산이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당시 박장군과 자신은 사석에서 만나면 형님, 동생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5·16 이후에는 박대통령이 제산에게 함양군수를 한번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제안하기도 했다. 제산은 가끔 “박대통령이 나에게 함양군수 하라는 것도 거절했다. 그까짓 함양군수 하면 뭐하나? 이렇게 산으로 돌아다니며 사는 것이 훨씬 자유롭지!”라는 이야기를 주변 친구들에게 털어놓곤 하였다.
남산 다녀온 후 한동안 기관원 공포증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두 사람의 관계를 끝까지 상생(相生)의 관계로 몰고 가지만은 않았다. 도가의 경전인 ‘음부경’(陰符經)을 보면 ‘은생어해 해생어은’(恩生於害 害生於恩)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원수에게서 은혜가 나오고, 은인으로부터 원수가 나온다는 뜻이다. 은인이 원수 되고 원수가 은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1950년대 후반 부산의 군수기지사령관 시절 이미 제산의 신통력(?)을 파악했던 박대통령은 70년대 초반 10월유신을 감행할 무렵 제산에게 사람을 보낸다.
유신을 하려고 하는데 유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물음이었다. 이때 박대통령의 메신저로 제산을 찾아온 사람이 청와대의 S비서관이었다고 한다. S비서관은 제산을 찾아와 ‘유신’(維新)의 앞날에 대해 점괘를 물어보았다. S비서관과 이야기를 나누던 제산은 담뱃갑에 ‘유신’(幽神)이라고 볼펜으로 끄적거렸다. 저승 ‘유’(幽)자에 귀신 ‘신’(神)자 아닌가. 만약 유신(維新)을 하면 그 결과는 저승의 귀신이 된다는 무서운 의미의 예언이었다. 그러자 S비서관은 제산이 끄적거린 담뱃갑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고 한다.
S비서관의 이 모습을 무심히 보고 있던 제산은 순간적으로 ‘아차, 내가 실수했구나’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다고 한다. 제산은 비서관에게 그 담뱃갑을 가져가지 말고 그냥 두고 가라고 부탁하였다. 하지만 S비서관은 “설마 제가 이 담뱃갑을 박대통령에게 보이기야 하겠습니까?”하면서 주머니에 챙겨 집을 나갔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얼마 있다 건장한 기관원들이 제산을 잡으러 왔다. 비서관으로부터 이야기를 전해들은 박대통령이 격노했던 것이다.
제산은 남산 지하실로 끌려가 며칠 동안 죽도록 얻어맞았다. 기관원들은 팔을 뒤로 묶어 놓고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고 한다. 1970년대는 민주투사만 남산 지하실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지리산의 솔바람이 키워냈던 박도사도 초대받아야만 했던 시대였다. 중생이 고통받는데 도사라고 어찌 무사하리오! 역사라는 쳇바퀴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이치를 이 글을 쓰면서 필자는 깨닫는 중이다.
그러니 사회과학자들이여, 역술가들은 역사인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너무 몰아붙이지 마시라! 남산 지하실을 방문한 뒤 제산은 내면의 상처를 입었다. 이른바 기관원 공포증이었다. 낯선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 가운데 혹시 나를 테스트하기 위해 기관원이 섞여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였다. 실제로 많은 기관원들이 제산을 찾아와 별의별 테스트를 하기도 하였다.
명성이 알려진 도사는 익명의 다중을 상대해야만 한다. 익명의 다중. 그 가운데는 온갖 사람과 사건이 잠복되어 있다. 도사는 그 잠복된 지뢰를 미리 알고 피해 가야만 하는 고난도의 직업이다. 10개의 지뢰 중 9개를 피하더라도 마지막 1개를 피하지 못하고 그물에 걸려들면 그야말로 처참한 망신을 당한다. ‘그러고도 네가 도사냐?’하는 비아냥과 조롱을 감수해야 한다. 망신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그 비결은 은둔이다. 숨어 있어야 한다.
나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볼 수 있지만, 상대방은 나의 움직임을 볼 수 없도록 하는 처신은 천기(天機)를 다뤄야 하는 도사의 필수 덕목이 될 수 있다. 악어가 물 밖으로 나아가 바위 위에서 햇볕을 쪼일 때는 대단히 위험하다.
노출되어 있으므로 사냥꾼의 집중사격을 받을 수 있다. 제 아무리 신통력이 있다 해도 일단 무대 위로 올라가면 집중사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총을 쏘면 어떻게 하겠는가. 맞아야지 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도사는 무대 위로 올라가기 전에 삼십육계 놓을 자리를 확보해 두어야 한다. 36번째 마지막 계책은 역시 ‘튀는’ 일이다. 이 세상은 어찌 되든 튀어야 산다.
제산의 해인사 시절
제산의 일생을 놓고 볼 때 지리산 시대 다음에는 가야산의 해인사 시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군대를 마치고 다시 지리산에서 공부하던 제산은 집안의 강권에 의해 결혼해야만 했다. 장손이어서 씨는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31세때 결혼하였다. 그러나 신혼살림을 몇달 한 후 다시 산으로 간다.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던 부인에게 “나는 산으로 가야 한다. 미처 끝내지 못한 공부를 해야 하니 나를 놓아 주어라”하고 해인사로 들어간다. 함양에서 해인사는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다. 해인사가 어떤 절인가. 한국의 삼보사찰 아니던가. 순천 송광사가 국사가 많이 배출된 승보사찰(僧寶寺刹)이라면, 양산 통도사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불보사찰(佛寶寺刹), 그리고 합천 해인사는 불법의 총체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법보사찰(法寶寺刹)이다.
삼보사찰 가운데서도 법보사찰인 해인사는 기강이 엄하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원리원칙과 법대로 하는 해인사 가풍이다. 그래서 일반 스님들도 해인사에 들어가면 바짝 긴장한다. 머리 깎은 스님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머리 기른 유발(宥髮)처사는 어떠했겠는가. 유발처사(有髮處士)가 한국에서 가장 규율이 엄한 사찰인 해인사에 장기간 머무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천대를 받았다. 그렇게 어정쩡한 신분으로 머무르는 과정에서 사건이 하나 발생하였다. 살인사건이었다. 참고로 제산은 31세이던 1965년에서 36세이던 71년까지 해인사에 머물렀다. 살인사건도 이 기간에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살인사건이란 바로 20대 중반의 처녀가 해인사 경내에서 시체로 발견된 사건이었다. 늦가을 이른 아침 장경각 밑에서 낙엽을 청소하는데 낙엽 밑에서 처녀 시체가 발견된 것이다. 사찰 경내에서 처녀 시체가 발견되자 해인사는 발칵 뒤집혔다.
범인은 누구인가. 관할 합천경찰서에서는 매일 해인사 스님들을 한명씩 경찰서로 호출하여 알리바이를 심문했다. 매일 돌아가면서 스님들이 합천경찰서로 출두해야 하는 상황이 한달이 넘게 계속되었다. 범인이 나타나지 않으니 계속해서 스님들을 취조할 수밖에. 이러다 보니 해인사의 청정한 수행 가풍이 잘못하면 망가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하지만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없으니 달리 방법이 없는 상황이었다.
애가 타는 상황에서 홀연히 이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자청한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제산이었다. 뒷방 요사채에서 밥이나 축내던 처사가 사건을 해결해 주겠다고 자청해 나섰던 것이다. 제산은 “이 사건은 오직 나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동안 축적되었던 냉대의 설움을 한순간에 만회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담겨 있는 선언이었다. “내가 이 사건을 해결하는 데 단 한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아무개 총무 스님이 가사장삼을 입고 공손하게 큰절을 3번 해야 한다.
총무 스님이 3배를 하고 난 후 지필묵을 나에게 바치면 그 붓으로 사건의 해결책을 써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총무 스님의 삼배를 요구한 이유는 당시 해인사 총무를 맡았던 아무개 스님이 평소 제산을 천대했기 때문이었다. 해인사 측에서는 달리 해결 방도가 없었으므로 오만방자한 이 처사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제산이 정식으로 총무스님의 3배를 받고 난 후 붓으로 써준 글씨는 다음과 같다. ‘일목탱천 목자지행’(一木撑天 木子之行). 탱(撑)자는 ‘버팀목 탱’자다. 해석하면 ‘하나의 나무로 하늘을 지탱하는데, 목자(木子) 즉, 이(李)씨의 소행’이라는 뜻이었다. 하나의 나무로 하늘을 지탱한다는 의미는 바로 목수를 지칭한다. 목수는 나무 기둥을 세워 천장을 지탱하는 업종에 해당한다. 그 목수 중에서도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범인이라는 뜻이었다.
목수를 찾아보니 사건 한달 전에 대웅전 보수공사를 하느라 목수들이 해인사에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공사가 끝난 후 목수들은 모두 흩어졌는데, 그 목수들 가운데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을 수소문 해본 결과 한 사람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다. 합천 경찰서에서는 즉시 형사대를 서울로 급파해 그 이씨 성을 가진 목수를 체포해 심문하였다. 알리바이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이씨 성을 가진 젊은 목수는 살인을 자백했다. 죽은 처녀는 목수와 사귀던 여자였고, 변심할 기미를 보이자 해인사로 찾아온 애인을 그만 충동적으로 살해했던 것이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인연을 맺다
이 일로 해서 제산의 명성은 경상도 일대에 널리 퍼졌다. ‘해인사에 천출귀재’(天出鬼才,하늘이 내린 귀신 같은 인물)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제산을 만나기 위해 많은 인파가 해인사로 몰려왔다. 그러던 어느날 50대 중반의 남자가 제산을 만나러 왔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자신을 부산 자갈치시장의 갈치장수라고 소개한 남루한 행색의 그 남자는 제산에게 다른 사람의 사주팔자를 물었다. 자신은 권아무개라는 사람의 심부름을 왔으니 그 권아무개의 사주를 봐 달라고 하였다. 권아무개라는 사람의 생년월일시를 들여다보던 제산은 갑자기 벽력같이 소리를 질렀다.
“보아하니 여기 써 있는 권아무개가 바로 너구나! 네가 권아무개지? 너는 대구검찰청에 있는 검사장이지? 나를 떠보려고 변장하고 왔구나. 네- 놈이 검정고무신을 신고 와서 갈치장사를 한다고 하면 내가 속을 줄 알았나? 네 이놈,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나를 시험하느냐!”하면서 내리 호통을 쳤다. 아무 말도 못하고 얼굴만 벌겋게 달아오른 권아무개 검사장은 망신만 당하고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제산은 격한 감정의 소유자라서 자신의 비위에 안맞으면 직설적인 육두문자로 감정을 표현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렇지만 뒤끝은 전혀 없었다.
권아무개 검사장은 제산의 신통력을 혹독하게 체험하고 나서 평소 친분이 있던 삼성의 이병철 회장에게 해인사 갔다온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제산은 한국 최고의 재벌 회장인 이병철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된다. 이병철과 제산. 당대 그 분야 최고수의 만남이었다. 사판(事判)의 대가이면서 남달리 이판(理判)에도 관심이 깊었던 이회장은 젊은 제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일반에서는 삼성의 각종 인사, 특히 중역급 이상의 고위 인사에 알게 모르게 제산이 많이 관여했던 것으로 회자된다.
물론 소문으로만 전해지니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말이다. 다른 재벌 그룹에 비해 삼성맨 가운데 유달리 배신자가 적다는 항간의 이야기는 인사를 채용할 때 이판(理判)과 사판(事判) 양쪽으로 치밀하게 검토한 이회장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그러한 이판 참모 가운데 하나가 제산이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무렵 이회장이 제산에게 부산에 있는 5층짜리 빌딩을 사준 것은 사실이다. 물질 가는 데 마음 간다고 5층짜리 빌딩을 사줄 정도로 이회장은 제산을 높이 평가하였고, 그만큼 후하게 대접했던 것 같다. 재벌 회장 가운데 이회장만큼 역술가들에게 대접을 후하게 해 주었던 인물도 따지고 보면 드물다.
부산의 효주양 유괴사건을 해결하다
제산의 신통력은 다양했다. 언젠가 부산에서 유괴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그 유명한 ‘효주양 유괴사건’이다. 이때 부산경찰국장이 이아무개씨였다. 유괴범의 단서를 잡지 못한 부산경찰서에서는 마지막 방법으로 제산을 찾아갔다. 그때 제산은 2번이나 범인이 어디 있다는 것을 알려준 바 있다. 제산이 알려준 장소에 효주양 유괴범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이후 부산경찰국장에 새로 부임하는 인물은 모두 제산을 찾아와 안면을 텄다. 미제사건에 대한 최후 대비책으로 제산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해인사를 내려온 이후인 1970년대 초반부터 제산은 주로 부산에서 자리잡고 활동했던 관계로 부산 사람들은 박도사(제산)의 명성을 잘 알고 있다. 어지간한 사람은 박도사에 관한 전설적인 이야기 한 두가지쯤은 알고 있는 편이다. 복채는 평균 20만원 정도 받았다. 서민이 20만원이고 정치인은 200만~300만원을 받았다. 1970년대 후반에 20만원이면 적은 돈이 아니다. 몸이 약했던 박도사는 하루에 상담해 주는 사람을 15명 이내로 정했다. 그 이상은 사절하는 수밖에 없었다. 해 보면 알지만 남의 인생사를 들어주고 상담해 주는 일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방으로 날아들어온 벌이 어데로 나갈꼬?”
1996년 4월 하순경. 필자는 함양군 서상면 옥산부락에 있는 덕운정사(德雲精舍)를 방문하였다. 덕운정사는 제산의 탄생지에 자신이 직접 세운 도관(道館)이자 집이고 아카데미였다. 대지 2,000평에 50여칸에 달하는 전통 기와집 형태다. 제산이 도회지에서 은퇴하여 말년에 이곳에서 제자도 키우고 자신의 못다한 정신수양도 하려고 지은 건물이었다. 일반주택으로 보기에는 규모가 너무 크고, 그렇다고 불교 사찰로 보기에는 종교적 냄새가 덜 난다. 그게 바로 도교 도관의 형태다.
제산에 대한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막상 얼굴을 대면하고 보니 위풍이 있는 풍채도 아니고 사람을 압도하는 압인지상(壓人之像)의 기운이 보이지 않았다. 알고보니 이때는 이미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하던 상태였다.
그러나 제산은 관상부터가 비범하였다. 보통 사람이 제산의 관상을 보면 별로 잘생긴 얼굴은 아니라고 보지만, 관상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 보면, 제산의 얼굴은 원숭이형의 관상이다. 원숭이 형의 얼굴을 가진 사람 중에서 천재가 많다. 원숭이는 손오공을 연상시키는데, 필자가 보기에는 도올도 원숭이 관상이다. 일본의 원숭이 천재는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였다. 이처럼 제산은 천재적인 두뇌와 아울러 격한 감정을 겸비하였기 때문에 가는 곳마다 충돌하면서 스파크를 남기고 갔다. 그가 남긴 스파크를 추적하다 보면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의 만화경이란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첫 대면에서 나는 아주 평범하면서 극히 세속적인 질문을 던졌다.
“사주팔자를 한번 보러 왔습니다. 돈을 좀 벌 수 있겠는가 알아보러 왔습니다.”
그러면서 육십갑자로 된 나의 여덟 글자를 내보였다. 사주팔자를 한참 훑어보던 제산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물음을 나에게 휙 던졌다.
“벌 한마리가 날아들어와 요란스럽게 날아다니다 문창에 탁탁 부딪힌다. 이 벌이 어떻게 해야 밖으로 나갈 수 있겠는가?”
사주팔자에 언제 돈 벌 운이 올 것인가에 대한 답변치고는 너무나 차원이 다른 답변이었다. 아주 세속적인 물음을 던졌는데 제산은 격외(格外)의 선문답(禪問答)으로 되돌린 것이다.
‘아! 이 사람은 사주팔자나 보아주는 단순한 술객이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들었다. 순간적으로 나온 나의 답변은 “창문에 부딪쳐 죽어버리죠!”였다. 그러자 제산은 웃으면서 “1급은 아니지만 2급은 되는구먼!”이라고 했다.
벌 화두를 통해 이 ‘조용헌이’의 기를 일단 꺾어 놓은 다음 제산은 필사본으로 된 책을 책장에서 하나 빼왔다. 검정 사인펜으로 써 놓은 책 제목은 ‘성명규지’(性命圭旨)였다. 필자는 책의 제목을 보는 순간 다시 한번 놀랐다. ‘성명규지’는 중국 명대(明代)의 내단서(內丹書)로서 유·불·선(儒佛仙) 삼교합일(三敎合一)의 입장에서 성명쌍수(性命雙修)를 강조하는 일급 비서다.
‘성명규지’에서 강조하는 성명쌍수는 성(性)과 명(命)을 모두 닦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성은 불교의 주특기로 자기의 마음을 관찰하는 방법이고, 명은 도교의 주특기로 호흡법을 통하여 몸을 강철같이 단련하는 방법이다. 성만 닦고 명을 닦지 않으면 지혜는 밝지만 몸이 아프고 신통력이 나오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명만 닦고 성을 닦지 않으면 몸은 건강하고 장수할지 몰라도 긍극적인 지혜(ultimate wisdom)는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선불교의 장점과 도교 수련의 장점을 모두 겸비해야만 진정한 도인이 된다는 입장이 성명쌍수요, ‘성명규지’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도교와 불교의 장점을 모두 아우르자는 이야기이다.
제산이 이 책을 꺼낸 의도는 불교수행만 수행이 아니고 도교 수행도 해야 한다는 의도를 가지고, 도불(道佛)수행을 아우르는 비전(秘傳)의 도서(道書)를 하나 소개해 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 일을 계기로 제산에 대한 나의 선입견이 바뀌었다. 사주팔자나 보아주는 단순한 술객이 아니라, 한국 고유의 선맥(仙脈)에 어떤 형태로든 맥을 댄 도가의 인물이구나 하는 판단이 들었다.
함양 백운산 백운사의 고운 물소리
제산은 지리산 시절 이미 개운조사파와 관련을 맺었다. 그래서 개운의 전법제자인 윤양성 스님, 경남 함양의 백운산에 있는 백운사 주지인 문봉스님과 함께 백운사에서 수련하였다. 함양의 백운산은 상연대(上蓮臺)라는 수도처로 유명하다. 상연대는 전국의 한다 하는 도꾼들이 한번쯤 머무르고 싶어하는 영험한 곳이다. 일설에 의하면 도선국사가 이곳에서 도통했다는 설이 있다. 근세에는 백용성(白龍城, 1864~1940) 스님이 반농반선(半農半禪)운동을 실천하기 위해 화과원(華果院)을 설립했던 산이 바로 백운산이다.
수도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의식의 집중이다. 문제는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이다. 화두에 집중할 것인가, 염불에 집중할 것인가. 능엄경에서는 물소리에 집중할 것을 권하고 있다. 물소리에 대한 집중이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가 크다는 것이다. 소리에 집중하는 수행법이 바로 청각을 이용한 이근원통(耳根圓通)이다. 관음보살이 수행해서 효과를 본 수행법이 이근원통이다. 제산은 지리산 시절 고향인 백운사에서 개운조사파의 전법제자인 윤양성 스님, 그리고 백운사의 주지인 문봉 스님과 함께 능엄경의 이근원통 수행을 경험했다. 아울러 개운조사의 성명쌍수 수행법을 이미 접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고의 명리대가 박도사가 20세기를 사는 한국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가공할 신통력의 근원을 추적해 들어가면 결국 주문(呪文)이 나온다.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을해명당’(乙亥明堂)의 정기를 받고 태어났고, 학교 다닐 때도 머리가 비상했으며, 지리산 일대를 방랑하면서 많은 도사들의 가르침을 받았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지만 역시 신통력의 핵심에는 주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 주문은 ‘구령삼정주’(九靈三鼎呪)였다. 주문이란 무엇인가. 주문의 본질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한 결과 주문이란 결국 ‘신들을 설득하는 소리’라는 결론을 얻었다.
그런데 제산은 개운조사파 수련법 외에 약간 다른 비법을 입수했던 것으로 보인다. 약간 다른 비법이란 바로 주문수행이다. 주문은 개운조사파도 역시 하지만, 이 시기 제산이 했던 주문은 ‘구령삼정주’(九靈三鼎呪)라는 주문이었다. 개운조사파는 능엄주(楞嚴呪)를 했지만, 제산은 구령삼정주를 하였다.
주문은 기도나 참선보다 효과가 빠르고 굉장한 파워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 강하지 못한 사람이 주문을 하면 정신이 돌아버리는 것이다. 심하면 죽거나 병신이 되는 수도 있다. 그래서 함부로 주문을 하지 못한다. 주문수련은 3가지 유형 중 하나로 귀결된다. 필자는 이를 ‘죽통병’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즉, ‘죽거나 통하거나 병들거나’ 중 하나로 귀결된다. 제산은 구령삼정주를 통하여 한소식 한 것 같다.
소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sound is power). 그래서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누구를 저주(詛呪)한다고 할 때 주문의 주(呪)자가 들어가는 것도 알고 보면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특정한 소리를 계속 반복하면 그 소리와 감응하는 신들의 세계가 있고, 이 신들의 세계에서 그 사람에게 힘을 준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신세계와 접속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소리였고, 그 소리는 주문이라는 형태로 패턴화 되었다. 따라서 주문은 가장 강력한 영적 파워를 얻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간주되었다.
구령삼정주(이하 구령주)는 도교에서 신들을 설득하는 주문이었다. 주문마다 그 주문이 지향하는 특정한 정신세계가 있다. 이 우주에는 삼천대천(三千大千) 세계처럼 무수한 하늘이 있다고 하지 않던가! 예를 들어 불교의 ‘준제주’(准提呪)는 관세음보살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주문이고, 구한말 김제 모악산(母岳山)에서 수행하였던 강증산의 주문은 ‘훔치 훔치 태을천상원군 훔리치야도래 훔리함리사파하'라는 ‘태을주’(太乙呪)'였다. 태을주는 뿌리를 찾는 주문이다. 태을주의 태을천 상원군은 모든 신선과 부처를 만들어내는 신선과 부처의 조상이라고 전해진다. 기독교인들이 예배할 때 외우는 ‘주기도문’도 필자가 보기에는 주문의 일종이다.
신비주의를 거부하는 유교에서도 ‘서경’(書經) 서문(序文)이 주문의 대용품 역할을 한다. 그런가 하면 ‘옴-마-니-반-메-훔’의 여섯글자가 전부인 육자대명진언(六字大明眞言)도 유명한 주문으로, 산동네인 티베트에서 발효된 특유의 영성이 물씬 풍기는 주문이다. 10년 전인 1992년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 종교지도자 칭하이(靑海)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필자는 부산 KBS 홀에서 처음 그를 상면했는데, 그가 대중들에게 보여주었던 수행 방법도 역시 인도·히말라야의 신들을 부르는 5단계 주문이었다. 주문의 장점은 신속하고 강력한 파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주문에도 부작용이 있는데, 그것은 심리적으로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는 정신이상이 오거나 심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밀교의 주문 가운데 하나로 조선 후기 재야의 도사들이 많이 사용했던 주문은 천지팔양경(天地八陽經)이라는 주문인데, 천지팔양경을 외우던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미쳐 버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주문 수행자가 한밤중에 팔양경을 외우다 갑자기 천장이 열리면서 머리에는 뿔이 나고 키가 10m는 될 법한, 왕방울만한 눈을 가진 '괴물같은' 신장들이 눈을 부라리며 나타나 “왜 불렀느냐”고 묻자 주문 수행자가 그만 기절했다는 사례를 접한 적이 있다. 주문을 소화해 내려면 '무서운 형상'을 한 신장들이 나타났을 때 태연하게 “내가 너에게 부탁할 일이 하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의 배짱과 담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정신적 쇼크를 받아 버린다. 어린이들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성인용 신화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은 사람은 지금 주문을 외워보라. 주문을 통해 기록으로 전하는 무수한 신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한국에 느닷없이 ‘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 붐을 일으킨 작가 이윤기씨에게도 주문 수행을 권하고 싶다. 제대로 신화를 알기 위해서는 그 세계에 발을 직접 담가 보아야 한다. 수박 겉만 핥아서 무엇하겠는가. 식칼로 수박을 쪼개서 빨간 과육을 먹어 보아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이 ‘신켄쇼부’(眞劍勝負) 아니던가. 그러나 책임은 못 진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무서워 중도에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윤기씨 관상을 보건대 무인의 투지가 엿보이는 얼굴이라서 한번 시도해 보면 소기의 성과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는 이야기다. 예부터 ‘비기자(非器者)는 부전(不傳)이라!’고 했다. ‘감당할 만한 그릇이 아니면 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구령주는 장기적으로 볼 때 신선이 되기 위한 도교의 수행 과정의 하나이지만, 부수적으로는 사주팔자를 보는 능력을 증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신선의 궁극적 목표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이지만 부수적으로는 축지법, 차력, 둔갑술, 예언능력과 같은 신통력도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신통력이 있어야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고, 본인도 자유롭게 천하의 명산대천을 유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역대 유명한 장군들도 주문수행을 통해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구전으로 전해진다. 을지문덕·강감찬·임경업 장군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한다. 장군은 전쟁터에서 무력을 사용해야 하므로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 경우에 대비해 무력을 얻는 주문을 외우면 정말로 엄청난 힘이 들어온다. 예를 들면 차력(借力)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借’의 이름이 붙은 주문이 그것이다. 차력 주문에도 3가지 단계가 있다. 소차(小借), 중차(中借), 대차(大借)다. 소차를 얻으면 송아지 한 마리 정도를 들어올릴 만한 힘이 생긴다. 중차는 1년 된 중간 크기의 소를 들어올릴 힘, 그리고 대차를 얻으면 커다란 황소 한 마리를 들어올릴 만큼의 파워가 붙는다.
장군을 하려면 대차 정도의 힘은 얻어야 한다는 것이 도사들의 중론이다. 그래야 순식간에 상대를 압도해 버린다. 소설 ‘단’(丹)에도 차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필자는 몇년전 충청도 속리산과 상주 일대에서 활동했던 속리산파(俗離山派)의 행적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속리산파 인물들의 면면을 알고 있던 어느 스님으로부터 흥미 있는 이야기를 얻어 들었다. 그 스님 이야기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우는 의승군(義僧軍) 활동으로 유명했던 사명대사도 주문을 통해 차력을 얻었다고 한다.
사명대사가 외웠던 주문의 이름은 ‘섭화차’(攝化借)였다. 인간과 사물이 서로 하나가 되게 하는 주문으로, 이를 외우면 1톤 정도의 바위를 번쩍 번쩍 들만한 힘이 생긴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전설의 고향’ 같은 이야기다. 그러나 현대인은 지나치게 물질적 도구에 의존하는 ‘도구적 인간’으로 전락함으로써 과거의 인간들이 지녔던 이러한 정신적인 힘을 알지도 못하고 개발하려 하지도 않는 경향이 있다.
주문은 자기 마음대로 왼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구전심수(口傳心授)의 세밀한 지도를 받아 이루어져야 한다. 즉, 스승으로부터 미묘한 부분에 대한 은밀한 지도가 있어야 효과가 발생한다. 사주명리학에서 구령주를 수련해 효과를 보았다는 사실 자체도 그동안 비밀에 부쳐져 있다 박도사가 죽기 직전에야 제자에게 이를 공개해 필자도 알게 되었다.
구령주의 존재를 모르는 사주쟁이들은 박 도사의 초능력이 오직 책만 보고 얻은 능력인 줄로 착각한다. 필자도 청잠으로부터 구령주라는 이야기만 들었지 구령주를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에 의해 암송해야 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구체적인 방법은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사주는 이론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영발(靈發)이 있어야 한다. 사주팔자를 한눈에 파악하는 신통력은 구령삼정주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던 것이다. 구령삼정주는 조선 후기 도교에서 유행했던 ‘옥추경’(玉樞經)에 포함되어 있는 주문이다.
-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중에서 -
Ps: Merlin
신선의 궁극적 목표는 불로장생(不老長生)이지만 부수적으로는 축지법, 차력, 둔갑술, 예언능력과 같은 신통력도 있어야 한다. 눈으로 보여줄 수 있는 신통력이 있어야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고, 본인도 자유롭게 천하의 명산대천을 유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이것은 영성인이 가장 경계할 부분입니다.
능력을 위한 수행은 영적 발전에 장애가 됩니다.
주문마다 그 주문이 지향하는 특정한 정신세계가 있다.
특정한 소리를 계속 반복하면 그 소리와 감응하는 신들의 세계가 있고, 이 신들의 세계에서 그 사람에게 힘을 준다. 고금을 막론하고 정신세계와 접속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소리였고, 그 소리는 주문이라는 형태로 패턴화 되었다.
주문에도 부작용이 있는데, 그것은 심리적으로 준비가 안된 사람에게는 정신이상이 오거나 심하면 사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주문 수련은 흑마술과 같고 대부분 사악한 존재들과 연결되므로 삼가하기를 권합니다.
아하에서 주문 수련을 권하는 일이 없었으므로 좋은 방법이 아닌 듯 합니다.
*** 7/6 추가
명상, 요가 - 자신을 찾는가? 도피인가? 아니라면 왜 단지 무언가를 하지 않는가?
MEDITATION? YOGA? FINDING YOURSELF?
COPOUT? OR: WHY DON'T YOU JUST DO SOMETHING?
From PJ #89 "FOCUS OF DEMONS" 11 & 12 장에서 인용 By Christ L.
http://abundanthope.net/pages/Phoenix_Journals_61/PJ-89-FOCUS-OF-DEMONS-chapter-11-12.shtml 에서 - 5/21/2012 AH 전면에 나온 일부 인용
"이것은 마침내 논의를 필요로 하는데, 가족의 캠프 불꽃 주위의 자들이 이 주제들에 대해 계속 묻기 때문인데, 마치 그들이 신을 찾으면서 혹온 세계를 치유하면서(구하면서) 상승에서 무언가를 다소 놓치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자, 어떤 세계도 누군가에 의해 "구조되지" 않을 것이고, 따라서 우리는 그 초점을 버릴 수 있다. 성장에 적용되는 리스트의 나머지는 허튼소리이다! 당신은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 "해보려 하는 것TRYING"은 거짓말을 하는 것임을 염두에 두라!
만약 당신이 무언가를 하기 위해 "해보려고" 한다면 당신은 어떤 것을 결코NEVER 이루어지지 않게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당신은 무언가를 하고 있거나 아니면 당신은 단지 해보려고 하고 있으며 결코 움직임을 만들지 못한다.
신과 접촉은 명상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CONTACT WITH GOD DOES NOT NEED MEDITATION -- 오직 교감을 필요로 한다ONLY COMMUNICATION. 신이 그의 회로로 내부에 거주하므로 -- 당신은 "시간"을 가질 필요가 없는데 -- 그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연결 말이다!
따라서 당신은 실제로 무엇을 하고 있는가, 당신이 접촉을 얻으려고 하는 동안에, 혹은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말이다. 그것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고, 무언가를 이루어지게 할 행동에서 도피하는 것이다.
그의 형제들이 사실상 일하고 있는 동안, 끊임없는 명상 속에서 앉아 있는 사람은 얼마나 이기적인가. 그런 다음 무엇이
일어나는가? 이 사람은 그의 길이, 선생님이, 구루가, 설교자가 최고BEST라고 다른 이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고란 것은 없다! 오직 진실과 행동으로 나타남만이 있다.
길게 "명상하는 것"이 가야 할 길이라고 주장하는 그러한 훌륭한 교사들에 대해선 어떤가?
그들은 당신의 맹목성에 책임 회피를 만들고 있다. 그들은 당신이 신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을 막는데 성공했다. 만약 그것이 당신이 하기를 원하는 것이라면 좋다,
그러나 왜 당신은 다른 이들이 그들의 의무를 행하는 것으로부터 데려와서, 결과부좌로 앉히고 마법을 위해 기다리게 하는가? 당신이 기적이며, 그것은 뒤로 돌아앉아 읊조리는 것으로 결코 물질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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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련하시는 분은 끝에 추가한 부분을 읽고 주의 하십시오.
183 * 초능력자가 말하는 자신의 삶과 2012년
181 * 행각승이 밝힌 외계인과 부처의 진실
위의 글도 반드시 읽어보세요.
오늘 느낌 매우 이상하군요..
우주빛33, 카라 님 오늘 뭔가 느낌이 없나요?
멀린님의 이상한 느낌이 맞았습니다 일단 느껴진 바로는 어제 초저녁부터 특히 새벽 그리고 오늘 정오정도에까지
머리쪽에 상당한 압박감과 두통비슷한 증세로 아주 고생을 했습니다
하늘을 응시한바 별다른 징조는 없어 보였는데
매순간 에너지를 볼수 있는 능력이 아닌지라..쩝
하지이후의 유입된 에너지와 더불어 뭔가 새로운 웨이브가 도착한걸로 심히 사료됩니다
당췌 수시로 들어오는 에너지들로 인해 감잡기가 점점 수월치 않은 형국입니다
많은 분들이 어제 오늘에 걸쳐 심신에 상당한 고통을 느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어제 시점에 절기상의 으례 진행되는 에너지가 아닌 새로운 웨이브가 들어 왔다면 이로 인한 파급효과는 상당할겁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금융붕괴속도를 가속화 시킴과 더불어 잠들어 있는 대중들을 위해서도
또한 작전을 펼치고 있을 스타함대의 형제들에게도 진행속도를 높이기 위한 천상의 고도 책략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번에 유입된 에너지가 어둠3일전 마지막 유입된 웨이브라면 이것이 정점을 치기전에 만일 정점을 치게된다면
전문에서도 언급된바와 같이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그 모든 것이 견디지 못할 상황이 초래 될수도 있기에 자못 의미가 크다하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서도 만일 현실적으로 그리된것이라면 남아있는 시간은 아주 짧은 것이구요
모든 대중들이 목격할 순간이 아주 확연하게 두드러지게 가시화 될것입니다
영국 은행사태와 관련해 여기저기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고 아직 한국방송은 약한 듯..
동시에 이를 매스컴에서 활발히 보도를 해야하는 부분에 있어서
스타형제들의 매스컴 장악여부도 주목해야 할 부분입니다
예전과 같이 언론이 두리뭉실 치고 후다닥 다른 쪽으로 관심을 유도하지는 못할겁니다
이래 저래 시간은 다 찼는데 좀 더뎌 보이는 느낌도 쬐끔 들기도 합니다만
인내심의 제왕들에게 이정도 쯤이야......
올려주신 글은 아주 재미있게 잘 보았습니다
저런 인물이 실존했단 것만으로도 상당한 관심을 요하게 합니다
저정도의 영력이라면 신통이라면 참 욕심이 나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그리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저 멀리 외딴 곳에 가있는 지라
내면의 관계를 공고히 하지 않은 이상 섣불리 덤벼들었다간
황천길로 갈수도 있으니 호기심이 일더라도 주문이나 만트라적 수행법을 가급적 자제하시기를..
이미 지금의 시기는 이런한 방법을 사용해 영적진화를 도모하기에는 시대가 많이 변했습니다
이전과는 달리 사상초유의 너무도 충만한 웨이브가 온 가득 뿌려지고 있기에 굳이 이런방법 말고도
따뜻한 말 한마디 따스한 미소한방 뜨뜻한 한번의 포옹만으로도 기대이상의 성과를 낼수가 있기때문입니다
다들 아시는거 괜히 젠체 한건 아닌 지 모르겠습니다 급 겸손...
빗소리에 깨고나니 다시 잠들기는 힘들 듯 간만에 영화라도 한편 보아야겠습니다
사랑덩어리 멀린님이하 모든 분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염파로 전송해 드립니다
맛있게 드세요^^^
저도 갑자기 없던 두통이 있네요..저같은 평범한 사람은 그 때를 알기 쉽지 않을것같은데 미리 연락 받을 방법 없을까요..? 항상 인터넷 연결할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요..
올려진 전문을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금융붕괴로 인한 확실한 체감이 있다고 하오니 이점 참고하시구요
또한 미리 생각하고 있는 장소로 그 어느때든 적절하게 조치할 수 있도록
미리 머리속으로 구상을 해 놓으면 아주 도움이 될겁니다
사랑 폭탄님의 커피 잘 마셨습니다.
천상의 비상 계엄령이 발동되었다는 느낌입니다.
오늘 계속 비가 오면 저녁에 상황을 정리해서 올리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