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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1-13
비전의 땅을 정복하고 나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13살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가 전염병에 걸려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운명하기 직전의 어머니는 어린 링컨에게 한 권의 책을 손에 쥐어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들아, 이 책은 내 부모님께 받은 성경책이다. 내가 여러 번 읽어 낡았지만, 그러나 우리 집의 큰 가보란다. 내가 100에이커의 땅을 너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보다 이 한 권의 성경을 너에게 물려주는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한단다. 네가 이 진리의 말씀을 일고 이 책대로만 산다면 나는 네가 100만 에이커의 대지주가 되는 것보다 더 기쁘겠다.”
그후 링컨은 대통령이 되어 누가 그의 공적을 칭찬하면 항상 손을 저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어머니의 덕입니다. 어머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을 내게 주었고, 살아계실 때와 돌아가신 후에도 어머니의 기도와 가르침이 나를 나 되게 했습니다. 우리 어머니야말로 참 훌륭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눈을 감을 때, 무슨 유언을 하시겠습니까?
남몰래 저금해 놓은 은행 구좌 번호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직까지 한국에 남겨 놓은 부동산 주소를 알려주시겠습니까?
아니면 남에게 돈 빌려주고 아직까지 받지 못한 채무자의 이름을 알려주시겠습니까?
무엇을 유언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여호수아는 비전의 땅인 가나안을 정복한 후,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 온 것을 알고 후손들에게 유언하고 있습니다.
1절과 2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사방 대적을 다 멸하시고 안식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 많아 늙었도다.“
오늘 본문은 유언장과 같습니다.
여러분! 유언장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평소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을 유언장에 적습니다. 오늘 여호수아는 평소에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본문에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고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구절입니다.
한번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3절을 보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또 5절을 보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또 8절을 보면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10절을 보면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11절을 보면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총 몇 번이나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는 구절이 나옵니까?
7번이나 나옵니다. 짧은 13절에서 7번이나 언급되어 있습니다.
비전의 사람 여호수아는 비전의 땅인 가나안을 정복하였지만, 이제 그가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날 때가 가까워 온 것을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들과 두령들과 재판장들과 유사 등의 대표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 즉 ‘다른 민족의 하나님’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하나님’이 아닌, ‘우리 하나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에벤에셀의 하나님
다시 말하면 우리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분이십니다.
여호수아는 비전의 사람이었고 세운 비전을 이룬 비전 성취자였습니다. 꿈에도 소원이었던 비전의 땅을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그것을 행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누가 행하셨다구요?
여호수아는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이 인도하셔서 창일한 요단강을 건널 수 있었고, 금성철벽 여리고와 아이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고, 장대한 가나안의 백성들을 물리쳤다는 것입니다.
또 4절을 보면, 동편의 요단강에서부터 서쪽 지중해에 이르기까지 정복하고 제비뽑아 각 지파들이 기업을 차지하게 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비록 겉으로 드러난 가나안의 정복 영웅은 여호수아 자신입니다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도우시고 인도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눈에는 내가 스스로 결정하고 내 힘으로 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지금까지 도우셨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요즈음 36기 새가족 모임을 인도하면서 오히려 제가 은혜를 많이 받고 있습니다. 새가족 모임에 참석하는 분들이 한결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뜻이 계셔서 저를, 우리 가족을 이곳 뉴질랜드로 인도하신 것 같아요. 정말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요.”
그렇습니다. 찬송가 460장 가사처럼,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입니다. 우연하게 뉴질랜드에 오신 분은 단 한 분도 없으십니다. 어쩌다가 크라이스트처치순복음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분은 단 한 분도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남반구 끝인 이곳 뉴질랜드까지 인도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여기까지 인도하셔서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게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에벤에셀의 하나님이십니다.
2)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를 인도하실 하나님이십니다.
5절을 보겠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으사 너희 목전에서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은 가나안을 정복했지만, 가나안에는 아직도 잔존 세력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사기 1장 3절에서 유다 족속이 시므온 족속들에게 “나와 함께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자”라고 한 것을 보면 아직까지 가나안 족속을 완전히 몰아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쫓아내야 할 적군들이 있고, 정복해야 할 땅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과거에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미래에도 인도하실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들은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역사하실 것을 믿으십니까?
과거 군대생활 때 느꼈던 하나님, 학교 다닐 때 느꼈던 하나님, 한국 땅에서 역사 하신 하나님을 오늘날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 땅에서도 역사하실 하나님으로 믿으십니까?
여호수아처럼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지금까지 인도하신 에베에셀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계속해서 인도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3) 임마누엘의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의 삶도 인도하십니다.
1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 중 한 사람이 천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과거와 미래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현재에도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 우리의 삶을 인도하셨고 앞으로도 인도하실 뿐 아니라, 현재에도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믿으십니까?
독일의 아우슈비치 수용소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던 곳입니다. 그 참혹한 수용소에서 유대인들은 눈물을 뿌리면서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왜 이런 일을 허용하고 계십니까?” 그들의 피맺힌 절규는 연합군이 독일을 물리쳐 수용소를 탈환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끝나 연합군이 탈환한 수용소를 점검하러 들어갔습니다. 점검하던 연합군 병사 중 한 명이 한쪽 벽 후미진 곳에 글씨가 쓰여져 있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였습니다. 어느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인 것 같은 그 글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 다 형용 못하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 다 기록할 수 없겠네.” 이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한 유대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다니? 그 연합군 병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또 하나의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하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과거의 하나님으로만 생각하고 미래에 천국에 가서 만날 하나님으로만 생각하지 않습니까?
오늘 여기에, 우리 가운데에, 이 자리에 성령으로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 끝 날까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
오늘 본문은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말씀을 지켜 행하라.
6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어디에서 많이 듣던 구절이 아닙니까?
바로 우리가 여호수아를 처음 살펴볼 때, 1장 7절의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밀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라는 말씀과 비슷합니다.
1장 이 말씀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비전의 땅으로 출발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가 비전의 땅을 정복하고 나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다시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런데 6절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구절이 있습니다. ‘지켜 행하라’는 말입니다.
여호수아는 ‘말씀을 읽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있으라‘,
‘말씀을 연구하고 있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지켜 행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한번, 두 번, 10번, 20번 통독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말씀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읽는 것만을 요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읽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다.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행동하는 신앙인을 요구하십니다.
카네기는 사람을 네 종류로 구분했습니다.
▶첫째로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모르는 ‘무지한 사람’이 있고,
▶둘째로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보통의 사람’이 있으며,
▶세째로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나태한 사람’이 있고,
▶마지막으로 아는 것을 행하지 않는 ‘자기 기만적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서도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은 일종의 자기기만이요, 사기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2절에서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말씀을 듣고도, 알고도, 행하지 않으면 여러분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이 되고, 사기치는 것이 결과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기록된 말씀을 읽고 들을 뿐 아니라, 지켜 행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말씀대로 사시기 바랍니다.
(2)불신자들을 조심하라.
12절과 13절을 보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피차 왕래하면 정녕히 알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필경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절하리라.“
여기에서 <친근히 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다바크>라는 말로서, ‘바싹 달라붙다’, ‘매우 가까이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여호수아는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이방 민족들을 가까이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친근히 하지 말고 더불어 혼인도 하지 말고 피차 왕래도 하지 말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왜 이방민족들을 친근히 하지 말고 멀리하라고 합니까? 그들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만약 불신자들을 가까이 해 보십시오. 그들이 여러분들의 올무가 될 것입니다. 그들이 채찍과 가시가 되어 계속해서 여러분들을 때리고 찌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자들을 조심해야 합니다.
<톰소여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무신론자였습니다.
그런데 신실한 믿음을 가진 올리비아 레인지던이라는 자매는 마크 트웨인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올리비아는 마크 트웨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은 어떤 난관도 헤쳐나갈 수 있으며, 마크 트웨인을 개종시킬 수 있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하였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처음에는 그런 대로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마크 트웨인은 올리비아의 신앙에 대해 적개심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올리비아가 성경책을 크게 읽을라 치면 마크 트웨인은 “나는 성경 따위는 안 믿어. 시끄러우니까 집어치워”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사이는 신앙으로 맺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올리비아는 마크 트웨인을 자기의 신앙으로 끌어들이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자신이 신앙을 버려야했습니다.
올리비아는 그렇게 신앙 생활을 포기한 채로 슬픔 속에서 몇 년간을 더 그와 함께 보냈습니다. 마침내 마크 트웨인도 자기 아내를 위로할 양으로 “여보. 기독교 신앙이 그렇게도 좋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마지못해 허락했습니다만.
올리비아는 다시 시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완전히 믿음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여러분! 이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합니까?
불신자와의 결혼은 하나님의 사랑마저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은 조건의 신랑감, 신부감이라 할지라도 친근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예 처음부터 불신자들과 피차 왕래하는 것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목사님, 불신자들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그들을 어떻게 전도할 수 있습니까? 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술집도 가고 댄스홀도 가고, 카지노도 가야 되는 것 아닙니까?“어떻게 들으면 이 말이 맞는 말 같이 들립니다. 그러나 전도를 목적으로 나갔다가 오히려 자기 자신의 믿음까지 잃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신자 친구를 주님 앞으로 인도하려다가 친구를 인도하기는커녕, 친구에게 인도되어 주님으로부터 멀어져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주님 앞으로 이끌만한 능력이 생기기 전까지는 친근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전도할 만한 능력이 있기 전에는 당분간 만나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떨어뜨리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사단은 교묘하게 역사합니다. 사단은 사람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3)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8절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친근히 하기를 오늘날까지 행한 것같이 하라.”
하나님과 그냥 적당히 떨어져 있는 관계가 아니라, 매우 가까이하라는 것입니다.
또 11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수아는 앞으로의 축복과 저주가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사랑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별사에서 땅의 개간이나 성의 요새화, 적군의 동향 등을 언급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사람을 사랑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변합니다.
제가 14년 전에 호주 시드니 공항에 도착했을 때, 제가 처음 만난 분이 지금은 이미 소천하셔서 이 땅에 계시지 않지만, 당시 시드니순복음교회에서 부목사님으로 사역하시던 김기환 목사님이라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김목사님이 저에게 해주신 말이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조형제, 이민 생활은 누구를 만나고, 누구를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지금은 내 말이 이해가 되지 않겠지만,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잘해줘도 사람은 사람이에요. 사람을 가까이 하지 말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세요.” 14년이 훨씬 넘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저는 김목사님의 충고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당시 저와 비슷한 시기에 입국하여 함께 영어학교를 다녔던 동료들 중에 머리도 좋고 한국에서 좋은 학교도 나오고, 장래가 총망 되던 친구들이 많았는데, 좋지 못한 사람들을 만나 안타깝게도 인생에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영어학교 다닌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Flemington 마켙이라고 하는 한국의 가락시장 같은 데에서 장사하는 사람을 만나, 공부도 포기하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털어 넣어 장사하는 길로 나간 친구도 있습니다만, 본전도 건지지 못하고 돈만 날린 채 지금은 어디에 무얼 하는지 알 수도 없습니다. 또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다가 도박에 빠져 이혼 당하고 그렇게 잘되던 한의원 팔아 넘기고 한국으로 도망가다시피 쫓겨간 한의사도 있습니다. 또 호주에서 소장사라고 불리우는 이민 대행업자를 가까이하다가 계약결혼 전문가가 되어 결혼과 이혼을 몇 차례나 반복하다가, 이민성에 요주의 인물로 감시 대상이 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감사하게도 교회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수요예배, 금요구역예배, 금요철야예배, 주일예배, 등의 모든 공 예배 뿐 아니라, 토요청년모임, 토요 중고등부모임, 주일오후 체육선교회 모임, 등에 참석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결국 그로 인하여 저는 7년 동안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과 기적들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친근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일예배, 금요예배 자리에 나오셔서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고, 샘모임에 나가셔서 하나님과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새가족모임, 개인양육모임, 제자훈련, 사역훈련 등을 통해 하나님과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가까이하기에 먼 당신이 아닙니다. 친근히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어느 자매가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매우 친근하게 기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아빠! 저에요. 저 아시죠?” 저는 이러한 기도를 들으면서 매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에는 수식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님은 어떻습니까?
수식어가 많습니다.
“저, 지나가던 나그네인데요. 문이 열려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요. 실례지만 부탁하나 해도 괜찮을까요? 다름이 아니오라..” 나중에 들어보면 물 한 그릇 얻어 마시고 싶다는 이야기인데, 구구절절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그러나 자녀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아빠, 목말라요. 물 주세요.”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아빠, 목말라요. 물 주세요.”한다고 아버지가 자녀에게 버릇없다고 합니까?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로 자녀가 수식어를 붙이면서 “저, 다름이 아니오라. 실례지만, 부탁하나 해도..“라고 말을 하면, 아빠는 ”아니, 얘가 더위 먹었나? 아니면 아침밥을 잘못 먹었나?“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걱정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친근히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가까이 하기에 먼 당신이 아니라, 우리가 가까이 하면 가까이 할수록 우리를 좋아하시며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사랑하는 이의 말만 듣습니다.
사랑을 하면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면 고집이 센 사람도 양처럼 온순해집니다. 사랑을 하면 다른 것에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다른 우상을 섬기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것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것들을 행하려고 하기 보다 매일 매일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친근히 여겨주시고, 우리를 사랑 해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