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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지 목사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아가서」는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입니다.
한글성경은 우리가 공식으로 사용하는 「개역개정」 말고 여러 종류가 다양하게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아가서」라는 제목을 「사랑의 노래」라고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아가서」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64번이나 나옵니다.
아가서는 전체가 8장, 118절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52절에 사랑이라는 말이 한 번, 또는 두 번 들어 있습니다. 정말 「사랑의 노래」라고 할 만합니다.
이 사랑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이런 사랑을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아가서」는 이 사랑을 실감 있게 전달하기 위해 남녀 간의 사랑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가서」는 연애문학, 나가서는 에로틱한 노래로 오해 받는 일이 많습니다.
우리는 「아가서」가 이와 같이 남녀 간의 사랑, 에로스의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알맹이는 아가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고 읽어야합니다.
「아가서」 사랑을 말하는데 강한 사랑을 말합니다.
뜨뜻미지근한 사랑이 아닙니다. 뜨거운 사랑입니다.
2장 5절과 8장 6절에서는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병이 날 정도로 여러분과 저를 사랑하십니다.
8장 6절에서는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다.
죽음 같이 강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그렇게 사랑해야합니다.
강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이웃을 그렇게 사랑해야합니다.
강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뜨겁게 사랑해야 합니다.
여기 오늘 초청받아 오신 분들, ‘초청한 분들이 나를 왜 그렇게 성가시게 초청했을까?’ 궁금하기 여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을 그렇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강권적으로 초청한 것입니다.
이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아가서」사랑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강할 뿐만 아니라, 사랑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이 아가서의 특징입니다.
1장 14절에서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라”고 했습니다.
고벨화는 중동지방의 관목인데 향기로운 꽃이 핍니다.
2장 2절을 보세요.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두고 한 말인데 “내 사랑은 가시나무 가운데 백합화”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들 가운데 내가 사랑하는 자는 수풀 가운데 사과나무라고 화답합니다.
2장 9절에서는 “내 사랑하는 자는 노루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다”고 했습니다.
노루, 어린 사슴, 모두 귀엽지요.
「아가서」는 또 사랑을 깃발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 4절의 뒷부분을 보세요.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사랑을 왜 깃발에 비유했을까요?
사랑을 깃발에 비유한 일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와 교훈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목양 체임버의 특별연주가 있어서 설교가 짧은데 짧은 시간에 이 문제의 답을 같이 찾으려고 합니다.
첫째, 깃발은 나의 소속을 알려줍니다.
기는 ‘나는 이 깃발에 표시된 단체에 속해 있습니다.’ 하는 것을 말합니다.
4절에서 술람미 여인이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한 것은 ‘나는 사랑하는 남자, 당신에게 속해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라는 것입니다.
‘다른 남자들은 내게 관심 갖지 마십시오.’ 하는 뜻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위에는 주님의 깃발이 세워져 있어야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나는 주님께 소속되어 있습니다.’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예수님을 깃발에 비유해서 말했습니다.
이사야서 11장 10절에서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서 11장 12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치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들을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라고 하였는데 이 깃발도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세상에 소속이 없는 것처럼 서러운 일이 없습니다.
선거를 할 때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는 것도 참고합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많이 참고하는 것은 ‘그 사람이 어느 정당에 속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일에 있었던 보궐선거에서도 그런 현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 해 전에 탈북자 한 분을 도와준 일이 있는데 여러 가지로 도와주었습니다.
그 가운데 그에게 제일 큰 도움이 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분은 북한에서 오래 전에 신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한 분입니다.
그 학교의 동문회가 남한에 있습니다.
그 동문회에 소개해서 동문 대접을 받게 해 준 일입니다. 소속을 만들어 준 일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속한 것을 감사하면서 소속감을 분명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세상을 떠나서 문상하기 위해서 가면 빈소 앞에 조기가 놓여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인이나 자녀들이 졸업한 학교, 직장, 또는 단체의 기가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을 떠난 분이나 그 자녀가 이 학교의 동창입니다. 이 단체의 멤버입니다.’ 소속을 알려줍니다.
빈소 앞에 다른 조기보다 교회의 조기가 세워져 있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어느 일류학교, 어느 잘 알려진 기업, 무슨 라이온즈 클럽, 이런 것들보다 교회의 조기가 세워져 있는 것이 좋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렇게 이야기합니다.
빈소에 교회의 조기가 있으면 웬일인지 안도가 되고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 때문에 교회 나온 분들도 있습니다.
지난 주일 저녁에 설교하면서 묘비의 비문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공동묘지에 가면 묘 앞에 세워진 묘비들을 볼 수 있는데 그 묘비에 다른 것들보다 십자가가 새겨져 있는 것이 제일 좋다고 했습니다.
묘비에 새겨져 있는 십자가는 천국시민의 배지이기 때문입니다.
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내 위에 세워진 주님의 깃발이 축 늘어져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그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갈 때 내 위의 깃발은 힘차게 펄럭입니다.
사람들이 보고서 ‘아, 저 사람은 주님께 속했구나! 주님의 백성이로구나!’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위에 주님의 깃발이 서 있어서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주의 백성으로 바르게 살아 내 위에 세워진 주님의 깃발이 힘 있게 펄럭이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깃발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을 알려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향해 갑니다.
광야에서 진을 옮길 때마다 막사를 치고 머물렀습니다.
성막을 중심으로 지파별로 질서정연하게 막사를 쳤습니다.
민수기 2장 52절을 보면 진영과 군기 곁에 막사를 쳤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지파별로 진영을 정하고 군기를 세우면 그 지파에 속한 백성들이 막사를 쳤습니다.
유다 지파에 속한 백성들은 유다 지파의 기 밑에 막사를 세웠습니다.
요셉 지파에 속한 백성들은 요셉 지파의 기 밑에 막사를 세웠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깃발이 있는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그 깃발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군대에서 탈영한 병사는 무거운 벌을 받습니다.
성도가 주님의 기 밑을 떠나는 것은 탈영입니다.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할 때 왜군의 전선은 삼백여 척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에게는 전선이 열두 척밖에 없었습니다.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장수들이 겁을 먹고 물러섭니다.
이 때 이순신 장군은 초요기(招搖旗)를 꽂았다고 했습니다.
초요기가 무엇인가 사전을 잦아보았더니 . 행진할 때, 싸움터에서, 대장이 장수들을 부르고 지휘하고 호령하는 기라고 되어 있습니다.
‘초’는 부를 초 자입니다
초요기를 세우는 것은 가장 삼엄한 명령의 표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수들이 돌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수가 빠질 시간이 되었는데 울둘목의 급한 조수와 물 밑에 매어둔 철쇄를 이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사야서 5장 26절은 “주님께서 기치를 세우고 먼 나라들을 불러 땅 끝에서부터 자기에게로 오게 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도 초요기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는 그 밑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을 떠나려고 해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을 체험한 다윗은 시편 139편 9절에서 10절까지에서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나이다.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 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우리는 주님을 떠나서는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어거스틴, 행복과 만족을 찾아서 참 많이 방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회개하고서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을 때 참회하면서 한 첫 마디가, ‘주님, 주님을 떠나서는 참된 행복이 없습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는 ‘나는 사랑하는 당신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는 선언이기도 합니다.
주님께 대해 마찬가지의 고백을 하는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 깃발은 승리를 약속합니다.
4절의 “그 사랑은 내 위에 깃발이로구나” 이것은 여자가 남자를 두고 한 말입니다.
「아가서」6장에서는 반대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깃발에 비유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6장 4절에서는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했습니다. 디르사는 서읍의 이름인데 아주 아름다운 성읍이었습니다.
“디르사”라는 이름 자체가 ‘아름다움’ ‘즐거움,’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6장 10절에는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했습니다.
패배한 군대는 당당할 수 없습니다.
승리한 군대가 깃발을 세우고 당당하게 행진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행진을 할 때 르비딤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말렉이 쳐들어왔습니다.
여호수아가 나가서 싸우고 모세는 아론과 훌과 같이 산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깁니다.
아론과 훌이 양쪽에서 모세의 팔을 붙들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모세가 이 승리를 기념해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기념교회를 하나 세웠습니다.
그 이름을 무엇이라고 하였는지 아십니까?
“여호와 닛시”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닛시, 하나님의 중요한 이름 가운데 하나인데 무슨 뜻입니까?
‘여호와는 나의 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기로 삼았더니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하는 고백입니다.
여호와 닛시 하나님을 나의 기로 삼을 때,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 우리는 승리의 개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가운데는 그런 고백을 담은 찬송가들이 여럿 있습니다.
찬송가 385장,
군기를 손에 높이 들고 다 빨리 나아가세
진리의 검을 앞세우고 힘차게 싸워보세
온 몸에 갑주 입고서 담대히 나가 보세
군기를 들고 나가세 승리는 내 것일세
십자가 군병들아 두 손에 기를 들고
용맹스럽게 싸우세 승리는 내 것일세
찬송가 389장,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우리 대장 예수 기를 가지고 접전하는 곳에 가신 것을 보라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 앞에 가신 주를 따라 갑시다
찬송가 390장,
십자가 군병들아 주 위해 일어나
기 들고 앞서 나가 굳세게 싸워라
주께서 승전하고 영광을 얻도록
그 군대 거느리사 늘 이김 주시네라고 노래합니다.
기원후 4세기 초 로마의 콘스탄티누스가 황제가 되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병력이 적어 고전을 하고 있는데 결전을 앞둔 날 병사들과 함께 십자가의 환상을 보았고, ‘이것으로 싸워 이기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콘스탄티누스는 군기에 십자가를 그리고, 병사들의 방패와 투구에도 십자가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승인하는 칙령을 내렸습니다.
다윗은 시편 20편 5절에서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라고 노래하였습니다.
주님의 깃발 밑에서 드리는 기도를 주님은 이루어 주십니다.
내 위에 세워진 주님의 기는 십자가의 권능으로 죄악을 이길 것을 약속합니다.
마귀의 권세를 이길 것을 약속합니다.
세상을 이길 것을 약속합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길 것을 약속합니다.
내 위에서 펄럭이는 사랑의 깃발에 힘입어 승리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 중요한 것을 하나 생각합니다.
기는 마음대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깃발을 세울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주를 믿는 자에게 그것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시편 60편 4절을 보면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깃발을 주시고 진리를 위하여 달게 하셨나이다” 하셨습니다.
오늘은 종교개혁 488주년 기념주일인데 종교개혁의 3대 표어가 ‘오직 믿음으로!’ ‘오직 말씀으로!’ 그리고 ‘오직 은총으로!’입니다.
내 위에 주님의 기를 세울 자격이 없는데 기를 세우게 하시는 것을 우리는 은총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주님의 은총으로 주의 깃발이 내 위에 세워져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오늘 초청에 응해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
주님은 내 위에 사랑의 깃발이십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소속감을 분명히 하시기 바랍니다.
그 깃발이 힘차게 펄럭이게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깃발 밑을 떠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승리를 거두는 성도들이 되고, 오늘 이 자리에 처음 나온 분들이 되고, 또한 부족한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