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의 하나님(2)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도다. 그의 행위를 모세에게 그의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시 103:5-8),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시 103:9상). 이 구절이 중요합니다. 잘못했을 때마다 경책하면 우리는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가 아니라, 매일 쥐어 터집니다. 자주는 아니하신다고 합니다. 숨 쉴 틈이 있다는 말입니다.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시 10:39하), 참 고마운 말씀입니다.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시 103:10상). 정말 아멘 올시다.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신다"(시 103:10)라고 하십니다. 하나도 안 고마운 표정을 짓고 계시는데 어떻게 된 것입니까?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시 103:11).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라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알아낸 정의는 인과율의 보응입니다. 잘하면 상 받고, 못하면 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는 분이랍니다. 창조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란 다만 어떤 사물을 존재하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존재가 아무런 생각도 아무런 선택도 아무런 권리도 아무런 인격도 아무런 감각도 없는 상태로 그냥 존재하도록 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렇죠?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의 동의를 구하십니다.
우리의 항복을 받아내시기 위하여 긴 과정을 돌아가십니다. 우리의 불평과 저항과 방황과 분냄과 짐짓 거절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이 따라오십니다. 따라오신다는 것은 강요하지 않으시며 당신께 항복시키기 위한 긴 길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의 수명이 아닐까요? 그 긴 세월 동안 우리의 고난과 슬픔과 원망은 실은 우리가 몰라서 하는 비명에 불과하지. 하나님이 외면했거나 불공평했거나 하나님의 손이 짧아서 일어난 일은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것이 욥기입니다.
우리는 욥기의 과정을 무엇으로 이해합니까? 이제부터 욥이 얼마나 고생하나를 보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분명한 창조의 하나님, 항복을 받아내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많은 기회와 자유를 허락하시고 조마조마하시고 가슴 졸이시며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옆에 있는데, 욥이 그것을 몰라보고 무슨 짓을 하는가를 볼 기회를 얻는 것입니다. 욥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모두 무얼 하고 있나,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복 주심과 높으심의 인도함 속에서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얼마나 못난 짓을 하는가, 그가 어디에서 걸리고 어디에서 넘어지고 어디에서 자폭하는가를 이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우리 스스로 보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그 모든 일이 우리의 이해가 부족하고 믿음이 없고 우리 생각으로 잣대를 삼았기 때문에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 받아내는 귀한 열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욤 42:5)에 이를 것입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듣기만 해도 좋다. 볼 필요는 없다고 하는 것을 하나님은 참지 못하십니다. "난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는 너희를 만들지는 않았다. 나는 너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려는 하나님인 줄 알지어다. '그냥 이것으로 좋사오니, 그냥 여기에 앉혀 주십시오'를 나는 못 봐준다." 하나님의 의지를, 우리를 향한 사랑과 열정을 기억하시고 욥기의 과정을 따라가고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인생을 반성해봅시다. 귀하고 놀라운 내용이 인생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큰 은혜와 기쁨이 있게 될 것입니다.
~ 박영선, 《욥기 설교》, p.3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