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산단에서 만나는 다양한 얼굴의 풍경들
안병순(시화노동정책연구소)
시화산단은 참 다양한 색깔을 띠고 있다. 사람들, 길거리, 가로수, 식당, 일하는 공장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색깔을 그리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다채로워지고 있음을 본다. 이를 직접 보고 느끼는 이유가 있다. 지난 4월부터 본 연구소가 이주노동자 설문조사 등을 하는 관계로 그들을 직접 보고 만나서 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겉모습일 수 있다. 향후 9월 중에 발표할 설문조사 결과도 겉모습과 속 모습의 어느 교집합인 어느 지점에 있을 것이다. 따사로운 봄날에 시작한 본 연구소의 설문조사는 어느덧 장마를 지나 폭염을 맞고 있다. 시화산단에서 만난 이주노동자들의 얼굴을 그려본다.
봄날의 산단은 사람도 공장도 활기찼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남매는 금형․사출공장에 다니는데 힘겨운 노동에 지쳤는지 여동생의 눈동자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담장 너머까지 냄새를 풍기는 염색공장의 네팔 노동자는 수줍은 듯 웃으며 설문지를 전달하고 간다. 무척 예의 바르게 인사하고 설문지를 갖다주는 캄보디아 노동자, 요즘 K-뷰티로 잘 나가는 화장품(용기) 공장에 다니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는 친구가 난민으로 체류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준다. 러시아 여성 노동자는 설문지 작성을 권유하는 필자에게 아저씨라 부르며 현장에서 (몇 장이 되는 분량의 설문을) 후다닥 그러나 깔끔하게 내용을 완성하고 건네주며 시니컬한 모습으로 사라진다.
뙤약볕 아래 산단의 여름날은 분주하다. 외국인 티가 나지 않은 한 몽골인은 월드컵 축구경기를 한국인 동료들과 휴대전화를 보며 식당으로 간다. 필리핀에서 온 7명의 여성 노동자는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는데 내국인과 결혼한 3명, 미혼 4명인 이들은 자매처럼 어울려 지낸다고. 60세 넘은 재중동포 홍 모 노동자는 철강회사에서 다니는데 어느 날 전화하여 중국에서 가져온 헌 옷이 많은데 팔 곳을 물어 왔다. 공장에서 절단기를 다루는 중국동포 여성 노동자는 쇠붙이를 자르고 운반하는 일을 남자와 똑같이 하며 억척스럽게 일한다. 예닐곱 명의 미얀마 노동자는 삼삼오오 점심을 먹기 위해 오다가 식당 앞에 줄지어 심어 놓은 화분 고추밭에서 풋고추를 몇 개씩 따서 들어간다. 댓 명의 스리랑카 노동자를 만났는데 싱할라어 설문지가 없었으니… 그들은 매우 아쉬워한다. 한 공장에서는 나이지리아 노동자가 열 명 정도가 나왔는데, 역시 그 나라 말의 설문지가 없어 안타까웠다. (참고로 본 연구소가 만든 외국어 설문지는 11개 나라다.)
산단에는 이주노동자들이 낮에만 있다. 기숙사가 있는 공장 인근이거나 사용주가 얻어준 원룸이나 다세대주택 등에서 거주한다. 그들의 주거지는 대개 정왕동이기 쉽다. 이 동네에는 국내에 정착하고 있는 이주민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곳은 정왕역(4호선) 근처이다. 2년 전 화성 아리셀참사가 발생하였을 때도 정왕동 거주자가 2/3 정도가 희생자였다. 정왕동은 안산의 원곡동처럼 이주민들이 생활 터전을 이루며 그들만의 소통과 교류 방식으로 일정한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살아가는 곳으로 변모된 지 오래다. 이곳엔 아직 내국인도 섞여 있는데 다행히 다문화수용성이 높은 내국인들이 (이들이 이야기하는) ‘상호문화주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그들과 생활공간에서 호흡하고 있음을 본다.
정왕역은 정왕동의 생활 및 이동의 핵심 거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왕역은 시화산단으로 들어가는 가장 중요 통로 중의 하나이다. 또 산단 내에는 대학교가 두 곳(경기과기대, 한국공학대)이나 있어 학생들이 주로 드나드는 통로이다. 두 대학에는 한국어학당도 있어 동남아 유학생들도 꽤 있다. 그러하기에 정왕역은 이주민, 이주노동자, 외국인 유학생들이 이용하는 그야말로 다국적․다문화․다인종의 다양성이 생생히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다. 본 연구소에서 얼마 전 미국․이란전쟁이 격화되었을 때 이사장(공계진)과 필자가 퇴근시간 무렵 전쟁반대 피켓시위를 한 곳은 정왕역, 이때 이주민들이 한결같이 눈길을 주며 관심을 나타내며 무언의 지지를 보낸 곳도 정왕역에 본 이주민의 얼굴이 아니랴 싶다.
시화산단을 수평으로 관통하는 하천에 옥구천, 군자천, 정왕천이 있다. 하천 둔치와 제방에는 산책로가 예쁘게 조성돼 있고, 물길 따라 나무와 풀빛, 물빛, 흙빛이 어우러져 철마다 색깔이 다르다. 곰솔누리숲(차단숲: 공해질 비산 방지 숲, 길이 4km)에는 3개 하천이 수평으로 교차점을 이뤄 더욱 운치 있고, 여름철은 우거진 숲속 녹음이 동굴처럼 이어져 풍치가 있고, 가을은 형형색색의 단풍으로, 겨울은 하얀빛의 숲길이 펼쳐진 풍광으로 수려하다. 이 길과 숲 곁으로 경기과기대, 한국공학대가 연접하고 있어 젊은이들도 많다. 물길과 숲길의 산책로에는 심심찮게 이주노동자들도 볼 수 있어 어김없이 다문화 빛깔을 나타낸다. 숲길이 끝나는 북쪽 끝으로 가보라! 옥구공원과 오이도(해양단지) 방파제에서 이주민들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자연스럽다. 물길은 시화산단뿐만 아니라 MTV(Multi Technical Vally), 거북섬과 맞닿아 있다. 거북섬에는 ‘어린왕자와 사막여우’의 형상이 떡 서해를 바라보고 있어 색다른 이국적 멋을 보여준다.
시흥시 외국인 인구는 73,108명(2026년 6월 말 기준)에 총인구는 587,979명이니, 외국인 비율은 12.4%인 셈이다. 이런 비율은 전국에서 안산, 화성에 이어 3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이 거주하고 있다. 이 정도면 앞서 언급 장소 외에도 시민들은 전철에서 버스에서 길거리 등 곳곳에서, 즉 10명 중 1명 이상은 외국인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시흥시는 매우 젊다. 시민들의 평균연령이 42.8세(2026년 6월 주민등록 기준)이다. 젊은 도시가 선주민과 이주민이 더 조화를 이뤄 나간다면 더욱 찬란한 내일을 만들어 누릴 수 있으리!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후략) <정현종, 방문객>. 실로 이주민 개개인의 서사는 참으로 다양한 얼굴을 하고 있기에 가슴 저미지만… 예서는 줄인다. 시화산단을 에둘러 있는 시화호 위로 피는 무지개는 비할 데 없이 아름답다. 오늘따라 호수에서 보는 서해 저녁놀은 울긋불긋 찬연한 빛으로 불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