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대문구 이문동의 문화유적 찾기
◇ 외국어대학교 세계민속박물관 서울캠퍼스 역사관 : 동대문구 이문로 107
- 2011년에 개관한 세계민속박물관 산하 역사관
1954년 김흥배(金興培)가 학교법인 동원육영회를 조직하여 한국외국어대학으로 설립하였다.
설립 당시 영어과·프랑스어과·중국어과·독일어과·러시아어과의 5개 학과로 편성, 초대 학장에 안호삼(安鎬三)이 취임하였다.
한국외국어대학은 1979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면에 용인 캠퍼스 설립을 인가받고, 1980년에 종합대학교로 개편하였다.
세계민속박물관은 개교 70주년을 맞은 한국외국어대학교의 교육 이념에 맞춰 학생들이 다양한 국가의 전통문화를 더욱 더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세계 각국의 역사와 문화를 여러모로 연구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2009년, 세계민속박물관 산하에 역사관을 설립하여 외국어 대학교의 각종 기구와 단체, 구성원들이 활동한 증거이자 대학 공동체의 공적 자산인 기록 유산을 안전하게 관리·보존하고, 이들의 다양한 정보 활용을 보장하는 기록관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서울캠퍼스 역사관은 본관 앞 미네르바 콤플렉스 3층에 있다.
이 역사관은 한국외대가 걸어온 역사의 발자취를 이해하고 구성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2011년에 전시공간을 마련했다.
현재 역사관에는 160여 점의 역사 기록물이 전시 중이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역사관에는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가 운영 중인데, 상설 전시관에서는 설립자 소개, 역사 전시, 영상 전시, 주제 전시 등이 진행되고 있다.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방문 당시 친필 방명록, 과거(1976년) 캠퍼스 조감도를 포함한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졸업앨범 검색대나 홉스 뉴스와 같은 흥미로운 디지털 자료들도 관람할 수 있다.
역사관 홈페이지에서는 온라인 상설 전시 ‘외대 60년’, ‘키워드로 읽는 외대사’가 운영 중이다.
역사관 한쪽에는 기획 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다.
한편 역사관은 향후 정식적인 대학박물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용인의 세계민속박물관은 현재 3,000여 점의 유물을 보유하고 있다. 수집 유물 중에는 일반 박물관에 소장될 만한 고려시대 도기와 자기, 세계 민속 관련 의상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러한 수집 형태는 이후 역사관이 정식 대학박물관으로 등재되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더불어 역사관은 한국외대에 관련된 디지털 자료를 포함하여 약 30만 점의 기록물을 보유하고 있다.
◇ 전씨(全氏) 시조 환성군(歡城君) 단소(壇所) 및 숭인재(崇仁齋) : 동대문구 이문(1)동 347번지 2호
- 백제의 건국 공신 환성군(歡城君) 전섭(全聶)의 제사를 받드는 제단
한국외국어대학교 남쪽의 경희중 고등학교 옆에는 우리나라 전씨(全氏)의 도시조(都始祖) 전섭(全聶)을 제사하는 제단인 전씨 시조 단소(全氏始祖壇所)와 비각(碑閣) 외에 재실인 숭인재(崇仁齋)가 있다.
이 단소는 백제의 건국공신 환성군(歡城君) 전섭의 제사를 받들기 위하여 일본 강점기 때인 1925년에 (사)전씨중앙종친회에서 세웠다.
이 비각에는 1925년에 세운 환성군 전섭의 비석과 고려의 개국공신 삼충공(三忠公)인, 대구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구하고 전사한 전낙(全樂)과 전이갑(全以甲) ∙ 전의갑(全義甲) 형제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 있다.
비문은 의친왕 이강(李堈) 공이 지었다. 이 단소(壇所)는 1994년 서울 정도 600년을 맞아 ‘서울명소 600선’에 들었다.
『환성군단지(歡城君壇誌)』에 의하면 환성군 전섭은 기원전 18년에 온조왕을 도와 백제를 세우는데 공헌한 십제공신(十濟功臣)의 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다.
온조왕은 고구려 동명성왕 주몽의 3남으로 형 비류와 오간(烏干), 마려(馬黎), 얼엄, 해루, 흘우, 각충, 한세기 등과 함께 무리를 이끌고 남하하여 위례성에 도읍하였다.
이 당시 온조왕은 환성군 전섭 등 10명 신하의 도움으로 나라를 세워 ‘십제(十濟)’라고 나라 이름을 정하고, 10명의 신하를 개국공신으로 봉할 때 전섭을 환성군(歡城君)으로 봉하였다고 전한다.
현재 환성군 전섭의 후손으로 정선∙천안∙옥천∙옥산, 경산∙용궁∙성주∙완산 등 18개 본관(本貫)으로 하는 전씨(全氏)가 있다.
원래 전씨 시조 묘는 북한에 있으나 백제의 도읍지 위례성에 가까운 이곳에 새로 조성했으며,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전국의 전씨가 모여 제사를 지내는 등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현재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에는 전섭을 중시조로 모시는 천안 전씨 시조 단소 및 재실이 있다.
1997년 11월 1일에는 대전광역시 중구 침산동의 뿌리공원에 환성군 전섭의 유덕(遺德)을 기리기 위하여 전씨(全氏) 18개 종파의 후손들이 모여 사적비를 세워 놓았다.
*자료 :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전영택(田榮澤) 집터 : 동대문구 이문동 327-15
- 한국 신문학 운동의 개척자로 목사이고, 소설가인 늘봄 전영택 집터
목사이고 소설가이며, 한국 신문학 운동의 개척자인 늘봄 전영택(1894~1968)이 살던 곳이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19년에 최초 문예 잡지 <창조>의 동인이다.
1923년 일본 아오야마학원 신학부를 졸업, 서울 감리교신학대학 교수를 지냈다.
작품으로는 소설 「독약을 마시는 여인」, 「K와 그 어머니의 죽음」, <화수분(1925년)>, <소(1964년)>, <사철에 봄바람> 등이 있다.
「화수분」은 인간의 원시적 온정과 생명에 대한 외경을 사실적·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전영택은 식민지 시대의 사회 문제와 개인의 삶이 무너지는 것을 다루는 작품으로 출발했으며, 광복 이후에는 기독교적 신앙으로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작품에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