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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1154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된다(야고보서 2:14-26)
2023-11-12
믿음은 행함을 통해 완전함으로 나갑니다.
1) 교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믿음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가난한 성도를 차별하는 것이었습니다. 돈이 많은 부자는 특별히 잘 해 주고, 가난한 성도는 무시했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도 사랑하는 일에는 부족했습니다. 삶에서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2) 히브리서를 받은 교회들만 이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차별대우는 교회가 항상 빠질 수 있는 위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를 받은 교회들에게 쓴 편지를 성경에 포함시켰습니다. 모든 시대의 교회와 교인들이 자기를 돌아 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성도를 차별대우하지 않는 지 돌아 봅시다. 하나님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사랑을 실천하는 행동이 나타납니다.
믿음은 행함을 통해 완전함으로 나갑니다.
1. 믿음이 행함을 가지 있지 않으면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14-17)
2. 아브라함과 라합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배우자(20-26절)
3.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행함을 배우자
이 시간 성령님께서 우리의 믿음이 행함과 함께 일하여 완전함을 이루도록 인도해 주시기 소원합니다.
1.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요 아무 소용이 없다(14-20)
1)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1-17절)
1) 자 생각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나는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명령하신 명령을 행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 갑니다. 그러면 그 믿음이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사람은 행동이 없으면 사실은 믿지 않는 것입니다. 14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믿음이 있고”가 아니라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로는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 참 믿음이 없습니다.
2)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형제 자매가 옷이 없거나 심지어 먹을 양식이 없습니다. 그것을 알고서, “평안히 가십시오. 옷을 입어 따듯하게 되십시오. 굶지 말고 배부르게 식사하십시오.” 이렇게 말만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 가난한 성도에게 무슨 유익이 있겠습니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말만 하고 행함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3) 우리의 믿음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삼위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합니다. 믿는다고 말은 하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하지 않습니다. 그런 믿음은 우리 자신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이 아닙니다. 믿는다고 하지만 믿음의 실제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없어 식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식사 잘 챙겨 드세요”말해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 경제적으로 도와 주는 행동이 있어야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됩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믿음이 있다고 말만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에 따라 바르게 살아갈 때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십니다.
3) 17절이 요약해서 말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죽은 믿음이 있고 살아 있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은 있다하면서 선한 행동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죽은 믿음입니다. 살아 움직이는 믿음은 선한 행동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삼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행동하고 실천하는 분입니다. 진짜로 삼위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성령님 안에서 새 삶을 살아갑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고 있는 성도는 하나님과 동행합니다.
---> 삼위 하나님을 믿고 있는 우리 모든 성도님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기를 바랍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기 바랍니다. 모든 삶의 순간 순간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있는 거룩한 산 제사 같이 되기 바랍니다.
2)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용지물(18-20절)
1) 어떤 사람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18절에,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다.” 믿음이나 행함을 어떤 특수한 은사로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의 은사를 받았고 어떤 사람은 행함의 은사를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믿음과 행함이 분리될 수 있는 것 처럼 말합니다.
2) 야고보 사도는 그것에 대해 응답합니다. “당신은 행함이 없는 당신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나의 행함으로 내 믿음을 당신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는 것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정말 이상합니다. 19절이 말합니다. “19 당신 자신은 하나님은 한 분이신 것을 믿습니까? 잘하고 있습니다. 귀신들도 믿고 떱니다.” 마귀도 하나님은 한 분이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 떱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실제적 사랑과 인격적인 믿음이 없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은 한 분임을 지식적으로 알고 입으로 고백하면서도 순종하는 행함이 없다면 마귀가 가진 “믿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20절이 말합니다. 믿음이 있다고 말하지만 선한 행함이 없으면 그 믿음은 “헛 것”입니다. 헛것은 “살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2. 아브라함과 라합의 행함이 있는 믿음을 배우자(20-26절)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있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의 두 가지 사례를 구약 성경이 보여 줍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기생 라합의 경우입니다.
1) 아브라함의 행함이 있는 믿음(21-24절)
1)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바친 이야기 알지요? 그가 75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떠나라고 했습니다. 땅을 선물로 줄 뿐 아니라 큰 민족을 이루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자녀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창세기 15장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여호와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자녀를 주겠다고 다시 약속하셨습니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창세기 15:6은 말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다른 것을 행하지 않고 믿었는데, 믿음으로만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계속 아브라함 가정에 자녀를 주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살이 되어서 기적으로 아내 사라가 임신했고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2) 이삭이 자라서 청소년이 되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창세기 22:2(구약 28)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내가 지시할 땅으로 데려가라. 거기서 번제로 제사 드려라.” 아브라함이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이 아들 이삭을 통해 자손을 번성하게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이제는 아들을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다니! 하나님의 계속되는 약속과 하나님의 명령이 서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이 지시하신 곳으로 갔습니다. 그 아들을 밧줄로 묶었습니다. 칼을 잡고 아들을 죽이려는 그 순간, 하늘에서 소리가 났습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아,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않았다.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1). 22:17, 18은 말합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한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독자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 네 씨를 크게 하겠다. 왜냐하면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
3) 오늘 본문 야고보서 2:21은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행함들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행동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셨습니다. “의롭게 되었다”고 합니다.
22절은 자세히 설명합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창세기 15장에서 하신 약속을 믿은 것입니다. 그의 독자 이삭을 통해 자손을 번성하게 하신다는 약속을 믿었습니다. 이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바치라고 한 명령에 순종하여 행했습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굳게 믿으면서, 하나님의 명령을 행하였습니다.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행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그 행함이 그의 믿음을 온전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에 대한 믿음은 더 자라고 완성을 향해 나갔습니다.
4) 23절은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창세기 15:6)성경 말씀이 이루어 졌습니다. 이 말씀은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한 번 있은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계속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을 행함으로써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 계속 하여 의롭게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계속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계속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믿음의 연단은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들에 계속 순종하면서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행함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되었기 때문에, 오늘 본문에 나오는 “행함”은 모두 “행함들”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삶은 계속 적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행함이 있는 삶이었습니다.
24절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통해 일반적인 말을 합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행함들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하나님에 대해 머리로 알고 입으로만 믿는다고 하는 그런 믿음으로 의롭게 되지 않습니다. 행함들이 있는 그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인정해 주십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것이 열매로서 알려 지고 증거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이 선한 행동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에 행하는 그 행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습니다.
---> 정말 우리가 이런 참 믿음으로 행하는 행함들이 넘치기 바랍니다.
3) 창녀 라합: 행함으로 의롭게 됨(25절)
1) 창녀 라합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25절은 말합니다. 라합이 행함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2장(구약 320)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서 40년 동안 광야길을 다녔습니다. 마침내 요단 강 동쪽까지 와서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백성의 지도자 여호수아는 2명의 스파이/정탐꾼을 요단강 서쪽으로 보냈습니다. 스파이들은 여리고성에 들어가 라합의 집에 들어갔습니다. 라합은 그들을 지붕 위의 삼대 아래 숨겨 주었습니다. 여리고 왕에게 알려 지면 라합 자신을 죽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라합은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을 숨겨 주었습니다.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그런데 라함은 정탐꾼들에게 말했습니다. 그 말에 하나님에 대한 라합의 믿음이 나타납니다. 여호수아 2:9절부터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여러분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압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일을 듣고 우리들은 정신을 잃었습니다.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여러분을 선하게 대했으니, 여러분도 나의 가족을 살려 주십시오.”
라합의 이 말을 보면 그녀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에 행함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스파이들을 숨겨주는 사랑의 실천을 했습니다. 행함이 있었습니다. 본문 25절은 그녀가 “행함들로 의롭게 되었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말은 없지만 그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26절이 “왜냐하면”이라고 시작합니다. 라합의 믿음은 행함과 믿음이 같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라합의 믿음의 뿌리에서 행함이라는 열매를 낳았습니다.
3) 행함없는 믿음은 죽어 있음(26절)
26절은 말합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 이것을 잘못 읽으면 행함이 믿음에 생명을 주는 원인이 되는 것처럼 오해합니다. 그냥 단순히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행함들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듯이, 믿음이 없는 행함도 죽은 것이다.” 참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입니다.
3 `.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행함을 배우자
1)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행함
1)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함은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 할 때 즉각적으로 복종한 것입니다. 라합의 믿음의 행함은 어려운 가운데 있는 사람을 돌보는 것이었습니다. 믿음의 행함 때문에 자신이 져야 할 대가를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야고보서 2:1은 믿음과 행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믿음의 삶은 예수님의 영광을 존중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 때문에 하나님께 복종하였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죄인들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는 자신을 비웠고, 낮추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7-8)
“그것은 최고의 법(이웃 사랑: 약 2:8절)에 구체적으로 복종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순종은 사람들의 필요를 향한 우리의 관심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삶은 적극적으로 헌신하는 삶입니다. 헌신은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는 삶입니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삶입니다.
2) 오직 행함들의 열매를 맺는 믿음으로 의롭게 됨
같은 창세기 15:4를 인용하면서 로마서는 야고보서와는 다르게 말하는 것 처럼 보입니다.
야고보서 2:24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로마서 4:2(신약 243)는 말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5절 “일을 아니할지라도(행함이 없더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여기시나니”
그러나 야고보서와 로마서가 서로 다르지 않습니다.
로마서 4장은 말합니다. 우리가 의롭다 인정받는 원인은 오직 믿음입니다. 우리의 행함들의 선함 때문에 의롭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용서하셨다는 것을 믿기만 하면 의롭다 인정받습니다. 이것이 로마서가 말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이 말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은 그 결과적으로 반드시 믿음의 행위가 따라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실 때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흘러 나오게 합니다. 성령님을 보내셔서 새로운 성품으로 살도fhr 인도하십니다.
믿음은 삼위 하나님과 우리가 연결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 때문에 의를 이룹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3에서 사도 바울은 성도를 위해 감사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행함과)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끝까지 기억함이니” 믿음은 반드시 행함을 만들어 냅니다. 행함이 믿음을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성도를 향한 사랑의 수고도 믿음의 행함 때문에 가능합니다.
혼란되고 힘들 때 기억합시다. 고린도전서 16:13,14로 성령님께서 격려하십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담대하고)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하나님을 믿어 의롭게 되었으니 이 믿음을 사랑의 행함을 통해 보여 줍시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고 하는 것 처럼 우리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일이 생깁니다. 그때도 계속 하 나님을 신뢰하며 믿고 행합시다. 형제 자매를 사랑하기 위해 우리 가진 것을 나눌 때 기쁨으로 행합시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이렇게 계속 하나님께 순종하고 서로 사랑함으로써 우리의 믿음이 더 온전하게 자라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