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은 시집에서]
이별을 계량하다
김 익 하
팔월 날씨는 한때 주변에 개개는 게 없어도 숨이 막히도록 찐더웠습니다. 서울에 있는 몸은 바다나 강으로 탈출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운두 높은 찜통에 갇힌 느낌입니다. 소금으로 몸을 헹군 뒤 잠들기에 앞서 정빈 서순우 시 몇 수를 읽습니다. 칠월에 시집을 받아 읽으면서 접어둔 페이지를 다시 펼친 터입니다. 이별을 계량한 시를 골랐습니다. 이기적이 아니라 이타적인 구도인데. 그걸 채무로 여기고 있는 듯 읽힙니다.
그 슬픔보다
내 슬픔 더하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어느 한순간 밀물에 휩싸인
그 이별에 섞인 파도 같은 눈물
이별은 그리도 쉬운 듯하나
남아 있는 호흡은
그립다 그립다 했다
그 이별 부정하는 것처럼
여전히 물 흐르고 꽃 피고
그동안
그 슬픔보다 내 슬픔 더 큰 듯한
그들 웃음 내 울음 되고
그들 울음 내 울음 된다는 것은 착각이었다
그렇게
밀물도 때로는 이별이었다
-「밀물도 때로는 이별이었다」전문. 제5시집 124쪽
시 ‘내면 또 다른 자아’에 접근하려고 ‘마음읽기’를 합니다. 이별은 헤어짐으로써 나눔이란 과정을 거치지요. 또한 나로부터 떠나보냄이지만, 내 앞으로 밀물처럼 닥쳐드는 것, 또한 내가 감당해 내야 할 몫이기도 합니다. 슬픔도 그러하며, 울음도 그러하고, 찌꺼기처럼 가슴에 걸려 너덜거리는 그리움도, 또 쓰디쓴 웃음도 그 몫에 포함된 성분일 테지요. 물론 서로 나눠가짐에 내 것이 훨씬 크다고 여겨집니다. 이별로 말미암아 너 슬픔도 클 거고, 너에게도 그리움이 남았을 거고, 너도 울면서 웃었을 거다. 나도 남모르게 이불을 뒤집어쓰고 그랬으니까. 그래도 내 몫이 더 무거워 나는 불공평하다면서 억울해 하기도 했다. 따라서 견뎌낼 무게보다 더 무거워 원망까지 했다. 그러나 격정적 물결이 스쳐간 다음 계량해 보니 너도 나만큼 이별을 무겁게 감당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겠더라. 이제 그건 서로 갚으려 해도 갚을 수 없는 채무가 되었다. 그래서 아끼고 아껴 추려고 추려서 보낸 말이 미안하고 미안하다다. 이 말로 이젠 ‘퉁’치자구나.
정빈 시인은 삼척에서 나름의 분명한 시 세계를 구축한 편이지요.
그의 시전詩田을 걸어가면, 모나지도 날카롭지도 않고, 오직 동글동글한 돌 같은 시어들이 맨발 걸음이라도 못이나 굳은살이 박일 염려 없이 편안함을 줍니다. 그 돌은 시인의 마음을 통과하면서 고드랫돌이 되더군요. 고드랫돌은 가로장목을 이리저리 넘나들면서 화문석을 짜냅니다. 골의 색깔 매김에 따라 문양이 다양하게 드러나지요. 정빈 시는 그런 문양을 갖고 있습니다. 그 문양에는 인생행로에서 원하든 원치 않았든 상처나 결핍에 따른 고단함과 애환이 묻어 있더군요.
정빈 감성은 협곡을 휘몰아 내리는 격랑 같은 그런 감정은 아니지요. 잔돌이 넓게 깔린 얕은 내를 소리마저 죽이며 돌아내리는 곰살맞은 여울물 같은 거지요. 그것이 한지에 먹물이 베이듯 차분하게 가슴을 적셔 마음이 아릿해지는데, 이윤즉슨 사람으로서 맞닥뜨려야 했던 애환이 질펀하게 묻어 있다가 읽을 때마다 눈길에 묻어나기 때문임을 느끼게 되더군요. 시인이 시를 쓰면서 얻은 것도 있겠지만, 잃은 것도 있어 야속할 때도 있을 겁니다. 그건 끝내 자신이 감당해낼 선택했음에 따른 몫이지요. 시를 읽으면서 제가 달리 소망했지요. 그 순한 언어가 시인의 심성에서 우러나니 아마 시인은 시와 동질 삶을 살아가는 게 제격이라고 그리 소망하고 싶더군요.
‘지친 생각일 때’ ‘치유를 위하여 시를 쓴다.’고 고백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시 결구 부분에는 ‘-싶다’ ‘좋겠다’로 두루 희원으로 매듭짓고 있어 갈망하는 목마름이 어떠함인지 느껴지더군요. 그게 아마 존재의 이유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그리고 시집 곳곳에 드러나는 이런 조형미造形美에서 시선을 멈추게 하더군요. ‘추억이 다시 나를 나이 들게 하고’ ‘흔들리며 지나가는 세월, 그 세월 속에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나’ ‘밥상에 오른 슬픈 맛’ ‘오십천 여름 땀’ ‘내가 나를 살아야 하는 시간’ ‘가끔 흐르는 눈물이라면 오십천을 흐르게 하고’ ‘봄이라 이름 달고 분주한 벚꽃’ ‘풀벌레 소리에 문을 닫을 수 없고’…….
그런데, 그런데 ‘무꾸 뽀바간 여자’ 는 저주를 했지만, 멈추고 용서해 줍시다. 제웅으로 액막이도 하지 말고. 참, 그 여편네 맹해도 분수가 있지, 뽑은 구멍이나 제대로 메우고 갔으면 분통이 덜 터졌을 겁니다.
진심으로 5집 시집 상재를 축하하고, 문자를 절제해서 쓰는 그런 시가 간결미가 어떠함을 일러주길 기대합니다. 오늘 밤만큼은 시 쓰기를 멈추고 불면 없이 편안한 잠자리에 드세요.
첫댓글 김익하 선배님 좋은 코멘터리 감사합니다.
건성으로 책장을 넘겼던 서순우 시인의 시집,
다시 한번 열어 봅니다.
박 인 용
오랜만입니다.
서 시인 시는 찬찬히 읽어야 진맛이 나더군요.
소중한 말씀 가슴 속 깊이 들이며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겠습니다
곁에서 저를 찬찬히 바라봐 주시는 선생님 마음 속 시선을 제대로 받는
오늘 하루가 되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잘 지내지요?
늘 성원을 보내고 있으니 힘 받고 시작에 몰두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