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플라톤을 가르치면서 느끼게 된 것은
예전에도 느꼈지만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
특히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실은 슈타이너 얘기들과 많이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서도.. ㆍ)
그렇게 보면 우리(어른들)가 슈타이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플라톤의 이야기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수십 번은 들었을 이야기인데
왜 그럴까 생각하다가,
쇼츠와 릴스에 중독돼서
아이의 생각 자체를 멈춰 버린 것인가
라고 생각도 하다가
아무래도 이건 너무 비약에 큰 것 같아 제껴두고. . .
아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기억하긴 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 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들 스스로 그림자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물을 원상을, 본질을, 이데아를
보고 있다고 착각하거나 믿고 있는 것,
그래서 내가 진실과 진리를 보지 못하게 하는 족쇄를 끊지 못하는 건 아닐까?
무지의 지.
그리고 (지적) 겸손함.
나 역시도 그 변명에선 자유로울 수 없겠지만 말이다.
결국은 각자가 자기의 족쇄를 발견하고
스스로 그 족쇄를 끊어내는 일 방법밖에 없지 않을까?
나는 단지 그 일을 도울 뿐이고.
Q. 플라톤의 동굴에 비유해서 사람들은 그림자만 바라보고 진실과 진리를 바라보지 못하도록 족쇄를 차고 있다.
내가 차고 있는 족쇄는 무엇인지 적어 보자.
1.
내가 동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족쇄는 걱정과 두려움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해보거나 시작하기 전에 먼저 걱정하는 것이 크다. ‘당해보기 전에는 그 일을 아무도 모른다.’ 라는 말이 있지만 여전히 어떤 일을 하기 전 걱정과 두려움이 쉽게 사라지진 않는다. 물론 일을 시작해보고 ‘별거 아니네’ 라는 경우도 많이 겪었다. 두려움과 걱정이 있으면 내가 하고싶거나 해야하는 일을 못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해야하는 일인데도 내 내면에서 생겨난 생각 때문에 그 일을 못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적당한 걱정은 필요하다. 처음 하는 일인데 두려움이 없고 걱정이 없다면 무모하고 위험한 일도 무조건 도전하는 사람이 되고 만다. 삶을 살고 여러일들을 경험하면서 점점 용기가 생기지만 여전히 한 구석에 있는 두려움을 완전히 이기는 방법을 아직은 모르겠다. 꼭 그 두려움을 완전히 이겨야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두려움이 내 발목을 잡지 않을 정도까지는 이겨내야 한다.
2.
게으름 체력 무지 멍청함 어리석음 둔함 무능함 무기력 귀찮음 나태함 태만함 무책임함 미련 집착 욕심 탐욕 허영 허세 자만 자의식 오만 거만 건방짐 교만 독선 독단 아집 고집 이기심 자기중심성 이기적임 자격지심 열등감 피해의식 인정욕구 비교의식 불안 근심 걱정 두려움 겁 소심함 의심 불신 경계심 불안정 예민함 까다로움 신경질 변덕 충동 즉흥 감정적 극단적 비관 부정적 회의적 냉소 무심 무관심 냉정 냉담 무감각 소극적 수동적 의존적 우유부단 망설임 회피 미루기 산만함 부주의 융통성 부족 경직됨 폐쇄적 방어적 내성적 타인의식 자기검열 완벽주의 강박 통제욕 승부욕 경쟁심 질투 시기 질투심 소유욕 독점욕 공감 부족 이해심 부족 배려 부족 존중 부족 무례함 불친절함 편견 선입견 고정관념 배타성 사교성 부족 눈치 없음 오지랖 간섭 참견 통제 계산적 기회주의 가식 위선 이중성 아첨 아부 허풍 과장 자랑 잘난 척 책임회피 변명 핑계 남탓 자기합리화 감정기복 성급함 경솔함 무모함 성급한 판단 피상적 사고 편협함 근시안적 사고 흑백논리 현실감각 부족 판단력 부족 결단력 부족 끈기 부족 집중력 부족 실행력 부족 계획성 부족 자기관리 부족 절제 부족 인내심 부족
나를 얽매고 있는 족쇄 중 대표적으로는 게으름과 부족한 체력, 그리고 편안함 만을 쫓으려 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다. 해보고 싶은 건 진짜 많은데 막상 하려고 하면 귀찮고, 조금만 힘들어도 그냥 쉬고 싶어진다. 체력이 좋은 편도 아니라서 뭘 하나 오래 하고 나면 금방 지치고, 그러다 보니 시작하기 전부터 ‘아 귀찮은데…’ 하는 생각부터 들 때도 많다. 특히 나는 불편한 것보다는 편한 걸 선택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당장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조금 더 누워 있고 싶고, 힘들게 하는 것보다는 그냥 익숙하고 편한 방법으로 넘어가고 싶어진다. 물론 들살이랍시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갖은 고생을 얼추 다 하긴 했다; 아무튼 쉬는 것도 필요하고 편안한 삶을 원하는게 솔직한 내 마음이지만, 가끔은 피곤함에 편히 쉬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미루고, 기회를 놓칠때도 있었가.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이루고 싶은 것도 많은데, 정작 귀찮음을 이슈로 시작도 못해보는 점은 고쳐보는 것도 나쁘지도 않을 것도 같다.
3.
나를 동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는 족쇄는 게으름과 두려움이다. 나는 해야 하는 일을 미루고 다른 일을 하면서 그 해야 할 일만 생각하면 모든 게 하기 싫어진다. 그래서 포기해 버린다. 또 나는 두려움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도 시작을 하지 못한다. 시작을 하면 분명 할 수 있는 일인데 나는 그 시작을 하지 못한다. 옛말에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나도 시작을 해 봐야겠다.
나는 시기와 질투를 많이 한다. 그냥 질투 전 단계의 건강한 경쟁 정도로만 하면 되는데, 가끔 지나치게 치우쳐 나 자신을 힘들게 한다. 자꾸 남을 의식하고 나 자신을 잘 보지 않는다. 남을 의식하기보다 나를 의식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어떤 일을 빠르게 시작하는 용기와, 질투하지 않고 나 자신과 경쟁을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첫댓글 안트로포, Anthropo는 '되돌려진 인간'이란 의미를 함축해요. 바로 저 플라톤의 동굴 속 사람들에 관한 것이져. 저 그림자는 실재가 아니다, 저런 그림을 만들어내는 빛이 너의 등 뒤에 있다는 말을 듣고 스스로 몸을 돌리는 사람들. 물질 세계가 실재라 여기며 이 세계에 집중해서 사는 사람들이 바로 저 동굴 속 사람들인 거져., 이 물질 세계, 마야의 세계로부터 몸을 돌려 정신세계를 바라보기 위한 노력이 바로 인지학, '되돌려진 인간에 대한 지혜'라고 해요. 다만 누가 돌려주지 않고, 스스로 몸을 돌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니... ^^;;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주말에 영화인지 토요 명화인진 모르겠지만, 저 모티브로 만든 "로건 대탈출"이란 영화를 보고 받은 충격은 아직까지 생생하게 잊혀지지 않아요.
특히 동굴의 비유에서 가장 스펙타클한 부분은 등 뒤에 있는 불이 원형이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몇몇은 족쇄를 끊고 그림자를 만드는 그 불에서 진실을 보았다고 만족하지만 다른 몇몇은 불을 넘어서는 실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동글을 탈출하죠. 동굴 밖에서 바라보게 된, 불의 원형인 태양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 듯 너무 빛나서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여다시 동굴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생기죠. 결국 빚에 적응하여 태양을 바라보게 된 이들 속에서도 일부는 태양이 비치는 이데아의 세계에 남고 다른 용기 있는 몇몇은 동굴로 다시 들어가 족쇄에 매어진 이들을 깨우려 한다는 점이었어요. 족쇄에 메어진 이들이 태양을 본 이들을 욕하고 때리고 죽이려 들어도요. 마치 플라톤이 본 소크라테스처럼.
아이들도 진실을 아는데 만족하지 않고 진리를 구하려 한 고비 한 고비 넘어가는, 그리고는 다시 동굴로 하화하는 그 장면들에서 침 한 번 삼키지 않고 집중해서 듣더군요.
청소년이 말이에요...!
@장승규 나치 정권에 의해 사형 당한 디트리히 본회퍼 목사가 그랬져, 악한 짓을 하는 자보다 더 나쁜 자는 멍청한 자라고.
구원하러 온 소수를 자신의 족쇄로 쳐 죽이는 다수, 그게 이 세상에서는 보통이져.
자기처럼이 아니라 남들처럼 살아야 대접 받는 세상.
엊그제 독일 유명 유튜버가 42세에 강제 퇴직 당한 어떤 교장을 인터뷰했는데, 위에서 내려오는 조처가 부당하다고 자주 반항하자 교육부가 정신과 의사에게 '반사회적 인성'이라는 딱지를 붙이도록 해서 퇴직시켰다고 해요.
학생들을 위해 진짜 교육자로서 뭔가 좀 하려고 하면 '반사회적' 인간이 되는 세상인거져. ^^
@최혜경 교실 한 켠에 누워 자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팍! 하고 치는 거예요. 깨어나 둘러보니 아무도 없었어요. 다시 누워 자는데 다시 한번 등을 발로 팍 하고 차더라고요.
일어나 앉아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니 누군가가 나에게 인상을 쓰며 전화를 받으라 하더라고요. 전화를 받으니 '내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얘기를 하더라고요.
나는 그냥 아이들을 가르쳤을 뿐인데... 어쨌든 '내 수업을 듣고 아이들이 힘들다'는 전화였어요. '뭐 어쩌라고?' 라는 생각으로 다시 누웠는데. 다시 한 번 내 등을 팍 발로 차는 거 아니겠어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어떤 사람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을 내 앞에 드밀었어요. '이 사람을 보라고. 이 사람도 당신 수업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나는 단지 수업을 했을 뿐이고, 그 사람은 그가 선택해서 내 수업을 들었을 뿐인데... 나는 내 수업에서 내가 해야 하는 말을 했을 뿐인데, 그가 듣고 싶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 수업으로 인해 아이가 힘들었다는 이유였어요.
@장승규 내가 볼 땐 그 사람이 잡은 아이의 머리채가 아이를 더 힘들게 하는 듯 보이는데, 쩝.
텍스트에 대해 내 생각을 말하는 게 내 수업이지 그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내 수업인가 생각하는데, 네 수업을 들은 사람의 얼굴을 보라며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남을 배려하고 타인을 기쁘게 하는 수업을 하라고 악에 받쳐 소리치더군요.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를 힘들게 하는 일인가.
그림자를 보며 즐거워하게 하는 것이 수업의 목적인가.
누군가를 깨우는 일이 그렇게도 그 아이에게 힘든 일이라면, 그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닐까? 그것도 못견디면서 무슨 수업을 듣겠다고....'나도 당신들이 원해서 하는거지 억지로 할 생각없다. 그럼 그만 두라'고 생각했지만(말은 못 한 듯...ㅡㅡ;;) 다시 자리에 누워 '아 이제는 가르치는 일도 그만둬야 하나?'고민 하는 순간 다시 한번 등에 발길질이 팍!
그렇게 잠에서 깼네요.
진짜로 등이 아픈 건 기분 탓만은 아니네요. 왜 아프지? ㅋㅋ
잠자기 전에 피곤하다고 마신 캔맥주가 문제였나... ㅎ
어쨌든 그리하여 오늘의 작문 숙제가 탄생했으니...
아리스토텔레스가 최고의 선이라고 얘기했던 행복이란 무엇일까? ㅎㅎ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보니,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이야기들이
슈타이너의 이야기와 비슷한 것이 아니라
슈타이너의 이야기를 통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더 잘 이해되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네요.
인과에 대해서 거꾸로 생각한 듯.
플라톤의 동굴의 비유도 그렇지만,
어제 아이들이 발표준비해 온 아리스토텔레스의 4요인설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이유도, ai나, 그들과 그들의 사상에 대해서 쓴, 다른 부차 서적들의 설명이 무언가 정확한 개념에 맞지 않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네요.
바쁘지만 4요인설에 대해서도 수업 기록을 올려 놔야 할 듯.
@장승규 머신 그런 험악한 꿈을.... 교사 생활로 인한 trauma가 엄청난 가 봅니다요. ^^;;
<자유의 철학> 번역할 때 철학자들이 하도 많이 나와서 고프리한테 물어봤어요, 이 많은 철학자들의 책을 다 읽어야 하느냐고. 고프리가 빙그레 웃으면서, 그런 거 읽느라 시간 낭비할 필요 없고 그 책에 쓰인 내용만 알면 된다고 해서 위로가 되었어요.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고대 철학자들의 말씀, 그 중에 오리지널이 얼마나 되겠어요?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의 말은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고. 그런 것의 해석의 해석의 해석의 해석의 번역본인거, 대학교 다닐 적에 철학 전집 읽으면서, 이게 먼소리인지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던 거, 슈타이너의 책을 읽으면서, 아 그 소리가 그 소리였겠구나 하고 약간 짐작이 가는 거...
슈타이너가 어디에서 그랬더라, 철학자는 방안의 온도를 재는 사람이지 방의 공기를 데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철학자는 그 시대상을 보여 주는 사람이지, 시대 정신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예요. 플라톤이 왜 저런 동굴을 묘사하게 되었는지, 인류 발달사에서 슈타이너가 자주 설명해요.
@최혜경 뭐 입시학원, 공교육, 대안교육을 거처 발돌학교까지 25년쯤 굴러먹으며 온갖 인간 군상을 체험했으니 그럴수도 있겠네요.
슈타이너가 철학/자에 대한 평을 한 것은 자유의 철학에서도 읽었어요. 그런데 사람들과 자유의 철학을 읽어보니 문제는 자유의 철학 자체가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논문 종류의 글을 읽어 본 적이 없거나 읽어본 지 오래되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글을 읽고 무슨 뜻인지를 알아내는 자체를 어려워하거나 심지어는 슈타이너가 논박한 사안을 슈타이너의 의견인 줄 알고 따라가기도 한다는. 한글인데도 독해가 안 되니 자기 생각을 나누고 이야기하기는 더 어려웠다는.
근데 이게 수도권에서 자유의 철학을 🦶🪨교사들과 읽었던 사람도 공통된 의견이었어요. 그러니 권위있는 사람의 강의가 필요하거나, 아님 몇 문장 뽑은 카드를 가지고 얄팍하고 가볍게 의견들을 얘기하는 그런 일회성 모임들이 열렸던 거겠죠. 개인적인 의견을 더 덧붙이면 저는 그런 방식의 공부는 차라리 안 하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읽고 수료했다는 보이스카웃 훈련이수 뱃지가 필요하면 모를까...
@장승규 아이들에게 쉽고 재밌는 책뿐 아니라 철학 수업을 통해 (어려운?) 책을 읽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서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수업할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알겠지만) 내년에는 아이들과 [자유의 철학]을 수업해볼까합니다.
그래도 🦶냄새 나는 학교를 다니고 졸업했는데 학령기를 마치기 전에 한 권 쯤은 읽어야 하지 않나 싶은.
거기까지가 제가 해볼 수 있는 최선일 듯 해요.
@장승규 애들하고 <자유의 철학> 읽는 거, 전 절대 반대입니다. 제 생각이 아니고 슈타이너가 그랬어요, 애들하고 인지학적 내용을 다뤄선 안 된다고.
독일 발돌학교 고등부 애들 중에서도 그런 애들이 있어요, 발돌학교 다니는 데 왜 우린 인지학이나 루돌프 슈타이너에 대해 배우는 게 없냐고. 고등부 교사들이 그에 절대 응하지 않아요. 그렇게 하면 발돌학교가 세계관 학교가 되는 거니까요. 교사가 인지학을 제대로 살아내고, 그로써 간접적으로 인지학이 교육에 영향을 미치면 충분하고, 절대로 인지학적 내용을 가지고 덤벼들어선 안 된다고 합니다.
제 경험으로는 발돌학교 나와서 세상구경 하나도 안 하고 직접 인지학계 직업 양성 받고, 인지학계에서 쭉 일하는 사람들, 굉장히 교조적이고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 많이 해요.
애들 학교에서 나가면 인연 끊고 혼자 잘 살아보라고 두세요.
그렇게 세상에 나가서 살다가 카르마가 있다면 30중반 정도 되어서, 발돌학교같은 거에는 왜 다녔나 하고 인지학 서적을 들여다 보거나 장쌤을 다시 찾아와서 저 <자유의 철학> 읽었는데요, 한다면, 가장 이상적이에요.
@최혜경 슈타이너의 제안을 모르는 건 아니나 자유의 철학책이라면 지금 하고 있는 철학의 연장선에서 인지학 냄새없이 마무리로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제안하신 이상적인 상황에 도달하도록 좀 더 고민하고 노력하겠습니다..
@장승규 장쌤이 <자유의 철학>을 공부하고 사유했기 때문에 다른 철학에서 보이는 옳은 점이나 맹점을 부각시켜요. 답이 아니라 내적으로 의문이 생기도록 만들어요. 그 의문이 지금은 무의식에 머문다 해도 내적으로 익어서 언젠가는 의식에 떠 오르고, 그럼 타는 듯한 질문이 되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길에 들어서게 되요.
슈타이너가 어떤 강의에서 그러지 않아요? 많은 것을 의문으로 남겨 두어야 한다고.
뭐든 이해시키기, 이게 바로 물질주의적 시대의 교육 방식이예요.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옆에 미뤄버리고 이해해야 할 다음 주제로 넘어가요. 질문이 안 생기고, 그럼 사람이 깊이가 없어져요.
@최혜경 맞다! 이해 안! 시키기.
<자유의 철학>이 어려운 건 사람들이 자기가 가진 개념으로 읽고 이해하려 하기 때문이예요.
사실은 그래서 인지학 자체가 어려운거예요. <인.보.앎>에서 그러잖아요, 개념이 인간과 함께 성장하고 변해야 한다고.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자신의 '고정 관념'을 벗어나서 쓰인 그대로 읽고 -그냥 이해하는 게 아니라- 생활에서 비슷한 상황이 있는지 관찰하면서 두고두고 곱씹으면서 생각할 자세가 되어 있질 않아요.
어렵네 어쩌네 해도 요즘 논문이나 학문은 읽는 즉시 이해하는 것을 전제하잖아요. 그런 사조에 길이 들어서 자기 개념으로 즉시 이해 못하니까 어렵다고 하면서 그냥 책장에 꽂아 두는 거져.
장기간, 적어도 7년에서 10년 정도 매일 인지학 책을 한 문장이라도 읽으면서 --물구나무 선-- 자신의 개념을 서서히 똑바로 세우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인지학 내용이 어렵지 않고, 안 먹고 안 마시면 허기지는 일용 양식이 되어서 날마다 즐길 수 있어요.
늘 말하지만 사람들이 카드놀이 등 밸로무쓰잘데엄는 것을 하니라 그런 본질적인 일에 관심이 없는 거고, 자신의 모자람을 여러 방식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지금 부차수련 원고 정리하는 데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오네요, 필사본이라 진짜 이렇게 말했는지는 물론 쪼께 의심해야겠지만서도...
"(참을성이 있어야 합니다. 의미심장한 자극, 의미심장한 관념은 내적으로 제대로 파악되고 이해되는 데 19년이 필요합니다.)" —『비학 수업의 내용에서 Ⅲ』(GA 266/3) 1914년 1월 2일 라이프치히, 필사본 C
사람들이 동굴 벽에 비치는 그림자를 보니라 바빠서리 그 참을성이라는 게 없어요. <자유의 철학>을 몇 번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문자 그대로 '정독'하고 '사유'했는지 한 번 물어보고 시프요. 해마다는 아니라도 한 3년에 한 번쯤은 그렇게 해 보라고 해요.
인간이여서일까.
17년을 땅속에서 기다리는 매미보다
쬐끔 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