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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해와 달의 비유>를 담은 아함경의 내용과 <대승경전의 ‘나[아]’와 ‘참나[진아]’의 용법. 둘 다 여래장이다>를 읽고 제미나이와 대화한 내용를 바탕으로 제미나이가 작성한 것이다. |
| 1. 암흑 속에 뜬 보편적 광명: 지혜의 출현 2. 초기 불교의 해: 구름 속에서 드러난 해 3. 대승 불교의 해: 구름 속에 감춰진 해, 여래장 4. 여래장에서 참나로 5. 결론: 거짓 나를 죽여 참다운 나를 얻다 |
1. 암흑 속에 뜬 보편적 광명: 지혜의 출현
인류의 오랜 무명(無明)을 걷어내는 부처님의 가르침은 흔히 '해'에 비유된다. 칠흑 같은 밤이 지나고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르면 만물의 형상이 비로소 제 모습을 드러내듯, 여래의 출현은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는 보편적이고도 절대적인 사건이다.
『증일아함경』에서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면 어두움을 없애어 밝게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라고 설했듯이, 부처님의 법은 특정 계층이나 존재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깨우는 근원적인 빛으로 존재한다. 해가 뜨면 세상의 모든 구석을 차별 없이 비추는 것처럼, 지혜의 빛 또한 만생의 어둠을 물리치며 시작된다.
2. 초기 불교의 해: 구름 속에서 드러나는 해
아함경의 맥락에서 '해'는 부처님 그 자체 혹은 부처님의 지혜를 상징한다. 여기서 지혜는 관념적인 것이 아니라, 무명을 타파하고 번뇌의 결박을 끊어내는 역동적인 힘이다.
『잡아함경』 등에서 설하는 '해'의 비유는 수행자가 닦아나가야 할 청정한 해탈의 경지를 시각화한다. 마치 구름이 걷히고 해가 본래의 밝음을 드러내어 세상을 비추듯, 수행을 통해 탐욕과 무명의 구름을 걷어낼 때 성자의 마음은 '구름 없는 하늘의 해'처럼 맑고 투명하게 빛난다. 즉, 초기 불교에서의 해는 수행이라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온전히 마주하게 되는 깨달음의 실재를 의미한다.
3. 대승 불교의 해: 구름 속에 감춰진 해, 여래장
대승 불교에 이르러 '해'의 비유는 혁신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초기 불교가 수행을 통해 드러나는 지혜의 측면을 강조했다면, 대승은 그 빛이 번뇌라는 구름 뒤에 이미 완벽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었다고 선언한다.
『대살차니건자소설경』과 『여래장경』의 가르침처럼, 중생의 탐욕과 어리석음이라는 두꺼운 구름 속에도 여래의 지혜와 몸은 엄연히 갈무리되어 있다. 마치 돌 속에 이미 금이 들어 있고, 장작 속에 불의 성질이 감춰져 있듯이, 여래장은 중생의 몸이라는 감옥 안에서 단 한 순간도 꺼지지 않고 빛나고 있다는 것이다. 수행은 빛을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이미 떠 있는 해를 가린 구름을 걷어내는 작업이 된다.
4. 여래장에서 참나로
대승의 논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아(無我)'의 고요함에만 머무르지 않고 '진아(眞我)'를 설하는 파격을 선보인다. 이때의 '참나'는 외도들이 주장하는 고정불변한 자아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며, 곧 여래장의 다른 표현이다.
『대승입능가경』은 진아를 설하는 것이 마치 겁화(劫火)가 일어나 무아의 빽빽한 숲을 태워버리는 것과 같다고 묘사한다. 부처님은 무아라는 말에 허무를 느끼거나 두려워하는 이들을 위해, 혹은 진실한 해탈의 경지를 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참나'라는 방편의 사자후를 토하신다. 이는 모든 망상을 태워버리는 역동적인 지혜의 생명력이자, 여래장이 지닌 능동적인 속성을 강조한 것이다.
5. 결론: 거짓 나를 죽여 참다운 나를 얻다
결국 불교의 수행은 '죽임'과 '얻음'의 역설로 귀결된다. 우리가 흔히 '나'라고 집착하며 움켜쥐는 오온(五陰)은 사실 번뇌의 껍질이자 부정적인 의미의 자아일 뿐이다. 『대반열반경』의 가르침대로, 이 거짓된 나를 죽이고 무너뜨리는 과정이 곧 긍정적인 의미의 참나, 즉 불성을 발현하는 길이다. 무상함과 괴로움을 죽일 때 비로소 영원함(常)과 즐거움(樂)을 얻는다는 이 역설은, 『대법고경』의 비유처럼 병 속에 갇혀 빛나지 못하던 등불이 병이 깨지는 순간 온 세상을 비추는 것과 같다.
초기 불교가 수행을 통해 무명을 걷어내고 부처님의 지혜라는 해를 드러내는 것에 집중했다면, 대승 불교는 우리 내면에 이미 떠 있던 여래장의 해를 발견함으로써 그 지혜를 완성한다. '나'라는 집착을 내려놓는 무아의 완성이 곧 진정한 나(진아)를 찾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는 것, 그것이 구름을 벗어난 해를 마주하는 수행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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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와 달의 비유
“비유하면 <해>가 뜨면 능히 모든 세계의 어둠이 사라지는 경우와 같나니, 이와 같이 무상한 것이라는 생각을 닦고 익히며, 자꾸 닦아 익히면 능히 일체의 욕애ㆍ색애ㆍ무색애ㆍ뽐냄ㆍ무명을 끊을 수 있느니라.”
“만일 그런 것들을 뛰어 넘으면/ 그는 곧 부처님의 거룩한 제자로서/ 악마 경계를 멀리 벗어나리니/ 마치 구름 없는 하늘의 <해>와 같으리.”
“마치 깨끗한 물에서 피어난 연꽃이/ 청정하고 티 없으며 더러움 없이/ <햇빛>을 따라 피어나면/ 그 향기 그 나라에 진동하듯이/ 앙기국(央耆國) 밝게 드러나는 것이/ 마치 공중의 <해>와 같아라.”
“마치 저 물에서 피어난 연꽃은/ 흙탕물이 거기에 묻지 않는 것 같고/ 마치 허공에 멈추어 있는 <해>가/ 청정하여 구름 한 점 없는 것 같네.”
“널리 듣고 바로 다 깨닫기는/ 마치 허공에 <해>가 돋는 듯/ 일체 용 가운데서 우뚝하기는/ 뭇 산 위로 솟은 멧부리 같네.”
“<해>가 처음 뜰 때처럼 여래께서 세상에 출현하시면, 어두움을 없애어 밝게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
증일아함경_43. 마혈천자품 (馬血天子問八政品) [7]
“제일 한가운데 구름을 벗어난 <태양> 같으신 저 분이 바로 여래이십니다.”
“그 누가 하늘 광명 나타내기에/ <해>가 구름을 헤치고 나오는 것 같은가?/ 또 마치 순금으로 된 산 덩어리 같아/ 더러운 티끌 때가 전혀 없구나.”
“<해>와 달에는 네 가지로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광명(光明)을 들어 내지 못하게 한다.
어떤 것이 그 네 가지인가?
첫째는 구름이요, 둘째는 티끌이며, 셋째는 연기요, 넷째는 아수륜(阿須倫)이다. 그것들이 해와 달을 가려 광명을 나타내지 못하게 한다.
비구들아, 이것을 일러 ‘네 가지 가리움이 있어 <해>와 달이 광명을 들어 내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사람이 이전에 죄를 지었더라도/ 뒤에 그쳐 다시는 저지르지 않으면/ 이는 세상을 비추는 것/ 구름이 사라지고 <해>가 나타나듯. (중략)
어리고 젊고 연로한 비구들이/ 부처님의 법을 닦아 행한다면/ 이는 세상을 비추는 것/ 구름 없는 하늘의 저 <해>처럼.”
“그것은 마치 <해>가 구름을 뚫고 어디든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과 같고, 구름이 사라진 하늘에 달이 많고 많은 별 가운데서 제일 밝은 것과 같습니다.”
2. 여래장
대살차니건자소설경_8. 여래무과공덕품[14] 법신ㆍ여래장
온갖 번뇌와 모든 티끌의 창고[藏] 속에는 여래의 성품이 담연(湛然)히 채워져 있으니, 마치 돌 속의 금과 같으며, 장작 속의 불과 같으며, 땅 밑의 물과 같으며, 우유 속의 낙(酪)과 같으며, 깨[麻] 속의 기름과 같으며, 종자 속의 싹과 같으며, 창고 속의 보배와 같으며, 틀[模] 속의 모양[象]과 같으며, 뱃속의 태(胎)와 같으며, 구름 속의 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기를, 번뇌의 몸 가운데 <여래장>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앙굴마라경_15. 처음 배우는 이가 이닌 이,여래장, 범행, 계 등
“일체 중생에게 <여래장>이 있으나 한량없는 번뇌에 덮인 것이 그릇 안에 있는 등불과 같다.”
대법고경_10. 여래장ㆍ불성, 3승이 있다고 말하는 까닭, 여래
일체 중생은 모두 <불성>이 있어 무량한 상호가 장엄하고 밝게 빛난다. 그 <불성>이 있는 까닭에 일체 중생은 열반에 들 수 있다. 마치 저 눈병 난 사람의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아직 좋은 의사를 만나지 못하여 그 눈이 늘 어두운 것과 같다. 만약 좋은 의사를 만난다면 금방 색(色)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무량한 번뇌의 더미가 <여래의 성품>을 가리고 있다.
그리고 여러 부처님과 성문ㆍ연각을 아직 만나지 못하여 ‘나’와 ‘나 아님’을 분별하여 ‘아소’를 ‘나’라고 여긴다. 만약 부처님과 성문ㆍ연각을 만난다면 이내 참 나를 알 것이다.
마치 병이 나아서 그 눈이 열려 밝아지는 것과 같다. 가린다는 것은 모든 번뇌를 가리키며, 눈은 <여래의 성품>을 이른다. 마치 구름이 달을 가려 달이 밝지 못한 것처럼, 모든 번뇌의 더미가 여래의 성품을 가려서 성품이 밝지 못한 것이다. 만일 모든 번뇌의 구름 덮개를 벗게 되면 여래의 성품이 보름달처럼 밝아질 것이다.
사람이 우물을 파는 것과 같다. 마른 흙이 나오면 물이 아직도 먼 줄을 알고, 축축한 흙을 얻으면 물이 점점 가까운 줄을 안다. 만일 물을 얻으면 곧 궁극의 것을 얻은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부처님과 성문ㆍ연각을 만나 선행을 닦고 번뇌의 흙을 파내면 물(여래의 성품)을 얻을 것이다.
마치 병 속의 등불이 그 빛이 드러나지 않으면 중생에게 쓸모가 없지만, 병을 깨뜨려버리면 그 빛이 널리 비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모든 번뇌의 병과 덮개가 여래장의 등불을 가려 상호와 장엄이 밝지 않으면 중생에게 쓸모가 없지만, 모든 번뇌의 더미를 벗어나면 저 여래의 성품에는 번뇌가 영원히 사라지고 상호가 밝게 빛나며, 불사(佛事)를 이룰 것이다.
마치 병을 깨뜨려 밝게 빛나는 등불을 중생이 받아 사용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은 4가지 비유ㆍ인연처럼, 내가 중생계를 갖는 것처럼, 일체 중생 또한 모두 이와 같아 저 중생계가 가없이 밝고 청정함을 알아야 한다.”
“내가 말한 <여래장>은 외도가 말하는 나[我]와는 다르다.
대혜야, 나는 언젠가 공(空)ㆍ무상(無相)ㆍ무원(無願)ㆍ여실제(如實際)ㆍ법성(法性)ㆍ법신(法身)ㆍ열반(涅槃)ㆍ자성을 여읨[離自性]ㆍ생기지 않음[不生]ㆍ없어지지 않음[不滅]ㆍ본래의 적정함[本來寂靜]ㆍ자성열반(自性涅槃) 등의 구(句)를 말하였다.
또 <여래장>을 말한 뒤에, 여래ㆍ응공ㆍ등정각은 어리석은 사람이 ‘내가 없다[無我]’는 구절에 두려운 생각을 내는 것을 끊어 주려고 망상을 벗어난 무소유 경계인 <여래장>의 문을 말한 것이다.
대혜야, 미래와 현재의 보살마하살은 내가 있다는 견해[我見]를 지어 계착해서는 안 된다.
마치 도예가(陶藝家)가 진흙 한 덩이를 가지고 공력[人工]과 물과 나무와 바퀴와 줄 등의 방편을 이용해 갖가지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여래도 이와 같아 모든 법이 실체가 없어 모든 망상의 모습을 벗어난 것이지만 갖가지 지혜와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을 써서 <여래장(如來藏)>이라 말하기도 하고 무아(無我)라고 말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여래장>이라고 말한 것이지 외도가 말하는 나[我]와는 다르다.
이를 <여래장>을 설하는 것이라 한다.
“성제(聖諦)란 것은 깊고 깊은 뜻을 말한 것이므로 현묘하고 세밀하여 알기 어려우며 생각하여 헤아릴 경계가 아니니 지혜 있는 이라야 알 것이요, 온갖 세간에서는 믿지 못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것은 깊고 깊은 <여래장(如來藏)?을 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래장>은 바로 여래의 경계이므로 온갖 성문ㆍ연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여래장>인 그 자리에 성제의 뜻을 말한 것이니, <여래장>이 깊고 깊은 것이므로 성제도 깊고 깊다고 하는 것이며, 현묘하고 세밀하여 알기 어렵고 생각하여 헤아릴 경계가 아니므로 이것은 지혜 있는 이라야 알 것이요, 온갖 세간에서 믿지 못할 것입니다.”
아난아, 이 경계가 아직 번뇌의 껍질을 없애지 못한 것을 나는 설하여 <여래장(如來藏)>이라 이름하며,
지극히 청정한 것을 이를 전의의 법이라고 이름한다.
“선남자야, 부처가 만든 무수한 연꽃이 홀연히 시들고 무량한 화불(化佛)이 연꽃 안에 머물고, 상호를 장엄하고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큰 광명을 놓은 희유함을 대중이 보고 공경하지 아니할 수 없음과 같이,
이와 같이 선남자야, 내가 부처의 눈으로 일체 중생을 보니,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여러 번뇌 가운데 여래의 지혜와 여래의 눈과 여래의 몸이 있어 결가부좌하고 엄연하고 움직이지 않는다.
선남자야, 일체의 중생은 여러 세계의 번뇌의 몸 가운데 있다 하여도 <여래장>이 있어 항상 오염(汚染)됨이 없고 덕상을 갖추어서 나와 같으며 다름이 없다.”
오음과 육입과 십이처와 십팔계도 인연이 화합하여 허망하게 생기는 것이며, 인연이 흩어져서 허망하게 없어지나니, 진실로 생기고 없어지고, 가고 오고 하는 것이, 본래는 <여래장>이어서 항상 머무르는 것이며, 오묘하고 밝으며, 흔들리지 않으며, 두루 원만한 참답고 변함없는 성품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구나. 성품의 참되고 항상한 가운데서는, 가고 옴과, 미혹하고 깨달음과, 나고 죽고 함을,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느니라.
대반열반경_12. 가섭보살품⑤[1], 중생의불성은 허공과 같다, 허공에 관한 견해들
“세존이시여, 부처님의 말씀에, ‘중생의 <불성>이 허공과 같다’고 하시니, 어찌하여허공과 같다고 하십니까?”
3. 참나
5음의 모양은 만들어진 것이니, 만들어진 것은 모래나 돌과 같아서 뚫을 수 있고 깨뜨릴 수 있지만, <불성>인 <참 나>는 금강륜과 같아서 깨뜨릴 수 없다.
선남자야, 오늘 여래가 말하는 <참 나>는 이름이 불성이니, 이러한 <불성>은 나의 불법 중에서 훌륭한 칼과 같다.
사람이 땅에서 공중을 쳐다볼 때 새가 날아간 자리를 볼 수 없는 것처럼, 선남자야, 중생도 그러하여, 하늘눈이 없고 번뇌 속에 있어서 스스로 여래의 성품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내가 무아의 비밀을 말하였다. 왜냐하면 하늘눈이 없는 자는 <참 나>를 알지 못하여 제멋대로 나라는 것을 헤아리기 때문이다.
무상하기 때문에 괴롭고 괴롭기 때문에 공하고, 공하기 때문에 내가 없다. 만일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내가 없다면, 무엇이 죽일 바가 되겠는가? 무상함을 죽이면 항상한 열반을 얻고, 괴로움을 죽이면 즐거움을 얻고, 공함을 죽이면 참됨을 얻고, 내가 없음을 죽이면 <참나>를 얻을 것이다.
세상을 연민(憐愍)하는 큰 의왕[大醫王]이시며/ 몸과 지혜 모두 다 고요하시고/ 내가 없는 법 가운데 <참나> 있나니/ 그러므로 위없이 존귀하신 분께 예배합니다.
법에 있어서 자재로움을 성취하시어/ 세존은 법왕이라 불리며/ 이 때문에 <참된 나[眞我]>라 하시고/ 위없는 즐거움 성취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보배 자리에 올라/ 사자처럼 외치시면서/ 모든 중생들에게 널리 연설하시며/ 모두에게 <불성(佛性)?이 있다 하십니다.
“마치 땅 속에 묻힌 보물같이/ 또한 지하에 흐르는 물같이/ 비록 있지만 볼 수 없으니/ 온(蘊) 가운데 <진아(眞我)>도 또한 그러하네.”
“<진아(眞我)>가 없다고 말하는 자는/ 법을 훼방하고 유ㆍ무에 집착함이니/ 비구는 마땅히 갈마(羯磨:참회 작법)하여/ 물리쳐 버리고 함께 말하지 말라.”
“<진아>를 치연(熾然)하게 설함이/ 마치 겁화(劫火)의 불이 일어나듯 하여/ 무아의 빽빽한 숲 태워/ 모든 외도의 과실을 여의게 하라.”
“어찌 무아(無我)가 있으며/ 환(幻) 등과 법의 유ㆍ무를/ 어리석은 이도 마땅히 진여를 나타내는데/ 어찌 <진아(眞我)>가 없으리오.”
백유경_63. 악사[伎兒]가 나찰(羅刹) 분장의 옷을 입어 모두 놀라고 두려워한 비유
모든 범부들도 그와 같아서 번뇌 속에 살면서 선한 법에 굶주려, 멀리 상(常)ㆍ낙(樂)ㆍ아(我)ㆍ정(淨)의 위없는 법의 음식을 구하다가, 5음(陰) 가운데 나[我]가 있다고 제멋대로 헤아린다.
그래서 나라는 견해 때문에 나고 죽음에 흘러 치달리면서 번뇌에 쫓겨 자유를 얻지 못하고 세 갈래 나쁜 세계[惡趣]의 구렁에 떨어지고 만다.
날이 밝았다는 것은 나고 죽음의 밤이 다하고 지혜의 밝은 새벽이 되어 비로소 5음 속에는 <참 나[眞我]>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데에 비유한 것이다.
“아난아, 네 가지 보리의 위없는 승과(勝果)가 있다. 무엇을 네 가지라고 하는가? 하나는 가장 깨끗함이며, 둘은 <진아(眞我)>이며, 셋은 묘락(妙樂)이며, 넷은 항상 머무름이다.”
“이 전도를 다스리기 위하여 나는 여래의 법신의 네 가지 덕을 설한다. 무엇을 넷이라 하는가? 하나는 상주바라밀(常住波羅蜜)이며, 둘은 안락바라밀(安樂波羅蜜)이며, 셋은 <진아>바라밀(眞我波羅蜜)이며, 넷은 청정바라밀(淸淨波羅密)이다.”
“여래의 법신은 가장 으뜸이며, 오묘한 즐거움의 수행을 등지고 괴로움의 수행에 머문다. 여래의 법신은 가장 뛰어난 <참다운 나[眞我]>의 수행에 머문다.“
”만약 해탈을 항상 함이 없는 것이라고 한다면, 마땅히 알라. 곧 환(幻)이니 부처를 환이라고는 이름하지 않느니라. 만약 분명히 바로 <참나[眞我]>를 보면 이것이 해탈이니라.“
“세존이시여! 진실로 법왕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깨달음의 인연이 시방 세계에 가득하고 맑고 고요하게 늘 머물러서, 그 성품이 생기고 없어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선범지인 사비가라가 말한 명제와, 투회 등 모든 외도종자가 말하는, <참 나[眞我]>라는 것이 시방 세계에 고루 가득히 있다.’라는 것과 어떤 차별이 있습니까?”
“모든 부처님의 공덕이 생기는 곳에 이와 같이 마음을 진실하게 하여 교만을 꺾고 지극한 뜻으로 들어서 바른 법을 길러 나가야 한다. 죽임과 도적질과 음란함과 게으름과 잘난 체와 시비(是非)하는 마음을 여의며, <참 나[眞我]>를 인정하는 말과 삿된 비방을 여의고, 더럽고 어지러운 말을 제거하며, 모든 쟁론(諍論)을 없애야 한다.”
“나라는 것은 <여래장>이라는 뜻이다. 모든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진 것이 곧 나라는 것이다. 이 나란 것이 본래부터 한량없는 번뇌에 덮였으므로 중생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