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교에 입학한 후 본당에서 두 번째 여름방학을 보내던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본당의 한 청년이 제게 물었습니다. “학사님! 우리는 왜 성당 에 다녀야 하는 것일까요?” 갑작스런 질문에 당혹스러웠지만 저도 모르게 바로 대답을 하였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생명에 대한, 구원에 대한 희망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 날 밤 저는 부끄러움과 자책감에 시달 려야 했습니다. 그 청년의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 나 라, 영원한 생명, 구원....... 정말 난 이러한 것들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대답 한 것일까? 나의 믿음이 과연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말씀을 전할 수 있을 만큼의 것이었던가?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생명과 구원에 대해 난 얼마나 알고 있고, 얼마만큼의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 라 ”(마르 1, 15) “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 하여라 ”(마르 16, 15) 성서의 복음 말씀을 통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제가 풀어내어야 할 문제가 되었 습니다. 그것은 저의 정체성의 문제였습니다. 사제는 예수님께로부터 복음 선포 의 사명을 받은 자이며, 우선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대한 내적 확신을 요구받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간 신학원에서 저는 기도하였습니다. 방 학 기간을 통해 소중한 체험을 할 수 있게 되기를......
4시간 가까이 버스와 전철, 그리고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이 곳 모현 의료 센터. ‘호스피스’란 말은 처음 접한 사람에게 적지 않은 두려움 과 걱정을 안겨 줍니다. ‘죽음’이란 두 글자는 그 누구에게도 반갑지 않은 말 일 것이며, 자신과는 관계없다고 생각되는 낯 설은 단어일 것입니다. 출발하기 전부터 이곳에 오는 길 내내 저의 마음은 걱정과 두려움, 그리고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의 마음이 뒤엉켜 있었습니다. “내가 그 곳에 가서 무엇을 할 수 있 을까?”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힘을 얻으며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나는 너를 가르쳐 네 갈 길을 배우게 하고 너를 눈여겨보며 이끌어 주리라. ”(시편 38, 2) 반갑게 맞아주시는 수녀님들과 이곳 가족들. 그러나 낯 설은 환경에 긴 장은 계속 되었고 그렇게 이곳에서의 생활은 시작되었습니다.
모현에 온 지 3일째 되던 날, 어머니의 병석을 홀로 지키고 있던 중년 의 아드님을 두고 잠을 자러 갈 수 없어서 같이 밤을 보내기로 작정하였고, 결 국 첫 임종을 맞이하였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임종을 지켜보는 저의 태도였습니 다. 어떻게 그렇게 차분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이 곳 모현의 수녀님들과 간호 사 선생님들의 죽음에 대한 놀랍도록 차분하고 자연스러운 태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흔히 죽음이 단지 실존적 단절을 가져오는 하나의 사건이 아 닌, 삶의 한 부분이라고들 말합니다. 이곳 모현에서는 바로 이러한 죽음에 대 한 단상을 머리 속에서만이 아닌, 눈 앞의 생생한 현실로서 만날 수 있었습니 다. 죽음 앞에 있어야 할 애절한 통곡 소리의 자리에는 하느님의 자비를 구하 는 기도 소리와 잔잔한 성가 소리가 대신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망자를 보내는 남은 자들은 죽음이라는 공포와 절망 대신에 삶의 한 부분으로서, 그리 고 또 다른 삶의 시작이라는 희망으로서 죽음을 받아들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해바라기는 이곳에서 임종하는 분을 위한 방 이름입니다. 하늘을 향한 희망의 해바라기 꽃이 그 방 이름이 된 것은 단지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그러나 임종하신 분의 몸을 닦아드리는 일을 도와 드리면서 아직 체온 이 남아 있어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죽음은 여전히 제게 있어서 두려 운 것이었나 봅니다.
모현에 오기 전에 가장 크게 잘못 생각한 것이 있다면 ‘ 내가 무엇 을 해 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해 줄 수 있기를 염려하기 보다는 단지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분들의 곁에 있 어 준다는 것 자체가 소중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죽음 앞에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 수 있을까? 하느님 앞에 너무도 무력한 인간의 모습 은 죽음 앞에서 잘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손을 잡고, 얼굴을 쓰다듬고 하는 것 외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기도’였고, 그것이야말로 마지막 길을 동행하는 사람이 해 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 다. 겸손한 동행자는 무슨 일이든 해 줄 수 있는 일을 찾기에 앞서 먼저 곁에 서 같이 걸으며 그를 위해 기도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죽음 후에 하느님의 품 에 안길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 자신의 공로 때문이 아닌 하느님의 무한하 신 자비 때문일 것입니다.
모현에서 저는 뜻밖에 죽음을 앞둔 이를 대자로 얻었습니다.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000에게 세례를 줍니다”라는 말과 함께 세례수 가 그의 이마에 부어지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였습니다. 성사란 무엇인가? 누구 를 위한 성사인가? 사제는 누구이며 무엇하는 사람인가? 이런 원론적인 질문을 새삼스레 하게 되는 밤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소위 ‘성사의 구걸’이라는 현실의 모습이 있을 수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과는 너무도 무관하게 겸손하지 못한 우리 신앙인들의 삶의 모습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고민하던 밤이 있었습니다.
들풀을 만지고, 파란 하늘 한 번 올려다보고, 한줄기 햇살 한 번 온 몸에 받고, 나의 두 손으로 나의 몸을 씻고, 대변과 소변을 보고, 말을 하여 나 의 의사를 전하고, 잠을 자고, 밥을 먹고, 나의 내일을 의심치 않는 등의 일 들....... 이 중 그 어떤 일도 건강한 사람에게는 힘든 일이 될 수 없을 것입 니다. 그러나 침대 째 움직여야 풀 한 포기를 만질 수 있고, 두 세 사람이 도와 주어야 생의 마지막이 될 수 있을 미사에 참여할 수 있는 처지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조차도 힘에 겨운 일들뿐입니다. 일상의 삶에서 너무도 쉽게 간 과되는 일들이 이곳에서는 쉽게 얻을 수 없는 큰 기쁨의 원천이 됩니다. 매일 의 삶에서 주어지는 크고 작은 은총들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는 가 하고 반성하던 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동정하는 바로 그 사람의 처 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늘 개방되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잊고 살아가는 듯 합니다. 우리 모두가 모습만 다를 뿐 결국 한 곳을 향해 가고 있는 동행자임 에도 말입니다.
이제 내일이면 저는 다시금 죽음은 없는 듯한, 그래서 불멸의 존재인 양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이 살아가는 저의 생활 공간으로 되돌아갈 것입니 다. 잠깐 다녀가는 저에게 있어서는, 이곳이 삶의 자리인 수녀님들과 직원분들 과는 그 바라보는 시각과 느끼는 감정이 같을 수 없고 다만 부분적일 수밖에 없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소위 ‘체험’이 지니는 한계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대해 제가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 던 마음의 짐 또한 그 분 품에 안기는 순간까지 안고 가야할 것인지도 모릅니 다. 다만, 조심스럽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다시금 돌아간 저의 삶의 자리에서 저는 체험 이전의 저와는 다른 ‘나’가 되어 있을 것이란 점입니다. 한 일 없이 오히려 사랑만 가득 받고 돌아갑니다. 마치 가랑비에 대지가 젖듯 이곳에서 3주간 온몸으로 받은 사랑 때문에, 임종하신 분들과 지금 힘겨운 시간 을 보내고 계신 분들과 가족들과 아름다운 동행에 자신의 삶을 봉헌하신 수녀님 들과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분들과 직원분들을 통해 받은 하느님의 사랑 때문 에 저는 제 자신도 모르게 뭔가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저의 시선과 제가 걷는 성소의 길과 결국엔 주님과 함께 할 것이라는 희망에 대해 저 는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다시금 왜 신앙의 삶을 살아야 하느 냐고 묻는다면 묻는 이에게 그리고 제 자신에게 “모현”을 떠올리며 대답해 줄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 때는 양심의 가책을 덜 받겠지요. 이전보다는 덜 공 허한 메아리가 되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주님께서 저를 이곳에 불러주신 이유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