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인 것 같다. 둘러보니, 해안선이 온통 검은 바위로 이루어진 바닷가다. 검은 돌들 사이
로 밀물져 들어온 바다가 박명 속에 빛난다. 뒤를 돌아보자, 칠흑같이 검은 바위들은 지평선까지
펼쳐져 있다. 반도 전체가 검은빛으로 덮여 있는 것이다. 한반도는 아닌 것 같다. 어떤 조그만 나
라다. 이미 멸망해버린, 모두가 땅속 깊이 숨어버린 지구의 한켠이다.
내가 거기 서 있는 것은 마흐무드가 죽었기 때문이다. 어떤 경로를 통해서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그 소식을 들었다. 파도가 발치까지 일렁대는 검은 바위 위로 나는 올라선다. 들고 있던 피리를 불기 시작한다. 단순한 생김새의 목각 피리에서는 대금의 중간음 같기도 하고, 팬파이프 소리 같기도 한 신비한 음색의 선율이 흘러나온다. 노래는 고요하다. 내 몸속에 고여 있는 어떤 샘물을 마지막까지 퍼내, 나는 온 힘을 다해 피리를 분다. 만일 영혼이라는 게 있는 거라면, 그래서 어딘가 마흐무드의 영혼이 있다면, 내 피리 소리가 간절한 ‘끝’에 다다를 수 있다면, 그 아름다움이 그에게 닿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다. 내 몸은 조용히 떨린다. 간절하게, 더 간절하게. 기도처럼. 참회처럼.
어디선가 내 뒤편에서 먼 피리 소리가 응답해온다. 비슷한 음색이지만 곡조는 다른 고요한 노래
다. 그 소리에 응답하여, 이번에는 더 먼 뒤편에서 아련한 피리 소리가 울려온다. 피리 소리의 릴
레이는 계속되어, 어디까지 퍼져나가는지 알 수 없다. 나는 입술에서 피리를 떼어낸다. 지상의 것 같지 않은 그 화음들이 어두운 바다 위로 번지는 것을 듣는다.
그때,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나에게 다가와 말한다.
피리를 불었으니, 너희는 이제 모두 쫓기는 몸이야.
나는 놀라지 않는다. 아마 그럴 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노래를 나에게 팔아.
남자는 말한다.
늦기 전에 팔아. 내가 언제나 여기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대답한다.
마흐무드 슈카이르가 죽었어. 마흐무드 슈카이르가 죽었다는 게
뭘 말하는 건지 너는 모르지. 마흐무드 슈카이르가 죽었기 때문에 피리를 불었던 것뿐이야. 만의 하나라도, 그가 그 소리를 들었으면 하고 바랐을 뿐이야. 그게 다야. 그게 다라는 걸 너는 몰라. 절대로 알 수 없겠지.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린다.
그럴 줄 알았어.
남자는 말한다.
네가 승낙하지 않을 줄 알고 있었어. 알면서 말해본 것뿐이야.
비웃음을 입가에 머금은 채, 남자는 나에게서 등을 돌린다.
은빛과 검은빛이 뒤섞인 바다가 여전히 내 눈앞에서 일렁거리고
있다. 짙은 푸른색의 공기. 끝없이 펼쳐진 검은 바위들.
눈을 떴을 때, 아직 동이 트지 않았고, 꿈에 흘린 눈물이 생시에도 따뜻했다. 몸을 일으킬 수 없었
던 것은, 그때까지도 내 귀에 남아 있던 피리 소리 때문이었다. 내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다면 얼른 책상으로 달려가 그것을 기록할 수 있었을 테지만, 나는 꼼짝 않고 누워 있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의식 저편으로 차츰 사라져가는 노래에 끝까지 귀를 기울였을 뿐이다.
그렇게 아름다운 음악을 나는 처음 들었다. 그 이상하고 선명한 꿈속에서.
2
내가 마흐무드를 만난 것은 찌는 듯한 여름날의 오후였다. 그가 강한 아랍 악센트로 자신의 이름
을 소개했을 때, 나는 그의 성(姓)을 잘 알아듣지 못해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슈카이르, 슈카이르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왔습니다.”
그는 삼분의 이쯤 하얗게 센 머리에 흰 콧수염을 길렀고, 흰 셔츠와 베이지색 면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딘가 슬픈 얼굴, 깊은 눈을 가진 늦은 중년의 남자라는 첫인상이었을 뿐, 그와 친구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다. 아마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말이 국제 창작 프로그램이지, 퍼내도 퍼내도 넘쳐나는 개인 시간이 대부분이었던 아이오와 대학의 삼 개월. 열여덟 나라에서 날아온 시인과 소설가들 속에서 나는 자유스럽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냈다. 여러 사람들과 마음을 터놓고 지낼 수 있었지만, 마흐무드는 그 중에서도 가장 다정한 내 친구였다.
그와 함께 저녁까지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거리를 헤맸던 날을 기억한다. 햇빛이 좋은 날 미술관
앞 잔디밭에 나란히 앉아 오랫동안 강물을 바라보았던 것을 기억한다. 함께 웃고, 걷고, 때로 눈
물 흘릴 만큼 공감하며 속내를 나누었던 시간들을 기억한다. 이십여 년의 나이 차이, 인종과 문화의 차이, 남자와 여자라는 것……을 한번에 건너뛰어, 나는 두 사람을 둘러싼 시간의 빛과 평화를 맨손으로 어루만지는 기적을 경험했던 것 같다.
3
그가 나에게 준 약초들을 서랍 깊은 곳에 넣어두고 있다. 아이오와에서 내가 위를 몹시 앓았을
때, 그는 내 방문을 두드리고 처음 그 약초 다발을 건네주었다.
“‘메라-미야’야. 뜨거운 물에 우려서 마시면 몸을 이완시켜주고, 속을 풀어줘. 난 언제나 병원에 가지 않고 이걸 먹어.”
강렬한 향과 쏘는 맛의 그 푸른 약초는 과연 효력을 발휘했다. 완전히 낫지는 않았지만, 이완 효과는 분명했다. 먼저 아이오와를 떠나면서 그는 남은 약초를 나에게 모두 주고 갔다. 일 년에 두 번, 그는 서울의 내 집으로 메라-미야를 보내오곤 했다. ‘지금쯤 떨어졌을 것 같아서.’ 피비린내 나는 예루살렘에서 날아온 두툼한 종이 봉지를 열면, 로즈마리 향을 닮은 특유의 냄새가 집 안에 번진다. 독하고 아린 그 냄새……. 치유란 언제나 그렇게 독한 면을 품고 있는 것일까. 사랑이, 또는 글쓰기가 그런 것처럼.
4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그의 땅 팔레스타인은 소개(疏開)됐다. 그날 밤의 굉음과 빛, 비명 소리들을 잊을 수 없다고 그는 말했었다. 젊은 시절부터 해방전선에 가담했던 그는 두 차례, 각각 이 년 간 이스라엘의 감옥에 투옥됐었다. 파란 많은 정치적 이력과는 달리, 그의 소설들은 남자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섬세한 것들이었다. 사랑과 추억,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슬픔과 두려움, 찰나의 예민한 아름다움…… 속에 깊숙이 몸을 담그고 있던 그의 짧은 소설들.
그는 평생에 걸쳐 다섯 여자를 사랑했고, 그 사랑들이 아니었다면 자신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타이타닉」 같은 영화를 보면서도 난 눈물을 흘려. 그게 어떤 사랑 이야기든, 언제나 울게 돼.”
그의 사랑이, 그의 글쓰기와 같은 방식으로 그의 삶을 지탱해주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거의 시에 가까운 짧은 소설들을 쓰며, 때로 마음을 다해 여자들을 사랑하면서, 그는 그렇게 예루살렘의 하루하루를 버텨나가고 있을 것이다. 만일 아직 살아 있다면.
5
그 꿈을 꾼 것은 지난해 겨울의 일이었다. 꿈을 꾼 지 사흘 뒤에야 그에게 이메일을 보냈던 것은,
답장이 오지 않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마흐무드, 오랜만이야. 어젯밤 당신의 꿈을 꿨어. 그
저 슬픈 꿈이었다고만 해둘게……”라고 시작되는 편지를 보낸 다음날 오후, 그의 답장이 날아왔
다. 그는 죽지 않았던 것이다.
“실은 네 편지를 받기 사흘 전에, 두 시간 동안 네 생각을 했었어. 그런데 너는 내 꿈을 꾸었다니.
인생이란 신기하군. 너는 서울에, 나는 예루살렘에 있지만, 우리 기억은 함께 있는 거라니.”
사소한 일이지만 나는 조금 놀랐다. 나는 ‘어젯밤’이라고 편지에 써 보냈으나, 그것이 실은 사흘 전의 꿈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의 세계는 그런 것일까, 하는 생각을 그때 했다. 그 뭉쳐진 핵(核) 속에서, 빛만큼이나 빠르게 우리의 영혼은 소통하는 건가. 비록 육체들은 펼쳐진 세계의 양 끝에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리고 그는 썼다.
“네 건강이 그다지 좋지 않다니 걱정이야. 오늘 밤부터 잠들기 전에 널 위해 기도하겠어. 지금은
새벽 두시야. 먼저 기도하고, 자러 가려고 해.”
며칠이 더 흘렀을 때, 저녁부터 위경련을 앓았다. 새벽까지 통증을 견디다 눈을 감았다. 얼핏 무
덤 같은 잠에 들었던 것 같다. 여섯시쯤 눈을 떴을 때 나는 나아 있었다. 십 년째 이 돌발적인 경련을 앓아왔지만, 이런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멍한 의식 속으로, 마흐무드가 기도한 건가, 하는 생각이 문득 걸어들어왔다.
거실에 나와 창문을 열어보니, 조금 전에 내렸는지 발자국 하나 없는 흰눈이 아파트 안뜰에 고요
히 쌓여 있었다. 나는 서늘한 그리움을 느꼈다. 오래전에 알았던 사람이며, 평소에는 거의 잊고 지냈던 사람, 윤곽은 이미 흐릿해지고 이미지와 뼈대로만 남은 그 사람이 나는 그리웠다. 닿을래야 닿을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는, 부재하는 것과 다름없는 사람. 누군가는 무용하다고 비웃을 관계.
무용한 축복, 무용한 그리움. 비현실적일 뿐인 믿음. 그러나 그 순간, 매우 현실적으로, 나는 그것
들에 의지하고 있었다.
알 만한 나이가 됐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리운 것임을. 수많은 형태의 사랑의 허구를, 환멸의 배면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을. 그토록 쓸모없고 연약한, 부서지기 쉬운 찰나의 진실, 찰나의 아름다움만이 때로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을. 심지어 치유의 힘이 되기도 하는 것을.
6
봄이 다 가도록 그는 답장하지 않는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먼저 내 안부를 물었고,
누구보다 빠르게 답장을 썼다. 관계에 있어서 그는 성실하다. ‘끝’을 곁에 두고 살아가는 종류의 사람들이 늘 그렇듯이. 언젠가, 오래전에 그는 편지에 썼다. 만일 내가 더 이상 편지하지 않으면, 내가 죽었다고 생각해도 좋아. 나는 그 말에 과장이 있는 거라고, 글쓰는 사람 특유의 엄살이 배어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는 답장하지 않는다. 날마다 국제면에는 피 흘리는 팔레스타인이 보도되고, 신문을 넘기는 내
마음은 은밀히 떨린다. 시국이 그토록 격렬하니 한가하게 먼 나라로 이메일이나 쓸 경황이 없을
것이다. 컴퓨터를 사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가 짐작하기 어려운 고통스러운 일상을 겪고 있을지도 모른다. 최악의 경우라면…… 그쯤에서 나는 생각을 멈춘다.
7
언젠가 그가 답장을 보내오면, 메라-미야를 더 보내달라고 할 것이다. 당신이 예전에 보내준 것은 다 먹어버렸어, 라고 쓸 것이다. 그것은 거짓말이다. 나는 그 약초를 여간해서 먹지 않을 것이다. 몇 장의 편지와 카드 외에, 그것 말고는 그가 나에게 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내 허약한 기억을, 하루하루 허깨비처럼 희미해져가는 먼 시간들을 증거해주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8
그 새벽, 검은 바닷가의 피리 소리.
그 꿈은 무엇을 말하기 위해 나에게 찾아왔던 걸까. 융의 말대로, 무의식이 나에게 보내오는 메시지가 꿈이라면, 나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무엇을 가르쳐주고 싶었던 걸까.
그 꿈을 꾸었던 겨울, 나는 오랫동안 몸이 아팠고, 지쳤고, 하루하루 황폐해져갔었다. 거짓말밖에는 할 말이 없어, 차라리 영원히 입을 다물고 싶었다.
아름다움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그렇게 가장 아름답지 않은 순간이라는 걸까. 꿈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잠시도 깊이 잠들 수 없을 만큼 영육이 망가진 바로 그 찰나라는 걸까. 가장 불행한 시간, 모든 아름다움에 침을 뱉고 짓밟는 시간. 자신을 증오하며 외면하는 시간. 짐승의 시간, 타락의 시간에 그 간절한 피리 소리는 어떻게 어두운 바다에 울리는가.
그것은 어쩌면 마흐무드가 추구했던 세계와 얼마쯤 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폭력과 불안, 고
통의 현실 속으로 그가 쓸쓸히 불러들였던 자신만의 세계처럼, 내가 놓지 말아야 할 마음은 그런
것일까. 그 피리 소리를 잊지 않고, 그 순간의 떨림을 손바닥에 새기고 가야 하는 건가. 죽은 자의 영혼에 가 닿을 만큼의 절실함으로. 검은 코트를 입은 남자에게 대꾸했던 나의 말대로, ‘그게 다’라는 담담함과 고요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