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2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중년의 한국인 남자가 숨을 거둔다.
그는 봉사하는 삶을 살기위해 의대에 진학해
... 재학 시절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했다.
이 후 서른여섯이 되던 해
그는 대학 강의 제안도 거절하고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사모아의
나환자촌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며
‘아시아의 슈바이처’라 불리는 삶을 선택했다.
WHO 남태평양 지역사무처 한센병 자문관으로
국제기구에 첫 발을 내딛었고,
WHO 예방백신국장으로 임명된 이후엔
소아마비 발생률을 현격히 낮추어
‘백신의 황제’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그리고 2003년
한국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가
WHO 사무총장에 당선된다.
故 이종욱 전 WHO 총장은
한국인 첫 UN기구 수장이 된 것이다.
"내가 처음에 WHO에 취업한 것은
월급이나 여러 가지 조건이 좋아서였다.
숭고한 사상을 가지고 취업한 것은 아니다."
숭고한 사상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행동'이었다.
취임과 함께 내걸었던 공약은
‘2005년까지 300만 명의
에이즈 환제에게 치료제를 보급’
그러나 환자 대부분이
의료 체계가 빈약한 아프리카 회원국으로
아직은 확보되지 않은 예산 때문에
직원들은 불가능한 공약이라며 우려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려했던 대로
300만 명 중 200만 명에게는
치료제를 보급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 실패의 결과는
에이즈 치료제를 지급 받은 100만 명과
아프리카 에이즈에 대한
전 세계 사람들의 관심이었다.
"안된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이유가 있고,
그럴듯한 핑계가 생기지.
시작하기도 전에 고민만 하다간 아무것도 못해.
과연 옳은 일이고 인류를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해야 해.
옳은 일을 하면 다들 도와주고
지원하기 마련이란 걸 명심하라고.
적어도 실패는 시작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큰 결과를 남기는 법이야,
바로 그 점이 중요한 거야."
자신이 사용하는 돈은
가난한 나라의 분담금도 섞여있기에
그 돈으로 호강할 수 없다며
1년 중 150일 출장을 떠날 때마다
항상 이등석 좌석을 타고
단 두 명의 수행원과 함께 이동했다.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추억한다.
Man of Action
행동하는 사람
"우리는 옳은 일을 해야 합니다.
올바른 장소에서 해야 하며
올바른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 WHO 직원 연설 중
- 지식채널 e Man of Action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