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사진이 될 것이라 꿈에도 몰랐을 얼굴들이 별처럼 환하게 빛났다. 그럴수록 억울하고 먹먹한 마음 꾸역꾸역 삼키며 한 명, 한 별 바라보았다.
2년 전 10월 29일, 연습하고 귀가하던 늦은 밤 이태원에서 일어난 참사 소식을 접했다. ‘압사’라는 단어가 낯설어 처음에는 건물이 무너져서 사람들이 깔려 죽었다는 건가 싶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처음 든 생각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나 하는 것이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군중 밀집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죽었단 말인가.
이태원에서 가까운 곳에서 살았던 때라 앰뷸런스 소리를 들으며 밤새 뒤척였다. 다음날 아침 마주친 빌라 입주민 청년들과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혹시 우리 중에서 그곳에 간 사람 있을까?’. 그래, 절대 남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나와 우리의 이야기구나.
10년 전 지방에서 대학원을 준비하고 있던 시절, 뉴스를 통해 침몰하는 세월호를 바라보면서도 그랬다. 어떻게 저런 일이 생길 수 있냐는 울분, 그리고 저 많은 생명들이 속절없이 떼죽음 당하는 것을 발 동동 구르며 바라볼 수밖에 없는 무기력함이 있었다. 누구도 책임지려 하지 않으니 사과는커녕 분명한 진상규명조차 회피하는 국가의 비겁함, 아니, 폭력. 이 모든 혼란 속에서 참사는 정쟁의 이슈로 이용되고 유가족에게 쏟아지는 2차 가해와, 애도조차 그 진정성을 의심받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남은 자들은 침묵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되풀이되는 참사, 또 참사.
이태원 참사 원인에 대해 여러 언론 보도를 접했지만 이날 유가족분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단번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다소 충격적이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출범한 현 정부가 이태원에 사복 경찰을 배치해 잠복 수사를 지시했고, 참사가 벌어지는 순간에도 시민들의 안전은커녕 되려 그것을 인질로 수사를 진행했다는 것이다. 참사 직전 그렇게 많은 신고가 빗발치는데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참사 직후에는 수많은 사상자를 피의자 취급하며 앰뷸런스에 가족도 태우지 않았으며, 사망 후 3개월이 지난 시점에 통장조회를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다고 말씀해주셨다.
기억해주세요, 지켜봐주세요.
이렇게 찾아와서 이야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하시는 유가족께서 거듭 전한 마음이었다. 제대로 된 추모공간도 없이 이곳저곳 전전하며 몸도 마음도 지치지만 이렇게 기억하고 지켜보고 함께하는 시민에게서 우리의 힘이 나온다고 하셨다. 책임자들이 처벌받고 탄핵 되어도 159명의 별들이 살아 돌아올 수는 없다. 그래서 모든 특별법은 유가족의 피눈물로 만들어진다. 마땅히 외쳐야 할 때 침묵한다면 그 대가는 침묵한 자의 몫이 된다. 각자 알아서 살아 남으라고, 살아 남았으면 국가 발전에 헌신하라고 강요하는 억압에서 벗어나 다시는 이 현실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라는 것, 우리가 연결된 생명이라는 것 기억하며 잡은 손 굳게 붙들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