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나름의 문법체계
임종찬(부산대핵교 국어국문학과 명옉교수)
2025-01-21 06:45:56
인간은 현실에 대응하는 논리로 자기 나름의 문법을 만듭니다. 일단 문법체계가 완성되면 여기서 벗어나려 하지 않지요. 자기 문법의 잣대로 남의 말을 번역하고 이 번역문에 내가 동의할 건가 말 건가를 고심합니다. 동의한다 해도 완전 동의냐 부분 동의냐, 부정한다 해도 역시 완전 부정이냐 부분 부정이냐를 고민합니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초현실적 문법형태, 초월적 세계관이라고나 할까요. 어느 태도이든 이런 태도로 현실에 대응합니다.
인간은 가끔 애초 그렇지 않았는데도 광기에 휩싸여 자신이 지금 무슨 상태인지 왜 이러는지, 자신에게 질문할 경우가 있습니다. 이 경우는 자기 의지인 자기 문법이 흔들린 경우입니다. 군중이 이끄는 자력(磁力)에 빨려 들어가 마침내 본래 의도인 자기 문법을 잠시 망실한 경우입니다. 대규모 집회에 참석하면 공명작용의 큰 울림에 파묻혀, 들려오는 울림이 내 목소리인양 착각에 빠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자기 문법을 잠시 포기한 상태, 주체보다 객체에 자신을 맡기는 경우이지요.
광우병 소동 때 거리에 소용돌이치던 군중의 목소리는 어긋남 없는 한 목소리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 역시 촛불을 든 군중들은 자기 행위의 타당성과 합목적성을 따질 겨를 없이 한 목소리로 길거리를 메웠습니다. 후쿠시마 원전 냉각수 방류 때도 거기 동참한 목소리는 대단했습니다.
군중의 자력에서 해방된 후 본래대로의 자기 문법으로 돌아와 보니 운동 주도 세력의 함정에 자신이 빠졌음을 알아차린 경우도 있겠지요. 성주의 사드(THAAD)배치는 북한 미사일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도입하려던 군사 시설이었습니다. 여기서 발생하는 전자파로 뇌에 구멍이 숭숭 뚫린다, 성주 참외농사는 끝장난다는 운동 주도 세력들의 농간에 빠져 농민들까지 여기 합세하여 반대하였습니다.
앞서의 예들은 건전한 정신의 소유자들마저 선동하는 외침을 맹목적으로 추종한 광기였다고 보입니다. 군중과는 다른 나만의 의미 있는 생각과 판단이 군중의 함성에 매몰된 순간이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문법체계의 고수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주체적 자아세계를 확립하지 않으면 군중이 이끄는 자력에 빨려들어 나의 문법체계가 무너집니다.
대중적 취미를 드러내는 대중예술가는 대중이 요구하는 대중성을 예술 속에 포함시켜 예술의 구매력을 호소합니다. 이성을 흔드는 작품, 외설적 묘사로 관능에 호소하는 작품은 대중의 요구를 적극 수용한 상품입니다.
위대한 정신을 함의하고자 하거나 적어도 대중적 취미와 결별하고 예술성의 강도에 치중하고자 하는 순수예술가는 대중과의 타협을 거부한 채 작품의 정신적 가치를 높이려하기 때문에 고독한 투쟁을 벌입니다.
19C 후반 세잔, 쇠라, 고갱, 고흐 같은 화가들은 보다 밝은 색채, 짧은 붓놀림으로 형태의 윤곽을 드러내는 기법, 전통적 주제의 탈피, 자연에 내재해 있는 구조에 관심을 둔 색다른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것은 앞서 진행된 정교한 묘사와 신화와 성경 등 역사적 사건 같은 주제를 강조한 고전파 그림과는 판이한 그림이었습니다.
특히 고갱은 타이티 원주민 속에 녹아 있는 원시적 풍요와 감정세계를 강렬한 색채로 그림 그렸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독창성을 승인받기는 당대엔 어려웠습니다. 대중들의 취미와는 다른 작품이기 때문이지요. 순수예술은 새로운 세계관의 표출, 적어도 대중적 취미와 타협을 배제 또는 거부하려 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유행의 물결에 따라 차려입는 옷차림에서는 개성적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이를 거역한 차림은 주목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자신만의 문법을 행사하였기 때문이지요. 남과 동류항이 되기보다 남과는 다른 나로 살고 싶은 이것이 개성적 삶의 문법입니다.
무리와 구별되는 행동이라도 도덕과 윤리를 벗어나지 않는 한 비난할 수 없습니다. 도덕과 윤리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했다 해서 예외적 인물이라 공격할 일도 아닙니다. 그것의 타당성이 확보된다면 우리의 적일 수 없지요. 모든 사실은 다른 관점에서 볼 때엔 상대적 가치를 가진다는 상대주의(Relativism) 주장이 이럴 때 유효합니다.
실존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 추종자들은 이런 입장을 고수하여 타의 맹목적 추구는 혼이 없는 자신의 공허를 나타내는 것이다. 남의 삶을 내가 대신 살아주는 것일 뿐이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군중의 논리에 순응하기 보다는 이것을 나름대로 새로 해석하거나 거부하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참고할 일이라 생각듭니다.
(공개되지 않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