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쌀 한 톨의 의미
|개암 김동출|
오늘 아침, 나는 쌀을 옮겨 담았다. 며칠 전 마트에서 사온 20kg짜리 쌀 푸대를 풀어 쌀통에 옮기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실수 없이 잘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바가지로 조심스럽게 퍼 담았다. 옆에서 아내가 지켜보고 있었지만, 결국 몇 톨의 쌀이 마루에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낟알 하나하나를 주워 담으며 문득 오래전 기억 속으로 돌아갔다.
어느 추운 겨울 저녁, 밥 지을 쌀을 내시던 할머니께서 내게 물으셨다.“얘야, 쌀 한 톨이 얼마나 귀한지 아느냐?”
그때 할머니는 쌀은 단순한 곡식이 아니라 농부들의 인내와 땀, 그리고 눈물이 모여 만들어진 결정체라고 말씀하셨다. 금싸라기처럼 소중하고,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강조하시던 그 말씀이 아직도 내 귀에 초롱하다. 화자는 그날 이후 평생 동안 할머니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아왔다. 오늘 아침 흘린 몇 톨의 쌀을 주워 담는 순간, 그 기억이 다시금 되살아나며 쌀 한 톨의 무게와 의미를 깊이 되새기게 되었다.
농부가 쌀 한 톨을 우리 밥상에 올리기까지 쏟는 정성과 수고는 예로부터 ‘米’라는 글자 속에 담겨 전해진다. 쌀 ‘미(米)’ 자는 여덟 팔(八) 두 개와 열 십(十)이 합쳐진 글자로, 농부의 손길이 여든여덟 번 닿아야 비로소 쌀 한 톨이 나온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한다. 이 ‘88번의 손길’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계절을 건너는 농부의 땀과 염원을 상징한다.
1. 쌀 한 톨을 위한 88번의 여정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지는 농부의 삶은 단순한 노동의 나열이 아니라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긴 여정이다. 봄에는 볍씨를 고르고 소독하며 싹을 틔우는 일로 시작한다. 작은 씨앗 하나에도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겨 있고, 모판에 씨를 뿌리며 논을 갈고 물을 대어 써레질을 하는 과정은 마치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의식과도 같다.
여름이 되면 본격적인 모내기가 시작된다. 논물의 깊이를 살피고 잡초를 뽑으며, 비료를 주고 병충해를 막는 일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다. 태풍이 몰려올까 논둑을 보수하며 하늘을 바라보는 농부의 눈빛에는 간절함이 서려 있다. 뙤약볕 아래서도, 장맛비 속에서도 농부는 논을 떠나지 않는다.
가을이 오면 기다리던 결실의 시간이 찾아온다. 벼를 베고 탈곡한 뒤 햇볕에 말리며, 도정하여 포장과 운반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한 해의 땀과 인내가 결실로 맺어지는 순간이다. 황금빛 들판은 농부의 발걸음과 손길이 빚어낸 작품이며, 그 속에는 가족의 밥상과 마을의 풍요가 담겨 있다.
“벼는 농부의 발걸음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는 옛말처럼, 농사의 모든 과정은 단순한 노동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감사와 기도의 시간이다. 씨앗을 뿌릴 때는 희망을, 논을 지킬 때는 인내를, 벼를 거둘 때는 감사와 기쁨을 담는다. 농부의 삶은 계절의 흐름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호흡하는 가장 오래된 노래이자, 오늘도 이어지는 기도의 길이다.
2. 수치로 계산해 본 쌀 한 톨의 가치
현대 농업이 기계화되었다 해도, 쌀 한 톨에 담긴 노동은 결코 가볍지 않다. 쌀 한 가마니(80kg)에는 약 440만 톨의 쌀알이 들어 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아르(약 300평)의 논에서 쌀 한 가마니를 수확하는 데 평균 10~12시간의 노동이 필요하다. 이를 단순 계산하면 쌀 한 톨에 들어가는 시간은 약 0.01초 남짓이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뒤에는 180일 동안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농부의 기다림과 염원이 녹아 있다. 결국 쌀 한 톨은 단순한 수치가 아니라, 한 해의 계절을 바친 농부의 땀방울 그 자체다.
칠순인 화자는 유년시절을 농촌에서 자랐다. 요즘은 농삿일이 기계화되어 모내기와 벼 베기가 수월해졌지만, 어린 시절에 보고 겪은 농사란 참으로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소를 몰아 논밭을 갈고, 아낙네들이 손으로 모를 심던 그 시절, 농번기에는 죽은 귀신도 깨어나 일한다는 말처럼 모두가 논으로 나섰다. 봄에는 보리타작과 모내기를, 여름에는 풀베기와 논매기, 농약 살포와 가뭄에 물 퍼 올리기를, 가을에는 벼 베기와 거름 내기를 했다. 화자의 집에서는 마당에서 벼 타작을 했기에, 논에서 베어낸 나락을 남자들은 지게에 지고 여성들은 머리에 이고 날라야 했는데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부모가 바쁘면 자식도 함께 일손을 도울 수밖에 없는 것이 농촌의 삶이었다.
반도체가 쌀이된 오늘날, 도시의 청소년들은 매일 밥상에 오르는 쌀이 어떻게 태어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심지어 과일처럼 ‘쌀나무’가 있다고 믿는 이도 있다. 그러나 옛날 농촌의 부모님들에게 농사는 삶의 가장 무거운 짐이었다.
천수답 다랑논은 하늘의 비에 운명을 맡긴 채, 가뭄이 들면 논바닥은 거북이 등처럼 갈라져 농부의 가슴을 찢어놓았다. 애써 모내기를 해도 가을이면 쭉정이만 남았으니, 작은 쌀 한 톨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 한 알 속에는 땀과 눈물, 그리고 생명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너무도 달라졌다. 우리 어린 시절, 가장 귀한 일용품은 다름 아닌 쌀이었다. 시골 부모님들의 가장 큰 기쁨은 외지에 나간 자식에게 쌀 한 자루 보내는 일이었는데, 이제 쌀의 가치를 마음 깊이 새기는 사람은 우리 같은 노인뿐이다.
지금은 하늘의 별이 되신 조상님들. 의식주 어느 하나 넉넉하지 않았던 그 시절,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배고프면 배고픈 대로 맨몸으로 견뎌내셨다. 그 위대한 인내와 헌신이 오늘 우리의 행복을 꽃피웠음을 떠올리면, 가슴이 저릿하게 뭉클해진다.
2026-07-09
첫댓글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