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은 우리의 고백입니다.
말씀: 사무엘상 7:12-17
설교일: 2024. 11. 10(주일 낮 예배)
몽골에서 사역하시던 이용희 선교사님의 간증도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 날 예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벌러르’라는 소녀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교회 안으로 뛰어 들어왔습니다.
이유를 물으니까
예배가 시작되기 몇 시간 전에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소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서 몇 시간을 뛰어 다니다니가 보니 예배 시간이 되어
소 찾는 것을 미루고. 땀 닦을 사이도 없이 헐레벌떡 예배당으로 달려왔다는 것입니다.
몽골에서 소 한 마리면 엄청 큰 재산인데, 그런 소를 잃어버렸으니,
어떻게든 그 소를 찾아야 되지요 !
그러나 그 소녀는 소 찾는 것을 미루고, 먼저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교회로 달려온 것입니다.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선교사님은 설교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 소가 아니고 예배를 선택한 ‘벌러르’의 믿음을 보시고,
잃어버린 소를 찾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예배를 다 마쳤는데, 교회 밖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소가 제발로 주인을 찾아 온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기 위해 소 찾기를 포기한 그 소녀는,
예배도 드리고 소도 찾고, 두 가지를 다 얻었습니다.
또 그 광경을 목격한 많은 사람들이 큰 감동을 받았고,
그 일로 인하여 그 지역 사람들이 다 예배의 용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도 섬기고, 소도 섬기려고 합니다.
아니 소를 찾기 위하여 하나님 섬기기를 미루고 심지어는 포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하시면서 ,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그 소녀에게 소를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소 뿐만 아니라 그가 지금 받고 누리는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이 은혜입니다.
그 어린 몽골 소녀가 그것을 알고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소를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면 소가 나를 찾아와서, 나를 섬기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소를 섬기면
나는 소도 잃고, 하나님도 잃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
우리가 지금 받고 누리는 영육간의 모든 은혜는 나로 인해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나의 나된 것까지도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사실 내가 깨닫지 못하고, 자족하지 못해서 그렇지,
나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
지금도 계속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세상나라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까지 영원토록 베푸실 그 크신 은혜와 사랑,
얼마나 크고 놀라운 은혜요, 하나님의 영광인지 모릅니다.
사실 우리는 과분한 은혜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생각하면 조금은 두려운 것입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데 ~
만약, 하나님이 도로 거두어 가시면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인데 ~
또 계속 부어주시던 은혜의 공급이 중단된다면 ~
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간다면 ~
유쾌하지 않은 생각이지만 ,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솔직히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의 눈치를 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사람 때문에 속이 상해서 미운 마음이 막 들때도 함부로 미워하지 못합니다.
억지로라도 사랑하려고 노력합니다. 억지로라도 그를 위해서 기도하려고 합니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고 할까요?
듣기 좋게 말하면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고, 좀 솔직히 말하면 하나님 눈치를 보는 겁니다.
내게서 하나님의 은혜 / 하나님의 사랑 /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가 몇 주동안 계속 살펴보고 있는
사무엘상 4장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비극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4장 21절입니다.
(삼상4:21) 이르기를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하고 아이 이름을 이가봇 이라 하였으니 하나님의 궤가 빼앗겼고 그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었기 때문이며
이가봇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 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중단된다는 것 이것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오늘 내가 존재하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존재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 성도들의 존재의 근거가 되고 존재 가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무엘상 4장 21절에서 말씀하는
”이가봇“ -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는 의미는 완전히 떠난 것이 아니고,
포로로 잡혀 가는 것 같이 잠시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언젠가는 다시 돌아 올 수 있다는 희망을 포함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4장 21절에서 보면 떠났던 하나님의 영광이 7장 12절을 보면 다시 회복됩니다.
(삼상7:12)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아멘
에벤에셀 /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뜻입니다.
물론 지리적인 의미로 이곳까지 도우셨다는 뜻이지만,
이 에벤에셀은 하나님의 은헤와 사랑,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회복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가봇에서 에벤에셀로 ”
여러분 !
4장에 나오는 이가봇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언약궤를 빼앗기고,
제사장이었던 아버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고,
그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 엘리는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기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자기가 태어나는 한 순간에 이런 불행이 닥쳐왔습니다.
어렸을 때에야 아무것도 모르고 자랐겠지만, 그가 커 가면서 자기 이름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자신을 얼마나 비관했겠습니까?
그런데 사실, 우리가 바로 이 이가봇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로마서 3장 23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로 인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것,
이것이 바로 이가봇입니다.
그런데 바로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롬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아멘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어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살게 된 것,
이 은혜가 바로 “이가봇에서 에벤에셀”로 회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에벤에셀”은 우리의 고백입니다.
우생순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생순”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사실 우리 생애에 최대의 사건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순간이 “우생순”이 아닙니다.
그런데 진짜 우생순은 올림픽에서 메달따는 순간이 아니고,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순간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세례를 어떻게 말씀하시는지 아십니까?
로마서 6장 3절입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누구와 합하여?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는 예수님과 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한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예수님과 신비한 사랑, 하나님의 영광으로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이 신비한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이 바로 에센에셀의 은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
십자가 나무에 달리신 예수님에게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고, 하나님의 은혜의 공급이 차단되었는데,
이제는 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내가 이가봇에서 에벤에셀로 회복된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위하여 이가봇이 되신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 내가 에벤에셀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이시간 이처럼 크고 놀라운 은혜에 대한 감격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이 이가봇에서 에벤에셀로 회복된 과정을 이렇게 말씀합니다.
7장 6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날에 금식 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아멘
그들은 금식까지 하면서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였습니다”하고 철저하게 회개를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철저히 회개한 후에 에벤에셀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 7장 8-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을 취하여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 아멘
그들은 지도자 사무엘과 더불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나라가 에벤에셀의 은혜를 누리는 것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 !
지금 우리나라의 어떤 영역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나라의 이가봇일까요?
지금 우리의 어떤 영역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우리의 이가봇일까요?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나라의 지도자들과 함께 우리의 철저한 회개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끊임없는 기도입니다.
우리에게 철저한 회개와 끊임없는 기도가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것 같은 나라의 현실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우리의 모습도
모두가 다 에벤에셀의 은혜로 바뀔 것입니다.
찬송 301장은 에벤에셀 – 하나님께서 나를 여기까지 도우셨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보르는 찬송입니다.
♬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 우리와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온갖 우상에서 떠나게 하시고, 온갖 타락한 지경에 빠져 범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다시 한번 에벤에셀의 은혜를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