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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4월14일(日)晴
▲백화산(白華山)(수봉리-금돌성-포성봉-잠수교)*사진5컷
해봉산악회(46명)
♠참 고
▲백화산[白華山]
위치 : 충북 영동군 황간면과 경북 상주시 모동면
높이 : 933m
주봉우리 : 포성봉(捕城峰)
한국 중앙에 있어 전국 어디에서나 당일 코스로 가능한 곳이며, 산기슭에는 금돌산성
(今突山城)이 있다. 신라 때 김흠이 쌓았다고 전하며, 전체 길이는 20㎞로, 높이 4m,
너비 3.6m의 성벽이 축조되어 있다. 현재 일부분이 복원되었다. 백화산을 사이에 두고
금강과 낙동강이 흘러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이었다.
산 동쪽의 석천은 민주지산(1,242m)의 송천과 합류하여 금강의 상류를 이룬다.
구수천·중모천이라고도 부르며, 석천에 흐르는 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모동면 수봉리에는 1518년(중종 13)에 창건한 옥동서원(玉洞書院:경북기념물 52)이
있고, 황희와 황효헌의 덕행과 학문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서원으로, 매월 3월과 9월에
향사를 지낸다.
산행은 상주시 쪽인 수봉리에서 시작하여 영동군 황간면으로 내려오는 코스와, 영동군
쪽인 황간산림욕장에서 시작하는 코스가 있다. 수봉리에서 출발하여 논길을 따라가면
신덕마을에 이르는데, 마을 건너편에 옥동서원이 있다. 이곳에서 개울을 건너면 갈림길이
나오고, 오른쪽 길로 100m쯤 오르면 보현사에 닿는다. 보현사는 용문암 터에 있었던
절인데, 1975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보현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용추폭포가 나오며, 조금 가파른 등산로를
1시간 정도 오르면 보문사 터에 이른다. 이곳에서 15분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
길은 922m봉을 거쳐 정상에 도착하는 길이고, 오른쪽 길은 금돌산성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보문사 터에서 금돌산성(사적 30)까지는 20분 정도 오른다. 금돌산성을
지나 주능선을 따라 오르면 정상에 다다른다.
정상에서는 속리산·민주지산·덕유산이 보인다.
하산은 등산로의 반대편인 영동군 쪽으로 내려간다. 석천골에 이르는 길 주변에는
벚나무가 많다. 석천골에는 선덕여왕 때 창건한 반야사가 있다. 이 코스는 6시간 정도
소요된다. 황간면 우매리에 있는 황간산림욕장에서 출발하면 2시간 이내에 정상에 도착
할 수 있는 짧은 코스가 있다.
교통편은 버스나 열차를 이용하여 황간에 도착하고, 황간에서 수봉리까지는 시외버스를
이용한다. 상주시에서는 모동행 버스를 이용한다. 자동차를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에서 황간I.C를 빠져 나와 상주시 모동 방면으로 가다가 우매리에서 반야사로 진입하거나
수봉재를 넘어 수봉리에 도착하면 된다. 주변에는 한천팔경, 물한계곡, 민주지산 등 명소가
많다. 숙박 시설은 영동군과 상주 시내에 많다.
♣산행 코스
11:10=수봉리입구 백화산 도로표지판
11:20=백화산등산로 안내간판
11:47=등산로 들머리
12:35=보현사 터
13:00=금돌산성
13:57=백화산 정상 포성봉
15:05=헬기장
15:50=백화정사
16:00=잠수교
총 4시간40분
☞☞☞한동안 소식이 없든 전현대상선 선장, 이근회원.
교통사고로 6개월간 입원하고 오늘 처음 나왔다며 반갑게 인사를 나눕니다.
그리고 지리산 종주 후 모처럼 보게 되는 너무 점잖은 현대병원 원장님,
문 박사, 오지호님, 신회장님을 비롯해 간이 의자까지 동원하는 성황 속에 젊은
조 기사님이 운전대에 앉아 46명이 정시에 출발합니다.
800차 기념 산행으로 집행부에서 준비한 흰 시루떡과 기념타올(조 고문님 기증)을
분배, 경산휴게소를 거쳐 추풍령을 넘어 황간 나들목으로 빠져 수봉재를 넘어
산행기점이 상주시 모동면의 49번도로 상의 도로 표지판(백화산, 금돌성)앞에 도착한
게 11시.
백화산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들 한성봉(恨城峰)이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는 병자호란
때 몽고의 차라대(車羅大)가 이끄는 몽고군이 황령사 스님 홍지사(洪之射) 승군에게
대패하여 성을 넘지 못하고 한탄한 데서 한이 서린 봉우리로 부르던 것이 그 뒤
한성봉(漢城峰)으로 불려졌다고 합니다.
좌측으로 멀리 흰 꽃이 많아, 산 전체가 티 없이 맑고 밝다는 뜻의 백화산의 포성봉이
솟아있는 게 보입니다. 포성봉(捕城峰)은 일제가 우리 민족문화말살과 국운을 꺾을
목적으로 금돌성을 포획한다는 뜻에서 이름 붙였답니다.
36명이 하차하여 왼쪽으로 난 콘크리트 포장로를 따라 들어가고 나머지는 역으로
주행봉을 탄다며 하산기점인 반야사 쪽으로 간다고 합니다.
구름한점 없는 맑은 하늘, 땀께나 흘릴 것 같습니다.
백화교를 건너 마을을 지나
등산로 안내간판 앞에서 재집결, 인원점검과 상견례를 마치고
11시20분, 강 성근군을 리더로 오른쪽 임도를 따라 출발합니다.
11시26분, 절 같지 않는 보현사 앞을 지나 개울을 몇 번 건너
11시47분, 좌측으로 보이는 본격적인 등산로 들머리로 진입합니다.
작은 계곡을 끼다 건너기를 거듭하며
12시11분, 너덜 길을 오릅니다.
내려오는 일단의 남녀 산채채집꾼들과 조우합니다.
김두호회원의 부인이 오늘따라 무척 힘들어합니다.
그래도 남편이 계곡 쪽으로 올라갔는지 보이지 않자 남편 이름을 부를 때는 꽤 큰
목소리입니다.
작은 나무거늘 아래에서 휴식하며 친구와 함께 모처럼 나온 이수경회원,
보온병에서 꺼내어주는 깎아서 담아온 시원한 참외 한 조각, 꿀맛입니다.
보온병이 여름에는 미니냉장고로도 사용할 수 있다는 재치를 엿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일단의 어린이들.
“안녕!” 인사를 나누고
주변의 양지꽃과 앵초등 야생화를 캠코더에 담으며 갈지자로 올라갑니다.
12시33분, 시계가 트이면서 위쪽에 외롭게 독야청청한 소나무 한 그루.
그 그늘아래에서 몇몇 회원들이 휴식을 하고 그 위쪽으로 백화산 능선이 보입니다.
쉬엄쉬엄 올라가며 알게 된 해양대학 동창회(김두호, 오지호, 이근)모임 같은 만남.
이 근 회원이 하늘같은 선배님이라며 큰일 날 뻔 했다며 몸을 사리고
김두호회원은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은지 부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금 더 올라가자 절집이 사라진 보현사 빈터에
노랗게, 빨갛게 마지해 주는 화려한 황매화와 산당화가 반깁니다.
그리고 그 위쪽으로 이정표(갈림길2.5km 금돌성1.5km)가 서있습니다.
(주)대우콘크리드 회사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숲 속 S자 비탈길. 두어 번 휴식하며
13시, 주능선에 올라섭니다.
금돌성 이정표(보문사터1.5km 포성봉(정상)1.7km)가 서 있고
돌탑과 왼편으로 바로 금돌산성 앞에 안내간판도 보입니다.
금돌성(今突城)은 신라시대 김흠이 쌓은 석성으로 전하는데 내.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성 길이는 약 20km로써 신라 김유신(595∼673)장군이 백제군과 격전한 높이
4m. 폭3.6m의 석성으로 무열왕이 친히 이 성에서 5만의 신라군을 독려하였던
곳인데 1978년 국방유적 보수사업으로 성벽80m를 원형대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나제간의 돌격과 방어의 혈전이 산성이름으로도 충분히 상상이 됩니다.
삼국시대 백화산을 사이에 두고 금강과 낙동강이 흘러 전략요충지로 신라와 백제의
격전지였습니다.
산 동쪽에 그 옛날을 알고 있느냐며 석천이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주변을 촬영하고 산성을 오른편으로 끼고 올라갑니다.
부실공사를 했는지 일부 허물어지려는 산성,
산성이 끝난 지점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철쭉, 활짝 핀 철쭉들이 보입니다.
그리고 멀리 좌측으로 포성봉 주능선에 회원들이 올라가는 모습이 깨알처럼 보입니다.
땀에 젖은 캠코더 카바 때문인가 캠코더가 말썽을 부립니다.
테이프를 꺼내어 잠시 건조, 다시 삽입하여 재 촬영하며 올라갑니다.
이런 일이 두어 번 더 계속되어 오늘 촬영의 화질을 은근히 걱정합니다.
사방 확 터인 암능의 너럭바위에 홀로 앉은 이종원회원이 느닷없이 대전브루스를
부르고 있습니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가 병자호란 때 에는 몽고군과 이 석성을
쌓은 칼등능선에서 좌측벼랑으로 돌을 굴리며 혈전을 벌렸겠지요.
잠시 이군과 암능을 배낭에서 캐넌을 꺼내어 촬영하고
동쪽으로 얕게 길게 뻗어있는 백두대간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좌우 낭떠러지인 벼랑을 끼고 뻗어있는 칼등을 촬영하며 건너갑니다.
전면의 포성봉과 1시방향의 거대한 범선이 달려가는 형상의 주행봉(舟行峯)을
바라보고 계속 올라갑니다.
그 험로에 수즙은 듯 피어있는 앙증스러운 현호색과 제비꽃들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13시48분, 봉우리에 올라섰는데 정상은 보이지 않고 다시 내리막과 오름을 거쳐
13시57분, 텅 빈 정상에 올라섭니다.
‘금돌성1.7km 주행봉3.1km 반야사, 목장, 보현사 방향표시만 한 이정표가 서있고
1981년에 제설한 B/M가 박혀있는 그 뒤편 작은 자연석에
’白華山933m‘라고 음각한 정상비 이면에
尙州市廳山岳會 1996.10.3.’이라고 음각해 놓았습니다.
시간관계상 포기한다는 주행봉은 남쪽으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걸
촬영만 하고 그늘을 찾아 좌측 공터에서 식사하고 있는 회원들 쪽으로 갑니다.
간단히 빵으로 식사를 마치고 이군을 불러 정상비 쪽으로 가
서로 기념촬영하고 14시15분, 하산 길로 접어듭니다.
오늘의 리더, 강 성근군이 무전기로 후미 홍팔군에게 연락합니다.
내려올 때 계곡을 타지 말고 계속 암능을 타라고...
오른편으로 주행봉 주능선이 보이고
된비알을 암괴와 너덜 길, 왼쪽으로 천길 벼랑을 끼고 내려갑니다.
잠시 왼쪽으로 확 트이는 벼랑에서
뒤돌아보고 된비알의 포성봉 암능을 촬영한뒤
아래쪽으로 작은 동강인가, 사천형으로 구비치는 석천과
만경봉, 헌수봉을 촬영하며 내려갑니다.
하산 길은 계속 곤두박질치듯 비탈져 있습니다.
더욱 가까워진 석천과 오른편이 확 터이며 주행봉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14시54분, 무덤이 나타납니다.
이제 너덜과 된비알은 끝난 걸로 예측하며 평지를 걷는데 다시 암괴와 바위사이 길이
나타납니다.
15시5분, 헬기장에서 뒤돌아 지나온 금돌성과 포성봉을 한 번 더 촬영하고 내려가다
발아래의 하산지점인 잠수교를 캠코더에 담습니다.
아직 높은 지점이라 끝까지 된비알을 예상합니다.
다시 나타나는 암괴와 너덜지대.
홍팔군이 비스듬히 거북이가 목을 길게 뺀 형상의 돌출바위위에 앉아 있는 게
건사하여 내려오려는 걸 더 있게 하고
바위 위와 바위아래쪽에서 캠코더와 캐넌으로 촬영합니다.
암괴사이로 내려가는데 바위위에 작은 나무 한그루가
바위틈 사이를 비집고 자라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의 경이를 캠코더에 소중하게 담습니다.
이제는 휘파람 불며 내려가는 소나무 오솔길.
부녀회원들이 숲 속에서 고사리, 산나물들을 캐고 있습니다.
15시47분, 묘지를 지나
15시50분, 물을 뿜어내는 관음보살 입상의 백화정사를 통과합니다.
멋진 소나무를 촬영하며 내려가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빠져
16시, 잠수교 앞에 당도하여 4시간40분의 산행이 끝나는데
정 대장이 기다리고 있다
위쪽의 민박집에 시원한 맥주가 기다린다며 한잔 하라고 합니다.
한 모금 마시는 시원한 맥주 맛은 이런 산행을 한 자만이 느낄 수 있는,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소중한 기분입니다.
오늘의 물주, 신 회장에게
“한잔 하고 어~ 시원하다!”
한마디 하라고 연출시켜 그 행복해 하는 모습을 캠코더에 담습니다.
그리고 개울에 내려가 차가운 일급수에 머리를 담그고 세수를 합니다.
잠수교를 건너 ‘황간 산림욕장 종합안내도’간판에서 좌측의 직진300m의 반야사코스를
바라보기만 하고 오른편으로 돌아 주차장 도착합니다.
주행봉을 다녀왔다는 조 고문과 이 총무등 5,6명이 미리 준비한 돼지고기와 소주와
막걸리를 펼쳐놓고 둘러앉아 모두 부자가 되어 서로 권하며 담소를 즐기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맥주와 권하는 소주와 포도주까지 겹쳐 벌겋게 주기가 올라 자제하고
포식하여 한 발작 물러앉은 회원들과 넘어온 포성봉을 다시 캠코더에 담습니다.
뒤늦게 신랑의 안위가 염려되어 마중 길로 올라갔든
홑몸이 아닌 홍팔군의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며 찾고
길이 엇갈려, 되돌아오지 않는 걸 로 판단하여 찾아 나선
홍팔군의 뒤를 따라 정대장과 배낭까지 챙겨 메고 나선 신 회장.
모두 따뜻한 심성들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얼마 후, 부인을 눈 꾸중하며 홍팔군등, 무사히 돌아와 안도하였고 뒤풀이를
끝내고 예정시간보다 6분 빠른 17시24분,
이래저래 한이 많은 백화산을 뒤에 두고 부산으로 출발합니다.
17시33분, 황간 나들목으로 빠져 나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추풍령 못 미쳐 백두대간을 야금야금 갉아 먹히고 있는
‘금산’을 흔들리는 차중의 전면 창을 통해 한숨쉬며 무거운 캐넌으로 촬영합니다.
백두대간 종주 시, 잘려져 가고 있는 금산 정상에서 느낀 허탈감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책으로 전국 유명산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흥분하든 우리국민,
스스로 한반도의 요추(腰椎)를 잘라내고 있다고 관련시민단체와 언론기관, 위정자들에게
알렸지만 그때뿐, 마이동풍인 우리민족에 대한 허탈감입니다.
평사휴게소를 거쳐 예상보다 1시간15분, 빠른 20시43분,
부산T/G를 무사히 빠져 나왔습니다.
산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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