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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 mioklim61@naver.com
공인중개사
경남대학교 백남오 수필교실 수강 중
진등재문학회 회원
수상 소감
붉은 고추를 수확하느라 땀에 젖은 후줄근한 옷차림에 날개를 달아 주신 『에세이스트』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폭염과 폭우를 이기고 견뎌낸 빨간 열매가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어설픈 초보 농군도 따는 재미에 푹 빠졌습니다. 한낮 더위는 피한다지만 해거름까지 이어지는 손길도 신인상 당선 메시지에는 손을 놓고 하늘을 바라 보았습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보기 드문 고추 잠자리가 떼를 지어 맴돌았습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시댁 집을 마침 IMF 외환위기가 왔을 때 장남인 남편이 새로 지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젊은 혈기로 밀어붙인 일이라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 곳이라 애착은 남달랐지만 여기서 살게 되는 현실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약 50여년, 가까운 도시 생활을 뒤로 하고 귀농한 시골살이 2년 차입니다.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편리한 아파트 생활에 익숙한 탓일까요. 모든 것이 낯설어 한차례 큰 병고를 치르고 지금도 적응에 노력 중입니다.
눈여겨 봐주신 부족한 글 「묘사」가 한편으론 조상님의 은덕인 것 같습니다. 차츰 잊혀져 가는 묘사가 못내 아쉬웠습니다. 누구나 알기 쉽게 장부 정리도 하고 마음만 열면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욕심, 자꾸만 퇴색 되어가는 제례 문화를 글로 남기고 싶었나 봅니다. 좋은 기회를 주셔서 묘사의 준비 과정과 추억, 조상님의 은덕을 다시 한번 더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겠습니다.
오늘의 수필가로서 지도해 주시고 길을 열어 주신 경남대 수필교실 백남오 교수님께 고개 숙여 감사 인사 올립니다. 그리고 함께 해주신 수필교실 문우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남편을 비롯하여 사랑하는 우리 가족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합니다.
묘사
임미옥
11월에 첫눈이 내린다. 내가 사는 함안에서는 한겨울에도 보기 어려운 귀한 눈이다. 밤새 솜털처럼 내려앉아 마당 잔디를 덮은 하얀 이불처럼 되었다. 설국의 시골 풍경이 더없이 평온하다.
동심으로 돌아가 뛰 놀며 눈을 만끽하고 싶다. 따듯한 차 한 잔이라도 여유 있게 즐기고 싶은 날이다. 선걸음에 휙휙 저어 커피를 마시고 묘사 제사장을 보기 위해 남편과 얼어붙은 도로 위를 달린다.
묘사는 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로 우리 집안은 음력 10월 12일이다. 참석률을 높이기 위해 이 날짜가 들어있는 일요일에 당겨서 지낸다. 예전에는 집안 어른들이 함께 장을 보고 조리하는 연례행사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대부분 타지 생활이라 어려움이 많다. 돌아가며 주최자를 정하여 맡기로 했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그러자 문중 일을 맡고 있던 남편이 성미 급한 마음에 떠안게 되었다. 그것도 대 문중과 소 문중 묘사 두 곳을 8년 전, 통 크게 받아와서 시작됐다. 친정이 큰집이라 보고 자라 낯설지는 않았지만 부담스러웠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가게 일 때문에 힘겹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즈음 조부모님 기제사를 묘사에 올리게 된 것도 계기가 되었다. 삼 형제 중 막내이신 할아버님은 아직 이르긴 했지만, 큰댁 할아버님과 나란히 올리게 되면서 성사되었다. 살아생전 큰손 부인 내 편이 되어 걱정해주시고 무한한 사랑으로 뿌리를 내리게 해주셨던 할아버님이시다.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정성껏 지내던 기제사였는데 짧은 기간이 못내 아쉬웠다.
두 곳의 묘사 준비는 만만치 않았다. 하나에서 열까지 허투루 할 수 없었다. 온 정성을 다해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대 문중과 소 문중 묘사는 각각 본제와 산신제로 구분되고 제물의 양도 차이가 있다. 사실 한곳 묘사에 제단이 두 곳이 되는 것이다. 두 곳 같지만 네 곳을 챙겨야 하는 격이다. 갈수록 힘이 들었다. 아니 애초부터 무리였다. 두 곳의 묘사 중 한 곳을 5년 만에 다른 분이 맡게 되면서 지금은 소문중만 유지 중이다.
나름 코스를 정해서 장보기를 한다. 떡집부터 들린다. 콩 시루떡과 찰떡, 절편 세 종류를 챙긴다. 어시장에서는 조기, 민어, 돔과 자반으로 쓰일 잔조기도 산다. 주변 건어물 가게에서 건문어, 꽃 문어, 유과, 황태포, 대추, 밤 등 제수용품을 구입한다. 지나는 걸음에 싱싱한 생문어도 바구니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대형 마트에 들른다. 정육코너에서 돼지고기 수육 거리로 갈빗살과 막걸리, 소주, 음료를 카트에 담는다. 사과, 배, 밀감 과일 세 가지도 구입한다. 탕에 들어갈 건홍합, 무, 두부도 그 위에 올린다. 그리고 종이컵과 나무젓가락 한 묶음도. 메모지를 체크하며 빠뜨린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손질과 조리가 이어진다. 돼지고기는 껍질이 위로 향하게 하고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잡내를 없애기 위해 월계수 잎과 커피 약간, 소주를 넣고 1시간 10여 분 동안 끓인다. 세월 따라 편리해진 손질된 생선은 찜 전용 솥을 이용한다. 두 팔을 벌려도 감싸지지 않는 큰 솥이다. 서로 달라붙지 않게 사이사이 고루 놓는다. 눈대중으로 익은 것을 가늠하거나 젓가락을 사용하기도 한다. 탕에는 기제사와는 달리 건홍합을 넣는다. 참기름에 볶다가 건문어와 물을 붓는다. 끓어오르는 국물에 생문어 머리를 잡고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꽃 모양으로 만든다. 익는 순서대로 무와 두부를 넣는다.
일요일 아침 떡을 찾아오고 산에 오르기 알맞게 정리하며 묶는다. 본제와 산신제 제물도 구분을 하고 참석한 제관들의 음식 대접까지 고려해야 한다. 칼, 가위, 도마도 빠질 수 없는 도구다. 대 문중 묘사를 마치고 내려온 제관들이 차에다 싣는다. 차가 갈 수 있는 곳까지 최대한 이동한다. 각자 힘에 맞게 나누어 들고 산으로 향한다. 소문중중 제일 웃어른이신 조상 묘다. 상석에는 본제를, 오른쪽 한곳에 자리를 펴고 산신제를 각각 차린다, 산에 계시는 조상님들 안녕을 빌며 산신제에 먼저 임한다. 그리고 57잔의 종이컵에 막걸리를 따르고 본제를 지낸다, 문중 대표로 남편이 축문으로 한분 한분을 소환하며 조상의 은덕을 기린다. 자손의 평안과 번영도 빌어본다. 나도 훗날 은진 임씨로 저 대열에 포함되어 오늘처럼 소환되려나.
음복으로 묘사에 쓴 음식인 떡과 수육, 문어를 썰어 내놓는다. 어릴 때 내 모습이 떠올랐다. 두 몫을 얻기 위해 동생을 업고 뛰었던 배고팠던 시절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났다. 목이나 허리에 보자기를 매거나 윗도리를 길게 빼내어 떡을 나눠 주기만 기다렸던 추억이 된 묘사다.
지금은 그런 아이 하나 없다. 참석한 제관들 수만큼 봉지를 싼다. 거동이 어려워 참석하지 못한 집안 어른들 몫도 챙긴다. 그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먼 산을 바라본다. 혼자 준비하면서 걱정이 되어 밤을 세운 적도 있었다. 몇 년 전에는 암 수술 퇴원 후 며칠 앞으로 다가온 묘사에는 갈등도 있었다. 아물지 않은 몸으로 찬바람에 맞설 때는 억지 춘향 노릇 같아 남편을 향해 원망도 했었다. 그러나 나에게 맡겨진 소임을 작은 자부심으로 여기며 조금은 무리가 되더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자손의 도리를 다하고자 애썼다. 시대가 변해 제사를 멀리하는 추세도 있다지만 나는 기꺼이 한국의 전통적인 여인상으로 남고 싶다.
내려오는 길에 어제 내린 눈으로 축축한 발자국 흔적만 낙엽 위로 남아있다. 시간이 흐르면 없어지거나 새로운 눈으로 덮여 지워질 것이다. 이처럼 세월 따라 퇴색되어가는 묘사이지만 조상을 섬기는 마음만은 영원하리라 믿어본다.
심사평
임미옥의 등단작 「묘사」는 한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이기에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묘사墓祀란 무덤 앞에서 지내는 제사로, 대개 4대조 이상의 조상에게 후손들이 모여서 한해의 끝자락에서 지내는 오랜 풍습이다.
시대는 변하고 변해서 이제 미래사회는 인간의 지능을 능가하는 로봇이 등장할 것이라는 사실은 보편적 진실이 되었다. 과거 수 억 년의 변화는 만년 만에 변하고, 다시 세월이 흘러 만년의 변화는 천년으로, 백년으로 줄어들었다. 급기야 현대사회는 모든 시간과 공간의 사건들이 하나의 좌표 위에서 지구상의 전 인류가 공유하는 현실에 이르렀다.
유교이념으로 무장된 봉건시대를 거쳐 온 우리나라는 불과 몇 백 년 전만 해도 부모가 죽으면 그 자식은 생업을 전폐하고 3년 상을 치러야 했을 정도다. 4대봉제사를 고집하며 조상에 대한 효도와 의례가 가장 중요한 덕목인양 교육하고 실천해온 것이 그동안의 전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IMF와 코로나시대를 겪으면서 그러한 의식은 획기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거대한 시대의식의 변화와 실용주의적 사고가 함께 작용한 결과이다. 급기야 이제는 부모님의 제사마저도 종교시설에 맡기거나 가족 간 만남의 날로 정하는 등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임미옥은 묘사를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 묘사지내는 일을 당연하게 여기며 오히려 더 잘 지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미련과 반성의 생각까지 하고 있다. 묘사준비를 위한 장보기와 그 과정을 보자.
떡집부터 들린다. 콩 시루떡과 찰떡, 절편 세 종류를 챙긴다. 어시장에서는 조기, 민어, 돔과 자반으로 쓰일 잔조기도 산다. 주변 건어물 가게에서 건문어, 꽃 문어, 유과, 황태포, 대추, 밤 등 제수용품을 구입한다. 지나는 걸음에 싱싱한 생문어도 바구니에 담는다. 마지막으로 대형 마트에 들른다. 정육코너에서 돼지고기 수육 거리로 갈빗살과 막걸리, 소주, 음료를 카트에 담는다. 사과, 배, 밀감 과일 세 가지도 구입한다. 탕에 들어갈 건홍합, 무, 두부도 그 위에 올린다. 그리고 종이컵과 나무젓가락 한 묶음도. 메모지를 체크하며 빠뜨린 것이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손질과 조리가 이어진다. 돼지고기는 껍질이 위로 향하게 하고 잠길 정도로 물을 붓는다. 잡 내를 없애기 위해 월계수 잎과 커피 약간, 소주를 넣고 1시간 10여 분 동안 끓인다. 세월 따라 편리해진 손질된 생선은 찜 전용 솥을 이용한다. 두 팔을 벌려도 감싸지지 않는 큰 솥이다. 서로 달라붙지 않게 사이사이 고루 놓는다. 눈대중으로 익은 것을 가늠하거나 젓가락을 사용하기도 한다. 탕에는 기제사와는 달리 건홍합을 넣는다. 참기름에 볶다가 건문어와 물을 붓는다. 끓어오르는 국물에 생문어 머리를 잡고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며 꽃 모양으로 만든다. 익는 순서대로 무와 두부를 넣는다.
묘사를 지내는 준비과정과 절차는 대단히 복잡하고 난해하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정성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조상을 공경하는 정신자세와 철학이 체화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세월에 따라서 편리해진 것이 이 정도라고 한다. 해마다 이런 의식을 수 십 년째 반복해온 화자의 삶을 생각하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화자는 “시대가 변해 제사를 멀리하는 추세도 있다지만 나는 기꺼이 한국의 전통적인 여인상으로 남고 싶다”고 다짐하며 “세월 따라 퇴색되어가는 묘사이지만 조상을 섬기는 마음만은 영원하리라”고 믿는다. 너도나도 편리한 것만 좇아나서는 시대적인 흐름을 생각한다면 화자야말로 종가집 며느리의 표본이며 영원한 한국의 전통적인 여인상이 아닐 수가 없다.
이 작품이 한 시대의 상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많다. 우선 화자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묘사라는 풍습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이 작품을 통해서 훗날 묘사의 전 과정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묘사음식의 조리법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외도 우리 조상들, 특히 한집안의 종부들의 고달픈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귀중한 수필이라고 생각한다. 기록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큰 작품이다.
임미옥은 이 작품 외에도 어머니의 삶과 사랑을 노래한 「영원한 히로인」, 꿈속에서도 그리운 유년의 추억과 가족들의 우애를 그린 「기억속의 고향 집」이라는 작품을 응모했다. 심사위원들은 어느 작품을 등단작으로 해도 좋을 만큼 문학성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세 작품 모두에 골고루 분배했다. 특별히 「묘사」를 뽑은 것은 시대의 상징성과 기록성 때문이다. 주제를 형상화하는 능력과 표현력도 뛰어나며 문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탄탄하다. 작가로서의 역량을 갖추었음이다.
개성 있는 한 작가의 등단을 축하드리며 에세이스트가족이 된 것도 기쁘다. 꾸준한 노력과 열정으로 자신의 성장은 물론 한국수필의 미래를 빛내주기 바란다.
심사평: 백남오 jilisarang13@hanmail.net

첫댓글 임미옥 선생님 진심으로 등단을 축하드립니다. 특히 우리 제례 문화를 몸으로 실천하시면서 느낀 절차를 잘 정리해 주셔서 참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아 고맙습니다. 앞으로 백남오 선생님에게 배우셔서 더 좋은 글 기대해 봅니다.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