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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버스] 이형순
#1 아파트 단지 도로 (여름. 낮)
아스팔트의 더운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경쾌한 트롯트 음악 흐르면서 다가오는 마을버스
정류장에 정차하면 하차하는 승객들.
#2 마을버스 안.
운전기가 성우의 시점으로 멀리서 바라다 보이는 다음 정류장. 한 여자가 서 있다.
허겁지겁 멋진 선글라스로 바꿔 쓰고 룸밀러에 이리저리 비춰본다.
빠르게 테입을 새로 갈아 끼우는 성우. ‘바그다드 까페 (I'm calling you.) 흐르면서
정류장에 멈춰 선다.
학습지 교재 몇 권과 가방을 든 민주, 무표정하게 승차한다.
성우, 룸밀러로 민주의 뒷모습을 찬찬히 바라본다.
거울 속의 민주, 피곤한 듯 털썩 자리에 앉고는 눈을 감는다.
NA)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아는게 없다.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치는데도 말이다. 다만 늘 같 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타고 내린다는 시실 밖에는... 그리고 그녀는 늘 피곤하다.
꾸벅꾸벅 조는 민주.
창 밖으로 큰크리트 아파트가 삭막하게 흐르고, 단조로운 풍경이 숨막힌다.
안내방송(E). 이번 정차역은 버드나무 삼거리입니다. 다음은....
NA) 그녀는 버드나무 삼거리에서 허겁지겁 내릴 것이다.
마을버스가 정차하지만 아무도 내리지 않는다.
룸밀러로 바라보는 성우, 그녀는 잠에 빠져있다.
고개를 돌려 장난끼 많은 중학생에게 싸인을 한다.
중학생 (큰소리로) 누나!
민주, 꼼짝하지 않는다.
중학생 (좀더 큰소리로) 아줌마!
눈을 번쩍 뜨는 민주. 창밖의 버드나무를 보고는 허겁지겁 내린다.
그녀의 하차를 확인한 성우, 씨익 웃으며 #2의 선글라스로 바꿔쓰고,
음악도 다시 트롯트가 흐른다.
버드나무에 매연을 내뿜으며 출발하는 마을버스
-메인 타이틀 오른다.
#3 마을버스 사무실 (낮)
서너명이 겨우 앉을 만큼 좁은 공간.
나무 책상위에 시원스레 수박을 잘라놓는 감기사 아주머니.
낡은 선풍기에 몸을 바짝 붙이고 런닝을 펄렁거리는 박기사.
박기사 거참~ 날씨 한번 되게 더럽네!!! 복날에 먹을 걸 못 먹어서 그런지 아랫도리가 후 들후들한 게 (개다리 폼으로 흔들며).. 브레이크 밟기도 힘들어. 젠장할!
돈통을 들고 땀을 닦으며 사무실로 들어서는 성우.
수박을 우악스럽게 씹으며 성우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박기사.
박기사 (김기사 아부머니가 들으라는 듯) 쯔쯪.... 재가 미스터 구 나이일때는 이십톤 덤프
몰고 팍팍 밟아 대도 땀 한 방울 안났지... 암!
김기사 (성우를 두든하듯) 아파트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데 그 푹푹 찌는 아스팔트 더 위에 땀 안 흘리면 그게 사람이우?
박기사 하기사 사람은 흙을 밟고 살아야 제 명에 사는 뱁인디. 그게 콘크리트 집짓고 살면
겨울엔 춥고 여름엔 등창난 데니께.
김기사 (박씨에게 핀잔주듯) 저 집들은 에어컨 씽씽 틀어놓고 찹디차운 나라에.... 거 뭣이 냐... 펭귄처럼 살고 있으니께 박기사님은 그런 거 걱정말고 (낡은 선풍기 가리키며) 저 선풍기나 신형으로 바꿔달랄 궁리나 하시우.
박기사 (볼멘소리로) 잘나빠진 수박 한통 쪼개놓고 이 아줌마가 뭔 말을 못하게 허네.
김기사 이 냥반이 아줌마가 뭣이여? 나도 엄연한 김기사여! 김기사!
동전을 세던 구성우, 웃음 지으며 박기사의 등을 민다.
서류를 든 최부장, 유리창 너머에서 다가오고 있다.
성우 아저씨 최부장님 와요. 배차시간 늦겠습니다.
박기사, 헛기침하며 나가면서 무안한 듯 성우에게 속삭인다.
박기사 (귓속말로) 과부마음 홀애비가 안다지만서두 과부 십년에 독사 안되는 년 없다니께.
NA) 박기사 아저씨와 김기사 아주머니는 만나면 싸운다. 남들은 아무것도 아닌 일로 싸운 다고 하지만 두분은 외로운 것이다. 홀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외로움을 안다.
외롭지 않으면 싸우지도 않는다.
#4 아파트 도로 (낮)
이글이글 열기가 오르는 도로를 달리는 마을버스
카센터에는 온몸에 검은 기름을 묻히고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는 긴 작업복의 청년.
양품점 쇼윈도에는 마네킨의 옷을 입히는 젊은 여자.
아파트 진입로에는 붉은 봉을 든 수위가 출입 차량을 통제한다.
부동산 중개소 앞에는 아이가 작은 호스로 물을 졸졸 뿌리지만 오히려 갈증이 더한다.
승객 (큰소리로) 아저씨!
더위에 지쳐 멀거니 바깥 풍경을 바라보던 성우, 정류장을 지나치고는 화들짝 놀란다.
뒤로 후진을 새서 정류장에 세워주는 성우, 미안하다는 듯 손을 들어준다.
수건으로 목의 땀을 닦고는, 티하나 없이 맑은 창에 워셔액을 몇 번이고 뿌려댄다.
기계적으로 돌아가는 와이퍼를 보고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는 성우.
성우의 시점으로 멀리 바라다 보이는 정류장. 민주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5 지하철 역 (늦은 밤)
역앞에 세워놓은 마을버스
성우는 버스의 문을 열어놓은 채 바깥에 나와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다.
시계를 보면 밤 11시. 막차의 출발시간이다.
다시 담배 한 개피를 피워무는 성우.
잠시 후, 승객 두어명이 헐레벌떡 뛰어서 간신히 버스에 오른다.
승객 (시계를 보고 성우에게) 아저씨! 시간 지났는데 출발안해요?
NA) 나는 늘 막차를 제 시간에 출발시키지 못한다. 등 뒤에서 숨차게 뛰어 올 발자국 소 리가 날 괴롭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좋게 막차에 탄 사람들이 꼭 빨리 출발하지 않 는 다고 성화를 한다. 막차가 마지막 차라는 뜻을 알고 있을까?
운전석에 앉은 성우, 차를 막 출발시키려는데 차문을 두드리는 소리
문을 열어주면 취객 한명이 배시시 웃으며 승차한다.
취객 (흐뭇하게) 땡큐!~
#6 편의점(늦은 밤)
만화잡지의 앞 표지를 유심히 읽어보고는 겨드랑이에 끼는 성우.
익숙하게 샌드위치와 사발면 꺼낸다.
#7 성우의 방 (늦은 밤)
이불이 펼쳐진 채 그대로 있고 선풍기가 켜진 채로 있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만화원고들.
하루종일 돌아갔을 선풍기를 끄는 성우.
성우 (인상쓰며) 앗, 뜨거!
응답 전화기 버튼을 누른다.
만화원고를 챙기며 소리를 듣는 성우.
응답전화기(E) 어이, 동기님, 이 더위에 잘 있냐? 요즘은 너가 엄청 부럽다!
몇일 전에 우리 동기 두놈 또 짤렸다. 살얼음판에서 꼭 이렇게 살아야되냐?
일찌감치 너처럼 건축일 때려 치고 운전이나 할 걸 그랬다. 하하하!
벌써 일년이면 배테랑 됐겠네? 다른 게 아니고 다음주에 우리 애 돌잔치가...
전화기 코드를 빼어 버리는 성우.
사발면에 뚜껑을 반쯤 벗기다 말고 의자에 앉는 성우.
사발면 옆에 펜을 들고 그리다 만 만화를 그린다.
#8 아파트단지 도로. (낮)
이글이글 열기가 올라오는 도로를 질주하는 마을버스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는 카센터의 청년
양품점의 쇼윈도에서 마네킨을 매만지는 젊은 여자.
아파트 진입로에서 차량통제를 하는 수위.
부동산 중개소 앞에서 물을 뿌리는 어린 아이.
변하지 않는 풍경이 느린 동작으로 건조하게 흐른다.
#9 마을버스 안.
승객 서너명이 타고 있다.
성우, 룸밀러로 꾸벅꾸벅 조는 민주를 훔쳐본다.
안내방송(E) 이번 정차역은 버두나무 삼거리입니다. 다음은.......
좌회전해서 버드나무 삼거리에 정차하는 마을버스.
중학생아이(#2)에게 사인을 하지만, 깨우기도 이젠 지겹다는 듯 난색하는 아이.
여전히 졸고있는 민주를 바라보다가 클랙션을 두어번 누른다.
유리창에 머리를 쿵 부딪히고는 눈을 번쩍 뜨는 민주.
#10 버드나무 삼거리.
열기속으로 질주하는 마을버스
버드나무를 올려다보고는 한숨을 내쉬는 민주.
#11 마을버스 안.
중학생이 민주의 손지갑을 성우에게 내민다
중학생 잠퉁이 아줌마가 놓고 내렸어요.(재미있는) 헤헤...
성우 (손지갑을 받으며)너가 아줌마인지 누나인지 어떻게 알어.
중학생 척하면 삼천리, 쿵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죠. 맨날 잠만 자는 누나 봤어요?
아마... 잠 못이루는 신혼부부 아줌마던지...
성우 뭐? (픽 웃는)이자식이!
중학생 근데 지갑 찾아줬는데 뭐 없어요? 헤헤헤......
성우 그래! 다음엔 그냥 타라. 기분이다!
창밖을 보면 정류장이 지난 중학생.
중학생 (놀란)악! 아저씨 내려줘요!
#12 아파트 단지. 이른 아침.
신문을 싣고 달리는 오토바이.
야쿠르트를 수레에 싣고 가는 아주머니.
단지 내 새벽장을 여느라 천막을 치는 상인들.
#13 마을버스 종점. 이른 아침.
아파트 단지 건너편 단독주택촌에 위치한 마을버스 차고지.
운행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마을버스 운전수들과 스패너를 들고 이리저리 오가는 정비사.
바퀴를 발로 튀겨보는 김기사 아줌마.
그 옆에서 주머니에 손 찔러 넣은 채 말참견 하는 박기사.
운전석에 앉아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출발 준비를 하는 성우.
최부장이 서류 몇장을 손에 쥔 채 성우에게 다가온다.
최부장 어제 잘 쉬었어?
성우 네. 푹 쉬었습니다.
최부장 젊은 사람이 집구석에서 푹 쉬면 되나! 데이트도 하고 그래야지.
장가는 어느 세월에 갈꺼야, 이 사람아!
성우 (씨익 웃고 마는)
최부장 오늘부터 시에서 단속 나오는거 알지! (서류보며)노선변경, 운행횟수, 좌석제거, 청 소상태... 뭐 이런거니까 . 구기사 알지?
어느새 박기사 다가와서 말 참견한다.
박기사 참, 최부장님도... 구기사야 모범운전수 아니유. 일년동안 결근한번 안했으면 말 다 했지. (김기사 아줌마 쪽을 보며)저 여편네나 정신 똑바로 차리라 하슈. 말이사 바 른말이지 내가 운전을 해도 자기보다 경력선배로 하늘인데, 차 발통 손 좀 보라니 께, 대뜸 화부터 내고 지랄이야, 지랄이!
최부장 하~ 참! 박기사 님이나 조심하세요. 날 덥다고 차 세워놓고 냉면이나 먹지말고!
찔끔하는 박기사.
#14 마을버스 안.
디지털 시계가 아침 6시를 가리키면 기어를 넣고 출발하는 성우.
#15 아파트 도로. 낮.
열기가 올라오는 도로를 질주하는 마을버스
타이어를 교체하고 있는 카센터의 청년.
양품점의 쇼윈도에서 마네킨을 매만지는 젊은여자
아파트 진입로에서 차량통제를 하는 수위.
늘 똑같은 건조한 바깥 풍경이 흐른다.
신사복 차림의 삼십대 남자, 성우의 뒤편에 바짝 붙어 앉아있다.
남자 마을버스 몰라면 대형1종 면허지요?
성우 (무덤덤)네.
남자 (신중하게)실례지만 월급이 얼마나 됩니까?
성우 먹고 살만큼 줍니다.
남자 매일 운전하기가 고되지 않습니까?
성우 (무뚝뚝하게)격일제로 합니다.
성우, 앞창 밑에 놓아둔 민주의 지갑을 응시한다.
민주가 늘 타던 정류장이 다가오자 신경을 곤두세운다.
남자 보너스가 몇 프로예요?
성우 ......
남자의 말보다 정류장에 신경이 가 있는 성우. 정류장에 정차한다.
승차하는 여자승객 두명의 얼굴을 또렷이 보지만 민주가 보이지 않는다.
실망한 빛이 역력한 성우. 지갑을 들어 속주머니에 넣는다.
눈으로 땀이 흘러내리자 옷소매로 쓱 문지르는 성우.
남자 의료보험은 물론 되겠지요?
차를 신경질 적으로 갑자기 정차시키는 성우.
성우 (꽥 소리를 지르며) 상여금 육백프로에 의료보험, 연금, 고용보험 다 돼요! 다 돼!
영문을 몰라 눈이 동그래지는 승객들.
성우, 질식할 것 같은 표정을 짓다가 핸들에 그대로 엎드려 버린다.
길게 울리는 경적소리.
카메라 부감으로 멀어지면, 온통 아파트 숲에 둘러 쌓인 작음 마을버스가 있다.
#16 편의점. 늦은 밤.
사발면 봉지와 만화잡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편의점을 나오는 성우.
#17 성우의 방. 늦은 밤.
이불이 흩어진채 텔레비전이 켜져있다.
텔레비전에서 마감뉴스 앵커가 증권상황을 전하고 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텔레비전을 끄고 스탠드만을 켜는 성우.
책상 앞에 않아 민주의 손지갑을 꺼낸다.
지갑의 지퍼를 조심스레 연다.
스탠드 불빛아래 밝게 드러나는 너댓장의 통신요금청구서.
#18 서민 아파트(낮)
허름한 주공 아파트단지를 헤매는 성우
청구서의 주소와 아파트 동수를 번갈아 본다.
성우 508호..... 508호라....
NA) 지갑속 어디에도 그녀의 정체는 없다. 하민주라는 이름 앞으로 통신요금들이 상상밖으로 많이 청구된다는 사실 밖에는....
#19 동 아파트 508호앞.
꽃다발을 든 멀끔한 신사가 벨을 누르고 있다.
층계를 오르려던 성우, 당황하여 난간에 몸을 숨긴다.
청구서의 호수를 다시 확인하는 성우.
신사 (간절히) 혜리씨 제발 문 좀 열어봐요. 오분만... 아니 일분만...
인터폰에서 들리는 여자의 목소리.
민주(E) 아저씨 제가 한 말들 다 거짓말이었어요. 이름도 성격도 하는 일도 모두 다 가짜 에요. 그러니 제발 정신차리고 돌아가주세요!
신사 혜리씨는 거짓말 할 사람이 아닙니다. 일단 문부터 열어보세요.
민주(E) 아저씨 바보예요? 왜그리 말귀를 못알아 들으세요?
그리고 전 지금 아파요. 안녕히 가세요. (인터폰 끊는)
신사 (인터폰에 꽃다발을 들이밀고) 그럼 이거라도... (포기하듯) 몸조리 잘 하십시오.
꽃다발을 현관문 앞에 놓고 돌아서는 신사. 성우를 지나쳐 층계를 내려간다.
다시 층계를 올라가는 성우. 순간, 벌컥 열리는 508호의 현관문.
화난 표정의 민주, 꽃다발을 들고 층계 아래층으로 힘껏 던지려하다가 성우와 정면으로 마주친다.
성우를 찬찬히 바라보는 민주.
서로 얼굴은 익었지만 인사하기가 쑥스러운 관계다.
성우 (당황스러운) 아, 안녕하세요?
민주 (엉겹결에) 아....네... 안녕하세요?
민주 휙 돌아서서 꽃다발을 현관 옆에 툭 던지고 들어가 버린다.
어쩔줄 몰라하는 성우, 만나기를 포기한 듯 올라 온 계단을 다시 내려가기 시작한다.
몇계단 내려가다 다시 올라오는 성우.
우유 투입구에 손지갑을 밀어 넣어본다. 크기가 맞지 않아 덜그럭거린다.
성우, 안간힘을 써본다.
이때 갑자기 508호 문이 열리면서 고개를 삐죽이 내미는 민주.
투입구에 지갑이 반쯤 낀 채 멍하니 민주를 바라보는 성우.
민주 (영문을 몰라) 뭐 하시는 거예요?
성우 (당확스러워)네?
민주 뭐 하시냐구요! 남의 집 대문에 웬지갑을 집어넣으시... (지갑을 보고 놀라는)
어머! 이거 내 지갑아냐!
성우 이,이게 민주씨.. 아니 혜리씨 지갑인데요... 이걸 돌려 드릴려고... 그런데 그게...
민주 (반쯤 낀 지갑을 빼려는) 그럼 벨을 누르셔야죠?
성우 (심각한) 그럴 생각이었는데... 지갑이 들어가지도 않고 나오지도 않고....
아이처럼 쩔쩔매는 성우를 보고 어처구니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민주.
#20 508호 안 (민주의 집)
원룸형식의 작은 평수의 실내구조이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초등학생 아리처럼 불편하게 앉아 있는 성우.
씽크대 앞에서 커피를 타고 있는 민주.
민주(E) 정말 고맙군요.
성우 별 말씀을요.
민주(E) 길거리에서 흘렸거나 소매치기 당한 줄 알고 포기했었는데....
성우 매일 졸아도 그런 실수 안 하시더니.... (말해 놓고 미안한)
성우 앞에 놓여지는 커피. 반대편에 앉은 민주.
민주 (웃는) 항상 졸지는 않아요. 아저씨 차에 탈때만 졸지요.
성우 (의외라는 표정)...
민주 아저씨가 항상 깨워 주시잖아요. 게다가 분위기 있는 음악도 잊지않고 틀어주시고... 아저씨가 비번인 날은 억지로라도 이렇게 눈을 동그랗게(흉내를 내며)뜨고 있지요.성우 (마음을 들킨 듯 무안하다)....
민주 지갑을 찾아주셨으니 제가 보답을 해드려야 될 것 같은데... 저녁 드실래요?
성우 괜찮습니다. 집에 가서 먹지요. 뭐....
민주 아니에요. 저도 한 이틀 앓았더니 밥 구경도 못했어요.
아저씨 보니까 꼭 마을버스를 탄 것 같아서 편한데요.
성우 (기분이 좋은) 서로 통성명을 못했군요. 저는 아저씨가 아니라 구 성우입니다.
민주 (약간 망설이는) 음... 저는 하 민주라고 해요. 오랜만에 본명을 쓰니까 쑥스럽네... (웃는)
성우 (잠시 헷갈리는)....
#21 갈비집 (밤)
야외에 펼쳐놓은 탁자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두사람.
민주는 공기밥을 먹성 좋게 먹고 있고, 성우는 소주를 마시고 있다.
민주, 다 비운 공기에 물을 따라 시원하게 마시고 딱! 소리나게 놓는다.
민주 (통신요금 청구서를 탁자에 톡톡 두드리며) 이것들이 궁금하다고요?
성우 ....
자조적인 표정이 되는 민주.
민주 낮에는 아파트 단지들을 쳇바퀴 돌 듯이 돌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청구서를 흔들며) 밤에는 통신속을 헤매다니는데...
(허탈한 웃음) 어떤게 진짜 내 생활인지 나도 모르겠어요.
(술잔을 내밀며) 저도 한 잔 주시겠어요?
성우 몸도 안좋다면서. 괜찮겠어요?
민주 애인 같은 흉내내지 말아요. 난 그런거 안좋아해요,.
술을 따라주는 성우
빠르게 한 잔을 털어 넣는 민주.
민주 (청구서 한 장을 꺼내며) 음.. 요놈의 세상은 돈많은 독신녀가 박사과정을 밟는 중 이고... (다시 한 장을 꺼내며) 이건.. 음.... 섹시한 모델이네. (한장을 꺼내고) 이건 이혼한 여자... (마지막 한 장을 꺼내고) 이건 호스티스!
그날 그날 기분에 따라 요렿게도 되보고, 저렇게도 되보고... 그렇죠, 뭐....
(자위하듯) 원래 사는 것도 연극 아니던가요?
위악적으로 웃는 민주
성우, 아무말 않고 술을 따라 마신다.
민주 매일매일 다른 삶으로 변신해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짜릿한 줄 알아요?
어짜피 가상공간이라지만 사람들 참 웃겨! 나는 하나인데 신분에 따라 덤벼드는게 어쩜 그렇게 다들 다른지...
아까 그 아저씨는 내가 실수 한거죠. 채팅은 채팅에서 끝내야 했던건데.... 애까지 딸린 양반이 내가 독신녀인줄 알고....(픽 웃는)
(소주를 털어넣고) 내가 주책이네... 이런말까지 다하고....
시니컬하게 웃는 민주
성우, 아무말 없이 잔에 소주를 따르나 몇방울만 나온다.
갑자기 옆 테이블에서 우당탕탕 소란이 일어난다.
서로 다른 테이블이었던 직장인 차림의 두 사람이 멱살을 잡고 씨근덕 거린다.
손님1 이 새끼 말하는 게 꼭 나 들으라는 소리야! 이게!
손님2 이거 미친놈 아냐? 생면부지인 너한테 무슨 욕을 해!
손님1 꼭 내 얘기 같잖아! 임마!
손님2 야, 이 새끼야! 그럼 옆 테이블까지 신경쓰면서 얘기하냐? 너는!
갑자기 참을 수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성우.
미친 듯 웃는 성우를 보고 얼떨떨해서 쳐다보는 손님1,2
#22 구청 민방위 교육장
교육이 끝난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나온다.
군데군데 완장과 민방위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
#23 마을버스 안
성우, 잠이 들어있는 민주를 룸밀러로 바라본다.
#24 정류장
마을버스 안으로 꾸역꾸역 밀려드는 민방위 대원들.
대원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굳어있다.
성우 (억지로 타려는 대원들에게) 다음 차 타세요! 다음 차!
#25 마을 버스 안
가득 실은 승객들로 인해 버스안이 후덥지근하다.
팔소매를 걷거나 창문으로 아예 고개를 내미는 사람들
성우의 얼굴에서도 비지땀이 뚝뚝 흐른다.
#26 공사장 앞 도로
포크레인이 도로를 완전히 점령한 채 반대 차선 차량만 간신히 지나가고 있다.
인부들이 통행 지휘를 하지만 차선에는 차량이 늘어 서 있다.
차에서 내린 성우, 공사장 직원에게 다가가 따진다.
공사장 직원의 완장과 안전모가 위세적이다.
성우 지금 뭐하는 겁니까? 차도를 완전히 막아 놓았잖습니까?
직원 금방 차들이 빠질 겁니다. 기다리세요.!
성우 (늘어진 차들을 가리키며) 당신 눈에는 이게 금방 빠질 것 같아요?
벌써 몇분인데!
굉음 소리와 함께 위압적으로 움직이는 포크레인.
직원 협조를 해주십시오! 일반업자가 돈벌자고 짓는 것도 아니고 국가의 관청공사니까
불편하더라도 참으세요. 이게 다 주민 편의를 위한 공사입니다.
성우 (기가막힌)......
성우, 담배를 꼬나물고 작업중인 포크레인 기사에게 다가간다.
차 빼라고 고함치는 성우, 그러나 포크레인 기사에게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성우쪽으로 난 붙박이 유리창 때문에, 포크레인 기사의 시점으로는 입만 뻥끗 거리는 성우만이 보인다.
포크레인 기사의 눈에 공사장 직원이 성우의 팔소매를 거칠게 붙들고 등을 떠다미는 것이 보인다. 서로 맞고함을 치는 성우와 공사장 직원.
심드렁하게 다시 작업에 열중하는 기사.
#27 동 도로변
인도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빨아대는 성우.
승객들 투덜대며 하나, 둘 내려서 걸어간다.
마을버스 안에 여전히 잠들어 있는 민주
그런 민주를 보고 어이없다는 듯 웃음이 나오는 성우.
#28 잡지사 (오전)
편집장과 마주 앉아있는 성우.
성우가 그린 그림을 대충대충 념겨보는 편집장.
편집장 만화를 늦게 시작하신 것치고는 그림이 많이 안정돼 있군요.
성우 (기대하는) 제 길을 좀 늦게 들어섰지만 평생 해보고 싶은 작업입니다.
최선을 다 할 생각입니다.
편집장 그럼요. 뭐든 최선을 다하면 길이 보이게 됩니다.
성우 감사합니다.
편집장 그런데... 작품은 좋은데 저희 편집방향하고는 안맞는 것 같아요.
성우 (실망하는) 편집방향이요?
편집장 음.... 뭐랄까... 좀 무거운데다가 어둡고... 음... 자극이 없네요.
요즘 독자들은 어려운걸 싫어합니다. 스스로 맛을 찾기보다는 단맛, 쓴맛, 신맛...뭐
달콤한 맛까지 완전히 조리해서 입에 넣어 주어야 그나마 눈길이라도 주지요.
성우 (기분이 안좋은) 알겠습니다. 다른 잡지사를 찾아보겠습니다.
편집장 아마 다른 곳도 오십보 맥보일 겁니다. 독자가 있은 다음에야 좋은 작품도 있는 거 아니겠어요? 요즘 같으면 정말 힘듭니다. 힘들어... 옷이라도 벗고 춤을 출 판 이라니까요.
침울한 표정으로 원거를 챙겨 돌아서는 성우.
편집장(E) 그렇지 않아도 답답한 세상인데, 뭔가 확 뚫어주는 작품을 생각해봐요!
#29 안양천 길 (밤)
인적이 없는 삭막한 안양천. 천변에는 비닐봉지와 고철들이 지저분하게 굴러다닌다.
술이 취한 성우, 원고를 겨드랑이에 낀 채로 걷고 있다.
성우의 뒤편으로 거대하게 솟아있는 쓰레기 소각장의 굴뚝
굴뚝 마디마디에서는 붉은 전등이 점멸하며 꾸역꾸역 연기를 토해내고 있다.
#30 안양천 둔덕 (밤)
검은 물이 흐르는 천변에 털썩 주저앉는 성우.
안양천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자조적으로 웃는다.
성우 (안양천에게 말하는) 야, 임마! 별거 아니야. 흘러가는대로 살면 되잖아!
너, 있잖아... 돌아가신 우리 아부지가... ‘인생은 순리다!’이렇게 말했거든...
그때 난 웃었지... 순리라는 말이 적당히 맞춰서 살라는 걸로 들렸거든!
(침울하게 목소리가 잦아들며) 근데 말이지... 그게...
(안양천에 삿대질하며) 너! 너, 한번이라도 밑에서 위로 흘러본 적 있니?
(하늘을 올려다보며 아프게 웃는) 하하하!
갑자기 웃음을 멈추고 의기소침해지는 성우. 뜬금없이 목이 메인다.
원고를 한 장씩 안양천에 띄운다.
검은 물위로 떠내려가는 하얀 켄트지
벌떡 일어나 안양천변의 넒은 공지를 뛰기 시작하는 성우
숨이 턱에 차게 달리다가 뭔가가 생각난 듯 갑자기 멈춰선다.
공중전화로 다가가는 성우
#31 공중전화 (밤)
성우, 수화기를 들고 다이얼을 누를까 말가 주저한다.
민주의 집으로 전화하는 성우.
#32 민주이 집 (밤)
컴퓨터 통신에 골몰해있는 민주.
#33 공중전화 (밤)
통화중이라는 신호음만이 반복된다.
성우, 거칠게 수화기를 놓는다.
#34 마을버스 안 (오전)
답답한 #8의 풍경 흐른다.
창문을 열려하지만 빡빡하게 잘 열리지 않는다.
마치 깨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노려보는 서우
안간힘을 써서 간신히 창을 여는 성우.
#35 정류장
짧은 핫팬티에 나시를 입고 서있는 민주. 보기만해도 시원스럽다.
#36 마을버스 안
막 승차하는 민주에게 말을 거는 성우.
성우 저...내일 시간있어요?
민주 (웃는) 왜요?
성우 (쑥쓰러운) 그냥요...
민주 (피식 웃고마는)...
아무말 없이 좌석을 향해 걸어가 버리는 민주.
성우, 무안하다.
민주의 몸매를 힐끔거리는 남자 승객 1,2
#37 아파트 도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느는 뜨거운 열기
도로 중앙선을 선명하게 긋기위해 도색작업을 하는 차량
마스크에 모자까지 눌러쓰고 노란색 중앙선 작업을 하는 젊은 인부들
성우, 숨이 막힌다.
#38 마을버스 안
시원스레 입은 민주의 모습을 룸밀러로 바라보는 성우
또랑또랑한 눈으로 창 밖을 응시하고 있는 민주
별일도 다 있다는 성우의 표정
성우, 뜨거운 열기에 마른 침을 삼킨다.
눈앞에 버드나무 삼거리가 보인다.
어느새 다가왔는지 뒤에서 민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민주(E) 오늘은 어떠세요?
성우 (반색하는) 11시에 근무가 끝나는데 괜찮겠어요?
민주(E) 아니요. 바로 지금요!
성우 네에? 지금요?
민주(E) 우회전해서 강변대로를 신나게 달려보지 않을래요?
성우, 생각지도 못한 제의에 어리둥절하다.
좌회전하면 버드나무 정류장이지만 갈등하는 성우
버드나무 삼거리에 거의 다다른 마을버스
민주(E) (절실한) 벗어나고 싶어요. 뭐든지! 지금보다는 나을거에요.
좌회전과 우회전 사이에서 갈등하는 성우
시시각각 가까워지는 버드나무 삼거리 정류장
무거워지는 성우의 얼굴
버드나무 삼거리 정류장이 대각선에서 보인다.
교차로에 들어선 순간, 브레이크를 밟으며 날카로운 굉음과 함께 우회전하는 마을버스
뒤따르던 자가용과 행인들 놀라서 멈춰선다.
#39 도로변
도로변에 차를 정차 시킨다.
#40 마을버스 안
어리둥절해하는 네명의 승객들
성우 (승객들에게) 핸들이 말을 듣지 않아요. 위험해서 더 이상 갈 수 없습니다. 죄송합` 니다!
승객1 큰 사고 날뻔 했잖아 이거!
성우 (고개를 숙이고) 죄송합니다.
#41 도로변
승객들 내리자마자 급하게 출발하는 마을버스
승객2 죽을라고 환장했나? 핸들이 고장났으면 끝장 아니야!
승객1 한사람 아직 안내렸는데! (마을버스를 가리키며) 저, 저기 저 여자...
승객2 기사한테 길 물어보던 시원하게 쭉 빠진 여자말이요?
승객1 나, 그래요! 몸매 하나 끝내주던데...
승객2 날 덥다고 기사가 햇까닥한 거 아냐?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승객 1,2
#42 강변대로
시원하게 달리는 마을버스
성우(E) (외치는) 왜 이리 웃음이 나오지요?
민주(E) (외치는) 철없는 아이가 되면 웃음이 많아지는 법이에요.
#43 팔당대교
음악이 흐르면서 질주하는 마을버스
성우(E) 오늘은 안 자요?
민주(E) 깨워주실래요?
성우, 민주 유쾌하게 웃는다.
#44 산길 도로
길게 뻗은 나무들이 울창하게 그늘을 만들고 있는 좁은 도로
도로곁에 급하게 정차하는 마을버스
후다닥 내린 민주, 소변을 보기위해 숲속으로 뛰어 들어간다.
성우도 내려서는 담배를 피워물고 소변을 본다.
민주(E) 돌아보면 안돼요!
성우 나도 지금 볼 일보니까 걱정말아요!
바람이 불어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가 스산하게 들린다.
민주(E) 바람소리 들려요?
성우 아니요. 그쪽에서 시원한 물소리밖에 안들리는데요!
민주(E) (볼멘소리로) 관두셔!
성우 하하하..
잠시후, 들꽃 한 묶음을 꺾어 들고 다가와서 좋아하는 민주.
#45 마을버스 안
변두리 마을을 달리는 마을버스
차가 흔들릴 때마다 룸밀러에 달아놓은 들꽃이 흔들린다.
#46 변두리 상점가
70년대 풍경을 연상시키는 가게들이 띄엄띄엄 있다.
칠이 벗겨진 양철간판에 서툰 글씨로 씌어진 ‘홍콩반점’
그 앞에 정차하는 마을버스
#47 홍콩반점
서너개의 낡은 탁자와 고물에 가까운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디.
뜯어진 벽지. 군데군데 붙여놓은 신문벽지
끈끈이에 검게 달라 붙어있는 파리들
탁자 한켠에 쌓아 놓은 단무지와 낮잠을 자고 있는 60대 중반의 주인(허노인) 얼굴위로 날파리들이 사정없이 날아든다.
성우와 민주, 허노인을 깨우지 않고 지독한 지저분함을 신기하게 쳐다본다.
허노인 (하품을 하며) 어서들 오시구랴.
큰사발에 물 한그릇을 따라 탁자에 놓는다.
동시에 사발에 손이 가는 두사람
성우 (쑥스러운) 먼저 드세요.
민주 (씨익 웃는)....
민주와 성우, 번갈아가며 마신다.
쩍쩍 하품을 하며 밀가루 반죽을 뜨는 허노인
성우 (민주에게) 뭐 드실래요?
민주 뭘 먹을까..
허노인 시키고 자시고 할 필요 없고 무조건 다 짜장면이야. 다른 건 없어....
짜장면 두 그릇을 탁자위에 놓는 허노인
두사람, 얼굴을 마주보다가 어이없이 웃는다.
선풍기를 돌려 두사람에게 맞춰주고는 무심하게 파리를 잡는 허노인
허노인 날이 어쩌나 더운지 사람들 시가 말랐어. 통 안보여..
성우 더워서 장사가 안되겠네요.
벽에 반쯤 덜렁거리는 신문에 대고 세차게 파리채를 휘두르는 허노인
빛바랜 신문지의 헤드 타이틀 (IMF 경제국치 다시 일어서야 한다.)
소리에 깜짝 놀라는 민주
허노인 저 먹을 거 하고 저 파묻힐 땅은 다 타고나니께 별 걱정은 없지만서두
나라가 잘되야 백성도 편한 법인디... (하품하는)
성우, 나라 걱정하는 허노인의 말에 놀랍다는 듯 장난스레 입을 크게 벌린다.
성우의 표정에 같이 호응하는 민주.
그릇을 비우고 젓가락을 아쉽게 놓는 성우.
민주 (한 젓가락 들고) 더 드실래요? 저는 냉커피나 실컷 먹고 싶네요.
성우 더 주시면 염치불구하고..... 그 대신 냉커피는 원없이 사드리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게걸스럽게 먹는 성우
단무지를 더 시키려고 허노인에게 고개를 돌린다.
어느새 잠에 취해있는 허노인
두사람, 서로 검지를 펴서 입에 대고 조용히 일어난다.
탁자에 음식값을 놓고 살금살금 나간다.
#48 홍콩반점 앞
문을 열고 나오는 두사람. 웃음을 머금고 있다
바로 문 앞에 배가 남산만한 임산부, 막 들어오려던 참이다.
두사람, 조심스럽게 입구를 비켜준다.
민주 (성우에게 낮은 소리로) 임산부는 십리길이라도 가서 먹을 건 먹어야돼요.
#49 마을길
70년대 풍경의 길을 걷는 두사람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구멍가게, 방앗간, 사진관, 대폿집...
두사람의 뒤편으로 오래된 성당이 보인다.
민주 생각보다 배짱이 좋으신데요? 근무지 이탈인데 걱정도 안하시고....
성우 속으로 무지 떨고 있습니다. 민주씨 앞에서 남자다워 볼려고 이를 악물고 있을 뿐 이지....
민주 (깔깔대는).....
성우 어려서부터 착하다는 말 많이 듣고 자랐어요.
민주 성우씨는 그랬을 것 같아요.
성우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도 그런 말 들으니까 좋은 말만은 아닌 것 같더군요.
민주 어머, 왜요?
성우 가다보면 남들이 간 길만 따라가는 제가 보이는 거에요. 그래야 안심이 되니까.....
한 번도 내가 가야할 길에 애해 이런저런 눈치 안보고 결정해 본 적이 없어요.
민주 눈치 한보고 산다는 게 쉬운줄 알아요? 욕 먹을 각오가 단단히 되어 있어야 그것 도 되는 거라구요.
성우 (허탈한) 사실 욕먹을 용기도 없는 게 저란 사람이지요.
민주 성우씨 오늘 크게 달선했네요. 욕 정도가 아니라 밥줄 끊기는 거 아니에요?
오늘 내가 사탄이 된건가?
민주, 장난스럽게 성우를 살핀다.
성우 (손을 저으며 강한 부정) 아,아닙니다. 아마 계속 근무를 했더라면 터져버렸을지도 몰라요. 정말입니다! (흐믓한 미소) 오늘은 아무 이유없이 그냥 좋습니다.
민주 저도 컴퓨터랑만 연애하다가 이렇게 나오니까 살아있는 것 같은데요?
성우 (다방을 발견한) 어, 저기 드디어 오아시스가!
먼지가 뽀얗게 앉은 황실다방 간판이 멀리 보인다.
#50 황실다방 안
빛바랜 꽃벽지와 나이롱 조화로 한껏 멋을 낸 분위기
이미자의 노래가 흐르는 다방 풍경이 70년대의 신파조를 연상케한다.
중앙에 먼지를 뒤집어 쓴 채 놓여있는 무쇠로 만든 석탄난로가 인상적이다.
진한 화장을 한 마담, 호들감스럽게 두사람을 맞이한다.
마담 아이고 땀좀 보셔.....자, 자 이리오 앉으세요. 이 자리가 얼음장같이 찬 자리라우!
마담, 시원하게 노출한 민주의 몸매를 눈여겨 본다.
성우 (담배를 빼어물고) 냉커피 두잔이요.
민주, 성우의 담배를 빼어 스스럼없이 입에 문다.
주문을 받고 돌아서는 마담, 고개를 돌려 담배 피는 민주를 유심히 바라본다.
#51 동 화장실
찬물로 세수를 하는 성우
물을 묻혀 머리를 이리저리 매만져 본다.
#52 동 다방 홀
자리로 돌아오다 걸음을 멈추는 성우.
마담(E) 아무리 시골 바닥 같아두 아가씨만 잘하면 한밑천은 금방이야.
민주(E) 얼마나 버는데요?
마담(E) 손님도 없는데 사람만 쓰면 뭐해요?
민주(E) (속삭이듯) 커피만 장산가?.... 다 방법이 있지.
성우, 화난 듯 민주의 팔을 거칠게 잡고 일으킨다.
민주 왜 그래요? 성우씨?
성우 잔말 말고 빨리 일어나요.
마담 총각이 뭘 오해하나부네....
성우 (화난) 아줌마는 조용히 하세요!
마담 (따지는) 총각이 나설일이 아니잖우! 만난지 십분도 안됐다며 애인같이 화를 내고 그랴?
성우 십분요?
마담 지나가다 요 앞에서 금방 만난 사이라며!
성우 (멍하니 민주를 보는).....
민주 (웃으며) 내가 그랬어요. 화내지 말고 이리 앉아봐요. 성우씨.
성우의 손을 잡아 끌어 자라에 앉히는 민주
민주 아줌마 이 사람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말씀해 보세요.
마담 (성우의 눈치를 보며) 아가씨는 아무 일도 하지말고.... (힐끔 성우를 보는) 그냥 여기 나와서 폼만 잡고 앉아 있으면..... 내가 다 알아서.....
벌떡 일어나 소리치는 성우
성우 (민주에게 화난) 난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어! 맘대로 해!
나가버리는 성우
민주, 마담을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포즈
#53 황실다방 앞길
성큼성큼 걸어가는 성우
뒤따라 뛰어오는 민주
민주 (성우의 팔을 잡고) 왜 그래요? 아이같이...
성우 (손을 뿌리치고 계속 걷는)
민주 (다시 팔을 잡는) 그런 얘기가 그렇게 화가 나요? 도대체 왜 그래요?
성우 (뿌리치는) 나도 내가 왜 화를 내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그래서 더 화가 나!
#54 마을 버스 앞 (오후)
버스에 타려고 걸음을 옮기는 성우
뒤에서 소리치는 민주
민주 당신 왜 그렇게 사람이 시시해!
우뚝 멈춰서는 성우
민주 (흥분해 소리치는) 옹졸하고 이기적인 데다가 겁만 많아 가지구! 당신이 내 애인 이나 돼? 난 애인같이 구는 남자 싫다고 했지! 착각하지마! 난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닌 그저 남남이야! 그냥 마을버스를 자주 타는 한 승객이란 말이야!
뒤돌아서 걸어가는 민주
민주 (매몰차게) 가버려! 어차피 난 혼자니까!
#55 마을버스 안
침울한 표정의 성우, 버스에 시동을 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교통방송
MC와 통화를 하고 있는 박기사
박기사(E) 귀신이 곡할 노릇아니겄습니까? 정비소로 간다던 마을버스가 사라졌으니 말입니 다.
성우, 심상치 않은 표정이 되어 볼륨을 높인다.
남MC(E) 기사에 의해 도난되지는 않았을까요?
박기사(E) 누가 마을버스를 훔쳐간다요. 글고 미스터 구는 회사내에서도 모범운전수로 통해 서 절대 그런 짓할 위인이 못됩니다요.
여MC(E) 그런데 여자를 납치했을 수도 있다는 목격자가 있다면서요? 치정에 얽힌 복잡한 형사사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56 마을길
터벅터벅 걷고 있는 민주
민주 옆에 급브레이크로 정차하는 마을버스
성우, 급하게 내려 민주의 등을 마을버스 안으로 떠민다.
민주 왜이래요? 당신과 볼 일 없는 것 같은데!
성우 (장난스러운) 당신을 납치해야겠어요! 안그러면 내가 쇠고랑 차게 생겼어.
민주 .....
성우 당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내가 뒤집어 쓰게 생겼다구요.
나의 결백을 위해 당신을 증인으로 납치하겠어!
민주 (영문을 모르는)
#57 마을버스안
라디오의 볼륨을 높이는 성우
남MC(E) 마을버스를 도난차량으로 신고 하시겠습니까?
박기사(E) 좌우당간 버스를 찾아야 곡절이 풀릴 것 같구만요.
눈이 동그래져서 성우를 쳐다보는 민주
남MC(E) 그럼 접수하겠습니다.
여MC(E) 마지막으로 그 기사분이 듣고 있다고 생각하시고 한 말씀만 하시죠.
박기사(E) 미스터 구, 날이 많이 덥제. 아무 사고 없기를 바라고... 여자 납치 이런 말은 천 부당 만부당한 말이니께..... 난 자네를 믿네. 어쨋거나 최부장님 이하 직원들이 영 문을 몰하허네. 그리고 김기사가 수박을 두통이나 갖고 왔는데 자네가 이런 꼴을 당해서 많이 애통해허네.....
여MC(E) (말 끊으며 남MC에게) 불볕 더위일때는 외국에서도 기상천외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한다죠?
남MC(E) 그렇죠. 아무래도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데다가...
라디오를 끄는 성우
민주 (신가한) 이거 우리 얘기 맞지요?
성우 민주씨가 원하는대로 됐군요.
민주 (의아한) 내가 원했다구요?
성우 아니면 나든지.... 우리 둘 다겠지요. 쳇바퀴같은 생활 이외에는 모든 게 다 드라마 같아 보였는데 이제 당신과 나도 주인공이 된 거 같으니....
민주 (웃으며) 그런가요? 당신은 탈영기사고 나는 그를 감화시키는 마리아 같은 여주인 공?
성우 (미소짓는)
민주 그렇게 웃으니까 보기 좋아요.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마을버스
성우(E) 아까일 사과할께요.
민주(E) 아니요. 오늘은 내가 더 고마워해야 할 날이에요. 그런데 일이 이렇게 커져 버려서
어쩌죠? 돌아 갈 일이 걱정이군요.
#58 도로
마을버스가 지나가면서 홍콩반점과 황실다방의 풍경 흐른다.
#59 마을 버스 안
성우의 눈에 ‘서울’이라는 도로 표지판이 크게 확대된다.
서울을 표시하는 직진 화살표를 노려보는 성우
성우, 버스를 급하게 유턴 시킨다.
민주 (의외라는) 성우씨....
성우 오늘 하루는 우리 둘을 위해 쓸겁니다. 아무 소리 마세요.
마치 결의라도 한 듯한 성우의 얼굴을 바라보는 민주
룸밀러에서 흔들리는 들꽃
# 60 마을길
인적이 뜸한 도로를 달리는 마을버스. #49의 풍경
#61 마을버스 안
홍콩반점 앞에 허노인이 임산부를 부축한 채 몹시 다급한 모습이 보인다.
지나가는 마을버스를 발견한 허노인, 급하게 손짓을 한다.
#62 홍콩반점 앞
성우와 민주, 허노인과 함께 먼저 임산부를 부축한다.
허노인 (반색하는) 자네들이구먼!
성우 무슨 일입니까?
허노인 보면 몰러! 내 며눌아기가 애를 날란가분디 차가 통 보여아지.... (서두르는) 어여, 어여!
마을버스 안으로 임산부를 조심스럽게 옮긴다.
겁에 질린 임산부
허노인 (수심이 가득한) 혼자 있기가 불안하다고 나오 있더니만 덜커덕 배가 아프다잖어.
한 일주일 후에나 몸 푼다고 하더니만!
차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차를 급하게 치는 소리가 들린다.
차 문을 열면, 중년의 아주머니(58세)가 얼굴을 내민다.
아주머니 이거 시내병원 가는 거면 나도 좀 태워주시구랴! 돈은 앨 텐께.
다짜고짜 올라서는 아주머니
#63 마을버스 안
속 고쟁이에서 잔돈 주머니를 찾느라 여념이 없는 아주머니.
허노인 (다급한) 우리 애들을 죽일거여! 어여 가!
성우 (급히) 아주머니, 차비는 안내셔도 되요.
아주머니 그려? 어쩐지 기사양반이 참하게 생겼더라니... 고맙소! 기사양반....
허노인 (아주머니를 보고) 아줌씨! 내 며눌아기가 눈꼴에 안 보이요?
아주머니 알겄소. 알어! (임산부에게 다가가며) 하이고, 삼복더위에 진 쫌 빼겄네...
차가 덜컹거리자, 임산부의 몸이 따라 뛴다.
아주머니 기사양반! 새댁이 놀래서 애가 슴풍 나와불면 어쩔라그라요?
맴은 급해도 찬찬히 가는 게 제일이요.
민주 (허노인에게) 애 아빠는 어디갔어요?
허노인 늦게 막내둥이인데다가 하도 시답잖은 짓만하고 다니길래 일찍 군대에 보내 버렸 지. 지 에미도 일찍 죽고 해서 오냐오냐 키웠더니만...
(며느리 보고) 이 어린 것만 고생이지.....
아주머니 아들 삼형제면 도둑놈 보고 웃지말고, 딸 서이면 화냥년 보고 웃지말랬다고 어느 집 구석이든 속 안썩이는 자식있다요?
민주, 수건을 꺼내 땀흘리는 임산부의 얼굴을 닦아준다.
임산부의 한쪽 손을 꼭 쥐어주는 민주
성우, 룸밀러로 민주를 보고는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허노인 (며느리 보고) 괜찮으나? 아가야!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임산부
아주머니 (허노인을 보고 안타까운) 부모 마음이냐 다 똑같지만서두 오죽하면 부모를
문서대기 없는 종이라 하겄어......
긴장한 눈빛으로 운전을 하는 성우
창밖으로 두 아주머니와 한 아이가 스쳐 지나간다.
아주머니 기사양반! 차 쪼까 세워보씨요!
창문을 여는 아주머니
두 아주머니와 한 아이가 걸어오고 있다.
아주머니 (창밖에 대고 소리치는) 선돌네! 버스도 안타고 어디가는가?
선돌네 얼추 한 시간은 기다렸는데 버스가 와야 말이제!
아주머니 그럼 쪼매만 기다려보드라고! (성우에게) 기사 양반! 저 이가 사정이 딱한디 같이 가면 안되겄오?
허노인 (울화가 나는) 아줌씨! 정신이 있소, 없소! 이 애가 다 죽게 생긴 거 안보이요?
성우, 문을 열어준다.
성우 어서 타십시오!
동네 사람들 뛰어와 급히 탄다.
아주머니 (타는 이들에게) 싸게 싸게 서둘러! (허노인 보며) 너무 서둘러도 일치는 법이요.
뜨신 밥도 뜸이 들어야 안 나오요.
허노인 (화난) 뜨음? 이 이줌씨가 밉다밉다하면 떡 사 쳐먹고 서방질 한다더니.....
남은 맘이 천리길인데 혼자 수작이여!
아주머니 (댓거리하듯) 뭣이요?
이때 임산부가 고통스럽게 신음한다.
놀란 허노인, 아주머니, 민주 걱정스럽게 몸을 잡는다.
선돌네 다가서서 임산부 허리춤의 고무줄을 편히 내리고, 비스듬한 자세로 잡아준다.
선돌네 (허노인을 보고) 아자씨, 지가 아이들만 열둘을 받아 봤으니께 너무 걱정마씨요.
뭔 일 있으면 나라도 손 쓸 수 있으니께.
아주머니 그렇구만... 선돌네가 딸내들 뒷수발은 다했었제. (허노인을 보고) 거 보씨요.
좋은 일하면 이렇게 돕는 사람이 생긴다니께.....
허노인 (책망하듯) 아줌씨는 입 좀 다물어요!
찔끔하는 아주머니
걱정스럽게 임산부를 지켜보는 사람들
# 64 검문소 앞
서너대의 차량들이 검문을 위해 줄 서있다.
군인, 정지신호를 하고 마을버스에 오른다.
군인 (경례를 하며) 죄송합니다. 잠시 검문이 있겠습니다.
허노인 (소리치며) 야, 이놈아 애가 곧 나올라는데 한가하게 이게 무슨 지랄이여?
아주머니 간첩 비슷한 찌갱이도 없으니께 빨리 보내주씨요!
머쓱해진 군인, 경례를 하고 허겁지겁 내린다.
갓길로 차를 빼게해서 출발 시키는 군인
# 65 응급실
응금 침대에 실려 다급히 들어가는 임산부
# 66 산부인과 대기실
의자에 앉아 있는 성우와 민주에게 다가오는 허노인
허노인 자네들 덕에 급한 불은 끈 것 같네.
성우 산모는 어떄요?
허노인 진찰 중이여. 아줌씨들이 돌봐주고 있네.
민주 아까는 아저씨 속을 끓이더니만..... (웃는)
허노인 (웃음) 그려... 그런데 자네들 우리 동네로 또 갈란가?
성우 글세요. 아직.....
허노인 참 미안허네만 신세 진김에 한가지 더 부탁함세 (열쇠를 꺼내) 하도 급해서 가게문 도 못 닫고 나왔지 뭔가? 없어질 것도 없지만 손주놈 나오기 전까지는 여기 붙어 있어야지 않겠는가?
민주, 성우 서로에게 의사를 묻듯 마주 쳐다본다.
성우 그러셔야죠...
민주 걱정마세요.
성우, 허노인의 열쇠를 받아쥔다.
허노인 열쇠는 문 안으로 밀어 넣으면 되네.
(두사람의 손을 잡고) 정말 고맙네. 오늘 일은 내가 잊지 않고 꼭 갚겄네.
두사람, 허노인에게 공손히 인사하고 돌아선다.
# 67 검문소 앞.
초조한 표정의 민주
민주 괜찮을까요?
성우 어찌 될지는 부딪혀봐야죠.
차에 창문을 여는 성우, 군인에게 거수 경례를 한다.
성우 아까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 날 뻔했습니다. 군인 아저씨 덕에 옥동자를 낳지 뭡니 까!
군인, 히죽 웃는 표정이 된다.
성우 오늘 큰 일 하셨습니다! (말 할 틈도 주지않고 경례를 하며) 수고!
빠르게 출발하는 마을버스에 엉거주춤 경례를 하는 군인
# 68 마을 버스안
민주, 안도의 숨을 내쉬면 쾌활하게 웃는 민주
# 69 홍콩반점 앞 (해질 녘)
열쇠를 문 밑으로 밀어 넣은 성우
민주 우리 저기 가 볼까요?
성우, 바라보면, 오래되서 허름한 성당(#49)과 주변에 묘지들이 고즈녁하게 자리잡고 있다.
# 70 성당 표지
성당과 주변의 묘지들 위로 석양이 물든다.
성당 옆으로는 맑은 냇물이 흐르고 그 위로 불어오는 여름 바람이 정겹다.
묘지 사이로 걷는 두사람
민주 한번 마을버스는 영원한 마을버스인가 봐요?
성우 (빙긋이 웃는) 그렇게 됐군요. 오늘은 롤스로이스를 몬 것보다 더 흐믓한데요.
이전에는 몰랐는데 사람들이 날 필요로 하니까 기분이 좋군요.
민주 저는 아까 산모의 손을 잡아 보니까 불쌍하다는 생각보다 부럽던걸요.
성우 ......
민주 (희망적인) 그 산모는 아기 때문에 기뻐하고 있었어요.
성우 남편도 없는 마당에 기쁠 것 까지야......
민주 아니요. 그녀는 아제부터 홀로 살만큼의 용기를 가지게 될 거에요.
무덤앞에 삐뚤하게 놓여진 누렇게 마른 꽃다발
성우, 먼지를 털 듯 훅훅 바람을 불어 제자리에 똑바로 놓는 성우
성우 아버지가 뒷간하고 저승길은 대신 못가주는 거라 하더군요.
그런데 당신을 보니 한가지 더 생각이 납니다.
민주 뭔데요?
성우 시집! 민주씨도 이제 시집가세요.
민주 (고개를 저으며) 저는 아직 세상 바람을 더 맞아야 할 것 같아요. 오늘처럼....
민주, 성우를 보고 흐뭇한 미소를 띄운다.
마주보고 웃는 성우.
#71 다리위 (저녁)
산으로 곧 넘어갈 듯한 석양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소리가 청랑하다.
두사람, 난간 위에 앉아 캔 맥주를 마시고 있다.
발 아래로 찌그러진 캔맥주가 쌓여있다.
성우, 맥주를 머금고 하늘로 뿜어 본다. 성우를 따라서 흉내 내보는 민주.
두사람, 하늘을 보고 소리치듯 외친다.
성우 이대로 멀리멀리 도망치고 싶어!
민주 나두!
성우 하하하.... 그런데 왜 떠나지 못하지?
민주 왜 그럴까?
두사람, 주위가 떠날 듯이 큰소리로 웃어 제낀다.
마치 웃음속에 모든 대답이 들어있는 것처럼......
#72 여인숙 방 (밤)
웃음을 못참는 아이들처럼 깔깔대며 뛰어 들어오는 두사람
서로에게 손가락질하며 연신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참지 못한다.
#73 여인숙 밖(밤)
허름하고 초췌한 여인숙 간판
두사람이 묵은 방의 작은 창문이 따스하다.
꺼지는 창의 불빛
# 74 마을길 (아침)
성당에서 울려퍼지는 종소리
황실다방의 마담, 가게 앞을 쓸고 있다.
트럭에서 장사할 물건을 꺼내 받는 구멍가게 주인
사진관의 주인, 시원스럽게 세숫대야로 유리창에 물을 끼얹는다.
성우와 민주, 마을버스를 향해 걸어간다.
#75 마을버스 앞
경찰들이 마을버스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다.
무전기로 어딘가에 보고를 하는 모습
# 75 마을 길
민주, 마을버스 주변의 경찰을 보고 깜짝 놀란다.
민주 (외치는) 성우씨! 경찰이야!
성우 (다급한) 뛰어!
돌아서서 뛰는 성우와 민주
경찰들, 멀리서 두사람을 발견하고 뛰어온다.
성우와 민주, 젖먹던 힘까지 내서 도망친다.
절실하게 뛰는 모습에서 스톱모션
민주(E) (한가하게) 성우씨 이제 우리 어디로 가지?
성우(E) (여유있게) 음....글세..... 저기 저 산 너머엔 뭐가 있을까?
# 77 아파트 도로 (낮)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아스팔트의 뜨거운 열기
마을버스 정차하면 하차하는 승객들
# 78 정류장
트럭을 세워놓고 과일을 파는 박기사와 김기사 아주머니
마을 버스의 창을 두드리는 김기사 아주머니
창을 열면 성우에게 시원한 수박을 건네준다.
박기사 (트럭에서 소리치는) 젊은 사람이 축축 늘어져갔고 어디 되겄는가? (기침하는)
에이취!
김기사 (박기사에게) 여름 감기는 개도 안걸린다는데.... 당신이니 몸 간수 잘하셔!
박기사 (싸울 듯) 뭐여? 이 여편내 말뽄새... (기침하는) 에에취!
웃으며 손 흔들고 가는 성우
NA) 아직도 마을버스를 운전할 수 있게 된 것은 결혼한 박기사 아저씨와 김기사 아주머 니 그리고 홍콩반점 할아버지의 통사정 덕분이다. 오늘도 최부장은 날 불안한 눈 으로 바라본다.
# 79 마을버스 안
비지땀을 흘리며 운전하는 성우
눈가로 땀이 흘러내리자 소매로 쓱 문지른다.
성우, 룸릴러를 바라본다.
거울속의 민주, 잠에 빠져 있다.
안내방송 (E) 이번 정차역은 버드나무 삼거리입니다. 다음은....
성우, 마른 침을 삼키며 긴장한다.
민주(E) 우회전해서 강변대로를 신나게 달려보지 않을래요?
버드나무 삼거리가 점점 가까워 진다.
긴장하는 성우의 얼굴
대각선에서 보이는 버드나무 삼거리.
좌회전과 우회전에서 갈등하는 성우
교차로에 들어선 순간, 쿵하는 굉음소리
성우, 룸밀러를 바라보면 민주는 여전히 잠에 빠져있다.
밖으로 나가는 성우, 고개를 숙여 충돌한 자가용과 마을 버스를 살펴본다.
카메라 부감으로 멀어지면 병풍처럼 둘러싸인 아파트.....
NA) 올 여름은 유난히 덥다. 이 곳에는 언제쯤 소나기가 내릴까.....
아파트 한 귀퉁이에서 삿대질하며 싸우는 성우와 자가용 운전수
사람들 점점 작아지면서 엔딩 자막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