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서울점에서 충격이였다. 밀가루같은데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과연 예술이 뭘까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예전 놀이에서 흙을 높이 쌓아 무너뜨리면 지는 게임을 떠올리다 그건 자유는 있는데 싫으면 나가면되는건데 여긴 왜 줄과 저 옆의 두개는 뭐지하며 이 작품만 한참을 보고 지나쳤다.
옆에 있는 다른 작품들과 뒤의 다른 작품들을 관란하며 역시 현대 작가들의 심리를 초초보자 관객이 이해하기는 하며 뒤를 도는 순간 액자에 들어 있는 사진이 보였다.
그덕분에 뒤늦게 사진을 한장씩 보면서 왜 닭일까 이 두개는 모이통과 물그릇 하면서 한참을 보고 서 있다가 사진을 찍었다.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전을 보러 이번에 올라갔을 때도 다시 보았다. 대구에서 개인전이 열린다는데 어떤 작품들이 나올까 얼마전에 끝난 [대구미술 1980-1989 형상의 소환]에서 보았던 작품을 떠올리며 이분의 작품의 세계는 어디까지 일까 관객의 입장인 나는 어떻게 받아 들일까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작품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드디어 왔다. 가연이 중간고사 덕분에...
부모라면 이해가 어렵겠지만 학부모라면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이유이다.
회고전에 대한 설명을 읽고 왔지만 그래도 첫 작품부터 쉽지 않다. 실험예술 그렇지 하며 한참을 보았다.
두 사진의 제목이 <바람이 분다>와 <청명>이다.
어디를 봐서 바람이 분다와 청명일까 이 작품들이 있는 곳을 멀리서 가까이에서 하나씩 보면서 조금이라도 작가의 마음을 알고 싶었지만 표현 의도를 역시나 실험예술, 작가의 정신을 표현하는 것에 다가가기는 작품만 보고는 어렵다는 것을 다시 느끼며 좌절을 맛보았다. 그러면서 그냥 즐기자로 바뀌어 편하게 사진을 찍으며 관람했다.
그러다 마주한 작품 처음이 달밤인가 두글자의 달에 대한 작품이었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달은 밤하늘에 지붕위에서 보는 것인데 밤은 표현을 한 것 같은데 지붕위가 아니라 지붕에 달빛이 (설명이 부족한 관계로 꼭 직접가서 보시길) 있는 걸까 그 표현 기법을 오랫동안 보았다. 어머니나 누군가가 달에게 소원을 비는 것은 집안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비는 것이여서 그 달빛이 집 안을 비추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만약 비숫하게라도 갔다면 작가의 해학에 웃음과 얼마나 간절했으면 하는 두가지의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대나무 음 그렇지 대나무가 이렇게 자라기는 하지만 틈이 이렇게 없었나? 나에겐 이런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은 거지? 답답하다 공포와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어떤 이유로 생겼는지 모르지만 통으로 들어가는 놀이기를 힘들어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고 가끔 촬영했던 MRI덕분에 폐쇄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다음에 언제 다시 만날까하는 생각에 심호흡을 하며 왜 그렇게 보이는지 한 참을 보았다. 어두운 곳에 이 작품에게만 전해지는 조명 때문일까 그건 아닐건데 다른 작품들도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들어할까?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 서대문 형무소와 다른 곳에 가면 보이는 감옥같다와 동시에 그곳에서 자유를 위해 독립을 위해 댓잎처럼 스러져간 이들을 떠올리며 잊지말자라는 곳에 가서 빨라지던 심장 박동이 조금은 차분해 져서 조금 더 그곳에 머물러 있을수 있었다.
드디어 다시 만나나 작품
이렇게 크다고? 하며 사진을 다시보니 하긴 그곳은 장소가 하며 웃음이 나왔다. 아담하니 좋았는데....
이번엔 다르다 닭의 발자국이 안보이는데 누군가 인위적으로 쓸어 넣은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이 작품은 어떤 것을 다시 보고 싶어서 아니면 찾고 싶어서 왔을까? 서울에서 보았던 아담함은 장소의 협소에서 오는 아기자기함을 이곳에서 아닌데 그럼 뭘까? 하는 물음표만 달렸다.
그때와 같은 느낌을 받을수는 없었지만 우리에게 정해진 삶의 순간을 느끼며 저곳을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생각하며 순간을 선택하며 사는 인간이라는데 맞는 말일까하는 의문만 더 추가되었다.
두껍다. 아크릴이라는데 <무제>다. 그냥 편하게 보자 그런데 왜 이 작품에선 이렇게 표현했을까 이 시기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무제속에 표현하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없이 보자고 했지만 그 곳을 둘러보는데 유독 강하게 눈에 들어와서 떠쳐버릴수가 없었다. 이렇게 많은 잡 생각들을 하는데 더 늘어나는 숫자는 왜 일까하는 생각도 순간 스쳐지나갔다. ㅎㅎㅎ
허라는데 한자는 허무하다라는 뜻이다. 무엇이 작가를 허무하게 했을까 과연 허무일까 허무인데 채워진다라....
재생이라는데 어디를 봐서 손가락으로 툭치면 무너질거 같은데.... 무너짐 뒤에 오는 새로운 생명 그것을 표현한것이 아닐까
이 작품을 만든 것은 인간 그럼 인간이 창조자인가? 자연에서 온 것으로 만든 것이니 인간은 중간자 이렇게 흘러가자 이번에 읽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키메라의 땅>도 떠올랐다.
그럼 허는 허일까 하다가 불교 용어의 공이 아닐까 하며 허라는 작품들을 다시 하나씩 천천히 다시 보았다. 그러다 놓친 설명을 읽으며 비슷하게 찾아간 것 같아 스스로 만족했다.
<세 개의 창>
느낌이 전혀 다르다. 하나는 세 개가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는 하나씩 분리해서 열수 있게 되어있었다. 왜 다르게 두개의 작품을 만들었을까 창은 창틀에 있어야 하는 데 이곳에 놓여있을까?
연결, 독립 두 단어속에 인간이 겹쳐지면서 또 다른 생각으로 흘러들어갔다.
밑그림은 같은 작품인데 하나는 금박을 하나에는 이렇게 검게 한 이유가 뭘까? 계속 보니 밑그림도 다른 표정으로 보이는 착각까지 일으켰다. 이 착각이 맞을까하는 무한의 세계로 들어섰다.
1995년이라 무슨 일이 있었을까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연도도 같이 보게 되었다. 이런 궁금증에 그리고 그때 나는 하는 생각과 함께...
이것도 <무제> 이젠 무제가 무서울 정도다. 어떤 의미일까 아니 내가 의미를 부여한다면? 처음엔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졌으나 어떤 이유로 소비자의 손에 왔을때는 달라지는 초콜릿같다는 느낌을 받으며 더 자세히 가서 못보는 것을 아쉬워하며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인간은 혼자살 수 없으나 같이 있으면 힘들어하는 모습이 느껴지며 적당한 거리 찾기 중인 것으로 나만의 의미를 넣었다.
갈대를 보는 동안 편안했다. 사이를 걷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시멘트와 석고도 재료로 사용했다는 데 그 느낌보다는 흰 색 갈의 모습이 더 눈에 들어갔으며 그 속에서 보이는 갈대의 원래 모습에 편안함을 느꼈다. 흰색가루는 모래라고 말씀해주셨다. 몇번을 보면서 똑같이 서 있는 것은 같은데 왜 여기서는 대나무때의 느낌과 전혀 다를까 빛의 농도, 넓이, 숫자, 재료의 차이 등을 생각하며 한동안 갈대를 보았다.
갈대 뒤에 보이는 작품!!!
예전에 보았던 식당의 풍경 아 이러면 나이가 ㅠㅠㅠ
사진에서 박물관에서 본 것으로 ㅎㅎㅎ
찐으로 편안한 느낌이였다.
나무가 주는 것일까? 예전의 기억을 불러일으켜 젊었을 때의 행복함일까? 어찌 되었던 너무 좋았다. 작가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다.
마지막 문장도 너무 맘에 들었다.
[존재하고 싶어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이 세계입니다. 존재하려면 무엇인가 멈춰 있어야 할텐데 모든 것이 움직이고 나의 마음도 끊임없이 변할 뿐 아니라 모든 입자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선술집의 작업은 이런 경험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작가인 자신도 유동하는 관객일 뿐입니다.]
좋아하는 찾아가서 보는 작가에 추가했다.
2025년 9월 9일 ~ 2026년 2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