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진(35)씨는 세계 장애인 육상계의 스타다. 99년 방콕 장애인
아시안게임 2관왕이자 2000년 시드니 장애인올림픽 1500m 금메
달리스트. 지난달 23일(한국시간) 프랑스 릴에서 열린 세계 장애
인 육상선수권 1500m에서는 4분43초7의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
를 차지했다. 물론 오는 10월26일부터 부산에서 열리는 장애인
아시안게임에도 태극마크를 달고 출전한다.
최씨가 장애인이 된 것은 8살때이던 75년 뇌염을 크게 앓고부터.
당시 사망판정을 받고 영안실까지 내려갔다가 극적으로 살아났
지만 말을 더듬기 시작했고 팔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증상
은 차츰 심각해져 갔지만 어려운 집안형편 탓에 검사조차 엄두를
내지 못했다. 92년 뒤늦게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으나 치료받을
길은 없었다.
하지만 그는 손기정옹의 일대기를 TV로 보고 간직해온 ‘육상선
수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89년 전주의 한 석재회사에 취직한
최씨는 익산의 집에서 회사까지 24㎞를 매일 뛰어다니며 체력을
다졌고 90년대 중반부터 국내외 장애인 육상대회 중·장거리를
휩쓸기 시작했다.
마침내 최씨는 2년전 시드니올림픽에서 금메달 1개와 은메달 1개
를 따냈다. 연금(66만원) 혜택은 노모(70)와 함께 힘겹게 살고
있는 최씨에게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이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금메달을 목에 걸고 한국에 돌아온 그에게 날아온
것은 어이없는 실직 통고. ‘직장을 오래 비웠다’는 이유에서였
다. 날벼락을 맞은 최씨는 답답한 가슴을 두들기며 일자리를 찾
기 위해 돌아다녔지만 뇌성마비 석공을 받아주는 회사는 없었다.
최씨는 5일부터 연천 종합운동장에서 아시안게임에 대비한 합숙
훈련을 시작하지만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변변한 실업팀 하나
없는 장애인 운동선수들에게는 메달보다 생계가 우선이다. 올림
픽 금메달과 직장을 바꿔야만했던 최씨 역시 취직 걱정부터 앞선
다.
최씨는 “여기저기서 냉대를 받을 때면 뛰기 싫다는 생각도 들지
만 2004년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을 따낸뒤 마라톤을 통해 일반인
들과 겨루겠다는 꿈은 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지난 4월 벚꽃
국제마라톤대회에 출전, 39위를 차지하며 마라톤 데뷔전을 치른
최씨는 “장애인 육상선수들도 실업팀이 창단되는 등 여건만 마
련되면 국제 무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칠 수 있다”며 “장애인들
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여달라”는 소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