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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태어나 잔병치레 한 번 하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나 초등학교에 다니게 된 형주였다. 소년의 이모네는 한동네에 살았다. 이모 집에 행사가 있을 때는 소년의 가족을 초대해 식사를 하는데, 어느 날 이모 집에 들어선 소년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소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얼굴이 동그랗고 하얀 피부를 가진 소녀였다. 소년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두근 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이윽고 소년의 이모가 나서서 현진이를 소개했다. 소녀는 이모부의 조카이며 서울에서 형주가 다니는 초등학교 주변으로 이사를 왔고 소년과 동갑이라서 소년과 함께 학교에 다닐 거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소녀의 얼굴은 누렇게 뜬,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은 연약해 보였다. 저녁 늦게 집으로 돌아 온 소년의 어머니는 소녀가 왜 몸이 아프고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셨다. 소녀를 끔찍이 예뻐해 주고 위해주던 오빠가 있었는데, 그만 교통사고를 당해 저세상으로 떠났다는 것이다. 소녀는 큰 충격을 받아 시름시름 앓다가 병이 들고 말았는데, 소녀의 부모는 하나 남은 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동생부부가 살고 있는 고장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면서, 아픈 소녀를 잘 감싸주고 보살피라고 특별히 당부하셨다. 항상 다정다감하고 자상했던 어머니의 당부에 소년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음 날, 선생님께서 소녀를 교탁으로 부른 다음 전학 오기 전 학교에서도 공부를 잘했다고 소개했다.
“반가워, 친구들아. 난 김현진이라고 해. 앞으로 잘 부탁해.”
“짝짝짝···”
그런데 누가 봐도 얼굴색이 누렇게 뜬, 병을 가진 아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소녀가 자리에 앉자, 학생들은 병에 걸린 아이라며 수근 댔다. 그런데 소년은 소녀가 예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소녀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며 관찰을 했다. 소녀도 소년의 눈빛이 이상했던지 자주 쳐다보았다. 아이들은 소녀가 병에 걸렸다며 함께 놀지도 않고 어울리지도 않았다.
며칠 후, 아이들이 소녀를 세워놓고‘무슨 병에 걸렸냐? 혹시, 백혈병 걸린 애 아냐? 간질병에 걸린 애 같다···’면서 놀려댔고, 소녀는 그만 자리에 앉아 울고 있었다. 이를 발견한 소년은 소녀를 놀리는 애들에게 다가가 싸우기 시작했다. 소녀를 놀려대던 아이들에게 안 지려고 악다구니로 물어뜯으며 버텼다. 선생님이 오셔서야 싸움은 끝이 나 싸우던 애들은 두 손 들고 벌을 써야 했다. 이후 누구라도 소녀를 놀리면 다가가 싸움박질한 소년이었다. 상급생인 학교 형들도 소년이 입술 깨지며 소녀를 보호한 것을 인정해서인지 누구도 소녀를 못 놀리게 해줬다.
소녀가 몸이 아파 동무들과 어울려 뛰어놀지 못하자, 소녀에게 다가가 건강해 지려면 운동장 주위를 걸어 다녀야 한다며 놀고 있는 아이들의 주의를 함께 걸어 다녔다. 소년은 매일 매일 학교에 나오는 소녀를 보면서 들꽃과 단풍잎을 말린 책갈피를 소녀 모르게 책 속에 살며시 넣어두곤 부끄러워했다. 또 집에 있는 동화책을 가져와 소녀한테 주었다. 소년의 마음을 안 소녀의 얼굴은 웃음이 가득해지고 즐거워하며 소년을 통해 도시에서 시골로 전학 와서 느끼는 마음의 벽을 하나씩 허물어 갔다.
소년은 이모네에서 소녀의 집에 전달할 선물목차가 있으면 자진해서 심부름을 전담했다. 소녀를 만나기 위해서는 어떤 심부름이라도 마다하지 않고 그녀의 집으로 내 달렸다.
소녀와 친해진 소년은 학교에서 멀지 않는 야산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옹달샘이 있고, 산딸기 주위에 뽕나무 열매인 오디와 각종 산열매들이 많이 있었다. 밭에는 감자와 옥수수 등 각종 야채밭과 과일밭이 펼쳐져 있으며 경사가 급하지 않는 무등한 계곡에서 가재도 잡아주기 위해 소녀를 데리고 자주 야산에 갔다.
소년은 소녀를 데리고 옹달샘으로 데리고 가서 빈 도시락을 꺼내 옹달샘 물을 담아 마시게 했다. 금빛 나는 도시락에는 먹다 남은 밥 알갱이가 조금 붙어 있었지만, 소녀는 개의치 않고 둥근 얼굴을 도시락 속에 빠치면서 별처럼 반짝이는 눈을 깜박이며 마셨다.
소녀의 하얀 얼굴은 금빛으로 물든 달로 바뀌면서 밥풀이 입안에 들어오지 않도록 천천히 옹달샘 물을 마시면, 소녀의 눈망울과 얼굴이 금빛 나는 도시락에서 교차되었다. 그녀의 눈동자는 어느 새 별이 되어 옹달샘 물이 든 도시락 속에 뚝뚝 떨어졌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은 별빛이 되어 빛나고 있었다. 샛별처럼 금빛에 물들인 소녀의 얼굴과 눈동자는 소년의 가슴을 꿍꿍거리게 만들었지만, 그 모습을 보기위해 도시락을 싹싹 비우지 않고 밥 알갱이를 조금 남겨 소녀의 얼굴과 별이든 눈동자를 보기 위해, 매번 그렇게 장난기를 발동해 옹달샘 물을 마시게 했다. 소녀도 먹고 난 물을 소년에게 마시라며 주었는데, 소년도 소녀가 했던 것처럼 흉내를 내면서 천천히 들이마시자, 소녀도 소년이 물 마시는 모습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휴일이면 아는 아이들을 피해 야산엘 자주 갔다. 소년이 육상연습 하느라 공부를 제대로 못하자, 황토로 뒤덮인 언덕에서 나뭇가지로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 과외 선생이 되어준 소녀였다. 형들과 누나가 소년에게 가르칠 땐 미련하다고 큰소리도 치고 꿀밤도 주었지만, 소녀는 틀리면 왜 자꾸 틀리는지 이해를 시켜주니까 재미나서 더 잘 따라 배웠다.
소년은 그 보답으로 왕벌, 장수하늘소, 호랑나비, 범나비, 사슴벌레 등 희귀한 곤충을 잡아 주었다. 소녀는 이러한 소년과의 친한 동무로 지내면서 전과 달리 하얗고 노랗던 얼굴이 뽀얗게 변하면서 화색이 돌고 있었다.
소년이 달리기와 들꽃이름 맞추기 시합을 해 지는 사람은 손목 맞기 하자고 제안하지만, 소녀는 힘이 든다며 제안을 거부했다. 그러자 소년은 100미터 거리까지만 달리자고 성화를 했고, 성화에 못이긴 소녀는 응하게 되었다. 이후 조금씩 거리를 넓혀 멀리 달리다, 나중엔 1~2 km도 건강하고 힘차게 달리게 되었다. 들꽃이름 맞추기도 소녀가 지목하면 소년은 책장을 들고 들판을 내달리며 시간 내에 들꽃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소녀가 항상 이겼다. 소년은 시합에서 진벌로 매번 손목 10대를 맞아야 했다. 소년은 아픈 척 엄살을 부렸지만, 소녀는 미소를 지으며 때렸다.
“이형주! 어서 손목 내밀어, 호호호”
“좀 살살 때려줘. 니 손매는 울 누나보다도 더 아파!”
“남자가 그것도 못 참고 아프다고 우냐?”
소년은 손목을 한대 맞고는 아프다며 징징거리며 뒤로 돌아서서는 맞은 자국을 손톱으로 긁어 벌겋게 달아오르게 했다. 10대를 다 맞고는 벌겋게 된 손목을 소녀에게 내 보였다.
“어머! 이렇게나 아프게 때렸어?”
“그래! 보면 모르겠어. 시잉.”
“내가 호 하고 입김을 불어주면, 안 아플 거야.”
그리곤 소년의 손목에 입김을 불어주고, 상처가 덧나지 않도록 콧김으로 쐬어 주었다. 소녀의 입김과 콧김이 자기 손목에 닿으면 간지럽기도 하고 기분도 좋아져, 매번 엄살을 부리며 아픈척한 소년이었다. 야산은 숲이 우거져 소나무 등이 많았고, 오디랑 산딸기 등 산열매가 가득한 곳이어서 따먹기도 하고 책장을 들춰내며 들꽃이름 맞추기와 동시 외우기를 즐겨하는 소년과 소녀. ‘넌, 이 세상에서 제일로 건강하고 예쁜 애야! ’하고 소년이 장난기 있게 말을 하면, 소녀는 빙그레 웃으며 수줍어했다. 소년과 함께 산과 들로 뛰어 다니며 산열매도 따먹고 들꽃이름 맞추기, 옹달샘 물마시기, 서리한 옥수수와 감자 구워 먹기 등 신명나게 놀아서인지 소녀는 건강해졌다.
소년의 집은 농사를 많이 짓는데, 모내기 때면 농악대가 신나게 연주하고 모내기 하는 분들은 농악에 맞춰 흥겨운 노래를 부르며 풍년이 들기를 기원한다. 소년은 모내기 행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소녀를 초대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바람이 분다 바람이 불어 연평 앞바다에 꽃바람 분다···.’
노래 가락과 협동심을 본 소녀는 도시와 정 반대인 흥겨운 모습에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나이가 연로하신 분들은 못줄을 튕기고, 젊은 분들은 모를 심기 편하게 모판을 옮기고, 중년의 분들은 한손에 가득 든 모종에서 한모한모 쪽을 갈라 논에 심는데, 세 박자가 잘 맞도록 농악대가 흥겨운 연주를 하는 모습이었다.
“형주야, 진짜 재미나. 호호호”
“나는 매년 봐, 그래서 오라고 한 거야.”
“너만 따라다니면 좋은 구경도 하고, 맛난 것도 먹을 수 있어 좋아. 서울서는 이런 걸 못 보거든, 항상 고맙게 생각해.”
“나도 널 만나서 좋아.”
1970년대. 남북회담이 열릴 때면 소년의 스승은 학급반원들을 데리고 숙직실로 데리고 가 TV를 시청케 했다. 공부보다는 TV를 본다는 게 더 좋아서인지 아이들은 남과 북이 통일을 논의하는 남북 인사들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런데 소녀가 보이지 않았다. 소녀의 단짝이 소년에게 조용히 다가와서 새벽녘에 소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을 전했다. 소년은 큰 충격에 휩싸이고 육상연습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엉금엉금 집으로 와버렸다.
‘이제 현진이 병이 다 나았는데, 또 병이 들면 어떡하지? 아버지까지 잃게 된 현진이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못 이룬 소년은 다음 날, 학교에 가지 않고 애향단장에게 아버지 심부름으로 병원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소녀의 집으로 내달렸다. 선생님께 허락을 받았다고 둘러 댔고, 현진이 삼촌과 이모와는 남도 아니어서인지 현진이 집에서 받아 주었다. 소년은 드문드문 문상객이 찾아오면, 소녀와 함께 문상객에게 예의를 갖춰 절을 했다. 다음 날도 애향단장에게 병원에 가야 한다며 핑계를 대고, 학생들이 안 보일 쯤 소녀의 집으로 달려갔다. 마치 자신이 상주인 것처럼 외동딸인 소녀 옆에서 문상객을 받으며 절을 하고 예를 표했으나, 누구하나 탓하지 않았다.
소녀는 소년의 이모부와 삼촌지간으로 외동딸이었고, 아들이 없는 소녀의 집에 아들을 대신하라고 소년의 이모부가 시켜서 한 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소년의 가족들도 찾아와 문상을 했지만, 소녀를 잘 감싸고 보호해 주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던 터여서 소년을 나무라지 않았다.
다음 날 소년이 학교에 가자, 애들 눈초리가 매서웠다. 이제야 범인을 잡는 형사들의 눈길이었다. 급기야 스승이 교실로 들어 오셔선 소년을 교단으로 불러내 바지를 걷게 한 후,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렸다. 또 집에서 소년의 아버지에게 벌을 섰다. 그러나 학교에 가지 않고 결석한 건 잘못했다면서도 현진이네 집에 아들이 없고 혼자였기 때문에 동무로써 도와 준 건 잘못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말하는 소년이었다.
급우들과 전체 학생들은 소년이 지나가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지금까지 소년과 소녀의 사이가 그렇고 그런 사이란 걸 몰랐다는 게 불만이었다. 소년은 어느 누구에게도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소녀가 아파해하는 모습만 떠올랐다. 소녀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준 오빠가 사고로 죽자 시름시름 앓다 병이 들었고, 병든 딸을 요양시키며 학교에 보내기 위해 시골로 전학을 왔는데, 그런 아버지마저 몇 년 후 여의게 된 소녀가 불쌍하고 가엽기만 했다. 12살 소년이 어린 나이에도 소녀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해 학교에 가지 않고 무조건 달려갔던 이유였다. 그러나 애향단원부터 학교 전체 학생들한테 놀림을 받기 시작했다.
"얼레리 꼴레리, 누구누구는 산에서 뽀뽀 했대요, 뽀뽀 했대요···“
애들이 놀려대도 소년은 당당했다. 그리고 오빠에 이어 아버지의 죽음은 소녀에겐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일 거라고 생각한 소년은 수업이 끝나면 씩씩하게 소녀의 집으로 달려가, 소녀를 위로해주고 집안일을 도와주었다. 이런 소년의 행동을 지켜본 아이들은 대놓고 놀리지 않았다. 이런 소년의 행동이 3개월간이나 이어지자, 소녀의 어머니는‘아들’이라고 불렀다.
“우리 아들, 집에서 어머니가 걱정하실 텐데...”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엄마가 현진이를 잘 감싸고 보호해 주라고 하셨거든요.“
소년의 집과 소년을 가르치고 있는 스승의 집은 다리 하나를 두고 살았다. 소년이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3년간이나 담임을 맡았던 스승은 자주 소년의 집에 들러 아버지와 술상을 마주했다. 아버지는 소년의 스승과 술상을 마주 할 때는 소년을 불러 스승에게 술을 따르게 하는 등, 스승에 대한 예의를 다하라고 가르쳤다.
"김선생, 통일은 언제나 될 것 같소?"
"나라가 이 지경이니, 통일은 쉽게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신헌법을 홍보하기 위해 스승이 소년의 집을 방문하셨을 땐, 이대로 가다간 통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겠다며 이런 나라일 줄 알았으면 귀국 안하고 제3국에 남을 것인데 하고 소년의 아버지가 통곡을 하자, 스승도 무슨 이유에서인지 눈물을 훔치셨다. 하지만 소년은 이해하지 못했다.
소년의 할머니와 어머닌 ‘왜정시대 때엔 말이야···’하고 말을 꺼낸 다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 주셨다. 소년의 부모는 8.15광복을 함경북도 이북에 있는 연해주에서 맞이하셨다고 했다. 주로 만주와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셨는데, 먹을 게 없으면 바닷가에서 조개나 해초류를 뜯어와 쌀과 보리를 넣고 끓여 먹을 때가 많았다며, 쌀이 부족해 부수적인 걸 넣어야 200여명의 독립군들이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년의 아버지는 200여명의 독립군 대장이었다.
일제가 패망하자 연해주에서 함경북도 온성으로 와 주민들과 밤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다, 1945년 8월 18일 함경도에서 석탄 열차를 타고 지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시는 곳으로 오셨는데, 석탄연기에 그을려 코가 시커멓게 변했어도 조국을 되찾았다는 기쁨에 힘이 든 줄 몰랐다고 하셨다.
(참조: 소년의 아버지와 함께 독립군활동을 하신 분 중에 살아계신 분으로, 1982년 ‘한국독립유공자협회’를 설립해 활동하고 계신 임우철, 이윤장, 이인술 독립운동가 등 애국지사가 계신다.)
소년은 어머니께서 왜 그런 말을 하시는지 생소하여 듣기만 했다. 아버진 학교에도 자주 찾아와 긴 시간을 늘 상 스승과 대화하시고 가셨다. 그래서 그 선생께 소년을 3년이나 맡긴 것이다. 남북분단에서의 이산가족, 그리고 회담하는 남과 북의 인사들의 회담 장면 등... 스승은 왜 통일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를 박정희 정권에 들킬까봐 말은 못하고 TV시청으로 대신했던 것이다. 어린 나이 임에도 정확히 남북분단의 아픈 상황을 알라는 스승의 배려였다.
논 다랑지 사이에 있는 조그만 연못 위로 70도정도 휘어진 몇 백 년 된 버드나무가 있는데, 신기하게도 밑 둥부터 연못 끝까지 평평하게 구부러져 동네 아이들이 재미삼아 건너기 하는 시합을 가끔 했던 소년은, 그녀를 빠트릴 심산을 가지고 하나에서 다섯을 셀 때까지 빠른 걸음으로 나무를 건너가는 게임을 제의했다. 소녀도 좋다고 해 게임을 했는데, 처음으로 해 본 소녀는 무서움에 다 건너지 못하고 물이 고인 논으로 곤두박질 쳐 흙탕물을 뒤집어썼다.
진흙탕에 빠진 당황한 소녀를 그 옆 개울가로 데리고 가서 옷을 벗어 빨게 했다. 소녀는 옷을 벗어야 한다며 소년에게 뒤돌아서서 있으라고 말했다. 소년은 소녀의 말이 끝나자 숲속을 향해 손살 같이 내 달렸다. 소녀를 논 속으로 쳐 박히게 했다는 미안한 마음에 산열매 중 제일 맛있는 머루며 으름 등을 자기 운동화 두 짝에 가득 담고 소녀 곁으로 왔다. 소녀가 운동화 속에 든 산열매를 맛있게 먹는 사이, 소년은 불을 피워 소녀의 젖은 옷을 말려 주었다.
뽀뽀
초등학교 마지막 방학을 맞은 소년은 이모부의 부름을 받았다. 전북임실에 사는 친척에게 심부름을 다녀오라며 현진이와 여동생 순희와 함께 가라는 것이었다. 친척에게‘돈다발’을 전달하는 임무를 맡겼다. 전에 이모부 또는 이모와 함께 다녀본 경험이 있어서, 소년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워낙 가난하게 살아서 도움을 주는 소녀의 친척이었다. 소년의 배에는 책보자기 같은 것으로 복대를 만들어 그 안에 돈을 넣고, 허리띠처럼 동여매어 돈다발을 전달하는 막중한 임무를 하는 것이다.
터미널에 도착한 소년은 누가 돈 냄새 맡고 빼앗아 갈까봐, 소녀가 바르는 크림을 달라 해서 복부 주변에 발랐다. 임실에 도착해서도 걸어서 두 시간이 넘는 산골 오지였다.
다음 날, 소년과 소녀는 눈으로 뒤덮인 지리산 자락의 무등하고 그리 높지 않는 이름 없는 산에 올라, 이국적인 멋진 풍경과 주변 산야를 향해 목청을 가다듬어 ‘야호!’를 힘껏 내 뱉었다. 그리고 난 다음 소년은 미리서 준비해간 비료포대 위에 소녀를 앉게 한 다음 언덕에서 아래로 미끄럼을 타게 했다.
“호호호 진짜 재미있어. 도시에선 이런 거 몰라.”
몇 번을 탓 건만 소녀는 재미가 있어서인지, 미끄럼을 타기 위해 산등성이를 오르다 그만 미끄러져 굴러 버렸다. 소년은 미끄러져 구르는 소녀를 잡으려다 같이 미끄러져 구렁지에 포개지고 말았다.
눈 속에 파묻힌 소년과 소녀. 그런데 소년의 몸 위에 소녀가 있었다. 소년은 소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고,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감아 버렸다. 좀 차가운 듯한 소녀의 입술이 소년의 입술에 닿았다. 소년이 가만히 있자 소녀도 입술을 포갠 채로 가만히 있었다.
소년은 난생처음 여자애와 뽀뽀했다는 게 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뻗쳐 쌓인 눈을 한 손 가득히 담아 먹어버렸다. 소녀도 따라서 눈을 집어 먹었다.
중학교는 도시에서 다니게 되었다. 간혹 소년의 어머니와 이모네에서 소녀 집에 줄 선물목차가 있으면 전달해 줬다. 찾아 가면 소녀의 어머닌 ‘우리 아들’하고 반갑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겨울방학을 맞아 남원 절로 향했다. 남원 용담사라는 절은 소년의 아버지가 소유했었기 때문에 가끔 찾아갔다. 그 절은 지리산 자락에 위치해 있었다. 스님은 부처의 미소를 머금은 채 두 사람을 반겨 주셨다.
소년은 절 뒤편 얼어붙은 냇가로 달려가 나무를 조각하여 둥그렇게 만든 다음, 긴 나뭇가지 두 개를 가져와 그녀한테 한 개를 주었다. 또 돌을 두 개씩 갖다 놓고 골대를 만들어 놓고 공을 나뭇가지로 몰아사 골대 안에 넣으면 되는 거라고 말하며, 얼음판 위에서 즐기는 ‘툭~툭’ 치는 필드하키를 제안했다.
나뭇가지로 둥그런 공을 치며 얼음판 위의 놀이가 재미난 소녀는 만면에 웃음을 띠우며 좋아했다. 얼음판 위에서 조그만 공을 서로 차지하려고 몸을 부닥치며 넘어지기를 수없이 하다 보니 가끔 둘이 포개지기도 하였다. 그러다 소년이 일부러 넘어지며 소녀를 잡아 같이 넘어졌다. 이번엔 소년이 소녀의 몸 위에 위치해 있었고, 위에서 소녀의 눈을 쳐다보자 눈을 감아버렸다. 입술에 살포시 뽀뽀해 주며 지난 몇 개월을 숨바꼭질 하면서 둘만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결국 부모의 허락까지 받은 보너스였다.
청소년기의 소년과 소녀가 염려되어 양가 집안에선 두 사람의 교제를 반대해 강제로 떼어 놓았다. 둘은 임기응변으로 휴일이면 교회와 절에 간다는 핑계를 대며 일주일에 한 번씩 얼굴을 봤다. 그러다 감시하는 집안사람들 앞에서 손을 잡고 줄행랑을 쳤고, 학교에 가서도 서로가 보고 싶으면 학교를 빠져나와 몰래 만나기를 반복했다. 결국 양가 집안은 두 사람에게 건전하게 사귀겠다는 약속을 받고 교제를 허락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절에서 오래 머무르자, 소년의 아버지가 오셨다. 아버지는 전과 달리 공부도 열심히 해야 한다며 반갑게 말씀하셨다. 소년의 아버진 갈비를 사 주신다며 남원 시내로 향했다. 소년은 송아지가 뛰어노는 것처럼 시내로 가는 내내 눈 쌓인 도로에 뒹굴기도 하고, 소녀와 손을 잡고 뛰기도 하는 등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도 이들의 정다운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으셨다.
“동무가 최고지. 서로 변치 말고 어른들께 욕먹지 않도록 잘 사귀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님!”
소녀가 처음으로 소년의 아버지를 ‘아버님’이라고 호칭해주자 소년의 아버지도 좋아 하셨다. 식사 후, 소녀에게는 예쁜 숙녀복과 신발을 선물해 주며 용돈을 주셨고, 소년에게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이상화 작)' 라는 시집을 사주셨다.
- 나라를 빼앗겨 봄이 왔지만 악랄한 일제놈들이 수탈해가 버려 먹을 것이 없어 풀과 나물을 뜯어 연명하는 모습을 보고, 이상화 선생님의 구구절절한 통곡의 목소리가 시 속에서 승화되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위대한 기상과 정신, 역사와 문화전통을 기리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똘똘 뭉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족정기를 하루빨리 구현시켜야 합니다...-
독후감을 써오라고 말을 안했음에도 두 사람이 써오자, 아버지는 대충 훑어보시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가 눈물을 왜 보이는지 소년이 이해하지 못하자, 소녀가 설명해주었다.
“아버님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긴 세대시잖아. 그런데 우리가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힘을 모으자고 쓴 독후감에 감동 받으신 것 같아.“
“그렇구나. 그럼 우리가 잘 한 거네?”
“호호호 바보!”
그해 여름 새벽, 소년은 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는 급보를 접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운명. 소년에겐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만 것이다. 아버지를 찾으며 이틀간 음식도 거부하고 울부짖기만 했다. 소녀도 자기 엄마와 같이 와서 소년의 손을 잡아주며 위로했지만, 소년에게 불어 닥친 슬픔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더구나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소녀와의 사귐에 있어 늘 긍정적으로 성원해주고 어루만져주던 아버지셨기에 슬픔은 더욱 컸다. 사춘기의 소년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만장기가 동구 밖에서 펄럭이는 가운데 상여가 집을 나섰다. 추도사가 울려 퍼졌다.
-고(故) 리강문은 일제의 개가 되기를 거부하고, 나라를 되찾고자 독립운동에···.
그랬다. 소년의 아버진 연해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하다, 8.15광복을 맞았다. 6.25민족상잔 때에는 소년의 아버지를 국군이나 인민군에서 데려 가려고 해도 완강히 거부했던 분이셨다. 소년의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해서 남이나 북에서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국이 두 동강이 난 것도 서러운데, 어느 누구를 죽이겠느냐?'
아버지의 지론에 국군이나 인민군 양쪽 다, 어떠한 해꼬지도 안하고 순순히 물러났다고 한다.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만든다며 국민투표하자고 공무원은 물론 교육자를 시켜 홍보하자, 소년의 스승과 얼싸안고 통곡하던 분이셨다.
소년은 어릴 적 할머니와 어머니의 말씀과 아버지와 스승의 모습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슬픔 속에 파묻혀 있는 소년에게 소녀의 계속 되는 위로가 이어졌다. 그전과 비교해서 웃음이 없어졌고, 우울증 같은 침울한 성격으로 변해 말수가 거의 없었다. 그녀가 질문을 해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녀의 노력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소년. 그 와중에 소년보다 15살이나 위인 큰 형이 주동이 되어 재산분할을 외치는 상속싸움이 전개된 것이 화근이었다.
소년은 휘문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이제 숙녀와 청년이 된 두 사람. 어렸을 때 할아버지한테 받은 <단군과 한으님>이란 자필 집을 고교 입학과 함께 그녀한테도 주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과 위대한 역사를 알게 되었다. 그녀도 많은 걸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후 두 사람은 종교를 믿지 않기로 약속하고 직접 우리 민족이 믿어 왔던 한으님과 한아님만 믿자고 해서 만나면 늘 기도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별세에 이어 재산분할 논쟁이 본격적으로 거론되자, 형주는 상처를 입고 방구석에 파묻히고 말았다. 그녀는 날마다 그의 집에 와서 밥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서 밥상을 차렸고, 밥을 안 먹으면 방에 와서 입을 벌려 서라도 밥을 먹이곤 했다. 예전처럼 돌아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이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형주 반에는 주먹을 꽤나 잘 쓰는 동급생이 있었다. 그치의 주변엔 늘 똘만이 10여명이 붙어 다녔다. 하교 때는 조직의 후배들 수 십 명이 교문에서 기다렸다 함께 행동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먹을 잘 쓰는 그치가 형주에게 와서 시비를 걸었다.
"야, 이형주! 니 애인이 그렇게 예쁘다며? 엉덩이도 토실토실하고. 내꺼와 바꿔치기해서 즐겨볼까, 어때?"
형주의 주먹은 여지없이 그자의 얼굴에 선방을 날려 버렸고, 나중 수업이 끝난 후 일대일 대결에서도 쓰러뜨려 상당한 주먹들이 주위에 몰려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현진이는
엄청난 고통을 혼자 감수하려고만 하지 말고 자신에게 의지하라고 위로했다. 그러나 그는 사랑하는 그녀에게 더 이상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훌쩍 남원에 있는 절로 내려가 버렸다. 방학을 맞아 그녀가 형주와 함께 있겠다며 내려왔다. 지리산 자락을 걸으며 두 사람은 무언의 대화를 한다.
-형주야, 니 마음 다 알아. 하지만 이겨 내야만 해. 아버지라는 큰 울타리에서 세상으로 나오려고 하는 거야···.
-아버지를 잃은 아픔도 큰데, 재산 가지고 왜 싸움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얼마 후인 2학년 초, 결국 형주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만다. 그녀는 이런 그를 안아주며 눈물만 흘렸다. 그녀는 아무런 말없이 호소하는 형주를 가슴으로 받아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형주는 서울 종로에 있는 고려검정고시 학원에 들어갔다. 검정고시 합격하기 위해 일체 연락을 끊고 그녀한테만 연락을 취했다. 그녀는 편지와 밑반찬을 보내 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해 고졸검정고시 시험에 전 과목 합격이라는 보람을 얻었다. 가장 먼저 그녀에게 합격의 소식을 전했다.
“합격? 우와, 드디어 우리 낭군임이 해냈네!“
그녀는 집안 뿐 아니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형주의 검정고시 합격을 알려, 그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과 사랑을 과시했다.
두 사람은 대학입학 전, 13세 때 처음으로 뽀뽀했던 아름다웠던 전북 임실을 찾았다. 임실은 그녀의 작은 삼촌이 사시는 곳이다. 닭을 잡아 식사 대접을 해준 삼춘부부께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 옛 날 눈 속에서 굴렀던 무등한 언덕배기를 찾아가 앉았다. 정적을 깨기 위해 형주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야! 그때는 눈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몰랐는데, 정말로 아름답네. 현진아 그지?”
“우와! 우리가 여기서 뽀뽀했다는 게 실감이 안나. 진짜 진짜 좋다! 말이 안 나와, 호호호“
지리산이 코앞에 있었고 계곡에는 실개천이 흐르는 아담한 구릉지였다. 두 사람은 이끼가 자욱한 실개천과 이름 모를 들꽃과 지리산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아름다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아름다운 산새는 몸매를 뽐내며 다시 찾아 온 두 사람을 반기고 있었고, 산뜻한 바람과 함께 하늘에 흩어진 구름이랑 땅에서 핀 들꽃이랑 친구가 되어 주었다. 숲과 나무에서 한 방울 두 방울 맑디맑은 물이 모여 실개천이 만들어져 흐르고, 파란 하늘과 살랑대는 바람이 부는 아름다운 구릉지에 앉은 두 사람.
그녀가 형주 옆에 바짝 다가와 앉았다. 아름답게 펼쳐지는 광경에 푹 빠진 형주는 그녀가 바짝 다가와 붙자 뭔지 모를 흥분감이 들었다. 그녀는 약간 상기된 얼굴 표정을 지으며, 형주와 헤어지면 못 살 것 같다고 말하면서 갑자기 덮쳤다. 그리곤 형주의 입술에 자기 입술을 댔다. 그녀는 혀를 내밀며 자기 혀를 형주의 입안에 들여 보내주라는 신호를 보냈다. 형주는 이상하리만큼 전율 같은 걸 느끼면서 그녀를 껴안고 그녀의 혀를 받아들였다. 서로가 끌어안으며 형주의 입속에 자기 혀를 넣었다가 그의 혀를 자기 입안에 끌어당기는 진한 입맞춤을 했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지금껏 느낄 수 없었던 이상야릇한 기분에 휩싸인 두 사람. 둘은 처음으로 느껴보았던 남녀 간, 이성으로서의 흥분 감을 느꼈다. 한참동안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바로 앞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개천과 들꽃들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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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결국 형주는 불의에 항거하는 의인으로 되어가는 복선이 있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