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알뜰주유소 도입 계획이 발표됐습니다. 그런데 알뜰주유소를 바라보는 제 시각은 그리 달갑지 않습니다. 기름값이 조금이라도 내려가는 방안임은 환영이지만 근본처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류세에 대한 국민들의 강력한 비판적 시각을 알뜰주유소로 잠시 돌려 놓는 것이죠.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일종의 꼼수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일단 알뜰주유소는 어떤 주유소일까요? 먼저 잠시의 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올초 고유가에 대한 국민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정유사의 공급가격에 문제가 있는지, 지나친 이익이 있는지 조사를 했죠. 그런데 아무리 조사를 해도 정유사가 내수 시장에 판매하는 휘발유와 경유 등은 마진에 '폭리'가 없음을 파악하게 됩니다. 그러자 당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께서 '정유사 기름 값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한 마디를 날렸고, 그 말에 SK에너지가 두 손을 들고 3개월간 리터당 100원 인하 카드를 꺼냈습니다. GS칼텍스와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 등도 1위 업체가 내리고, 정부가 눈치를 주니 따라서 인하를 했습니다. 하지만 주유소와 유류 도매사업자 등이 인하분을 마진으로 대부분 흡수하면서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혜택은 별로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리고 한시적 인하 기간이 끝난 7월부터 기름값은 다시 제 자리를 찾습니다. 올라갔다는 것이죠. 제 아무리 '고객이 KO 당할 때까지'를 슬로건으로 내건 SK라도 시장에 기름을 공급하면 할수록 적자가 늘어나고, 대외적으로는 3개월 간 리터당 100원 인하로 3,000억원 적자를 봤다며 우는 목소리를 냈고, 다른 정유사도 더 이상의 할인 기간은 없다며 지식경제부에 "때릴라면 때려라. 맞아도 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낸 겁니다.
그래서 인하 기간이 끝나고 다시 기름 값이 치솟자 정부가 나름대로 기름을 싸게 공급할 수 있는 대안주유소를 마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정유사가 공급가격을 내려도 주유소와 유류 도매업자, 그리고 정유사가 각각 똘똘 뭉쳐 인상 책임을 전가하고, 정부 또한 주유소와 도매사업자, 정유사 모두 사업자인 만큼 더 이상 시장에 개입해 강제할 근거가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 정부가 앞장 서 기름을 싸게 구매한 뒤 원하는 주유소 사업자에 공급을 하면 결과적으로 기름 값이 내려갈 것으로 계산한 겁니다.
이 계획에 따라 나온 방안이 알뜰주유소이고, 정부는 정책 도우미로 석유공사와 농협을 끌어들였습니다. 제가 발표 내용을 꼼꼼히 살펴보니 방안은 간단합니다. 석유공사와 농협중앙회가 SK, GS칼텍스, 오일뱅크, 에쓰오일로부터 기름을 사들입니다. 대량으로 구입할 수 있어 구입단가를 낮출 수 있죠. 이렇게 구입한 뒤 주유소 상표가 없는 자체 브랜드 주유소, 농협주유소, 도로공사가 허가해 준 고속도로 주유소 등에 저렴하게 공급을 합니다. 다시 주유소들은 저렴하게 받은 기름을 저렴하게 팔기 위해 셀프주유, 사은품 미지급을 합니다. 기름만 팔 뿐 기름 값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인건비와 기타 비용은 최대한 배제하는 것이죠. 이렇게 해서 2015년까지 전국 주유소의 10%를 알뜰주유소로 바꾸면 정유사나 상표를 내건 개인 주유사업자 모두 기름 값을 마음대로 인상하지 못한다고 보는 겁니다.
출처:석유공사 오피넷
하지만 정부의 꼼수는 바로 알뜰주유소 도입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고유가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유류세는 어떻게든 놔둔다는 것이죠. 지금까지 제가 언급한 내용 중 정부가 유류세를 건드리겠다는 말은 그 어느 누구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습니다. 알뜰주유소 도입을 통해 정유사 주유소보다 리터당 50원, 많게는 100원 정도 싸게 팔면 국민들이 '얼씨구나 좋구나'를 외칠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제가 가끔 강조하지만 기름 값은 앞으로도 결코 떨어지지 않을 겁니다. 20-30원의 등락은 있겠지만 해마다 꾸준히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은 싱가폴 현물 시장 거래가에 맞춰 공급되는 것이지, 국제 원유가격에 잘 연동되지 않습니다. 설령 연동된다 해도 원유를 정제해 나오는 휘발유와 경유의 수요는 중국과 인도 등이 폭발적인 자동차 증가로 흡수하기에 내리기 어려운 구조인 겁니다. 수요와 공급 법칙에서 공급 대비 여전히 수요가 많은 게 바로 유류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렇게 싱가폴에서 거래되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이 오르면 정부의 세수도 덩달아 증가를 하게 됩니다. 교통세는 일정액으로 정해져 있지만 부가세는 공장도가격이 높아질수록 함께 높아진다는 것이죠. 오죽하면 몇 해전 고유가에 따른 유류세 추가 증세분을 일괄적으로 국민들에게 돌려주었을까요? 그것도 못 받은 사람이 적지 않지만 아무튼 고유가일수록 세수도 증가함은 자명합니다.
이런 이유로 알뜰주유소는 정부가 유류세 비판을 살짝 우회하려는 제스처에 불과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세금은 절대 건드리지 않고, 공동구매로 기름 값을 낮추려는 발상 자체가 임시적이라는 겁니다. 석유공사를 활용한 알뜰주유소 확대 정책에 정유사들이 반발하는데, 현재는 정부 눈치를 보느라 대놓고 힘겨루기에 나서지 않지만 자신들의 상표 주유소 보호를 위해 석유공사와 농협중앙회에 기름을 팔지 않겠다고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정부가 도입하려는 알뜰주유소는 세금 비판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외형적으로는 바람직하지만 곪은 부위의 근본 처방은 하지 않고, 그저 거즈로 겉 표면 상처만 닦아 내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죠. 알뜰주유소 도입도 좋지만 세금 문제를 생각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류세를 포기하지 못하겠지만 전반적으로 에너지 정책을 새롭게 정립해 유류세의 다양화를 고민해야 합니다. 정유업계 고위 관계자께서 기업의 이익 등을 떠나 솔직한 말을 하더군요. "우리나라는 근본적인 에너지 정책을 재정립해야 한다.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향후 짧아도 50년, 길게는 100년 이상 지속 가능한 에너지정책이 필요하다. 당장의 이익이 우리를 헤어나올 수 없는 에너지 관념에 빠지게 할 수도 있다"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