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5일에 사진예술 5월호 140페이지에 있는 대전 이응노미술관에서 열린 <연민> 전시회에 다녀왔습니다. 둔산대공원과 붙어있어 편안한 분위기에서 쉬는 느낌으로 전시회에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코너를 돌며 두 벽면에 걸쳐 길게 이어져 있던 대형 작품이었습니다. 단순히 하나의 평면 벽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벽면의 꺾이는 구조를 따라 작품이 입체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시각적인 몰입감이 더 컸습니다. 여러 개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길게 나열되어 하나의 거대한 서사를 완성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발걸음을 이동하며 마치 한 편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듯한 독특한 관람 경험을 할 수 있어 기억에 남습니다.
이 작품은 물을 많이 묻힌 붓으로 슥슥 과감하게 그려낸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먹이 번진 거친 선들로 채워져 있는데도, 높은 곳에서 아슬아슬하게 일하는 인부들의 움직임과 현장의 긴장감이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세세하게 다 그려 넣지 않고 붓질 몇 번으로 툭툭 그린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공사장의 분위기와 작가가 보여주려는 모습이 머릿속에 확실하게 전달되어서 신기하고 인상 깊었습니다.
김선태 작가의 <무제>라는 작품도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처음 보았을 때는 특별한 형태 없이 캔버스에 붓 가는 대로 막 그린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자리에 서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강렬한 빨간색, 어두운 파란색, 그리고 군데군데 들어간 노란색들이 아무렇게나 칠해진 것이 아니라 각자 어울리는 자리에 딱 맞게 들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핏 보면 거칠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여러 색깔이 서로 겉돌지 않고 위치에 맞게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멋진 작품으로 완성된 것 같아 눈길이 계속 머물렀습니다.
이 작품은 유리가 가진 투명한 성질을 정말 잘 살려내어 만들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맑고 투명한 유리 너머로 겹쳐진 다채로운 색들이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었는데,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거리는 모습이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예뻤습니다. 투명함과 화려한 색채의 조화 덕분에 작품 전체에서 맑고 청량한 분위기가 풍겼고, 바람이라는 제목처럼 시원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시각적으로 잘 전달해 준 작품이었습니다.
전시를 둘러보던 중 권인숙 작가의 작품들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비슷한 구도와 소재로 그려진 그림들 같았지만, 자리에 서서 하나하나 제대로 들여다보니 세부적인 요소나 표현에서 조금씩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각 프레임 속 차이점을 발견해 나가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작품들을 일렬로 평범하게 걸어두지 않고, 높낮이를 다르게 하여 신기한 모양으로 배치해 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배치 덕분에 작품 전체에 율동감이 느껴졌고, 관람하는 재미를 한층 더해준 작품이었습니다.
이강산 작가의 <부산 감천동>이라는 작품은 전시된 환경 덕분에 더욱 몰입해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 자체가 어두운 밤풍경을 담고 있는 만큼, 이를 전시해 둔 공간도 조명을 낮춰 어둡게 조성되어 있어서 그림 속 야경에 온전히 집중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습니다. 사실 부산 감천동에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데, 어두운 전시장 안에서 이 작품을 마주하고 있으니 마치 실제로 어느 높은 곳에 올라 그 동네의 고요한 야경을 멀리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공간의 연출과 작품의 분위기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깊은 여운을 준 작품입니다.
사실 대전까지 이동해야 해서 처음에는 거리 부담도 있었고 지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둔산대공원의 푸른 녹지 사이에 위치한 미술관에 도착하니 주변의 자연환경 덕분에 그 자체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전시된 작품들이 기존에 접했던 다른 전시들과는 다르게 제 개인적인 취향에 깊이 와닿는 것들이 많아서 무척 반가웠습니다. 이동의 힘듦을 잊게 만들 만큼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고, 푸른 자연과 멋진 예술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었던 최고의 기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