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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백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사야 51:7~16
오늘 본문 말씀 역시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반복적인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의 말씀은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어떠한 말씀을 선민 유다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시면서 용기를 주셨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7절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의를 아는 자들아, 마음에 내 율법이 있는 백성들아, 너희는 내게 듣고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이 문장의 히브리어 시작 말씀은 ‘쉬므아 엘라이’입니다. 곧 ‘들으라 내게’라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실은 이사야 51장 1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내게 들으라”라고 시작하셨습니다.
“의를 따르며 여호와를 찾아 구하는 너희는 내게 들을지어다”
라고 1절에 되어 있지만, 원문에 보면, “쉬므아 엘라이”라고 오늘 7절 말씀과 같이 시작되었고, 4절 역시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역시 같은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하게 요구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집중하여 귀를 열고 고요하게 어린아이처럼 단순하게 잘 들으면 만사가 다 풀립니다. 하나님 말씀을 한쪽으로는 듣지만 마음속으로는 이 생각 저 생각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보다는 내 계획, 내 작전을 짜기에 바쁘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하나님 백성의 신앙 학교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하나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차분하게 잘 듣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많은 문제들을 해결됩니다. 내 생각, 내 판단, 내 계획, 내 감정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계명을 자세히 잘 듣기를 힘쓰십시오. 그리할진대 내 마음 속의 모든 불안과 염려와 분주함은 거의 다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자기 백성들에게 먼저 “너희는 내게 들으라”고 요청하신 후에 하셨던 말씀은 7절 후반절에 보니,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사람들의 비방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을 아시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비방’이라는 히브리어 ‘헤르파’는 책망, 조롱, 명예훼손을 가리키고, ‘기두프’라는 다른 히브리어는 신성 모독, 욕설을 가리킵니다.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지자 이사야와 선지자 예레미야의 언약을 믿고 고토 귀환의 약속을 믿고 소망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들이 들어가 노예생활하는 바벨론 사람들은 그러한 유대인들의 소망의 이야기를 듣고 허무맹랑한 말이고 헛된 꿈 꾸지 말라고 책망을 합니다. 바벨론이 노예로서 현실을 받아들라고 그들에게 조롱과 욕설을 해답니다. 또한 일부 바벨론의 유대인들 중에서도 바벨론 생활에 적응하면서 더 이상 헛된 꿈을 꾸지 말라고 내부에서 동족들에게 비난합니다. 신앙의 용기를 꺾어버립니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바벨론에서 살아남는 일에나 집중하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안팎에서 가해오는 비방, 욕설, 조롱을 들으면서 주의 백성들도 사람인지라 두려워하고 낙심하고 놀라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그들의 마음을 아시기에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렇게 미리 예언적 격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던져주신 것입니다.
“그들의 비방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의 비방에 놀라지 말라”
그렇습니다. 진실한 믿음을 갖고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사람들의 비방과 조롱을 반드시 받게 되어 있습니다. 내세에 대한 언약을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향하여 비난과 멸시를 퍼붓고, 신앙의 열심을 내는 경건한 성도들은 반드시 핍박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의 조롱과 박해를 만날지라도 결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신앙을 가진 우리를 대적하고 조롱하고 비방하는 자들에 대하여 두려워하지도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8절에 대하여 이렇게 하나님은 이어서 말씀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8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옷같이 좀이 그들을 먹을 것이며 양털같이 좀 벌레가 그들을 먹을 것이나 나의 공의는 영원히 있겠고 나의 구원은 세세에 미치리라”
다시금 좀과 벌레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좀이 옷을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먹어가듯이, 벌레가 양털을 먹어가듯이 그렇게 완전히 하나님 백성을 조롱하고 핍박하고 하나님 백성의 소망을 짓밟는 자, 참 신앙을 가진 주의 백성들을 낙심하게 하는 거짓 신자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이렇게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귀담아 듣고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대적하고 괴롭히며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이 있겠는가 하면서 조롱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좀이 옷을 먹어버리듯이, 벌레가 양털을 조용히 씹어먹어버리듯이 그들의 세상 영광과 권세를 무너뜨리고 그들의 삶의 행복을 서서히 빼앗아가고 무너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향하여 약속하신 바 언약은 반드시 지키실 것이고 그 백성을 구원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는 구원의 역사는 반드시 세월이 지날지라도 반드시 성취되고 말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두려워할 것 없습니다. 놀랄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서서히 좀처럼 약해지고 무너질 것이나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통하여 고난을 이기고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렇듯 에워싸고 있는 불신앙과 우상 숭배자들의 조롱과 박해 속에서 낙심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하나님 백성들의 상황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놀라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는 권면의 말씀을 들은 선지자 이사야는 참 성도들의 대표로서 중보 기도자로서 하나님께 간절하게 청원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합니다. 이 청원의 기도가 9절로부터 11절까지 나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 시대에 깨신 것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 여호와께 구속받은 자들이 돌아와 노래하며 시온으로 돌아오니 영원한 기쁨이 그들의 머리 위에 있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이다”
선지자는 세상 사람들과 불신앙자들의 비방을 들으면서 마음이 두려워하고 놀라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이제 일어나 능력을 발휘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여호와의 팔 곧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일어나 역사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선지자는 특별히 옛 시대 곧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할 때에 그 강력한 나라 애굽 왕 바로와 그 군대를 물리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해내시고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시어 그 백성들을 건너게 하신 일을 회상합니다. 그러면서 애굽 사람들이 섬기던 신들을 ‘라합’과 ‘용’으로 비유하면서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건지시려고 애굽의 신 바다 괴물인 라합을 저미고 곧 토막내어 잘라버리고, 또 또 다른 바다 괴물 중 하나인 용까지 치명적으로 깊이 찔러 죽이신 일을 회상합니다. 라합이나 용이나 리워야단은 그 당시 이스라엘이나 시리아나 애굽에서 널리 퍼진 신화 속에 나오는 바다 괴물들로서 어둠과 혼돈을 일으키는 강력한 악령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 백성을 대적하는 어둠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내고자 할 때 애굽 왕 바로와 그 곁에서 돕는 마술사들과 애굽 나라의 신하들과 애굽 군대를 도와 하나님 백성을 삼키려고 덤벼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악한 영들을 죽이고 물리치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깊은 바다인 홍새를 완전히 말려버리고 길을 내어 주의 백성들을 무사히 건져내게 하는 큰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깨어나시어 동일한 권능을 행하시어 주의 백성들을 이제라도 바벨론에서 구출해내달라고 간청하였던 것입니다. 선지자는 그 간구 마지막에 하나님 백성들이 시온으로 돌아와서 ‘영원한 기쁨’을 누릴 것이고 즐거움과 기쁨을 얻을 것이며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게 될 것을 전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두려워하고 떨고 놀라고 있지만 하나님이 깨어 일어나시면 반드시 주의 백성들은 슬픔과 근심을 다 벗어버릴 것이고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을 선지자는 미리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훗날 2백년 후에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웠던 이방 왕 고레스 왕이 바벨론을 정복하고 곧장 유대인 해방령을 내려 유대인들은 해방의 감격을 가지고 마음에 기쁨이 벅차서 고토로 찬양하며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그 때 그 감격스러운 해방을 직접 경험했던 하나님의 사람이 기록한 시편 126편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 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찾았도다 그 때에 뭇 나라 가운데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 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 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같이 돌려 보내소서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지금 하나님의 섭리 속에서 징계의 연단을 받으며 비탄의 눈물을 흘리는 시간을 보낼지라도 하나님께서 일어나 일하시는 그 주권적인 역사의 때가 차면 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들도 얼마든지 일어나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을 비웃던 자들, 우리의 몸부림치며 기도하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조롱하며 훼방하던 자들까지도 그 때에 놀라서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큰 일을 행하셨다”라고 인정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눈물로 가득찼던 우리 심령에 이제 기쁨이 충만하고 기도한 모든 것들로 인하여 풍성한 수확의 곡식단을 안고 돌아오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낙심하지 맙시다. 하나님께 선지자 이사야처럼 소망을 가지고 아뢰기를,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입으소서 애굽의 라합을 칼로 토막을 내시고 바다의 괴물 용을 찔러 죽이고 꼬불꼬불한 괴물 리워야단도 무찔러 죽이신 용사이신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해하는 모든 악한 세력을 물리쳐주시고 혼돈과 어둠을 물리쳐주옵소서. 애굽의 군대를 홍해 바닷물로 수장시키신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대적하는 모든 세력들을 맞서 싸우시고 우리를 위하여 길을 열어주시고 우리를 온전히 구원해주옵소서. 우리의 근심과 슬픔을 멀리 내쫓아주시고 영원한 기쁨과 희락을 우리 심령에 베풀어주옵소서. 여호와여 깨소서 깨어나소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소서”
라고 계속하여 소망과 인내를 가지고 간구하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그렇게 선지자가 간청하자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으로 주신 말씀이 12절로부터 16절까지 이어져 주어집니다. 먼저, 12절로부터 13절을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를 위로하는 자는 나 곧 나이니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하늘을 펴고 땅의 기초를 정하고 너를 지은 자 여호와를 어찌하여 잊어버렸느냐 너를 멸하려고 준비하는 저 학대자의 분노를 어찌하여 항상 종일 두려워하느냐 학대자의 분노가 어디 있느냐”
이는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남은 자들 참 백성들을 대표하여 하나님께 깨어나서 자기들을 위하여 싸워달라고 간청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다시금 확신을 주고 용기를 주시는 응답의 말씀을 베풀어주신 것입니다.
12절 말씀은 원문에 보면, “나 곧 나는 곧 너희를 위로하는 자다”라고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가르켜 두 번이나 “나 곧 나”라고 사용하시면서 하나님 자신이 자기 백성을 위로하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하기를
“너는 어떠한 자이기에 죽을 사람을 두려워하며 풀 같이 될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느냐”
고 반문하십니다. 여기서 주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대상들이 비록 아무리 강력한 바벨론의 왕이라 할지라도 그는 죽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풀같이 연약한 사람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두 번이나 사용된 사람의 용어를 보면, ‘에노쉬’와 ‘아담’이라는 단어입니다. 둘 다 인간의 연약성을 매우 강조되어 나타나는 단어들입니다. 둘 다 흙덩이요 풀과 같이 연약하여 시들고 늙고 병들고 죽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가리킬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존재들을 주의 백성들이 그렇게 무서워하고 놀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흉악하고 포악한 자들일지라도 그들은 코만 붙잡고 오분 십분만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한 존재를 두려워할 필요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하나님은 연약한 인간과 달리 얼마나 강하고 능하신 분입니까? 그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백성들을 지으신 분이요 하나님 백성의 보호자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 백성을 학대하고 분노를 가지고 덤벼든다 해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연약한 존재를 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 백성들은 항상 종일 그 학대자의 분노를 두려워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들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서 우리를 대적하는 학대자들의 분노에 대하여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우리를 해하려고 늘 미사일을 쏘아대며 핵무기를 개발하며 늘 위협과 악랄한 말들을 쏟아붓는 저 북한의 김정은 집단의 말들에 조금도 주눅 들지 말고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죽을 사람이요 풀처럼 시들어버리는 존재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창조주시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잇비니다. 그는 자기의 참 백성들을 친히 붙들어주시고 지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 백성들을 치려는 악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요 자기 백성인 우리는 온전히 지켜주실 것이 분명합니다.
이어지는 14절로부터 16절까지 함께 읽겠습니다.
“결박된 포로가 속히 놓을 것이니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며 그의 양식이 부족하지도 아니하리라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라 바다를 휘저어서 그 물결을 뒤흔들게 하는 자이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이니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고 내 손 그늘로 너를 덮었나니 이는 내가 하늘을 펴며 땅의 기초를 정하며 시온에서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말하기 위함이니라”
그렇습니다. 바벨론 포로들이 속히 풀려날 것이요 죽지도 아니할 것이요 수치와 멸망의 구덩이로 내려가지도 아니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양식도 부족하지 않게 해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요 구원해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지으신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그 구원하신 백성들을 자기 백성이라고 온 세상에 선포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자기 영광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환난과 고난 중에도 겁먹지 맙시다. 우리를 비방하는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맙시다. 우리를 학대하는 자들의 분노에 대하여 절대로 두려워하지 맙시다. 그들이 아무리 무섭게 혈기를 내고 협박을 한다고 해도 눈 하나도 꿈쩍하지 맙시다. 아무리 깊은 고난 중에 떨어졌다 해도 낙심하지 맙시다.
그리고 아무리 삶의 여정에서 깊은 흑암을 만날지라도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맙시다. 10절의 ‘깊은 물’이라는 히브리 단어 ‘테홈’은 천지창조하실 때의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는 창세기 1:2 말씀의 깊은 흑암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렇게 깊은 곳을 우리가 지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깊은 곳에서 자기 백성을 건지시고 그 깊음을 마른 땅으로 바꾸어 자기 백성을 건너게 하셨듯이, 우리도 인생의 깊디 깊고 캄캄하고 어두운 곳을 지날 때가 있을지라도 우리를 건져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동행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의 악한 영 라합과 용과 리워야단과 같은 바다 괴물 같은 악한 영들을 하나님께서 짜르고 찌르고 물리쳐버리신 것처럼, 우리들을 대적하는 악한 영들을 물리쳐주시고 우리를 건져내주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능력의 팔로 애굽과 바벨론에서 구원해내시고 인도해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고 영원한 기쁨으로 노래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영원한 기쁨과 노래를 부르게 해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