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복 입기”(마태22:1-14)
정기용 사무엘 신부 / 묵방교회
요즘 제가 사목하고 있는 교회에는 빈자리가 참 많습니다. 그 빈자리를 바라보며, 제 부족함에 심히 괴로워, 새벽마다 가슴 아프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말씀이 너무도 우리 교회의 상황과 비슷하게 겹쳐집니다. 혹 여러분들께서는 우리가 봉헌하는 이 예배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복음은 22장 2절을 통해 “하늘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찬지를 베푼 것이 비길 수 있다.”라고 답해줍니다. 하느님이 보실 때 이 예배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피조물인 저와 여러분이 서로 결합되는 혼인잔치입니다. 성체와 보혈로 그리스도가 우리와 한 몸을 이루는 천국의 자리이지요. 우리는 거기에 초대된 은혜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함께 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빈자리가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세상의 잔치, 그 화려함과 즐거움에는 빠지지 않는 우리이지만, 왜 하느님의 잔치는 비워 두고 있는 것일까요? 비단 지금뿐만 아니라, 예수님 시대에도 그랬나 봅니다. 5절을 보면 ‘그러나 초청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라는 말씀이 나오는 걸 보니 말이죠. 비유 안에서 혼인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은 특권을 약속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 엄청난 초청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초청과 부르심, 축복과 은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은, 그에 상응하는 자신만의 무엇인가가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 삶에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5-6절에 나열되고 있는데, 초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이들은, ‘밭’이라는 재산이 있었고, ‘장사’라는 생존 수단이 있었고, 폭력과 살인을 할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초청을 거절한 이들은, 그것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소유하고 관리하고 사용하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이처럼, 내 것을 소유한 사람들은, 복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가능성이 상당히 높습니다. 나를 지켜주는 내 것이 있기 때문에, 잔치로 부르시는 음성이 크게 은혜로울리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선 소유에 만족하고 자만하며, 당신의 부르심을 거절하는 자들의 삶을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7절에 보면 임금이 군대를 풀어서 그 살인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의 동네를 불살라버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즉 우리의 것이라고
여기는 밭과 장사와 힘은, 언제든지 하느님의 손에 의해, 그 통제 아래 사라질 수 있는, 보잘것없는 도구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안전을 보장할 수도, 영원한 만족과 행복을 선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의 주위만 둘러봐도 부르심보다는 주말여행과 늦잠과 맛집을 선택한 이들이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부르시는 잔치에, 그 복음에, 말씀에, 예배에 목숨을 걸기 위해선, 내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합니다. 오직 하느님의 부르심 밖에는 삶의 길이 없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을 하느님이 마련하셔야만 움직이려고 하십니까? 하느님이 우리의 것들을 모두 부숴뜨리고 불태우셔야만, 하느님밖에 없음을 깨닫고, 그제야 울부짖으시려 하십니까? 그때는 너무 늦습니다. 그러니 우리 삶에 하느님의 청소가 시작되기 전, 우리가 스스로 삶의 욕심과 자신감을 정리하고,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성서는 그 결단이 바로 예복을 입는 것이라고 말해줍니다. 부르심에 초청받았을 때, 자신의 밭과 장사와 힘을 생각하며 예배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참여하는 사람인지는, 예복을 입었는지의 여부에 따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예복을 입는 것은, 내 방식대로 달려온 삶의 옷을 벗어 놓은 채, 하느님께서 초대해주신 새로운 삶으로 기꺼이 들어서겠다는 결단을 보여줍니다. 집에 예복이 없어도, 잔치 문 앞에 그 예복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무려 대한성공회에는 130년이나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공동체가 전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삶을 오래전부터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할 일은, 세상이 입혀준 그 옷, 내가 놓지 못했던 그 옷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준비해 주신 새 옷을 입는 것입니다.
지금껏 벗지 않았던 우리의 겉옷을 이제는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오늘 이 성찬례를 기점으로 새롭게 예비 된 하느님의 예복을 집어 듭시다. 우리 공동체의 변화는 오늘 그 예복을 선택함에서 시작됩니다. 대전교구의 모든 교우님들이, 하느님이 마련하신 예복을 입고 있는 신앙공동체가 되기를, 그리고 찾아온 어느 누구의 겉옷이라도 받아들고, 새 예복을 입혀주는 섬김과 열림의 혼인잔치 공동체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