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 주일
오늘은 연중 13 주일이며 교황 주일입니다!
한국 가톨릭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이나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냅니다. 베드로 사도의 267대 후계자이신 레오 14세 교황님의 영적인 건강과 평화를, 그리고 모든 양 떼들을 진리의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며, 교황님의 뜻을 위해 열렬한 기도와 희생, 물질적 지원을 드리는 날입니다.
오늘 복음의 전반부는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파견받은 이가 지녀야 할 각오와 태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 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οὐκ ἔστιν μου ἄξιος).”는 말씀을 세 번이나 반복하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 10,37-38ㄱ) ‘합당하지 않다.’는 것은 ‘구원받을 자격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위해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자녀에 대한 사랑 그 이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부모와 가족도 존재하고, 그 하느님 사랑 안에서 부모와 가족도 함께 살아가며, 그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모든 시작이 있고, 그 하느님 안에서 우리는 영원히 함께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을 덜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 안에서 더 참되게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그분을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그리스도교 가르침」, De Doctrina Christiana I,22)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태오 복음서가 쓰인 시대 상황을 바로 이해해야 합니다. 마태오복음서는 제1차 유다 독립 전쟁(기원후 67-70년)으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솔로몬 임금 이후 하느님의 현존의 장소로 인식되던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와중에 그리스도인들은 유다인들의 의심과 박해를 받아야 했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신원 때문에 가족 공동체가 붕괴되는 아픔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앞 부분인 마태 10,34-36의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는 말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감수해야했던 사랑하는 가족으로부터의 소외와 버림받음을 암시적으로 언급한 내용입니다.
오늘 복음의 후반부와 1ㆍ2 독서는 하느님께서 파견한 이를 ‘받아들이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하느님의 축복’과 ‘상’에 대한 말씀입니다. 곧 ‘받아들임’(환대, hospitality)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보여줍니다.
제1독서에는 예언자 엘리사를 하느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받아들여 숙소를 제공하고 대접한 수넴 여인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축복과 자비를 들려줍니다. 제2독서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이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혔으니, 그분과 함께 살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복음의 후반부는 예수님께서 파견하신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들에게는 ‘상’이 베풀어지리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0,40)고 말씀하십니다. ‘받아들이다.’로 번역된 동사 ‘δέχομαι’는, ‘환영하다.’, ‘인정하다.’, ‘인내하고 참아주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즉 누군가를 내 안에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를 환대하고 존중하며, 그가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을 인정해주며, 나와 다른 점들 그래서 나를 불편하고 힘들게 만드는 점들을 인내하고 참아주는, 다시 말해 상대방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희생하는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무조건적 환대를 실천하는 사람은 더 큰 환대로 보상받게 되는데 특별히 “작은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42절) 보상을 받게 된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오복음 25장에서 말씀하신 최후의 심판을 인용해 그리스도교적 환대의 영성을 가르치는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 규칙』의 말씀으로 오늘의 강론을 갈무리합니다.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는 나를 맞아주었다.’라고 말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 가난한 사람들과 순례자들을 맞아들임에 있어 각별한 주의를 세심히 기울일 것이니, 그들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더욱 영접되시기 때문이다.”(『수도 규칙서』 제 53장 1.15항)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