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드라빔 우상(창31:17~42)
드라빔은 고대 근동 지방의 가정 안에 널리 안치되었던 ‘가정 수호신’으로서 주로 구복과 점술과 신탁에 관여했다.(삿17:5/슥10:2). 특히 일상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 우상은 몇 번에 걸친 우상 배척 운동에도 불구하고 바벨론 포수 시대까지 잔존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은 사람 형상의 나무(삼상19:13~16) 또는 은(삿17:4)으로 만들어졌으며, 조그마한 것(창31:4)에서부터 사람 실물 크기 만한 것(삼상19:13)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한편 이 드라빔은 위에 언급된 종교적 영향력 외에 그것을 소유한 자가 한 가정의 재산 상속에 대한 합법적 자격과 가정의 지도력을 장악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소중히 다루어졌다.
그러므로 목숨을 건 라헬의 드라빔 도적 행위(창31:19)와 이 드라빔을 되찾으려는 라반의 살벌한 행동(창31:32,33절)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런 드라빔 효용성에 대한 기대를 무참히 짓밟고, 또한 조롱하기까지 한다. 즉 그 드라빔은 불의한 방법으로 탈취 당했어도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으며, 불결하게 취급되었던 월경하는 여인(레15:19)알래 깔렸음에도 불구하고 꼼짝할 수 없었으므로 무능한 우상이라는 것이 판명되고 만 것이다(시135:15~17).
이외에도 성경은 우상이 무인격체이며(신4:28/시115:4~7), 멸망받을 것이고(단11:31/막13:14), 인간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할뿐더러(사45:20) 예배할 가치가 없는(행17:29) 허무한 것(렘10:5/단5:23/합2:18/롬1:22/고전10:19)이라고 지적하였다.
②요가(신비주의)
요가(신비주의)의 핵심은 신과의 하나됨이다. 이 경이로운 체험의 가장 오래된 형태는 인도의 요가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경1)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구가하였던 인도의 하랍파와 모헨조다로 지역에서 발굴된 벽화나 조각과 같은 유물에는 좌선하는 모습의 요가 자세를 취한 상들이 나타난다. 이는 신인합일의 요가수행이 그 당시 크게 성행하였다는 증좌(證左)인 셈이다.
요가에 대한 최초의 문헌기록은, 인도의 경전으로 집대성된 4개의 베다 중에서 가장 오래된 리그베다에서 발견된다.2) 베다경전의 기원설로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유목민으로 생활하다가 인도로 침입해 들어온 유럽의 아리안 족들이3) 기원전 1500년에서 1000년 사이에 인도유럽어의 하나인 산스크리트어로 기록했다는 학설이다. 다른 하나는 아리아인들의 침입 이전인 기원전 4000년에서 3000년에 이르는 시기에 무명의 인도 예언자들과 요가수행자들에 의하여 시와 산문의 형식으로 편찬되었다는 설이다. 인도의 가장 오래된 경전 『리그베다』에서는 '결합한다' '단련한다'는 의미로 요가를 언급하고 있지만, 요가의 체계적인 수행방법이나 실천행들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고 있다.
신과의 합일체험으로서 요가의 원리와 실행법을 제시하고 있는 문헌은 『우파니샤드』로, 이는 브라만계급의 사제들이 주관하는 종교의식과 관련된 규범과 규칙들의 기록으로 이루어진 브라흐마나 경전의 결말서에 해당한다. '베다의 결론' '베다의 끝'이라는 뜻으로 베단타라고도 한다. 『우파니샤드』는 브라만교의 형식주의와 제례주의를 비판하고 힌두사상의 정수를 명료하게 밝힌 인도의 철학서이다. 기원전 800년에서 600년에 이르는 시기를 전후하여 완성된 『우파니샤드』의 위대함은, 모든 존재 안에 있는 신성인 우주의 전일자 브라만(brahman, 梵)과 개개인의 신성인 진아 아트만(atman, 我)은 하나라는 범아일여(梵我一如) 사상의 발견에 있다.
『우파니샤드』에서는 '명상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고통스럽고 번거롭게 만드는 감각작용과 사고작용에서 벗어나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법, 진정한 자기를 획득하는 방법'으로 요가를 정의하고 있다. '가까이 앉는다'라는 『우파니샤드』의 원뜻이 요가의 교육방법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극명하게 알려주고 있다. 스승과의 친밀한 관계에 의해서만 신비주의의 진리는 전수되고 가르쳐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참나'가 신성임을 체득하고, 나의 아트만이 다른 사람의 아트만과 하나되고, 나아가 우주의 근원 브라만과 하나되는 신비체험에 이르기 위해서는, 서로가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스승과 제자의 인격적이고도 친근한 관계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자아의 미망에서 깨어나 모든 존재의 내면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아트만과 함께 궁극자 브라만과의 동체에 이르는 것을 가능케 하는, 좀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실천원리와 방법을 제공해주고 있는 문헌은 기원전 500년에서 300년경에 쓰인 '바가바드기타'이다.4) 『우파니샤드』가 난해한 주지주의 철학서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바가바드기타'는 재미있는 이야기체의 서사시이다. 100년 이상의 긴 세월에 걸쳐 수많은 저자들이 집필한 시편들인 '바가바드기타'는 무수히 많고 다양한 민간설화와 신화로 구성된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에 포함되어 있다. 많은 인도인들이 가장 즐겨 읽고 애송하는 '바가바드기타'는, 신인합일의 신비체험에 이르는 방법으로서의 요가를 3종류로 나누어 체계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첫째는 지혜의 요가이다. 자아는 실체가 아니다. 지배와 억압의 주객분리과정에서 조건화된 가상의 존재임을 통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자기의 신성 아트만으로 돌아가 모든 현상 배후에 존재하는 비인격적인 절대자 브라만과 일체를 이루는 수행법이다. 둘째는 경건의 요가이다. 브라만의 속성을 구현한 인격신을 전심으로 경배하는 헌신의 길을 통하여, 자기 내면의 비인격신 아트만과 만나고 브라만과 하나가 되어가는 수행법이다. 마지막 종류는 행위의 요가로, 무아의 상태에서 아무런 집착도 없이 행하는 사랑의 구체적인 실천 활동이다.
자기중심적인 이기성, 소유욕, 지배욕을 근본적으로 초월한 순수한 사랑의 행위이다. 따라서 조건이나 차별이 없고, 제한이나 변함이 없다. 지혜의 요가나 경건의 요가는 모두 행위의 요가로 귀결되어야 함을 '바가바드기타'는 강조한다. 우리의 진정한 주체성으로서 신의 행동방식을 드러내어 밝혀주고 있는 '바가바드기타'는 힌두 신비주의 전통의 꽃이라고 하겠다.
『우파니샤드』나 '바가바드기타'가 전해주고 있는 신인합일의 신비주의 지혜는 명증성과 자명성과 보편성을 지닌 절대적인 진리이다. 그러나 진아, 이웃, 자연, 그리고 신으로부터 분리된 채로 이기적이고 편협한 자아에 속박되어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우파니샤드』와 '바가바드기타'가 말하는 진리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어렵다. 따라서 일반인들에게는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서도 구체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형태의 요가가 필요하였는데, 파탄잘리가 서력 200년에서 800년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완성한 『요가경 Yoga Sutra』이 바로 그것이다.
『요가경』은 고대로부터 당시까지 전승되어 왔던 요가에 관한 모든 지식과 원리, 기법과 실천을 8단계로 나누어 총정리한 것이다. '라자요가'(Raja Yoga)로도 통칭되고 있는 『요가경』은 근대요가나 현대요가의 모든 유파가 활용하고 있는 권위 있는 텍스트로 여겨진다. 『요가경』의 특징은, 물질과 정신은 서로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는 기원전 500년 이전 시기에 성립된 자연철학으로 여겨지는 상키야(Samkhya)5)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가경』은 상키야 철학처럼 신의 존재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도 않았다. 『요가경』이 중시했던 것은 우리의 삶에서 고통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는 자아의식의 소멸이었다. 따라서 요가경의 핵심내용을 구성하고 있는 것은 첫째로는 물질로 이루어진 신체적, 생리적, 심리적 특성에 대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분석과 이해이다. 둘째로는 신체와 감각기관의 통제와 조절, 감정과 의식의 조정과 집중이다. 셋째로는 자아의 모든 의식으로부터 해방된 완전한 자유, 해탈의 체험이다.6)
파탄잘리의 요가경이 인도의 대표적인 요가와 깨달음의 수행법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와 거의 비슷한 무렵에 탄트리즘(Tantrism)7)도 등장하였다. 서력 300년경에 출현한 탄트리즘은 500년 이후에는 일종의 철학운동, 문화운동, 종교운동으로까지 발전되어 인도 전역은 물론이고 인접지역까지 휩쓸 정도로 유행하였다. 인간의 육체적 욕망을 억압하는 금욕과 부정의 방법을 취하고 있는 요가경과는 반대로, 탄트리즘은 인정하고 실현하는 긍정의 방법을 취하고 있다.
탄트리즘에서 육체와 성욕망은 더 이상 더럽고 추한 것이 아닌 생명의 근원이자 원천, 우주창조의 신성한 에너지이자 깨달음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우리의 육체적 욕망과 자아는 부정하고 억눌러서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강해질 뿐이다. 긍정과 충족에 의해서만 인간의 물질적, 육체적 욕망은 약화될 수 있음을 탄트리즘은 통찰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자아의 초월, 신과의 하나됨, 그리고 신의 사랑은, 몰아의 상태에서만 가능한 남녀의 완전한 하나됨의 성결합과 사랑에 의해서만 체득될 수 있음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13세기에서 17세기경 무렵에 이르러 탄트리즘의 요가수행법은, 육체를 중시하고 예찬하는 하타요가(Hatha Yoga)로 발전하게 된다. 하타요가는 '몸을 통하지 않고는 신성의 실현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유파이다. 인간의 육체는 곧 신의 몸인 것이다. 이제 육체는 고통의 근원도 아니고 죽음의 근원도 아니다. 반대로 즐거움과 영원성을 획득할 수 있는 원천이다. 정화되어 건강하고 완전한 육체만이, 신성의 순수의식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타요가에서 육체는 신성의 근원이다. 신과 하나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되는 수단인 것이다. 따라서 하타요가는 인체의 모든 부분과 부위, 기관과 조직, 혈맥과 경락 등에 관한 지식에 통달할 것, 육체를 정화하여 강건하고 완전하게 만드는 기법에 능통할 것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육체의 단련과 섭생에 전력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자신의 정화된 육체로부터 직접 느끼고 경험하는 신성과 불멸성, 완벽성과 무한성보다 더 확실한 초월체험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널리 확산되고 있는 요가들은 거의 대부분 하타요가에 속한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전반에 구미사회로 전파되어 발전한 하타요가가 한국사회를 석권하고 있는 것이다. 1947년에 할리우드에까지 진출하여 대중적 인기를 모으고 있는 서구형 요가에서는 신인합일의 본래 목적이 다소 퇴색하고, 건강의 증진 및 자신감의 회복을 위한 신체운동의 하나로 변질되어, 몸 관리나 건강 증진을 위한 체조와 율동, 호흡이나 감정의 조절, 자신감 회복이나 잠재력 개발의 심리요법 등으로 알려져 활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