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독서의 진미 ‘대하소설 읽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입니다. 야외에 나다니는 일이 봄여름 같지 않은 요즘은 대하소설 한 질쯤 겨울나기 응원군으로 준비해 둘 일입니다. 보온이 잘 된 온돌방에서 다리 뻗고 소설책을 읽는 재미는 계절의 풍류로 즐기는 맛이 괜찮더군요.
저는 최근에 최명희 선생의 ‘혼불’ 전10권을 완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자인 최명희 선생의 심혼이 담긴 유작으로 전라도 지방의 풍속과 언어가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라고 손님들에게 입소문을 내고 있었지만, 직업 핑계로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의 벼락 독서를 했던 탓에 자세한 내용을 풀어 대화라도 나누게 되면 밑천 짧음을 실감하고 뒷전으로 물러나곤 하였는데, 이번에 정독을 하여 소원을 풀었습니다.
‘혼불’은 한(恨)이 중심이 된 소설입니다.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 말기까지의 어려운 역사 속에 펼쳐지는 ‘이씨 문중 종갓집’을 중심으로 한 민초들의 이야기입니다. 나라를 잃은 민족의 한과 남정네들의 정에 외면 받은 여인들의 한, 상민들의 양반님들을 향한 오랜 세월 쌓아온 구원까지 한은 곳곳에 숨어 있다가 틈만 보이면 고개를 쳐들고 일어나 이야기를 끌어갑니다.
남원골 매안 마을 이씨 문중 종갓집, 시할머니‘청암마님’슬하 손부로 시집온 새댁 효원은 신혼 첫날밤부터 남편에게 외면당하고 한을 품고 살지만 대대로 물려온 종갓집의 종부 역을 잊지 않습니다. 일찍 청상이 되어 양자로 대를 이은 ‘청암마님’은 피가 섞이지 않은 아들과 손자를 길러 종가를 잇게 하고, 쇠락해가던 가문의 기운을 되살려 ‘수천석지기’대농으로 명문가의 면목을 지켜냅니다.
이하‘매안의 문중’으로 불리는 양반가의 전통예의범절과 ‘거멍골’로 대표되는 상민들의 삶의 애환이 각기 사연으로 엮어져 숨 가쁘게 전개되고, 나라를 빼앗긴 이 땅의 지식인들이 이민족의 압제에 대해 저항한 기록과 물밀 듯 몰려오는 신문물로부터 가문의 풍도를 지키려는 양반가 어른들의 고뇌 등이 이야기의 전개를 극적으로 만듭니다. 대갓집 ‘이씨 문중’에서 벌어지는 혼례, 상례, 제례 등 행사가 전문서적 이상의 깊이 있는 지식으로 상술되어 독자를 현장에 참석한 당사자처럼 감동에 빠지게 하고, 전라도 지방 고유 방언이 적소에 구사되어 대하소설을 읽는 진미를 맛볼 수 있음은 저자가 독자들을 위해 배려한 값진 선물입니다.
대하소설의 사전적인 의미는 ‘개인이나 가족, 혹은 한 무리의 생애가 오랜 세월에 걸쳐 펼쳐지는 규모가 큰 장편소설’입니다. 단대의 삶이나 사건을 극적으로 그리는 중·장편소설과는 달리 긴 시간의 역사를 그리기 때문에 개인사와 민족사, 혹은 국가사가 함께 전개되기 마련입니다. 위에 설명한 ‘혼불’의 경우가 그러한데, 소설의 줄거리에 연계된 민족의 역사, 풍습, 철학까지 다방면으로 폭넓게 사건을 서술해가는 저자의 박력에 “과연!”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국내외 작가들의 대하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낀 감상입니다마는, 역사를 표현하는 최상의 방법은 소설쓰기가 아닐까 생각해보곤 합니다. 정사(正史)가 살피지 못하는 부분, 즉 민초들의 삶을 여과 없이 그려 분식되지 않은 역사를 읽게 하는 효과야말로 대하소설의 장점일 것입니다.
위에 예로 들은 ‘혼불’과 비슷한 연대기를 기록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박경리 선생의 ‘토지’와 조정래 선생의 ‘아리랑’이 있습니다. 이민족의 침입을 막지 못해 나라 잃은 국민이 된 민초들이 역사의 풍운 속에 휩쓸려 들어 갖은 고초를 겪으면서도 입지를 외치는 장면들이 각별한 감동을 주는 수작들입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에서 나폴레옹 전쟁 당시 러시아의 귀족문화와 전쟁으로 인해 겪는 민중의 고통 등을 읽고 탄식을 했습니다마는, 우리의 대하소설도 역사와 연계된 민족의 시대상을 그린 경우가 많습니다. 앞서 예로 든‘혼불’과 ‘토지’와 ‘아리랑’이 그러하고 춘원 이광수 선생의 ‘마의태자’, 유현종 선생의 ‘연개소문’, 이병주 선생의 ‘바람과 구름과 비(碑)’가 그러합니다. 월탄 박종화 선생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를 비롯한 역사대하소설 연작, 신봉승 선생의 ‘조선왕조 500년’, 이환경 선생의 ‘태조 왕건’, 김성한 선생의 ‘임진왜란’, 김탁환 선생의 ‘불멸의 이순신’이 또한 그러하고, 홍명희 선생의 ‘임꺽정’과 황석영 선생의 ‘장길산’, 최인호 선생의 ‘상도’가 역사의 풍운에 휩쓸려 든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조정래 선생의 ‘태백산맥’과 이병주 선생의 ‘지리산’, 이문열 선생의 ‘영웅시대’와 ‘변경’ 연작, 김성종 선생의 ‘여명의 눈동자’가 분단 조국의 비극을 여과 없이 그려 내고, 최근에 김주영 선생이 29년 만에 마지막 권을 냈다하여 화제가 된 ‘객주’는 조선조 후기 보부상의 애환을 그린 대하소설인데, 선생의 작품은 군도(群盜)들의 활약상을 그린‘활빈도’등 이색적인 내용이 많더군요.
현대사의 부조리한 면을 파헤친 작품으로 고원정 선생의 ‘빙벽’이 있고, 다산 정약용의 일대기를 그린 황인경 선생의 ‘목민심서’도 빠트릴 수 없군요. 최인호 선생의 ‘유림’과 김정산 선생의 ‘삼한지’, 이문열 선생의 ‘요서지’와 유현종 선생의 ‘천산북로’, 김홍신 선생의 ‘대발해’, 정동주 선생의 ‘단야’, 정비석 선생의 ‘손자병법’과 ‘김삿갓 풍류기행’등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명작들인데, 일개 헌책장사의 독서목록에서 찾는 우리나라 작가의 대하소설들만도 이러하니 직접 읽지 못한 책까지 예로 들기로 하면 끝이 없겠네요.
앞서 ‘전쟁과 평화’를 예로 들었습니다만, 러시아 문학의 완역본은 대하소설 아닌 게 드물 정도로 풍성한 두께를 자랑하고,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제국의 작가들이 생산한 소위 명작소설들도 완역본일 경우 “과연!”하는 감탄사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큼 양과 질에서 풍성함이 돋보입니다. 청소년용으로 축약되어 세상에 나온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조너선 스위프트의 ‘갈리버 여행기’, 알렉산드르 뒤마의 ‘몽떼 크리스또 백작’을 읽고 우쭐대던 아둔패기가 완역본으로 다시 대할 때의 감상은 신대륙의 발견과 같은 감동 그대로였습니다.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의 대하소설로 필독도서 목록에 오른 책들도 종류가 대단합니다. 중국 고전으로 소위 4대기서라는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금병매를 비롯해서 홍학(紅學)이라는 학문분야를 만들어냈다는 조설근의 ‘홍루몽’, 한고조 유방과 초패왕 항우의 천하쟁패전을 그린 ‘초한지’, 지괴소설의 대명사 ‘요재지이’, 신선과 요괴의 쟁패전을 그린 ‘봉신방’등 중국의 고전에는 우리가 익히 알던 제목의 책들이 많습니다. 예전에 소개해 드린 적이 있는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망’을 비롯한 일본산 대하소설 역시 국내에 번역된 게 적지 않은데, 요시카와 에이지, 시바 료타로, 시바타 렌자부로, 사사자와 사호 등 일본의 유명 작가들이 여러 가지 버전으로 쓴 ‘미야모토 무사시’는 거의 모두 번역이 되어 있고, 에도시대 무사의 복수극을 그린 모이무라 세이치의 ‘충신장(忠臣藏)’과 명치유신의 주역 사카모도 료마의 전기를 그린 시바 료타로의‘료마가 간다’, 러일전쟁사를 그린 '언덕위의 구름' 역시 시중 서점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일본이 세계 최초의 소설로 자랑하는 ‘겐지모노카다리(源氏物語)’는 서양에서도 고전으로 대접을 받는 명작인데, 호머의‘오디세이·일리아드’, 중세 영국의 고전‘베오울프’, 프랑스의 기사 무훈담 ‘롤랑의 노래’ 등이 서사시 형식으로 쓰였으니 일본인들이 긍지로 삼는 ‘겐지모노카다리’의 세계 최초 소설 운운은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책은 읽는 이의 지적수준과 연륜에 따라 감동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굳이 어려운 학술서적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류가 특히 그러한데, 재차, 혹은 수삼차 읽는 독서에서 젊은 날 읽을 때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을 발견하고 새삼스레 개안을 하였음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나이가 많아지면서 한(恨)을 이해하는 눈이 밝아진 것이라고 풀고 싶은데, 나이 쉰을 일컬어 지천명이라고 부르고 예순을 일컬어 이순이라고 부르는 뜻과 일맥 통한다고 하겠습니다.
저는 소설을 읽는 이유 중에 한풀이의 대리만족이 포함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주 오시는 어르신들 중 한 분의 가족사를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대입해본 결과인데, 일제의 압제 밑에서 만학으로 어렵게 공부하신 그 어르신은 6.25전쟁의 와중에 피해를 입고 야인으로 일생을 사셨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르신의 인생사는 어떤 소설 속의 주인공보다 한의 크기가 작다고 생각되지 않는 절박한 이야기의 연속이었고, 어르신이 주로 읽는 책은 앞서 예로 들은 ‘혼불’과 ‘토지’, ‘객주’, ‘단야’ 와 같은 한(恨)과 정(情)이 어우러진 대하소설들이었습니다.
우리나라 대하소설이 한의 문학이라는 말을 되풀이해서 했습니다마는, ‘혼불’과 ‘토지’가 반가(班家)의 안주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무너지는 반상의 법도와 상민들의 신분상승 욕구를 아울러 그리고 있다면, 정동주 선생의 ‘단야’에서는 아예 최하층 천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천민과 나란히 살아야하는 세태를 탄식하는 몰락 양반의 한(恨)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아직 읽지 못했습니다만, 역시 정동주 선생의 ‘백정’에서는 신분끼리의 충돌이 더 극적으로 나타나 있다고 하니 기회가 닿으면 정독을 할 생각입니다.
금년에도 노벨문학상은 우리나라 작가들을 외면했다고 합니다. 읽었음직한 대하소설들의 제목을 차례로 들추면서 “많이 부족한 내가 읽은 작품들만도 이만큼이나 많은데 왜? 외국의 소위 명작소설에 못하지 않은 걸작들인데……”하고 아쉬워했습니다.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있거든 이 겨울에 꼭 독파를 하세요. ‘문학이 죽었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데, 가장 큰 원인은 ‘써도 읽어주지 않는’ 독자들에게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출판계의 어려운 실정은 말씀드리지 않아도 모두 아실 것입니다만, 독자가 책을 사서 읽어주어야 출판업자들도 살고 노벨문학상도 우리 것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위에 예로 든 ‘백정’과 마찬가지로 아직 읽지 못한 책으로 송기숙 선생의 ‘녹두장군’이 있는데, 작정을 하고 이 겨울 안에 반드시 구해서 읽을 각오이오니, 여러분도 이 겨울 좋은 독서로 뜻 깊은 한해를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대하소설은 과하객님이 지적한대로 독자에게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유익한 소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대하소설은 일단 읽기 시작하면 일정 기간 동안 집중하여 완독을 하지 않으면,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흐름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책을 읽기에 아주 좋은 계절입니다. 장거리 버스나 전철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고, 젊은이나 나이가 좀 든 어른들까지도 스마트폰에 집중하는 것을 보면 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저는 책을 잡으면 주위 상황을 아랑곳 않고 몰두해버리는 경향이 있어 가끔 전철 정류장을 지나치기도 합니다. 책을 잡은 채로 잠든 것 비슷한 상태가 되어 책의 내용의 속편을 이어가는 꿈 비슷한 것을 꾸곤 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이 독서의 가장 큰 적이 된 지는 오래입니다. 동료 책장사들 모두 전업을 생각할 정도로 힘들어 합니다. 요즘 들어 독서철인데도 하루 손님 20명 보기도 힘들어요. 게다가 알라딘이라는 대기업이 서울에 열아홉 군데나 책방을 만들어 놓아 타격이 더합니다. 어찌해야 할지....
학생시절, 방학 때면 장편소설을 탐독하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극장 영화감상이나 여행 등 취미생활을 하기엔 비용도 적지않아 헌책방에서 문고판 소설집들을 구입하여 새벽이 되도록 독서
매경에 빠졌던 기억이 납니다. 이는 신체가 약했던 저는 외적인 활동보다 책을 훨씬 더 선호하였기에 당연한 결과였던 것 같습니다. 장편소설 속에서는 시대를 초월하여 국내 외의 역사적 장소와 사건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간접체험하는 
거움을 갖기에 더욱 그 재미에 빠져들었답니다. 그 중 대하소설은 과거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을 몰입시켜 지나간 역사와 사건을 심도있게 체험시켜주는 재미를 주기에 매우 
미있습니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오늘날 우리 국민은 수험서와 처세서 외에는 책을 거의 읽지 않습니다. 이는 컴퓨터,영화,티비 및 휴대폰과 인터넷의 발달로 소설과 시,수필 등이 아닌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오락과 연예 등에 관심을 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아주 정석대로의 독서활동을 하셨네요. 헌책장사의 입장에서 최고의 우군이십니다. 감사드립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처음 대하소설 읽기에 몰입했던 때가 한창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던 청소년기였던 것 같습니다. 중국 4대기서를 비롯해서 월탄선생의 역사대하소설 연작, 춘원 선생의 전집 모두, 방인근, 김내성 선생 등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에 있던 작가들의 작품, 007시리즈를 비롯한 번역 추리물, 그리고 축약되어 번역한 학원사판 세계명작소설 등....
박계주 선생의 순애보와 심훈 선생의 상록수를 읽고서는 엉엉 울기까지 하고.... 암튼 감정이 넘치는 청소년기를 보냈던 것 같습니다.
춘원 이광수의 '사랑'과 '유정', '무정', '이순신' 등을 읽고 "나도 글쟁이가 되겠다'고 생각한 철부지 결심이 오늘의 헌책장사를 만들어 낸 것 같으니, 청소년기의 독서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가끔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사입될 때면 옛 추억의 자취라도 본 양으로 그리워지곤 합니다. 최근에도 '학원'잡지 청소년 시 모음집을 구해 읽고서는 정신이 멍해가지고 전철 내릴 곳을 지나치기도 하고....
좋은 댓글 주셔서 고맙습니다. 늘 건필하세요.
지난 과거 소설을 좋아했던 저는 그래서 딸애에게도 국문학을 전공시킬까 고려중입니다. 취직을 위해서라면 영어가 낫지만 살아가면서 글을 통한 정신적인 풍요와 아빠의 수필,시문학 취미에 부응하는 목적도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역사를 표현하는 최상의 방법은 소설쓰기' 에 공감하는 바입니다. 소설은 역사에 기대야만 큰 이야기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다 라는 말도 기억 납니다.
참고로 대하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전북 남원에 혼불문학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