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문학에서 풍수학으로 전공을 전환한 게 2000년 가을 학기이다. 그러나 이전부터 주요 월간·주간지에 풍수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따라서 풍수 글쓰기 경력은 햇수로 20년이 넘는다. 우리 풍수의 변천사를 기록함이 필자의 관심사이다. 우리 풍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잠룡(潛龍)들이 종종 조상 묘를 이장한다는 점이다. 김대중·이회창·김종필·이인제·김덕룡·한화갑 등이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그랬다. 혼령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타향에 묻히는 현상들을 관찰하면서 '권력과 풍수'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2010년 8월 어느 날이었다. 어느 풍수술사들의 논쟁을 지켜볼 기회를 가졌다. 사연이 자못 흥미로웠다. 2007년 야당 대선 후보로 나선 J씨 선영 이장을 둘러싸고 풍수술사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필자가 '참관인'이 된 계기였다. 당시 현장에는 풍수술사들과 J씨의 처남이 있었다. 필자는 그에게 "왜 이장을 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대선에서 실패하고 당내에서도 제대로 힘을 펴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정치철학이 빈곤해서 떨어졌지 어찌 풍수 탓일까요"라는 말이 엉겁결에 필자 입에서 튀어나왔다. 말하고 보니 주제넘은 짓을 한 것 같아 미안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한국 정치인들과 재계인들의 풍수관은 사뭇 다르다. 풍수 이해도에서 정치인들은 기업인들을 따라가지 못한다. 또 정치인들은 성급함과 공격성을 노골화하는 반면, 기업인들은 수성(守城)을 위해 원만함을 중시한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선영 이장 사건'이다. 언론들은 김무성을 이장의 주체로 보고 있지만 무엇인가 이상하다. 이번에 서울 우이동에서 경남 함양으로 이장된 당사자는 김용주(전남방직 회장)로 해방 이후 정·재계의 원로였다. 그는 큰딸·큰아들·둘째 아들 그리고 셋째 김무성 전 대표 등의 자녀를 두었다. 김 전 대표가 잠룡이기는 하나 그의 누나와 형들도 막강한 재력을 소유한 실력자들이다. 셋째 아들인 그가 선영 이장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이동에 김용주 회장이 인연을 맺은 것은 1963년의 일이다. 김 회장 어머니가 1963년 돌아가시자 명풍수 박중구(작고)가 묘를 잡아주면서이다. 이후 김 회장도 그 옆 지맥에 묻혔다. 이곳을 답사한 정기호(성균관대 조경학과) 교수는 "포근한 땅이자 풍수 이론에 부합하는 터"라고 평한다. 김 전 대표 집안에서 이장 이유로 내세운 것이 인근 개발로 인한 소란스러움이지만, 울타리가 쳐진 데다가 관리인의 상주로 조용하고 안전한 곳이다. 또 할머니(김용주 모친) 묘를 함양에 있는 할아버지 묘 옆으로 옮기라는 유언을 이장 이유로 내세웠지만, 유언처럼 옆에 묻히지도 않았다.
풍수학인의 눈에 무엇인가 분명치 않다. 우이동 기존 선영은 잘 가꿔진 묘지정원이었다. 반면 함양 선영은 성묘에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보안에도 어려움이 있다. 또 조상 묘 아래 무덤 쓰는 것이 조선 후기 관습인데, 조상 묘 뒤로 이장을 하여 이른바 역장(逆葬)을 하였다(역장이 풍수상 잘못은 아니나 드문 일이다). 그뿐만 아니다. 풍수사들은 산 능선이 끝나는 지점을 선호하는데, 새로 이장한 두 기의 묘(김무성 부친 및 할머니 묘)는 산 능선 중간 부분, 즉 과룡(過
龍)에 쓰고 있다.
김 전 대표 집안일이기에 누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다만 대권을 꿈꿨던 이전 정치인들의 행태와 닮았다는 점이다. 다산 정약용은 '풍수집의(風水集議)'에서 말했다. "명당발복을 염두에 두고 이장을 하였으되 부모의 뜻이라 둘러댄다면 그 변명은 병든 세상의 논의이다." 풍수에 관한 한 다산이 살던 시대나 지금이나 '병든 세상[病世]'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