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변화산에서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
귀신들린 간질 소년을 고침,
서로를 영접하는 제자의 길
(찬송 31장)
2023-3-31, 금
맥락과 의미
8장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 그리스도의 왕국을 세우신다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앞으로 11장에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한 후, 그 주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입니다. 그 사이 8-10장에서는, 계속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제자의 길에 대해 복음을 전파하십니다.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시기 전에, 십자가의 복음을 계속 전파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는 복음 전파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들읍시다.
1. 변화산 위에서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 십자가의 가르침(1-13절)
2. 귀신들려 간질 걸린 소년을 고치심(14-29절)
3. 십자가의 죽음 예고, 제자들은 화목해야 함(30-50절)
1. 변화산 위에서 영광의 모습으로 변화, 십자가의 가르침(1-13절)
제자들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이 있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1절). 엿새 후에 그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세 명의 제자들만 데리고 예수께서는 “높은 산”으로 가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낮아져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우리와 함께 높아지셔서 얻으실 그 영광이 이 세상 가운데 나타납니다.
출애굽기에서도 모세는 장로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갔습니다. 산 중턱에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그들에게 성찬을 베푸셨습니다. 그 후, 6일 동안 산에 영광이 머뭅니다. 7일째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셔서 모세가 홀로 구름 속으로 들어갔습니다(출애굽기 24:15). 그때 일은 지금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 선지자를 대표하는 엘리야가 나타났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대화했습니다(4절). 베드로는 그 세 사람을 위해 성막 세 개를 짓겠다고 말합니다(5절). 그는 과거 조상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내산에서 천막으로 만든 성막에 하나님의 영광이 구름 가운데 나타난 것을 생각한 듯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완성되어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그때 구름이 그들을 덮었습니다.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7절). 하나님이 그 아들을 증거하셨습니다. 이것은 시편 2:7의 말씀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말에 더하여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도 나옵니다(마태복음 17:5, 이사야 42:1). 구약에서 예언한 그 메시아=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라고 하나님이 증거하십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7절). 하나님은 전에도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지니라”(신명기 18:15). 예수가 바로 그 선지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들으라고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사도행전 3:22-26, 7:35-37). 모세의 율법, 엘리야가 대표하는 선지자가 증거한 그리스도가 바로 이 예수입니다.
구름은 사라졌습니다. 세 명의 제자들은 오직 예수님과 자기들만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8절). 예수님은 산에서 내려오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사람들이 고난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영광의 그리스도만 아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제자들은 물었습니다. “서기관들은 그리스도보다 먼저 엘리야가 와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가 메시아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말라기4:5). 예수님은 답하십니다. “그 엘리야가 왔지만 사람들이 함부로 대했다.” 여기서 엘리야는 세례 요한을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말씀해주십니다. “인자”이신 예수님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12절).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예고하신 두 번째 말씀입니다.
변화산 위에서 보인 그 영광은, 아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내려놓으셨던 원래의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우리도 그 영광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셔야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성도도 그 고난에 참여합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한 세례 요한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제자들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도 고난을 통해 부활의 영광에 들어갑니다.
2. 귀신들려 간질 걸린 소년을 고치심(14-29절)
세 명의 제자들과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실 때였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귀신들려 간질 걸린 소년을 고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벙어리 귀신”(영이라는 뜻, 17절), “더러운 귀신”(더러운 영, 25절) 때문에 그 소년은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귀신은 소년에게 간질을 일으켰습니다. 넘어뜨리고 물과 불에 던졌습니다. 소년은 지금까지 귀신에게 시달리며 살아왔습니다(21절).
그 불행한 소년을 앞에 두고 서기관들은 제자들과 변론만 하고 있었습니다(16절). 말로 따지기만 했습니다. 성경 지식은 많아도 믿음이 없는 자들은 이렇게 무능합니다. 제자들도 고치지 못하고 무능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19절). 제자들도 아직 믿음이 아주 약했습니다. 더러운 영에 눌린 소년을 해방시키지 못하는 서기관들과 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소년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할 수 있거든 도와 주소서,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님이 대답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23절).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 소년의 아버지에게 배웁시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24절). 우리도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믿기로 결심합시다.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도 그리스도께서 도와주셔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믿음을 일으키시는 것과 우리가 “믿나이다” 하고 고백하는 것이 함께 일어납니다. 여기에 믿음의 신비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소년을 귀신에게서 해방하려 이미 결심하셨습니다. 그러나 소년의 정서와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이 아닙니다. 그의 아버지와 나아가 그 소년에게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와의 관계 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 궁극적 목적입니다. 영혼이 치유 받고 육체(정신)도 치유 받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아버지에게 믿음을 일으키신 다음에 귀신을 꾸짖었습니다. 쫓아내셨습니다. 소년은 죽은 듯이 되었으나, 그리스도께서 일으키셨습니다.
제자들이 묻습니다. “우리는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기도를 통해서만 할 수 있다.” 예수님의 대답입니다.
오늘 말씀은 세 가지 교훈을 줍니다.
첫째,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마귀의 권세에서 벗어나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둘째, 제자들과 지금 우리들도 믿음이 약해지곤 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고 기도합시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에 심어진 말씀에 불을 질러 타오르게 합니다(에베소서 6:18).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고 더러운 영들을 이기고 거룩한 성령님을 따라 새롭게 살아갑시다.
셋째, 귀신이 떠나가며 소년이 죽은 듯하다가 일어난 것(27절)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9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 소년과 또한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한 것입니다.
함께 기도합시다. 기도해야 우리가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고 믿음에서 성장합니다. 욕심과 탐욕, 더러운 말 등을 만들어내는 악한 영들에 빠진 사람들이 거기서 벗어나 우리와 함께 거룩한 삶에 참여하도록 기도합시다.
3. 십자가의 죽음 예고, 제자들은 화목해야 함(30-50절)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히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십니다. 갈릴리는 그냥 통과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한다는 복음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31절). 제자들은 깨닫지도 못했습니다. 묻기도 무서워했습니다(32절). 그들이 아직 깨닫지 못해도 예수님은 복음의 지식을 그들에게 심습니다. 나중에 성령님이 임하셔서 그 말씀을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가족과 친구들에게 끈기를 가지고 복음을 나눕시다. 우리가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 말씀을 사용하여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쓰시는 도구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제자들에게 섬김의 길을 가르칩니다. 33절, 제자들이 길 가는 중에 “누가 크냐?” 하며 다툰 이야기는 “서로 화목하라”(50절)와 앞뒤가 같이(수미쌍관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곧 제자들 중에, 그리고 교회 안에서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어린아이를 안으시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라.” 어린아이같이 보잘것없어 보이는 성도라도 그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기 때문에 영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환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성도를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그리스도와 또 그리스도를 보내신 성부 하나님을 환영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37절).
그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서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금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39절). 당장 함께하지 않는 그들도 크게 보아 그리스도의 일을 하기 때문에 수용해야 합니다. 우리와 기본적인 신앙에서 일치하는 사람과 교회들이 작은 것에서 다른 점이 있어도 사랑하고 관용합시다. 심지어 시기심 때문에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을 볼 때도 사도 바울과 같이 이렇게 생각합시다.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기뻐하리라”(빌립보서 1:18).
섬기는 자에게 복을 약속하십니다. 우리가 성도들과 특히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그들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이유로 물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면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믿는 “작은 자 중 하나”(42절), 즉 성도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큰 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 지는 것이 낫습니다. 실족하게 하는 것은 성도들의 믿음이 넘어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목에 돌을 메고 죽으라는 것은 과장법입니다.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일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으로, 발로, 눈으로 다른 성도들에게 범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말씀하십니다.
결론으로, 50절,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소금은 구약 소제물에 넣는 “언약의 소금”(레위기 2:13)을 말합니다. 성도들이 서로를 환영하여 영접하고 세우는 것은 하나님이 나와 다른 성도와 먼저 큰 사랑으로 언약을 맺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언약의 사랑을 함께 받아 함께 언약 백성 된 성도를 우리는 신실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성도들이 “그리스도께 속한 자”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믿고 복종할 일
그리스도께서는 변화산에서 보여주신 그 영광에 우리도 참여하도록 하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기도하며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우리를 유혹하는 더러운 영을 이기고 나갑시다. 주께서 가신 섬김의 길을 따라, 우리도 가족과 성도들끼리 화목합시다.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로서 서로를 따뜻이 환영하고 믿음을 격려합시다.
1. 오늘 말씀을 통해 계시해주신 하나님을 감사 찬양합시다. 2. 하나님께서는 내게 무엇에 순종하라 하십니까? (회개, 감사, 사랑, 섬김 등) 나는 남보다 높아지려 하고 남의 좋은 것을 시기하는 것은 없습니까? 이것을 너머 화해하고 화목하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