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전서와 후서, 디도서, 이렇게 세 권을 학자들은 목회서신이라고 부릅니다. 목회자들에게 보내는 지침서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는 디모데라는 개인에게 보낸 편지로 되어있습니다. 서신서의 대부분이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이지만 이렇게 개인에게 보낸 편지도 몇 편 있습니다.
저자는 사도 바울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과는 문체도 다르고 사용하는 어휘도 다르며 서신에 반영되어 있는 역사적 배경도 바울이 활동하던 1세기 중엽이 아니라 2세기 초나 중엽에 해당합니다.
1~2절을 보겠습니다.
1 우리의 구주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나 바울은,
2 믿음으로 낳은 참된 아들 디모데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빕니다.
디모데는 유대계 어머니와 그리스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제2차 전도여행 때 발탁되어 바울이 가장 신뢰하는 제자이자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저자는 스스로 사도 바울이라고 주장하며 믿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에게 쓰는 편지라고 주장하지만, 현대 신학자들은 바울이 아니라 바울의 시대로부터 한참 지난 2세기에 바울의 제자가 쓴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자가 바울의 이름을 빌어 편지를 쓴 이유는, 자신이 바울의 신학을 따르는 제자이기도 하지만, 바울의 이름을 빌어야 글의 권위를 극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는 이렇게 바울학파에 속한 제자 중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누군가가 교회에 닥친 여러 위기를 막아내려고 2세기의 목회자들에게 보낸 지침서입니다. 하지만 발신인과 수신인을 바울과 디모데로 설정한 이상, 계속 바울의 이름으로 디모데에게 말하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습니다. 3~4절을 보겠습니다.
3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그대에게 부탁한 대로, 그대는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거기에 있는 어떤 사람들이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고,
4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정신을 팔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러한 것들은 믿음 위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입니다.
2세기에 신화와 족보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교회에 혼란을 주고 있었다는 점을 나타내는 기록입니다. 2세기에는 영지주의가 크게 유행했고, 그들은 신화와 신들의 족보를 알아야 한다며 바울이 전한 복음과는 다른 교훈을 가르쳤습니다. 이어지는 본문 5~7절을 보겠습니다.
5 이 명령의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6 그런데 몇몇 사람은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나서, 쓸데없는 토론에 빠졌습니다.
7 그들은 율법교사가 되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이 본문은 유대 율법주의자들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하는데, 또 다시 율법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범죄자를 벌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필요하지만,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새 시대의 그리스도인을 얽어매는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본문에는 저자가 자신에게 직분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면서 과거 바울이 그리스도인을 핍박했던 일을 언급하며 스스로 죄인의 괴수였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바울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쓴 것이겠지만, 제2차 전도여행 이후 줄곧 동행하며 함께 일했던 동역자에게 이런 글을 쓰는 건 좀 어색합니다. 자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에게 써야 어울릴 내용의 글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18~20절을 보겠습니다.
18 나의 아들 디모데여, 이전에 그대에게 주어진 예언을 따라 내가 이 명령을 그대에게 내립니다. 그대는 그 예언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고,
19 믿음과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선한 양심을 버리고, 그 신앙생활에 파선을 당하였습니다.
20 그렇게 된 사람 가운데 두 사람이 바로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입니다. 나는 그들을 사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그들을 응징해서, 다시는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한 것입니다.
선한 양심을 버린 사람들, 즉 앞에서 언급한 영지주의자들과 율법주의자들이 더 이상 교회를 어지럽히지 못하도록 치리하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