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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아동양육․부모역할
- 21세기 아동의 정신건강을 위한 반성과 제안 -
홍강의(서울의대 교수)
Ⅰ. 서론
한국은 분명 잘사는 나라가 되었고 이제 후기산업사회 정보사회의 견인차 대열에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더 많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발달상, 정서․행동상의 다양한 문제로 고통을 받고 있고 부모는 죄책감과 허탈감, 그리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당혹감에 빠져있다. 최근 한국은 각종 청소년 범죄, 폭력, 약물남용, 자살, 왕따 등 날로 증가하는 청소년 문제에 경악하고 있고 거국적으로 그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문제 증가의 원인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이 “지식교육위주”, “입시제도의 병폐”등 교육제도의 문제, 산업화에 따르는 가족구조 기타 사회구조의 변화 그리고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입각한 황금만능주의, 성취위주의 가치관, 감각적 쾌락주의의 범람 등이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급격한 사회․경제적 정치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상당수의 어린이는 건강하게 자라 건강한 성인이 되고 일부만이 심각한 문제를 가지게 됨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
필자가 지난 30년간의 임상경험을 총체적으로 돌이켜 볼 때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심각한 정신병리는 그 원인적인 요소가 대부분 영유아기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본 저자의 큰 관심사중의 하나인 자폐증과 그 유사한 발달장애에 대한 경험과 연구는 신생아기부터의 어머니와의 관계 즉 애착의 중요성을 통감하게 되었고 일반아동의 양육에 대해 걱정하게 되었다. 더구나 아동학대와 아동방임의 의학적, 사회적 문제의 예방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 아동학대예방협회'를 창설하면서(1989) 영유아기에 일어나는 아동학대 연구를 통해 부모의 무지, 좌절, 부모의 정신병리, 사회여건이 영유아 발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감하게 되었다. 또한 초등학교 아동들의 정서․행동문제가 영유아기의 부모의 자기 중심성과 개체성 존중의 결여, 과잉통제와 과잉보호와 밀접히 관계됨을 알 수 있었다. 아동들의 각종 정서적인 문제와 행동적 문제를 매일매일 관찰하면서 우리 부모들이 얼마나 아동 양육방법에 관심이 없거나 무지하고 혼돈 되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한편 최근 증가되고 있는 가정불화와 이혼으로 인한 아동들의 슬픔과 혼동과 분노, 정서적 불안은 날로 증가하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비행, 가출, 약물남용, 또 경계선 성격장애 청소년들을 접하면서, 흔히들 청소년 문제의 그 원인을 사회적인 현상과 부모, 사회의 책임으로 돌리지만, 심층적으로 분석해보면 원인이 궁극적으로 영유아기의 부모와의 관계와 밀접히 관련이 있음을 증례마다 발견할 수 있었다.
본 논문에서 현재 한국의 조기양육문제에 대한 필자와 우려를 나누고 그 문제의 근원을 지난 40여년간 급격히 진행된 근대화 과정의 소산임을 주장하려한다. 본 논문은 연구논문 또, 철저한 문헌 검증도 아니며 다만 그 동안의 임상경험과 연구를 통해 얻어진 중요한 생각과 결론을 나누기 위한 산문(essay)이라 하겠다.
Ⅱ. 위기를 시사하는 관찰들
먼저 필자가 왜 한국이 양육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원하지 않는 임신과 원하지 않는 아이의 증가
심각한 아동이나 청소년의 문제를 캐다보면 그 시작이 원하지 않는 아이라는데서 시작하였음을 종종 본다. 원하지 않는 이유는 원하지 않는 결혼 불행한 부부관계 때문일 수 있고 어머니의 직장이나 경제적인 여건상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원하지 않는 성(sex)일 경우도 있다.
요즘의 일부 부부들은 아이를 가질 것이냐, 안가질 것이냐 자체에도 의문을 가지는 것 같다. 자식은 오히려 자신의 자유로움과 부부중심 생활, 직업적인 진출, 자아실현에 방해로 생각하여 아예 자녀를 안가지려는 부모도 증가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10대 임신이 증가하고 있고 이것이 원하지 않는 사고 임신임을 쉽게 알 수 있다. 비공식 집계로는 아직도 우리나라는 연간 100만의 불법 인공유산이 행해져서 참으로 가공할 만한 학살이 자행되고 있고 이것은 연간 70여만의 출생수(통계청 1993)보다 더 많은 수임을 알 수가 있다. 이렇게 자행되는 유산은 성별을 감별할 수 있는 의학적인 기술의 향상과 더불어 더욱 선택적으로 행해지고 있는데 최근 우라 나라의 출생시 남아와 여아의 출생 비율은 115:100인데 남아선호가 아직도 뚜렷하다.
흔히들 우리 소아정신과 의사들 간에는 [둘째딸 증후군]이라는 말들을 하는데 또 남자아이를 기대하던 중 둘째, 셋째가 원하지 않는 여자아이로 태어났을 때 가지는 여러 가지 정서적 행동적 특징이 모아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2. 양육의 거절과 회피
두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부모 역할의 문제점은 아이가 태어난 후 무슨 이유로든 아이 기르는 것을 거부하는 부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연간 13,000명의 어린이가 길거리 또는 유아시설에 버려지고 있는데 이중에는 기형아, 정신지체아, 장애아, 여자아이 등이 주종을 이루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이배근 1989).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우리 나라도 이혼율이 증가하여 3-4쌍이 결혼중 한쌍이 이혼하는 꼴로 증가되었다(통계청 1998). 아직도 미국 등 몇몇의 선진국에 비하여 낮은 이혼율이지만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고 아이들을 서로 맡지 않으려고 싸우고 도망가버리는 일을 흔히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은 아이를 원하느냐 원하지 않느냐의 문제와 더불어 태어난 아기를 버리거나 양육권을 원하지 않는 현상 등 어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아이에 대하여 부모로서의 역할을 하겠다는 굳은 결심과 약속을 거부하는, 적어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부모들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을 아마도 Mead가 얘기한 "약속과 책임의 위기“(Crisis of Committment)라고 할 수 있겠다.
3. 아동양육방법에 대한 무지, 혼돈 : 부적절성
자식을 낳기로 마음먹고 부모로서의 훌륭한 역할을 하려해도 현대의 젊은 부모들은 아이를 실제 양육하는데 대하여 정식 교육을 받은 바도 없고 관찰한 바도 없어 당황하고 혼돈에 빠진다. 대학도 결혼을 잘하기 위해 가고 결혼전까지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배우자 또한 능력있는 작장인이 되느냐에 온갖 신경을 쓴다. 결혼을 위해 “성교육”, “요리실습”, “실내장식”등은 배우지만 아기는 어떻게 낳고 기르는가에는 무지하여 막상 아기를 낳았을 때 무엇을 어떻게 해야될지를 모르는 수가 많다. 더구나 결혼하자마자 분가하여 생활하는 상황에서 지도 감독을 해줄만한 사람도 없다. 가장 기본적인 수유, 목욕, 수면과 대소변 처리등은 물론이고 아이가 울 때, 어떻게 해주며 깨어 있을 때 어떻게 놀아주고 무엇에 신경을 써야 되는지에 대하여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고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그들은 어디에서 배웠는지 의문이다. 이로 인해 우리 나라도 신생아․영아기의 양육의 문제로 일어나는 심각한 문제들이 생기고 있다. 비기질성 발육부진, 정서적 방임, 아동학대로 인한 각종 발달장애가 우리 나라에도 상당히 높은 빈도로 발생함이 이미 조사된 바 있다.
필자는 그동안 많은 자폐아동을 보아왔는데 요즈음에 와서는 전형적 자폐아동보다 자폐아동과는 비슷하나 분명히 다른 부류의 아동을 많이 본다.
이중 일부는 반응성 애착장애아동인데 이들은 공통적으로 양육자의 방임이나 부적절한 보살핌 때문에 애착이 잘 안이루어지거나 비정상적인 애착이 이루어진 상태를 얘기한다. 원인적인 요소들을 분석해 보면 (1) 어머니의 우울증(산후 우울, 부부불화, 시댁과의 갈등)이 가장 많았고 (2) 어머니가 직장이 있고 대리모가 자주 바뀐 경우 (3) 외국에서 출생하여 외국생활에서 어머니 자신이 고립되고 우울에 빠져서 아이를 돌보지 못한 경우 (4) 격리되어 타인에 의한 불충분내지 부적절한 양육 (5) 정서적 방임 즉 아기의 심리적 요구에 일체 응하지 않거나 부적절한 경우 등이다. 부적절한 양육의 예는 어머니가 자신의 학업적, 직업적 성취에만 관심있는 경우, 아이 기르는데 보람이나 애정은 느끼지 못하고 하루종일 TV, Video를 보게 하는 경우, 지적인 발달에만 집착하는 경우, 잘못된 유아상을 가지고 있고 아기를 그에 맞추려는 경우, 아기가 부부불화의 분출구 역할하는 경우 등 다양하였다. 최근 양육태도에 대한 일반 아동과 부모의 조사에 의하면 과거에 비하여 현대 어머니들이 좀더 벌을 많이 사용하고 좀더 처벌적인 것을 알 수가 있다.
정서적으로 미숙한 부모가 양육에 대한 흥미의 결여와 유아행동을 이해하는 공감력이 부족함으로서 조금만 보채거나 울거나 말을 안들을 때 아동을 구타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구타나 기타 아동학대 속에서 자라난 아이는 정서적 행동적인 면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등 그 후유증은 잘 알려져 있다.
4. 부적절 내지 불충분한 훈육 : 과잉보호와 과잉통제
일단 아동이 어머니와 애착을 이룬 후에는 적절한 훈육이 필요한데 문제는 훈육의 궁극적인 목적과 효과적인 방법을 모르는 부모들이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원인적으로 교육과 경험의 부족은 물론이고 근본적으로 요즘의 부모들은 아이 중심적이라기 보다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를 주로하며(이원영 1983) 자식들을 자신의 부속물 내지 장식물로 여기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 이것은 과거의 전통적인 육아방법에서 아이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아이를 위하여 온 정성을 쏟고 모든 것을 희생하는 등의 헌신적인 어머니상과는 달리(김재은 1974) 매우 자기애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온다.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기보다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부모가 늘어났다.
특히 자녀수의 격감은(5-6명에서 1-2명으로) 부모가 아동에게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고 좀더 간섭을 많이 하게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극단적인 과잉보호나 과잉통제 현상이 높아졌다. 과잉보호는 무조건 다 들어주고 원하는대로 해줌으로써 좌절을 경험하지 않고 자신감을 길러 준다는 그릇된 양육관에서 오거나 외동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를 너무도 중요하게 여기고 불쌍히 여김으로써 필요한 훈육을 행하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한다. 그 결과 “공주병”과 “왕자병”아동을 본다. 이런 아동들은 자기만 알고 자아통제력이 생기지 않아 또래 관계를 맺지 못하고 학교적응에 큰 어려움 뿐 아니라 문제청소년이 될 가능성이 높다. 과잉통제는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 또는 자신의 분신으로 보아 자식을 자기가 원하는 대로 빚어내려는 부모의 욕심과 경쟁적 사회풍토, “조기교육”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다. 문제는 부모들이 아동의 정서적인 욕구와 필요성에는 관심이 없고 성취지향적이고 경쟁적이며 어렸을때부터 지적인 발달에만 치중하기 때문에(이원영 1983) 여러 가지 정서․행동발달 문제 위험성이 증가된다고 할 수 있다. 과잉통제의 결과는 아이들이 정서적인 안정성과 자연스러움, 창조성, 즐거움, 발랄함 등이 희생되며 수동성과 우울성향, 분노와 수동 공격적 성격의 형성이다. 이러한 현상은 틱장애 아동에서 명백하게 관찰된다(홍강의 1984). 걸음마기의 부적절한 훈육은 아동기와 청소년기의 여러 가지 심각한 정서적, 행동적 문제와 관련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특히 경계선 성격장애, 우울증, 그리고 심각한 품행장애, 폭력, 비행 등을 연관지어서 생각할 때 현재 우리 나라는 이 시기의 훈육의 문제가 가장 큰 정신병리적 원인적 요소로 작용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5. 성 개념과 성역할의 변화 :
최근 우리 나라는 핵가족화와 여성의 역할증대, 직업여성의 증가, 여권신장등으로 가족관계, 남녀역할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현재 우리 나라의 남녀 성역할에 큰 변화 내지 혼돈의 상태에 있다. 전통사회에서 아버지는 권위적인 존재로 자식들과 정서적으로 가깝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오히려 그 필요성이 증가되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직업 기타의 문제로 부친부재가 많아졌으며 아버지의 남성 모델로서의 역할에 공백이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상대적으로 어머니 역할은 커져서 가정 내 절대적 권위자가 어머니가 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증가된 어머니의 권위와 역할의 중요성, 과거 무조건적인 남성우위-여성복종의 관계가 대등한 관계 내지 여성우위의 관계로의 변화함에 따라 아동들의 성역할 학습이 어려워졌고 여성적인 남아(“씨씨보이”) 남성적인 여아(“톰보이”)등의 등장과 이에 따르는 불안과 혼돈이 증가되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이들이 커서 남녀관계를 맺고 결혼생활에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하는데 문제를 일으키고 결혼관계적응을 어렵게 함으로써 이혼율의 증가를 초래하고 이혼율의 증가는 아동양육에 지대한 장해를 일으킴으로써 양육의 위기가 생기고 이러한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6. 학업성취위주의 과잉교육열
무엇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일생 가장 중요한 것이 지적인 성취와 경제적 성공이라는 부모의 양육관이다. 현재 우리 나라 부모는 초, 중, 고등은 막론이고 다른 아이에게 맞고 오는 아이는 왜 바보처럼 맞았느냐고 야단치고, 공부 못하는 아이는 바보병신이라고 무참한 모욕을 준다. 과거 “중3병”, “고3병” 등 입시전에만 보이던 증후군이 이제 보편화되어 초등학교때부터 시험불안에 떨고 있다. 최근에는 영유아기부터 “지능발달” “인지발달”에 집착하여 “조기교육”, “영재교육”이 유행이며 1,2세 아기에도 개인지도를 통해 지능개발 교육을 실시한다. 사회생활에 기본이 되는 자기절제, 친우관계, 사회성, 도덕성, 공동체 의식, 전통적 습관등의 인간교육은 경시 내지 부재함으로써 철저히 자본주의적, 자기중심적, 경쟁적 인간으로 성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모범생, 학사, 석사, 박사학위 등으로 장식하여 팔기 좋은 상품으로 만들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학업적인 성취가 행복과 사회적․경제적 성공을 보장한다고 믿고 있다.
Ⅲ. 위기상황으로 이끄는 원인적 요소
이상과 여러 가지 양육에 있어서의 문제와 부모의 역할에 있어서의 위기를 원인적 요소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가족의 핵가족화와 자녀수의 격감
1993년 인구주택 총조사에 의하면 77%는 핵가족이고 혼자서 사는 가구도 9%로 70년대에 비해 두배로 증가하고 있다. 핵가족화는 양육에 있어서 좋은점과 나쁜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좋은점이라면 자녀 개개인에게 충분한 관심이 쏟아질 수 있고 경쟁적이고 성취 지향적인 현사회에서 필요한 독립심과 자주성을 길러주는 이점이 된다. 자녀수가 한둘에 그치고 어머니의 교육정도와 생활수준은 높아져 부모의 자녀교육에 대한 열과성은 과거 어느때보다 높고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는 매우 깊고 강력하며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부모자식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처는 클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정서적 행동적 문제의 위험도 높아졌다고 할 수 있다.
영아기의 발달이 비교적 괜찮더라도 걸음마기에 부모의 과잉간섭과 통제, 반대로 과잉보호의 위험이 매우 높아진다. 더구나 조부모의 부재는 과잉보호나 과잉통제를 제어하고 정서적 상처를 보상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현대 한국의 어린이는 더 이상 조부모의 무조건적인 애정과 익애적 “과잉보호”를 경험하지 못한다. 자녀수의 격감은 또한 동기간의 경쟁이나 협조를 경험할 수 없게 하고 좀더 커서 또래나 친구와의 관계형성을 어렵게 만든다.
2. 직장여성의 증가와 여권신장
지금 현재 우리 나라의 여성 취업률은 거의 41%(1994)나 되며 서구의 50%에 육박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이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누가 아동을 보살피느냐이다. 과거처럼 시부모나 친정부모가 봐주는 경우도 적어졌을 뿐 아니라 시부모나 친정부모라 해도 기꺼이 봐주는 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양질의 탁아소나 아동보육시설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집에 보모를 갖게 될 경우 경제적인 부담이 크고 또 그 보모가 꾸준히 오랫동안 있기가 힘들므로 다수의 보모를 고용하게 되고 이로 인하여 애착관계나 대인관계 수립의 어려움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직업여성의 아동들이 일반 아동들에 비하여 문제행동이나 정서문제가 더 높으냐 높지 않느냐는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으나 그 위험도가 높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결코 잊지 않아야 할 것은 어머니에 의한 양육은 사랑의 행위인 반면 대리모나 탁아소의 전문가에 의한 양육은 아무리 질이 높다고 하더라도 돈을 위한 것이고 직업적이란 점이다. 직장 여성이 애를 낳자마자 직장에 복귀하는 경우 아이와의 접촉의 기회가 줄어들고 아이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어머니와의 입장에서도 아이와의 관계수립이 어려워짐으로서 성격형성의 기초가 되는 밀접한 모자관계 수립, 즉 애착형성에 위험도가 증가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이 과거처럼 자식을 기르는 전업주부로서의 역할만으로 만족하지 못하며 또 부부가 다 맞벌이를 해야만 잘 살 수 있는 경제구조로 바뀌고 있다. 여성의 자기주장과 여권운동, 남녀평등, 직업적인 성장과 야심들이 크게 부각되어 여성도 양육에만 매이는 것을 경시하고 부끄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 그렇기 때문에 직업을 가진 여성이나 직업을 갖지 못한 여성도 공히 “집에서 썩는다”는 불만과 초조감으로 인하여 정작 일생에 가장 결정적 시기인 영유아기의 양육을 소홀히 하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직장여성의 증가와 여성운동을 통한 여권의 신장은 남녀의 권위체계와 우열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남성이 무조건 우월하지도 않으며 여성이라고 가사일만 한다는 고정관념은 깨어진지 오래다. 남녀 역할 구분이 불분명해지고 있고 둘 사이의 힘의 겨룸이 증가하였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남녀의 실력대결은 최근 증가하는 이혼율의 일부를 설명할 것이다.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성개방은 남녀 성관계 풍속도에도 큰 변혁을 일으키고 남성성과 여성성의 구별학습이 모호해지고 어려워졌다. 오늘의 아동들은 성역할과 성정체성 확립 그리고 성에 대한 긍정적 가치관 형성이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3. 인생관과 가치관의 변화
생존이 위협될 만큼 가난하던 시대와는 달리 현재 일인당 연간수입이(GNP) 만불시대에 생활의 정도나 물질적인 풍요는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나라는 기아나 기타 가난에 의하여 아동이 방임되는 시대는 지나고 오히려 물질의 풍요로 인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팽배하는 개인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로 인하여 부모 자신이 매우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생활수준이 향상될수록, 물질적으로 풍요할수록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는 더 빈곤해지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물질적인 풍요는 더 큰 물질적인 욕심을 일으키고 정신적인 유산과 정신적 활동으로의 승화의 필요성이 줄어듦으로서 “물질적 풍요속에 정신적 빈곤”이라는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일어나고 이것이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고 있다. 물질주의와 성취위주의 경쟁제일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적 가치관이 되면서 인격이나 인간성 등 차원 높은 가치관의 추구는 경시되고 쾌락지상주의와 직접적 만족위주의 신세대의 2세에 대한 관심과 양육에 대한 책임의식은 상대적으로 엷어지고 있는 것은 당연한 귀결인 것 같다.
4. 양육에 대한 지식과 경험, 역할학습의 부재
과거 대가족제도하에서는 전통적인 양육과 훈육의 방법을 대가족에서 자라면서 보고 관찰하고 보조자로 참여함으로써 배웠다. 핵가족에서 자라난 현대의 젊은이들은 이러한 경험을 어디서 얻는가 의문이다. 자기만을 위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자라나다가 정작 부모가 되었을 때 배운 바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아동을 양육하는 능력이 있을 리가 없다. 이러한 것에 대한 보상책으로 수많은 양육교과서를 읽으려 하나 혼자서 읽고 이해하는 것도 힘들뿐이다. 양육에 관한 책의 대부분은 서양교과서의 번역판이며 우리 학자들이 만든 것이라해도 서양문화권에서 전해온 이론에 근거를 두고 저작된 것으로서 소위 전문가들조차도 의견이 분분하고 심지어는 서로가 틀린 조언을 하니 부모의 입장으로서는 심각한 혼란과 좌절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 곧 결혼하여 아기를 낳을 연령의 여성들에게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양육과 아동발달에 대한 지식과 역할실습을 해보았는지 물어본다면 자명해지는 것은 그들이 어느 누구에게서도 어느 과정을 통해서도 결코 체계적인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영유아기에 아동은 “자연히”잘 자랄 것이고 유아기부터 조기교육, 영재교육을 실시하여 지적인 발달과 “인지능력”개발에 중점을 둠으로서 경쟁에 이기도록 해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로 아는 젊은 부모가 대부분이다. 자기들이 그렇게 자란 세대라 그렇게 기를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부모들은 점점 더 아동의 양육과 자녀의 진정한 인격적 성장에 대한 관심보다는 지적성취와 경쟁력에 힘을 쏟음으로써 정작 유아기에 경험되고 길러주어야 할 애정과 자아존중감, 자율성, 자기통제력, 주도성은 형성되지 못한다.
5. 전문가의 엇갈린 조언
양육에 있어서 우리 나라 젊은 어머니들이 우왕좌왕하는 이유는 그들이 공식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배운 바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위 전문가들이 각자 다른 이론과 다른 교육적 배경에 의하여 자신들의 특정한 관심과 중요성을 강조하는 양육이론을 마구 설파하는데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요즘 자녀교육에 관한 책들을 살펴보면 주로 조기교육이나 지식교육 위주로 되어 있으며 유아의 양육에 관해서는 극히 드문 편이다. 양육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으로 여기는 것인지 특히 우리 나라의 전통사회에서 내려오는 육아방식에 관한 연구는 몇 편 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자녀교육이나 육아서는 서양책의 번역판이다. 유아교육가, 심리학자, 교육심리학자, 소아과의사, 정신과 의사 등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이 조언을 하나 내용이 너무 다양하고 심지어는 서로 상치되는 조언을 하고 있다.
시대의 변천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전통육아방식이 인간발달의 가장 기초단계인 영유아시기의 아동양육에 걸맞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숙지는 제쳐놓고 신학문, 신세대, 현대적인 아동양육을 배우려고 하는 또 이들을 무조건 제일 좋다고 전달하려는 전문가들의 합작품으로서 아동양육에 혼선을 빚고 있어서 양육의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위기상황으로 몰고 가고 있다.
아마도 우리 나라 현실에서 가장 강력한 부모교육은 TV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TV의 자녀교육 상담이나 프로그램들은 여러 전문가들에 의하여 여러 가지 토픽별로 전달이 되며 다분히 상업적이고 인기위주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좀더 조직적이고 심층적인 그리고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지식의 공급은 부족하다. 또한 대부분의 내용은 지적인 발달이나 학업부진에 관한 것이거나 행동문제 및 정서문제 중심으로 지엽적인 것에 흐르고 육아자체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매우 적은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분야도 그렇듯이 영유아에 관한 전문가들이 따로 없고 아동이나 청소년 전문가들이 후향적 연구지식에 의하여 주로 “자녀교육”에 조언을 해주는 단계에 머무름으로 구체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정확한 영유아기의 육아교육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Ⅳ.한국의 근대화와 사회변화 및 가치체계의 변동
이상에서 언급한 아동의 양육과 교육 및 가치체계의 변화는 근본적으로 한국의 근대화, 즉 서구화와 산업화의 소산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근대화가 시작된 것은 120여년전, 우리 나라가 일본의 힘에 굴복하여 개항을 할 때(1876)부터 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근대화는 1945년 한국이 해방이 되면서라고 할 수 있다. 이때 북한은 공산주의로 남한은 자본주의와 민주화의 길을 택하였다. 1959년 6․25전쟁이후 미국문화의 맹목적 추종이 시작되었다. 삼강오륜 등 유교사상에 기반을 둔 한국의 전통적 사상과 가치관은 무시되고 전통적인 것은 모두 구악에 속하고 새롭고 서구적인 것은 가치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문화의 대변혁이 시작되었다. 한편 1960년 박정희 대통령의 집권으로 시작된 군사적 개발독재에 의한 경제발전은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총력을 기울임으로써, 문화적 가치관의 변화는 경제발전에 종속된 부수적인 현상으로서 정치인이나 지식인이나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다. 전통적 삶은 당연히 부정적이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되었고 새롭고 서구적인 생각과 행동양식이 어느새 인가 우월한 가치체계로 변하고 있었다. 이시기에 급격한 산업화는 마치 서양에서 200~300년에 걸쳐서 이룩한 근대화를 압축 성장시킴으로서 경제적 기적을 이루었을지 모르지만 이에 따르는 사회적 규범과 가치 그리고 권위체계는 붕괴와 혼란을 겪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은 80년대 이후 90년대에 이르러 “거품”이었다고 하지만 경이적인 경제성장과 생활수준의 향상을 보았고 민주화의 발전과 더불어 이제 후기산업화, 최첨단 기술화, 정보사회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 급격한 산업화와 서구화로 인해 불교, 도교, 유교에 바탕을 둔 우리의 전통 가치체계는 급격한 붕괴와 혼란이 일어나고 있다. 궁극적으로 사회생활을 지탱하는 규범과 윤리는 ‘인간은 무엇이며 어떤 방식으로 인간을 실현할 것인가’라고 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신념이 송두리째 흔들림으로서 정체성의 위기에까지 이르렀다. 근대화의 와중에 한국문화는 규범과 가치체계 이중성으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 한식과 양식, 한복과 양복, 한의와 양의, 서양음악과 전통음악 등 모두 이중적인 구조를 가지며, 가족의 중요성, “우리”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철저한 개인주의적 ‘나’와 ‘너’의 분열과 대립이 조장되고 있다. 아이들에 대한 어른의 권위는 상실되고 새롭게 배우는 젋은이들의 가치와 진취성이 크게 추앙받고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대다수의 한국인은 “현재 우리가 잘살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의문을 가질 것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아동과 청소년의 정서적, 행동적, 정신적인 문제와 사회악의 만연, 이혼의 증가와 가족체계의 붕괴, 폭력과 성범죄의 증가, 약물중독과 감각쾌락지상주의, 물신주의 만연 등 사회전반에 걸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성을 무시하고 도외시한다면 올바른 결론이 될 것이다. 분명 우리시대의 근대화는 기아와 질병과 의식주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고 편리한 삶,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고,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더 첨단기술문명과 정보사회의 혜택을 과도하게 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명의 편리함과 물질적 풍요, 최첨단 기술․정보문명의 발전이 곧바로 자아실현을 이룩하고 우리의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오히려 생활수준의 향상과 물질적 풍요로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아동과 청소년은 불행하며 정서적, 행동적 문제로 고민하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문명발전의 역설(paradox)이다.
Ⅴ. 한국전통육아와 현대육아의 실상
아동양육이나 자녀교육에 있어서의 문제점을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것은 우리 나라 사람들이 무조건 서양적인 교육방법과 서양문화를 모방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의 전통양육은 어떤 모습이었나 살펴보아야 한다. 전통육아와 자녀교육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아마도 어머니의 자아실현과 존재의미를 자신을 희생하여 자녀를 잘 길러내는데 두었다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자녀를 양육하는데 온갖 정성을 쏟았고 희생을 아끼지 않았으며 자식이 훌륭하게 자라는데서 행복을 느꼈다.
잉태시부터 온 정성을 다했음은 태교를 강조한 것으로 보아도 알 수 있다. 태교를 “임부가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언행, 마음, 감정 등을 정화시키는 일”(한국대사전 1976)이라고 할진데 영양이나 질병뿐 아니라 태아에게 미칠 수 있는 어머니의 정서상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한국전통육아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영․유아기에 지속적이고 충분한 신체접촉이 제공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신생아는 거의 항상 엄마의 품이 아니면 할머니의 품에서 자랐고, 유아는 엄마나 다른 가족, 할머니, 고모 또는 큰누나의 등에 업혀 지냈다. 물론 거의 모두가 모유로 길렀으며 수유받는 동안 모친의 왼편가슴의 심장뛰는 소리를 들으며 안정된 상태에서 감각적으로 행복감에 젖어들도록 쓰다듬어주고 어루만져주었다. 때에 따라서는 조모의 빈 젖가슴이 대신해 주기도 하고 따스한 등에 업혀 항상 체온을 느낄 수 있도록 길러서 유아는 지속적으로 감각적 안정감과 만족을 경험하였다. 이렇게 영유아기의 충분한 부모와의 신체적 접촉과 사랑을 통하여 한국인은 기본적 자신감과 생을 희망적으로 보는 낙천적 성격을 갖게한다(윤태림1970, 이규태1977). 한국사회를 정(情)의 사회로 특정짓는 학자들이 많다. 정이 많고 정이 무엇보다 중시된다는 것은 충분한 사랑과 신체적인 접촉, 유효한 부모의 보살핌을 통하여 영아가 부모에 대한 기본적 신뢰감과 기본적 안정감을 갖는다는 Erikson(1952)의 이론과 다를 것이 없다.
두세살이 되었을 때 가장 특징적인 배변훈련을 봐도, 전통사회에서 배변훈련은 수유태도가 너그러웠던 것처럼 엄격하지 않았다. 배변훈련이 저절로 쉽게 조모에 의하여 느긋하게 이루어짐으로써 성격적으로 강박적이거나 긴장된 그리고 시간과 약속지키기에 과민하지 않고 너그럽고 적당주의적인 그러나 스트레스를 스스로 일으키지 않는 성격적 구조로 성장하였던 것이다. 최근에 와서 수유의 방법도 많이 달라져서 수유는 우유병을 통한 기계적이고 정이 부족하기 쉬운 방향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배변훈련도 엄하고 심하게 행함으로써 부모와의 힘의 겨룸도 자주 생기며 이로 인하여 배변훈련을 통한 문제성이 증가하면서 성격적으로도 항문기적인 성격의 문제 즉, 폭력과 자제력과 강박성향의 문제가 증가되고 있다.
학령전기의 경험도 전통사회에서는 다세대의 대가족제도 하에서 여러 명의 동기와 사촌이 할머니 무릎유치원을 통해 여러 가지를 배웠다. 남녀의 상호교환도 단순히 엄마, 아빠의 관계뿐만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기타 다양한 여성상과 남성상을 접함으로써 오이디푸스 복합체의 경험이 분산되고 비교적 쉽사리 그 위기를 지나가는 경향이 있었다. 핵가족화된 현실에 있어서는 엄마 아빠의 관계가 두드러지며 그들과의 삼각관계가 매우 격렬한 관계로 발전되었고 따라서 부부관계에 이상이 있을 때 미치는 영향은 그 결과가 엄청나게 크다고 볼 수가 있다.
Ⅵ. 발달심리와 유아정신의학의 발전을 통해 본 아동양육의 중요성
최근 발달심리학과 유아정신의학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이고 있다. 특히 영유아의 발달은 생물학적, 대인관계적 그리고 사회적인 요소들이 복잡하게 영향을 줌으로써 일어나며 이중에 특히 가족의 분위기와 기능 그리고 일차적 양육자와의 관계가 정서발달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인가가 많이 밝혀지고 있다. 영유아기에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하여 정서의 조절(emotional regulation)이 이루어지고 어머니와의 감정의 나눔(affective sharing)을 통하여 공감력이 생기며, 어머니와의 합동주시(joint attention)를 통하여 새로운 것을 배우고 탐험해 보는 동기가 생기는 등 행동과 감정이 어떻게 조절되고 발전되는가가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모와의 상호 교환이 얼마나 아름답고 춤추는 듯이 조화로운가, 어머니의 예민성과 영아의 정서적 욕구가 어떻게 맞아들어 가는가(emotional attunement)등에 관한 연구가 현미경적 시각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비추어 볼 때 영․유아는 적당히 먹여주고 재워주면 잘 자란다는 통념이 얼마나 그릇된 것이며 전통사회의 부모들이 얼마나 세심한 주위와 헌신적 사랑으로, 영아발달의 필요요소들을 성공적으로 제공했는지 알 수가 있다. 어머니와의 애착은 유아에게 필요한 정감적인 접촉과 호혜적인 상호교환, 합동 주시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다양한 발달이 촉진되고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 기본적 신뢰감, 기본적 안정감등이 길러진다. 더구나 애착을 이룬 어머니는 유아에게 안전한 기지(secure base)역할을 함으로서 유아는 그녀를 믿고 세상을 탐험하고 놀며 배운다. 그리고 필요할 때 돌아와 사랑을 확인받고 재충전을 한다. 어머니와의 애착관계를 통하여 남에 대한 애정과 공감력이 생기며 자기목적을 달성하려는 동반자가 필요하다는 확신이 생김으로서 모든 대인관계의 기초적 형태를 경험하게 된다.
부모의 훈육과 부모와의 힘겨룸을 통하여 자신의 공격성을 어떻게 표현하고 조절하는가를 배우고 자아통제력을 획득한다. 또한 어머니와의 공생적 의존적 관계에서 서서히 벗어나(자아의 분리개별화) 자아의 개념을 형성하게 되며 이러한 기본적인 자아개념과 독립적 존재로서의 자아를 인식함으로써 심리적 자아가 탄생한다. 이러한 능력은 옳고 그름, 선과 악, 깨끗함과 더러움, 법과 질서 등을 이해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기초적인 능력이다.
이와 같이 처음 5,6년간의 부모양육과 훈육과 덕육을 통한 아동발달은 말할 것 없이 정신건강의 기초가 되며 한사람의 생을 튼튼하고 풍부하고 재미있고 생산적으로 만드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될 경험이다. 이것은 부모의 도움이 없이 이루어질 수 없으며 아마도 이러한 경험을 한 아동이나 청소년은 현대사회가 아무리 새롭고 복잡하고 소위 “비인간적”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비인간화” 되지 않을 것이며 인간성과 근본적 도덕성의 상실 또는 자아정체성의 혼돈이 없이 생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의 개척과 인류문명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할 것이다. 현대인이 걱정하는 인간성의 상실과 심각한 정서행동상의 문제들은 정보사회, 첨단기술, 물질문명으로 특징 지워지는 현대문명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아동의 양육과 휸육과 덕육이 무시되고 제대로 실천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기본적이고 보통이상의 좋은 아동양육과 훈육과 덕육을 실천한다면 21세기 우리 자녀들은 진정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부모들이 건전한 양육과 훈육과 덕육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연히” 신경안써도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치부하는데 가장 큰 위험성이 있다. 새시대의 부모들에게 이를 강조하여야 할 것이며 그들이 이들을 경험할 수 있는 배울 수 있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현대의 그리고 미래의 부모는 아동을 양육하는데 많은 반성과 성찰을 하여야 한다. 영유아기에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고 자녀를 새시대의 첨단기술문명과 정보사회에 어떻게 잘 적응시키고 성공시킬 것인가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양질의 부모양육과 훈육과 덕육을 하도록 노력하여야 된다.
Ⅶ. 21세기의 사회문화적 환경과 정신건강
내년이면 다가올 21세기, 새로운 천년대에도 인간의 생활상과 사회문화적 환경, 생태학적 여건의 변화는 가속화될 가능성이 높고 적어도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경제체계는 이미 세계화되었으며 이에 따라서 더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에 나가서 살기도 하고 외국과의 밀접한 교류관계를 이룩할 것이다. 새로운 문화권에서 낯선 사람들과 같이 살아야 되며 낯선 나라에서 아이들을 기르는 일도 증가할 것이다. 이때 그 문화권에 적응이 안된 상태에서 어머니 홀로 혼돈과 좌절과 외로움속에 아이들을 길러야 하고 부모자신의 일차적 지지체계인 가정과 친척에서 멀리 떨어져 지냄으로써 문화적으로 단절된 상황에서 아이를 양육하게 되며 이때 많은 양육에 대한 지식의 부족, 불확실성, 불안, 자신감 결여등이 더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철저한 개인주의적 성향과 지적인 성취중심의 경쟁 또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물신주의의 지속은 결국 인간을 상품화하고 인간관계를 황폐화 할 것이다. 더구나 부부중심적 생활양상과 지속되는 핵가족화, 핵가족마저도 붕괴되는 가족체계의 위기가 계속된다면 21세기 현대인은 화려한 성취와 물질적 풍요로 단장하고 있으나 텅빈 내부와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에 직면할 것이다. 정말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나와 가족과 사회의 부분자로서 나의 통합 즉 독립적인 나와 소속적인 나 사이의 큰 갈등이 지속되고 가족과 사회와 융합된 나라는 개념의 확립이 어렵게 됨으로서 불안과 초조, 방향성의 상실, 아노미를 경험하게될 것이다. 더구나 첨단정보시대, 컴퓨터 문화의 경이적인 발전은 21세기 아동과 청소년을 가상공간과 가상문화속에 몰고 들어가 가상공간 속에서만 대화를 나누며 가상공간에서 만나는 인물과 애정과 성을 나누는 생활이 유행될 것이고 이 안에 나름대로의 가상인간 정체성(cyber identity)이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최근에 개인주의와 개방주의 가치관으로 무장한, 정보화의 선도적인 소비자인 21세기 영상세대, Y세대가 떠오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Y세대란 70년대말 이후에 출생한 현재 청소년층을 지칭하는 말로서 얼마전 유행했던 60년대 출생한 X세대 청소년과 크게 다르다. X세대는 패션이 틔고, 대중문화에 열광하고, 자기주장이 강한 세대를 얘기하였으나 이는 전체 청소년에 10%안팎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Y세대는 과반수가 컴퓨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서구식 사고나 생활방식에 젖어있고 쇼핑을 즐기는 세대로서 IMF사태에서도 전혀 소비행태에 변함이 없는 신세대다. 이들은 적어도 하루 한시간 이상 컴퓨터에 시간을 소비하며 이러한 Y세대를 성인부모들이 이해하고 영향력을 미치기가 매우 힘들어진 상황이다.
21세기의 아동과 청소년, Y세대, 최신의 정보시대에 맞고 온갖 최첨단 문명 기기를 사용할 줄 아는 이들이 무엇이 문제인가. 이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사회환경적인 여건에 그리고 그들이 속한 문화권이 제공하고 있는 문명의 이기를 최대한 잘 이용하고 즐기는 세대가 아닌가! 문제는 이들이 자기에게 주어진 최첨단 기술정보문명에 적응한다고 할지는 몰라도, 아니 적응을 하면 할수록 이들의 생활은 인간의 진화론적 적응여건에서 점차 멀어진다는 점이다. 즉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 본능적 욕구 특히, 애착과 밀접한 대인관계, 승화된 공격성, 그리고 다양한 인간적, 성적 접촉에 대한 욕구 등이 적절히 충족되고 조절되지 못하고, 이로 인한 정서적 행동적 문제의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점이다. 즉 문명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인간의 기저에 도사리고 있는 본능적, 생물학적 욕구의 충족과 그 조절은 역설적으로 더 힘들어지고 정신건강에 위험신호가 된다.
우리 나라는 지금 일반 대중이나 소위 “전문가”들 모두가 우리사회의 아동과 청소년의 증가하는 폭력문제, 학업에 대한 동기부족, 대인관계 기술의 부족과 외로움, 자살 등에 대하여 걱정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들이 가장 기초적인 유아기의 아동양육과 부모와의 관계문제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과 가장 기본적이고 생존을 위한 기본기와 적응능력이 유아기에 길러진다는 사실을 간과하였거나, 너무도 뻔한 사실로 치부하였기 때문에 생긴다는 사실을 오늘날 한국의 어른들과 전문가들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더더구나 현대인은 사회적 성취와 상품적 가치, 외적능력의 과시에만 신경을 썼지, 성격의 원만함, 인간성, 공감력, 도덕성과 같은 좀더 기본적인 인간의 덕목은 무시하고 게을리함으로써 이것이 바로 그들이 추구하는 “성공”과 행복을 성취하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임을 잊고 있다.
Ⅷ. 결론
필자는 우리가 전통적인 가치관이나 전통적 양육방법으로 무조건 되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천년 동안 아니 수만년 동안 인간의 생존에 도움이 되어왔고 본능적인 요소로서 남아있는 기본적인, 사회적인 능력의 개발을 위해 고안되었던 기본적인 아동양육이 부모의 역할이며 의무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옛날로, 전통육아로 돌아가자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그 정신과 목적을 알고 현대육아에 실천하자는 것이다.
인간에 있어서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랑이며 애착이며 적절한 공격성의 충족과 조절 그리고 성을 포함한 감각적 쾌락의 충족과 포기등을 내포하고 있다. 이들은 시대가 변하여도 인간종이 변하지 않는 한 모든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며 이들이 적절히 충족되고, 적절히 조절되고, 포기되는 연습이 부모와의 관계를 통하여 조기 아동기에 이루어진다.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자녀들이 21세기를 맞이하여 잘 적응하고 성공적으로 생을 영위하기를 바라며 이를 위하여 새로운 모럴, 보편적인 열린 마음, 세계시민의식 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이 영유아기의 건전한 양육의 경험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자녀들이 21세기에 직면할 모든 어려움과 도전을 잘 해결해나가고 이겨나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좀 더 기본적인 아동의 양육에 온 힘을 써야 한다. 새 세기에는 우리의 자녀들이 생의 시작부터 무대의 중앙에 주인공이 되어야하며 그들이 무섭게 세계화되고 초 근대화되고 있는 세상에서도 행복한 인간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잘 양육하도록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시점에서 생각해야될 점은 기본적인 생존능력과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능력을 기르는데 있어서 동과 서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이다. 동서양의 차이는 성인시기의 생활양식과 사고양식에 크게 존재할지 모르나, 근본적으로 유아의 사고와 행동에는 큰 차이가 없으며 따라서 아동양육의 근본적 목적과 방법에 큰 차이가 있을 수 없다. 다만 동양의 부모들이 서양적인 것을 받아들일 때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만을 흉내내는 과정에서 근본적인 오류가 도사리고 있다. 즉 아동에게 필요한 양육과 부모역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점이 더 많으며 기본적인 철학과 목적, 내용은 같은 것이지 상반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며 서로에게 교훈적이라 볼 수 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우리는 전통사회의 양육과 훈육의 방법을 잘 알고 있는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집단 무의식속과 수 천년의 역사속에 이루어진 우리의 가치관과 사상을 새롭게 조망해보고 그 진수를 찾아 우리의 후대에게 전하여야 한다. 이제까지는 서구화라는 기치 아래, 앞으로는 지구촌화, 세계화라는 기치아래 계속 진행될 동서 문명의 필연적 만남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녀들에게 전통적인 것 중에 어떤 것을 보존하여 무엇을 전해줄 것인가를 연구해야할 책임 뿐 아니라, 우리의 재발견을 통하여 얻은 전통적 철학과 사상을 서구를 포함한 전 세계시민에게 전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통적인 사상과 이념에 대한 정확한 검토와 재발견이 요구되며 서구적인 사상과 이론에 대하여도 외형적인 것보다 그 근본적인 취지와 목적에 대한 검토가 이루어짐으로서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전통적 본보기를 다시 살펴보고, 이미 도입되고 있는 서구적 본보기를 접목시킴으로서 새로운 본보기를 확립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舊本新參, 溫故知新, 法古創新, 東道西器 등 백여년전에 우리의 선각자들이 부르짖었던, 그러나 실행에 실패했던 표어를 다시금 새겨보아야 할 것이다. 21세기는 맹목적인 서구의 본보기 추종과 모방이 아니라 여기에 전통적인 동양적 본보기의 연구와 분석을 통하여 인류의 미래를 밝혀 줄 지혜의 보물단지를 창조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