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그동안의 여행처럼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아서인가. 여행을 다녀온지 한 달이 되어가는데도 좀처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다. 자꾸 미루게 되는 것이었다. 물론 손자 봐주랴 종자골 드나들랴 형제들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랴 바쁘다 바쁘다를 외치고 다니기는 했다.
아르헨티나 언니네 부부가 오셨고 그것을 빌미로 여행 일정을 잡았다. 일박이일이니 멀지 않으면서 여행 기분을 낼 수도 있으면서 풍경이 좋은 곳을 고르다보니 결국 강원도로 결정되었다.
지난번에는 우리 차에 여덟명이 끼여앉아 타고 갔는데 이번에는 고맙게도 여조카가 운전을 해주어 두 차로 나눠서 편하게 출발했다. 여조카는 큰언니네 막내딸이다. 유순하고 말이 없고 행동은 빨라 여행내내 어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상도동에 둘째언니와 셋째언니와 한남동에 살고계신 큰언니를 모시고 왔다. 우리차에는 아르헨티나 언니네와 작은오빠가 탑승하셨다.
가는 길에 춘천에 들러 옹심이를 먹었다. 감자 옹심이다. 아르헨티나 형부는 이렇게 구수하고 맛있는 것은 처음 먹어본다고 그릇째 마실 기세로 그 많은 국물을 말끔하게 들이마셨다. 큰언니도 가끔 입맛이 없을 때 막내딸네 부부와 일부러 옹심이를 먹으러 오시기는 한다. 토속적인 맛이다. 먹을수록 당긴다.
휴개소에 들러 경치가 좋은 곳에 앉아 차를 마셨다. 조카가 사진을 찍어주었다. 큰언니 둘째언니 작은오빠 셋째언니 넷째언니 그리고 나. 남편과 넷째형부가 찍혔다. 여섯남매만 찍혔다. 또 한 사람 큰오빠는? 말도 안되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상상도 못했지만. 세월을 실감한다. 치매요양병원에 들어가셨다. 형제들 가슴이 막막하고 착잡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마냥 우울해할 수는 없는 일. 돌아오는 길에 들르기로 했다.
속초에 위치한 콘도에 가기전에 설악산으로 갔다. 케이블카를 타고 쉽게 권금성이라도 올라 설악의 봄을 구경하자는 계산이었다. 녹음으로 짙어가는 설악은, 올 때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참 잘 왔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그곳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너그러워진다. 케이블카를 타러 가는 길인데, 큰언니와 둘째언니와 작은오빠가 젊은 너희들끼리 다녀오란다. 여기에서 왔다갔다 하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시겠단다. 큰언니는 수술을 하셨고 둘째언니는 무릎이 안좋으시고 작은오빠는 지팡이를 짚고 계신다. 그래도 천천히 함께 가면 가능할텐데. 시작부터 아예 기권이시다. 가슴 한쪽으로 찬 바람이 휙 지나간다.
케이블카를 타고 기가막힌 설악 풍경을 내려다보면서, 권금성에 올라 울산바위와 신흥사와 멀리 동해바다를 바라보면서 누군가는 꼭 이렇게 말했다. 함께 오시면 얼마나 좋아 천천히라도 모시고 올걸. 자꾸 후회가 되었다. 여유롭게 씨앗호떡을 사서 먹으면서도 자꾸만 아래쪽에 계실 분들이 생각이 났다. 죄송한 마음을 만회해보려고 호떡을 사서 들고 내려왔다.
설악을 뒷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남는 것은 사진이지 사진이야. 딸 다섯이 각자의 순서대로 손가락을 펴들고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큰언니와 둘째언니가 함께, 넷째형부와 남편과, 작은오빠와, 큰언니와 막내딸인 조카와, 넷째언네와 우리가 셋째언니와 내가, 마치 지금 사진을 찍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난다는 듯 열심히 찍었다.
물론 그곳 봄풍경이 초록빛 향연으로 아름다워서이기도 했다. 자꾸만 지나가는 세월속에 형제 중 누군가 내일이면 어떻게 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했다. 오늘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말이 바람처럼 씁쓸하게 나를 스쳐갔다. 사진을 찍는 시간만큼은, 짧은 순간이지만 유쾌하게 웃고 떠들었다. 그것으로 충분! 콘도에 짐을 풀고 한 팀은 고스톱 한 팀은 휴식.
황태구이와 강릉순두부와 황태탕으로 저녁을 먹고 콘도로 돌아왔다. 바닷가에 왔으니 그래도 회는 먹어야하지 않겠느냐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한 접시 주문했다. 푸짐했고 가격도 비싸지 않았다. 막걸리와 맥주와 싱싱한 회! 빙 둘러앉아 건배도 하고 이야기도 하고 유쾌했다. 모여앉는다는 것은 친밀감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함께 젖어들 수 있어서 좋다.
그동안 갈고 닦은 시조를 둘째언니가 읊는데, 여든둘이라는 연세에 그 많은 이야기와 가락을 어찌 다 외웠을까 얼마나 노력을 하셨을까 생각하니 존경심이 저절로 든다. 허리를 곧게 펴고 단아하게 앉으셔서 시조가락을 펼치시는 둘째언니에게서 양반안씨 따님이라고 시골 구석에서도 자부심이 대단하시던 어머니의 꼿꼿한 모습을 보았다.
이번 여행만큼은 언제 또 이런 모임이 있을까 싶어 나는 마음을 착하게 먹었다. 우족과 잡뼈와 한우 살코기를 사다가 곰탕을 끓이고 고명으로 올릴 고기도 넉넉하게 삶았다. 마침 셋째언니가 맛있게 익은 김치와 반찬은 준비해주셨고 아르헨티나에서 가져온 무말랭이를 넷째언니가 직접 무쳐서 가져오셨다. 그동안 누룽지로 아침을 준비했는데 그에 비하면 진수성찬. 다들 고마워하시고 맛나게 드셨다. 내 마음도 흡족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바닷가에 들렸다. 마침 말이 끄는 마차가 해변가를 돈다기에 좋다고 탔는데, 여자들만 탔는데, 총무인 내 남편에게 최고라며 이런 것을 다 타게 해줬다면서 십여분 한바퀴 덜컹덜컹 돌고 왔는데, 일인당 만원?, 여섯명이니 육만원? 겨우 다운시켜서 사만오천원. 남자들은 그 비싼 것을 뭐하러 타느냐고 투덜거렸다는데. 몰랐으니 탔지 알았다면 나도 타지 않았을 것이다. 아깝다 아까워. 그래도 뭐 마차를 타고 웃던 순간을 생각하면, 언제 타 보랴 생각하면, 잘했지 잘했어. 언니들 다리도 아파 권금성도 못 올라갔는데 이 정도야 해드려야지 하며 잘했다고 생각했다.
점심을 먹은 뒤 큰오빠가 요양중이신 요양병원으로 향했다. 얼마나 영리하시고 부지런하시고 인간관계가 만점이신 오빠셨는데, 부처님의 말씀으로 삼십여년 마음과 몸을 갈고 닦으신 스님이셨는데, 치매라니 말도 안되고 이해도 안된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람에게도 치매가 온다니. 참으로 무섭고 이상한 병이다.
목소리 여전하시고 얼굴도 여전하셔서 오빠가 진짜 치매일까 싶은데, 여기는 병원이 아니야 다들 같은 옷을 입고 있잖아 잠시 와 있는거야 곧 나갈 거야. 버스를 탔는데 내리니 여기인거야 여기로 들어온거야. 라고 말씀하셨고 질문을 하면 몰라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셨다. 색칠을 직접 하셨다는 꽃그림 하나를 내미셨다. 치매환자들을 위한 색칠하기 시간에 완성한 그림이었다. 확실히 오빠 말씀은 정상인 듯 하다가도 뭔가가 다르셨다. 눈동자에 힘도 없으시다. 뭔가가 잘못되었다 는 생각이 들게 했다 눈물이 쏟아지려는데. 작은오빠가 천수경을 외워 보시라고 큰오빠에게 주문하였다.
천수경을 외우시는데 어찌 그리도 낭낭하고 울림이 좋은 목소리인가. 어찌 빈틈없이 줄줄이 외우시는가. 외우시다가는 눈가가 붉어지면서 얼굴이 일그러지시면서 울컥 넘어오는 울음을 삼키셨다. 잠시 본인으로 돌아오신 듯 하였다. 지켜보는 우리도 터져나오려는 울음을 참고 눈물을 찔끔거렸다. 어찌 이런 일이. 이런 일이. 오빠의 연세는 일흔아홉이시다. 나이를 먹으면 누구나 그렇게 된다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다들 말이 없었다. 다만 셋째언니가 말씀하셨다. 올캐가 집에서 잠시라도 모시고 있으면 안되는건가. 심하지는 않으시던데. 치매를 겪어보지 않은 우리의 단순한 바램일 뿐이다. 지금처럼만이라도 건강하시기를 빌어볼 뿐.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것인가 흘러가는 세월을 어찌할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