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보니 밤새 비가 좀 왔습니다.
오늘 비가 올 확률은 50%라고 하니 필수적으로 우비를 챙겨가야 할 듯합니다.
본격적인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탐색하려고 하니 비가 후두둑 내립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 시가지를 거닐 즈음, 비는 반드시 그칠 것입니다.
리가 시민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중교통수단 트렘입니다.
라트비아뿐 아니라 에스토니아에서도 전차가 주요 교통수단입니다. 아마도 러시아의 영향이겠지요.
다우가바강은 1020km로 여러 나라를 관통하고 있습니다.
라트비아가 무역이 성행하였던 이유는 바로 이 다우가바 강 때문이었을 겁니다.
발트3국 한가운데 자리잡은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는 라트비아뿐 아니라 발트3국 전체에서도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경제와 무역의 중심지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도 리가에 많이 진출하고 있어 한국 교민의 수나 한국과의 교역량도 가장 많은 곳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곳은 베드로 성당입니다.
성당 꼭대기에 있는 금수닭의 부리가 시내를 향하면 장이 서는 날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이름도 으시딱딱한 점령박물관....
라트비아 역시 수백 년 동안 주변 국가들의 끊임없는 지배를 받았던 나라,
고로 점령박물관이 들어서기에 충분한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 이 건물은 소련 시절 라트비아 출신으로 독일군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우고
그 이후 모스크바로 건너가 스탈린의 개인호위병으로까지 활동했던 소총수들의 업적을 기린 기념관이었으나,
지금은 1차 대전 종전부터 1991년 독립하기까지 라트비아 인들의 투쟁 자료들을 모아 전시해 놓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건물은 바로 검은머리 전당입니다.
검은머리 전당을 얘기하기 앞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 대해 먼저 얘기해야 할 것 같네요.
리가는 첫눈에 보기에도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의 모습을 많이 닮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한자동맹 시절 중세 상인들이 만들어놓은 길드 건물들이 구시가지에 가득하고, 에스토니아와 같이 독일의 오랜 지배를 받은 흔적들을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리가 건설의 시작은 12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발트해 무역거점으로서의 가치가 점점 부각되기 시작할 무렵, 독일은 발트해에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리가를 거점으로 선택한 것이죠.
독일 브레멘의 대주교 알베르트 대주교가 리가만에 배를 댄 것이 리가 역사의 시작입니다.
독일은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를 병합하여 리보니아 공국을 건설하여 발트 해안 지역의 지배를 확실히 하기 시작했으며.
라트비아 인들은 독일인들의 지배를 받는 농노로 전락합니다.
이후, 폴란드, 스웨덴, 제정 러시아가 번갈아가면서 라트비아를 지배했지만, 발트독일인이라 불리던 독일의 귀족들은 자신들의 고유 권리를 인정 받으며 1차 대전 전까지 라트비아에서의 문화적 지위를 유지했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리가 구시가지에는 발트독일인들과, 리가를 거점으로 삼아 무역활동을 해온 중세 상인들이 건설한 건물이 아주 많은 것입니다.
* 뒤에 보이는 것은 베드로 성당.
시청사 건물...
오랜 지배의 역사에 맞서 싸운 라트비아 인들의 투쟁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자유의 여신상...
1차 대전이 끝나자 잠시 독립을 이루었던 라트비아는 1935년에 42미터의 석상을 조성합니다.
라트비아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신 밀다의 모습을 따와 만든 것이죠.
이때 국민들의 성금을 모아 완공되었으며, 라트비아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투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차 대전 발발 후 소련에 의해 시베리아로 끌려가거나 독립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라트비아 인들을 추모하기 위한 헌화가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잠시 독립을 이루었던 발트3국은 러시아에 의해 다시 식민지가 되자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라트비아 수도 리가,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를 200만 명의 사람이 참가하여
600km에 이르는 인간띠를 만들었습니다.
그때 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독립을 염원하는 합창을 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노래혁명입니다.
예전에 화약을 보관했던 화약탑...
자금은 전쟁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쟁박물관 바로 옆, 길 건너 노란 건물은 스웨덴 군인의 막사입니다.
중세 시대에 이렇게 좋은 곳에서 군인들이 지냈다니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라트비아를 점령했던 스웨던 군인들이 머물렀던 막사가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스웨덴 문이라고 불리는 이 문은
1621년 당시 라트비아를 지배하던 폴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스웨덴이 라트비아를 지배하게 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문이 만들어지고 몇 년 지나지 안아 스웨덴은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하게 되고, 라트비아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국회의사당 건물...
라트비아 국회의원은 모두 100명이고, 이 사람들의 간접선거로 대통령을 뽑는다고 합니다.
성 야곱 성당...
1225년 대주교가 있는 의미 있는 성당....
삼형제 건물...
리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 세 건물은 리가에 있는 석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맨 오른쪽이 15세기. 가운데가 17세기, 맨 왼쪽이 18세기에 만들어졌습니다.
오른쪽 건물이 맏형, 왼쪽으로 갈수록 젊어집니다.
현재는 라트비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맏형 앞에서 찰칵!
리가의 삼형제 건물은
탈린의 세자매와 견줄만한 건물이라는데, 탈린에서 세자매를 보지 못했으니 안타깝기만 하네요.
리가의 구시가지...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구시가지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정겹습니다.
여기서 잠깐!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 노래 아시죠?
어떤 이들은 이 노래가 러시아 노래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라트비아 노래라는 사실!
돔성당의 모습...계속 복원하고 있는 상태...
돔 성당이 중요한 이유는 1201년 알베르트 주교가 리가 건설을 시작했을 당시부터 대주교 관저와 대성당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에요.
이 성당은 수백년 동안 증축되면서 세 가지 건축 양식이 한 곳에 자리잡게 되었다는 특징이 있어요.
초기 고딕 양식의 기반 위에 바로크 양식의 첨탑을 중심으로 바실리카 양식이 혼합된 웅장한 모습...
이 외에도 1884년 완성되어 한때는 세계 최대 규모였던 파이프 오르간이 있다는 것.
여름에는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공연이 자주 열린다는데,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아쉽게도 공연이 없네요.ㅠㅠ
다시 검은머리 전당으로 돌아가....자세히 보기!
이 건물을 사용했던 검은머리길드는 아프리카, 남미 등지를 돌아다니며 무역을 해온 미혼 상인들이 결성한 무역조합이에요.
이들은 이집트 출신의 한 흑인 성인을 수호신으로 여겨 건물마다 그 성인의 얼굴을 장식했죠.
이 건물은 상인들이 리가에 머무는 동안 여관이나 연회 장소로 사용되었어요.
2차 대전 중 독일군의 폭격으로 80%가 파괴되고, 독일의 잔재라는 이유로 소련 정부가 완전히 철거하는 등 수난을 겪었으나
2001년 리가 건설 800주년을 기념해 새로 복원되었답니다.
베드로 성당으로 다시 가는 길....
중세풍의 건물들...
그곳에 들어가 한 달쯤 살아보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베드로 성당 꼭대기에 서 있는 금수닭을 올려다 보았어요.
13세기 리가 상인들의 헌금에 의해서 건설된 이 성당은 리가의 중요한 랜드마크입니다.
지금은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라기보다는 높은 첨탑 위에서 구시가지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다는데
시간이 없어 올라가 보지는 못했네요.
무역도시 리가에서 풍향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전설에 의하면 베드로 성당에 가장 먼저 수탉 모양의 풍향계가 생겼는데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 새벽닭이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한 구절과 연결되어
베드로와 수닭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다고 합니다.
닭이 어둠을 내쫓고 새벽을 부르는 신령한 동물이라는 지역의 토속신앙과도 연결되어
리가의 높은 첨탑에는 어김없이 수닭이 올라가 있지요.
베드로 성당 뒤편에 있는 동상....
리가를 건설한 알베르트 공의 고향인 브레멘...
그림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로 구성된 재미있는 동상이지요.
한 무리의 외국 관광객들이 이 동상 앞에서 뭔가 얘기를 하면서 즐겁게 웃고 있는데 사진 찍는 사람은 한 명도 없는 거예요.
그들은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여유롭게 동상을 감상하는데
한국 관광객은 저는 그저 사진 찍는데만 열중해 있었지요.
많이 반성했습니다.
왜 여유롭게 즐기지 못하고 사진 찍는데 열중하는가...
그래서 목마와 한바탕 웃으며 즐겨보았습니다.^^
점심 먹으러 간 식당에 놓인 장미꽃...
어찌나 탐스럽게 예쁜지요.
오랫만에 둘이 사진도 찍어보고....
보기는 좀 그래보여도 맛은 꽤 좋습니다.
보기는 그래보여도 그럭저럭 먹을만합니다.
보기엔 엄청 맛있어 보이는데 맛은 좀 그러그러합니다.
아이스크림은 별로 시원하지 않고, 소스는 너무 달고....그래서 많이 남겼습니다.
발트 3국을 거닐면서 느낀 점.
꽃이 아주 많다는 것,
거리에 쓰레기가 없다는 것,
사람들이 조용하다는 것....
이 건물은 결혼등록소...
발트3국 사람들은 결혼을 아주 간결하게 한답니다.
이곳에 가서 결혼등록을 하고, 웨딩촬영은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근처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사진을 찍고 끝!
결혼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나라와 너무 반대라서, 건물을 찍어보았습니다.
오랜 식민지 생활에도 주눅들지 않고
소신대로 살고 있는 발트 3국 사람들, 정말 매력적인 사람들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배울 점이 많은 나라, 발트3국....사랑스러운 나라입니다.^^
첫댓글 저도 백만송이가 러시아 노래인줄 알았는데...
나도 그랬어요. 하긴 그때 소련의 점령하에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