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이야기
대한해협 해상에서 두번쨰로 적 선박과 접촉하였는데 4척으로 구성된 콘보이였습니다.
그래서 3척을 향해 각 전방 어뢰 2발씩으로 공격하였는데, 6발중 4발이 빗나가고 2발은 명중하여 7500톤급 상선 하나를 격침시켰습니다.
저는 병원선을 제외한 나머지 2척을 보내줄 생각이 없으므로 다시 추적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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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해가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재교전을 위해 추격하되 다시 거리를 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잠수속도가 최대 7노트로 너무 느리기 때문에 물 위로 올라올 필요가 었으니까요.
빨간색은 적 콘보이의 침로이고, 파란색은 거리를 8000m 벌리기 위해 해둔 표시입니다. 자함이 파란색 바깥으로 나올때까지는 물 속에 있어야 발각되지 않습니다.
대략 8000m까지 거리를 벌렸습니다. 이제는 물 위로 나와서 디젤을 태웠습니다.
물 위로 나와서 레이더로 계속 콘보이를 추적했습니다. 우현 75도, 거리 12000m.
그런데 선미쪽에서 어떤 선박이 저를 맹렬히 쫓아왔습니다.
불행히도 구축함이었습니다. 아마도 공격 초기에 저를 폭뢰공격했던 그 녀석이 다시 콘보이와 합류하며 저를 쫓아온 듯 했습니다.
구축함을 떨쳐내려 시도했으나 끈질겼습니다. 또한 해안쪽이라서 수심이 너무 얕았습니다.
결국 저는 더이상 리스크를 감내할 수 없다 판단하였고, 콘보이와 접촉도 끊겨서 공격을 포기했습니다.
이쯤되니 일본해군의 대잠역량도 향상되었습니다.
디코이 한 발에 기만당하던 모습을 떨쳐내고 저를 위험한 지경까지 몰아갔습니다.
일단 구축함은 떨쳐내었고 사세보 - 부산코스를 노리며 몇일간 초계임무를 다시 수행하였습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정크선 2척을 제외하면 적 선박과 접촉하는데 실패하였고, 승조원들의 컨디션도 악화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저는 귀항을 기대하고 COMSUBPAC에 보고하였습니다.
하지만 COMSUBPAC의 답신은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COMSUBPAC은 11-B지역으로 간 뒤에 동중국해 해상에서 5일간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하라 명령하였습니다.
귀항을 기대했으나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대만과 중국 남동쪽 - 오키나와 사이의 해운을 노려야 하겠습니다.
1944년 9월이 다 되어가니 유럽전선에서 반가운 소식들이 날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1944년 8월 25일에는 파리가 해방되어 축하 대행진이 열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프랑스는 레지스탕스의 나라이자 나치에게 가장 협조적이었던 나라이기도.
한편 저는 작전지역인 동중국해 해상에 도착했습니다. 초계코스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초계를 시작하자마자 소나로 미상상선을 감지했습니다. 좌현 60도.
대략 40분 정도 패시브 소나를 이용해 추적해본 결과 미상상선은 서쪽으로 향해하고 있었습니다. 좋습니다.
추격을 위해 물 위로 나왔습니다. 마침 해도 지고 있으니 타이밍도 딱 좋았습니다.
드디어 레이더로 미상상선의 위치를 감지했습니다.
좌현 30도, 거리 20000m.
한참을 레이더로 추적한 끝에 미상상선들의 실루엣을 육안으로 포착했습니다.
좌현 70도, 거리 16000m. 미상상선의 침로는 딱 좋았습니다.
그저 제가 속도를 내서 추월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지지는 않았으므로 잠수해야한느 지점을 따로 표시해뒀습니다(파란색).
생각보다 추격에 시간이 걸려서 해가 완전히 져버렸습니다.
미상선박들의 침로가 생가보다 깊지 않아서 재작도 했습니다.
좌현 105도, 거리 9000m. 아직은 좀 더 추월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실루엣이 확연해졌습니다. 선박을 식별합니다.
먼저 후방의 선박은 흘수 8.0m짜리 11800톤급 여객/화물겸용 수송선이었습니다.
선두의 선박은 흘수 8.8m짜리 7800톤급 화물선이었습니다. 둘 다 매력적인 타겟입니다.
좌현 128도, 거리 7600m. 매복지점이 머지 않았습니다.
좌현 46도, 거리 5400m. 밤이니까 여유있게 공격가능범위까지 접근가능합니다.
좌현 38도, 거리 3400m. 이제는 잠망경 심도로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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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잉 제일 토실토실한걸 놓쳐버리고 괜히 침만흘렸구랴
그래서 한동안 잠수함 내부의 습도가 올라갔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