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과 변화의 조짐
요컨대 오스트레일리아는 환경적으로 무척 취약한 대륙이어서 온갖 방향에서 피해를 당하고 있으며,
그로 인한 경제적 비용도 막대하다.
이런 비용 중 일부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훼손된 과거의 상처,
즉 토지의 황폐화, 토종의 멸종 등에서 비롯된다(다른 대륙보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종이 최근에 멸종되엇다.).
대부분의 훼손은 지금도 진행 중이고, 태즈메이니아의 원시림 벌채에서 보듯이 더 가속화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게다가 염기를 띤 지하 강은 워낙에 느리게 흘러 앞으로도 수세기 동안 계속 확대될 것이기 때문에
훼손 과정을 실질적으로 중단시키기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
문화적 가치관은 정부의 정책 못지 않게 곽거에 환경 훼손을 부추긴 원인이었지만 지금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예컨대 물 정책의 개혁에서 가장 큰 정치적 걸림들은 '물 사용 허가권(관개를 위해 물을 끌어다 쓸 수 있는 권리)'에 관련된 문제이다.
이 허가권을 획득한 사람은 지불한 돈만큼 물을 실질적으로 소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허가권에서 인정한 수량의 총계가 정상적인 해에 사용 가능한 총수량을 초과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허가받은 수량만큼 물을 끌어다 쓰는 것이 불가능하다.
비관적으로 생각하면,냉정하게 생각하더라도 이런 모든 사실에서,
점점 악화되는 환경 탓에 오스트레일리아인들의 생활 수준도 어절 수 없이 떨어질 것이란 걸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물론 비관적인 사람들은 오스트레일리아가 이스터 섬처럼 인구 충돌과 정치적 붕괴를 겪을 것이라 예측하고,.
많은 정치인과 기업인은 지금과 같은 소비 수준과 인구 성장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태평스레 진단하지만
이런 가능성은 거의 없는 듯하다. 어쨌든 현재와 같은 상태가 계속된다면
제1세계의 다른 국가들처럼 크게 다르지 않겠지만 오스트렝리리아에 첫 시나리오가 좀더 일찍 닥칠 가능성이 크다.
다행히 희망의 징조가 보이기는 한다.
오스트레일리아 농부들의 가치관 변화, 민간 차원의 환경 운동, 혁신적인 정부 계획 등이다.
이런 변화들은 그린란등 노루웨이 정착자들에게 우리가 기대했던 변화였고,
한 사회에 깊이 뿌리 박힌 색심 가치들 중 어떤 가치가 그 사회의 생존에 필요하고
어떤 가치를 포기해야 하느냐를 결정하는 도전거리이기도 하다.
내가 40년 전 오스트레일리아를 처음 방문했을 때 ,
농부들이 미래 세대를 위한 땅을 훼손시키며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비판에
"여긴 내 땅이다. 내가 무슨짓을 하더라도 상관하지 마라. 내가 알아서 할 태니까!" 라는 식으로 대응하는 농부들이 많았다.
물론 요즘에도 이런 가치관을 간혹 만나지만 과거에 비해 훨씬 줄었고, 주변 반응도 냉담하다.
또한 환경적으로 파괴적인 규제(예컨대 토지 개간의 의무화)를 강요하고
한경 파괴적인 사업(예컨대 머리 강의 댐 건설과 오드 강 프로젝트)을 강행하던 정부의 시책에
수십 년 전에는 별다른 저항이 없었지만 요즘의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은
유럽, 북아메리카 등의 민중처럼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토지 개간, 강변의 개발, 원시림에서의 벌채 등에 반대 여론이 높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 주 정부는 대중의 압력에
선거 공약가지 어기면서 머리 강을 원상복시키는 데 필요한 3억 달러를 마련하기 위해서 새로운 세목(稅目)을 제정했다.
한편 웨스트오스트레일리아 주 정부는 원시림에서 벌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기로 결정햇으며,
뉴사우스웨일스 주 정부도 농부들은 대규모 토지 개간을 중단하고 자원 관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데 필요한
4억 600만 달러의 프로젝트에 합의했다.
역사적으로 오스트레일리아에서 가장 보수적인 퀸즈랜드 주 정부도 숲의 대규모 벌채 및 개간을
2006년까지는 완전히 중단하겠다는 계획을 연방 정부와 합동으로 발표했다.
4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대책들이엇다.
유권자들의 태도 변화에서도 희망의 징조가 엿보인다.
유권자의 태도 변화는 정부 정책의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농부들의 태도 변화도 분명한 희망의 징조이다.
농부들이 과거의 영농법을 계속 유지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과거처럼 농사를 지으면
자식에게 좋은 농지를 물려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제1장에서 소개한 몬태나의 농부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이 농부라는 힘든 직업을 기꺼이 택한 이유가 영농에서 얻는 작은이익이 아니라
농사짓는 삶자체였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오스트레일리아 농부들의 가슴에 상처를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 변화는 목양업자 빌 매킨토시와 내가 나누었던 대화에서도 분명히 찾아진다.
그는 1879년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농장에서 토끼 굴을 일일이 찾아내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다이너마이트까지 터뜨렸던 사람이다.
그는 같은 언덕을 찍은 것이라며 1937년의 사진과 1999년의 사진을 내게 보여주엇다.
1937년의 사진은 지나친 방목 탓에 초목이 거의 사라진 황무지와 다름없엇지만
1999년의 사진에서 그 언덕은 초목이 완전히 되살아난 모습이었다.
매킨토시는 양 목장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려고 애썼다.
따라서 정부가 허용한 두수보다 낮춰서 양을 방목하고,
고기 만을 생산하는 털 없는 양의 사육으로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면 노동력도 덜 필요하고 방목장의 규모를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잡초 문제를 해결하고 해러운 풀이 목초지에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세포 방목법(cell grazing)'을 도입했다.
달리 말하면 양들이 한 목초지에서 맛있는 풀을 뜯어 먹고 나면 다음 목초지로 이동하는 방식이아니라
양들이 맛있는 풀뿐만 아니라 맛없는 풀까지도 억지로 뜯어 먹게 하기 위해 한 목초지에 계속 남겨두는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그는 비용을 크게 절감시켯고, 상근 직원을 한 사람도 두지 않고
선글라스를 쓰고 이어폰을 귀에 뽑은 채 직접 오토바이를 몰고 다니면서
수천 마리나 되는 양을 이끌며 목장 전체를 관리하고 있다.
게다가 그는 장기적으로 목장 경영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 생각하며,
관광객들에게 잠자리와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간이 호텔과 같은 다른 소득원을 모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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