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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인간혁명 30권 제3장 雄飛(8~13)
<웅비 8>
야마모토 신이치와 나눈 대화에서 화궈펑 주석은 현재 가장 심각한 과제가 10억이 넘는 중국인민의 의식주 해결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식량을 확보하는 일이라며 먼저 국민경제의 기반을 이루는 농업을 확립하는데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농민 생활이 향상하면 시장 구매력이 높아지고 그것이 공업발전의 힘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이치는 그 말을 듣고 방대한 수에 달하는 인민의 생활을 필사적으로 지키고 활로를 찾으려는 중국 정상의 고뇌를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정치는 현실이다. 정치로 사람들의 생활이 결정된다. 발밑을 보지 못하는 이상론은 공상 일 뿐이다. 현실에서 개선과 향상을 이루고자 착실히 노력할 때 사람들의 지지도 얻을 수 있다.
또 신이치는 혁명을 달성한 뒤 관료화가 정착되면 인민과 분리되는 일이 발생하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 지 의견을 물었다.
화 주석은 관료주의의 개혁이 바로 네가지 현대화를 추진하는 데 중요한 과제라고 말하고 그를 위해 ‘관리자 교육’ ‘인민의 감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민중을 위해’라는 목적을 잊고 보신만을 위한다면 어떠한 조직이라 해도 경직되고 관료주의에 빠진다.
따라서 리더는 늘 조직의 제일선에서 민중과 함께 살고 함께 달리고 함께 땀을 흘려야 한다. 또 늘 ‘무엇을 위해’라는 원점으로 돌아가 자신을 응시하고 다스리는 인간혁명에 힘써야 한다.
화 주석은 5월 말 일본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두 사람은 대화에서 중일우호를 위한 ‘금의 다리’를 더욱 견고히 다지는 일도 중요하다고 확인했다.
또 베이징에서는 소카대학교를 졸업하고 이번 봄 중국으로 돌아온 여자 유학생들과도 대화했다.
‘지금’이라는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따라서 신이치는 단 한순간도 때를 놓치면 안 된다고 결심하고 전 혼을 쏟아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과 만나 대화하고 격려하고 우호를 깊이 맺었다.
문호 톨스토이가 이렇게썼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먼저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최고의 방법을 써서 현재라는 시간을 살아가는 일이다.”
<웅비 9>
4월 25일, 신이치를 단장으로 한 중국방문단 일행은 베이징을 출발해 비행기를 타고 광둥성 성도인 광저우시를 경유해 구이린시를 방문했다.
이튿날 차를 타고 양띠로 나와 이슬비를 맞으며 리강 부근 선착장까지 걸었다. 안개비에 감싸인 숲을 빠져 나오자 강가에 있던 아이들이 다가왔다. 그 중 두 소녀가 멜대를 짊어지고 약을 팔고 있었다.
소녀들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약이든 다 있어요. 필요한 약을 골라 보세요.” 하고 외쳤다.
수수한 옷차림에 꾸밈없는 양 갈래 머리를 하고 있었다. 맑은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신이치는 웃으면서 자신의 이마를 가리키고 “그럼 혹시 머리가 좋아지는 약도 있나요?” 하고 물었다.
한 소녀가 태연하게 이렇게 말했다. “아, 그 약은 방금 다 팔렸어요.” 그리고 방긋 웃었다.
대단한 임기응변이었다. 모두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신이치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우리는 머리가 좋지 않은데 안타깝군요.”
신이치와 미네코는 기념 선물로 소녀들에게 연고 등을 샀다.
소녀가 보여준 임기응변은 약을 팔면서 길러졌을 것이다.
어린이는 사회의 소중한 보배이자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신이치는 아이들이 대지에 뿌리를 내리듯 강하고 늠름하게 성장하는 모습에서 희망찬 21세기를 보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교육과 문화교류에 더욱 힘을 쏟자고 새롭게 결의했다.
일행은 구이린시 부시장 일행의 안내를 받아 양띠에서 리강 하류에 있는 양숴까지 이동하며 배에서 약 두시간 반 동안 대화의 꽃을 피웠다.
일찍이 구이린 경관을 ‘강은 푸른 띠를 이루고 산은 푸른 옥비녀와 같도다’ 하고 노래했다. 강 양쪽에는 마치 병풍처럼 기암괴석이 이어져 있다. 비가 내려 하얀 면사포를 쓴 듯한 별천지 사이로 배가 나아간다.
<웅비 10>
동행한 쑨칭화 중일우호협회 부회장 이야기에 따르면 ‘이강연우(邇江煙雨)’라고 하여 리강은 연기가 피어오르는 듯 비가 부옇게 내릴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구이린 경관이 자아내는 시적인 정취에 젖으면서도 이야기는 현실의 국제정세에 이르렀다.
소련이 지난해 말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중국에서도 소련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이치가 우호를 위해 소련을 방문하거나 주요 인사와 대화를 나누는 일을 좋지 않게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배에서 대화를 나누다 쑨 부회장이 신이치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국과 일본에 금의 다리를 구축한 당신이 소련을 방문한다면 중일관계는 견고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소련에 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신이치는 솔직한 의견을 듣고 감사했지만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었다.
“중국 분들의 심정은 잘 압니다. 그러나 시대는 크게 변하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21세기를 전 인류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시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대국끼리 싸우고 증오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상대의 좋은 점을 이끌어내 조화를 이루자’ ‘인간끼리 서로 도와 새로운 시대를 만들자’ 이러한 인간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신이치가 열심히 설명했지만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곧바로 중국과 소련 중 어느 쪽이 더 소중한지에 대한 이야기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리강을 둘러싼 풍경은 시시각각으로 변하지만 강물은 이윽고 대해로 흘러 들어간다. 이와 마찬가지로 시대는 인류의 평화라는 드넓은 바다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라고 신이치는 확신했다.
“저는 중국을 사랑합니다. 중국은 소중합니다. 또 동시에 인간을 사랑합니다. 전 인류가 소중합니다.
소련 지도부의 ‘절대 중국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받아내 중국지도부에 전달했습니다. 두 나라 사이가 좋아지기 바랍니다. 제 마음을 언젠가 반드시 알아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신이치의 솔직한 심정이자 신념이었다.
끈기 있는 행동이 불가능을 가능케 한다.
<웅비 11>
26일 저녁, 신이치는 숙소인 룽후호텔에서 구이린시 화원(畵元) 원장이자 광시예술학원 교수인 리뤄궁 원장과 간담했다. 리 원장은 일본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유명한 서화가이자 전각가다.
서예나 회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다음 말이 신이치의 가슴에 깊이 남았다.
“서예는 단순히 글자를 위한 글자가 아닙니다. 인간의 사상과 감정에서 비롯하는 것으로 글쓴이의 세계관과 우주관 그리고 인격을 나타냅니다.”
광시예술학원은 30년 뒤인 2010년 4월, 신이치에게 ‘종신명예교수’ 칭호를 수여한다.
27일 오전 방문단 일행은 구이린에서 광저우를 경유해 저녁 때 상하이에 도착했다. 이곳이 마지막 방문지다.
이튿날 28일 오전 신이치는 상하이시에 스포츠 용품을 전달하기 위해 상하이 체육관에서 열리는 증정식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상하이시 창닝구에 있는 특수학교를 시찰했다. 이곳은 예닐곱이 되는 비행청소년을 교화할 목적으로 지은 기숙형 학교다.
일행은 교장 일행의 안내를 받아 각 교실을 돌았다.
신이치는 학생들과 잇달아 악수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젊은이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따라서 무슨 일이 있어도 강하게 꿋꿋하게 살아가기 바라는 마음에 손도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인생은 깁니다. 작은 일로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희망을 잃으면 절대 안 됩니다. 도전하는 한 반드시 희망은 있습니다.
자포자기하거나 도중에 그만두면 그 희망의 등불을 스스로 꺼버리는 꼴이 됩니다. 따라서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지면 안 됩니다. 자신을 이기는 일이 모든 것에 이기는 일입니다.
이곳에서 열심히 공부해 사회를 위해, 아버지 어머니를 위해, 자신을 위해 승리하기 바랍니다. 결코 낙담하지 말고 크게 성장해 꼭 일본에 와 주세요. 참고 견뎌야 합니다. 지면 안 됩니다!”
학생들은 결의에 불타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웅비 12>
28일 오후, 숙소로 돌아온 신이치를 만나기 위해 쑤부칭 푸단대학교 총장이 진장호텔로 찾아왔다. 신이치는 1975년과 1978년에 도서증정을 위해 푸단대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어 쑤 총장과 구면이었다.
쑤부칭은 저명한 수학자라 이날도 수학과 교육을 둘러싸고 대화했다. 그중 신이치는 ‘다들 수학이 어렵다고 하는데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총장의 대답이 인상 깊었다.
“모든 일은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소(小)’에서 ‘대(大)’로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가는 과정을 거칩니다. 무리하지 않고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 정성껏 가르치고 습득시키면 됩니다.”
또 총장은 힘주어 말했다.
“요컨대 배우는 쪽은 한 걸음 한걸음 차근차근 착실하게 학습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향하는 최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도저히 못하겠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가 승부입니다. 그대 끝까지 참고 견뎌 조금이라도 발걸음을 옮기면 길이 열립니다. 그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에 통할지도 모릅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 나아가려고 할 때는 반드시 ‘벽’이 생긴다. 그때가 가장 중요한 때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과 벌이는 싸움이다.
포기나 타협과 같은 자신의 약한 마음을 깨고 앞으로 전진할 때 새로운 상황이 열린다. 승자는 자신을 제어하는 사람의 이명(異名)이다.
신이치와 쑤부칭은 이후에도 거듭 교류해 여섯 번에 이르는 대화를 나눴다.
1987년 6월, 신이치는 푸단대학교의 명예총장이 된 쑤부칭에게 우정과 신의의 증표로 자작시 ‘평화의 대하(大河)’를 선사했다. 그 시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대하도 물 한 방울에서 평화의 장강(長江)을 이르니 우리 그 한 방울 되어 함께 나아가리라.”
<웅비 13>
신이치는 28일, 쑤부칭과 회담을 나눈 뒤 저녁에 작가 바진의 방문을 받았다.
바진은 ‘집’ ‘한야(寒夜)’ 등의 작품으로 유명한 중국문학계의 세계적인 중진이자 중국작가협회의 제1부주석이다.
바진과 나눈 회담은 이번이 두 번째다.
중국방문을 앞둔 4월 5일, 신이치는 중국작가대표단 단장으로서 일본을 방문한 바진과 시즈오카연수원에서 처음으로 회담했다.
이때 중국작가협회 명예주석이자 대표단 부단장으로서 일본을 방문한 현대 중국 문학의 어머니 셰빙신도 동석해 문학의 바람직한 모습과 일본 문단의 상황 그리고 무라사키 시키부와 나스메 소세키 등을 둘러싸고 의견을 활발히 교류했다.
이 회담에서 6일이 지난 뒤 세이쿄신문사가 연 문화강연회에서 바진은 ‘나는 적과 싸우기 위해 글을 쓴다’고 명백히 말했다.
바진은 혁명 전 중국을 덮친 봉건주의 도덕 등 속박 속에 청춘도 없이 고뇌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각성시키겠다는 생각에 불타 불꽃같은 펜을 들었다.
바진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무엇과 싸우는가. 온갖 낡은 전통관념, 사회의 진보와 인간성의 성장을 방해하는 온갖 불합리한 제도, 사랑을 깨뜨리는 모든 것과 싸운다.”
바진은 일흔 다섯이었지만 민중의 적에 맞서 투쟁하는 전사의 투혼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신이치가 이렇게 말했다.
“청년과 같은 기개에 경의를 표합니다.
오늘날 일본의 중대한 문제점은 본디 시대혁명의 기수이자 주역인 청년이 무기력해지거나 포기하고 현실을 도피한다는 점입니다. 거기에는 문학도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청소년에게 확고한 신념과 커다란 희망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 영원한 목표를 제시하는 철학성이나 사상성 가득한 작가와 작품이 작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어떠한 시대에도 사회를 바꾸는 것은 청년이고 젊은 힘입니다. 청년에게는 미래를 창조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코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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