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거룩히 구별하여 - 기본 동사 '카다쉬'는 '오직 하나님만을 위하여 특별히 따로 떼어 구분해 놓는 것'을 뜻하는 신적 용어이다. 따라서 인간은 '거룩히 구별한 것' 즉 하나님께 속한 것은 결코 침해할 수 없었다. 내게 돌리라 -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야 한다'는 뜻이 함축되어 있다.
이는 애굽의 초태생이 다 죽었던 유월절 밤에 하나님의 은혜로 이스라엘의 초태생은 사람이나 짐승 할것 없이 모두 죽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에서 비롯된 규례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속자(고엘)로서의 당연한 권리로 당신께서 친히 보존하신 이스라엘의 초태생을 요구하신 것이다. 한편 여기서 초태생 각 태를 대표하는 기능을 한다.
따라서 초태생을 바치는 것은 모든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구별된 하나님의 것이며, 그렇기에 그 하나님께 바쳐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된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은 전적인 하님의 은혜로 구원의 반열에 서게 된 신약 시대 교회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내 것이니라 -
초태생에 대한 하나님의 소유권 선언으로서, 앞 문장의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는 명령에 대해 그 이유가 근거를 밝히는 말이다. 이 말은 모세 오경에서만 10회 이상 반복된 말이다.
[출 20:8]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안식일 - 안식일로 번역되는 '솨바트'에 정관사 '하'가 붙음으로써 특정한 안식일을 지칭한다. 따라서 직역하면 '그 안식의 날'이 되는데, 이것은 천지 창조 사역 후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바로 그 날을 가리킨다. 기억하여 - '기억하다'란 뜻의 동사 '자카르'의 명령형 형태로 '기억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단순히 기억한다는 차원을 넘어 '상기시키다',
'기억을 되살리다'는 뜻이 있는데, 본래의 의미는 '알아보기 위해 표시한다'는 것이다. 한편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기억법은 중요한 교육 방법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율법의 말씀을 반복해서 듣고 암송함으로써 이를 기억하도록 훈련받았는데, 이러한 훈련법은 주로 신명기와 시편의 영향인 듯하다. 왜냐하면 '들으라', 혹은 '기억하라'고 하는 표현이 이 두 책에 자주 나타나기 때문이다.
거룩히 지키라 - 네째 계명은 안식일 성수에 대한 계명이다. 그런데 이 계명은 오늘날 이중 근거를 가지고 있다. 즉 (1) 일차원적 근거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 완수이고, (2) 이차원적 근거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 완수이다. 이러한 이중 근거로 인해 구약 시대 안식일은 신약 시대 주일로 승화된 것이다. 그러나 그 정신은 신구약을 통해 동일하다. 즉 그것은 한 날을 특별히 성별하여 바침으로 모든 날의 삶이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행위 바로 그것이다.
[눅 11: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이렇게 하라 -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요청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 본문을 영원 불변의 기도형으로 생각해서 마치 주문을 외듯이 반복하라는 말씀으로 받아서는 안될 것이며, 기도가 담고 있어야 할 최소한의 내용과 그 기도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어야 하는 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제시하는 것으로 이해함이 마땅하다.
그것은 예수께서 '이것을) 기도하라 하신 것이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라 하신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버지여 - 이 호칭은 예수께서 기도하실 때 사용했던 것으로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가 마치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처럼 다정하고 친밀한 것임을 나타낸다(10:21 주석 참조). 이제 예수는 제자들도 그런 의미에서 이 칭호를 사용하라고 하신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자들이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새롭게 갖게되는 관계가 어떠한 것인가를 말해준다. 한편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에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로 되어 있어 형식에 있어서 더 세련되고 완벽한 형태를 보여 주고 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이 부분은 마태복음과 일치한다.
성경에서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과 존재 자체를 표현한 것이니만큼 여기서 '이름'은 하나님 자신을 뜻한다. 결국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이 거룩히 여김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하나의 기원이자 경외심에서 기인하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기도 하다.
또한 본 구절의 표현이 수동태로 되어 있는 것은 하나님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높인다는 의미가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드리겠다는 신앙의 표시이자 하나의 서약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이 기원은 기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역하여 하나님 앞에서 죄악을 범하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하며 영광을 돌릴 수 있는 형편을 허락해 달라고 하는 간구이기도 하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가 지배하는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어 지는 것에 상응하는 인간에 대한 축복이다. 이것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종말론적 성취를 대망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사단의 통치의 종식을 뜻한다는 의미에서 이 나라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에 의해 이미 성취되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말씀도 성도들이 단지 미래에 성취될 종말론적 하나님의 나라만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현재적 삶에서 하나님의 뜻이 개인과 사회 속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어지는 것을 바라며, 또한 실제로 경험하며 살게 해달라는 간구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