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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씀 : 박 찬 덕 선교사
전편의 교제를 통하여 창세기 28장 10절부터 13절까지 하나님의 집이라 일컫는 베델에서의 꿈에 대한
얘기를 여러분과 교제를 나눴습니다. 이 꿈은 그리스도를 계시해 주는데요.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님을 통해서 인성 안으로 들어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늘을 땅으로 이끄셨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고 땅은 사람을 상징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바로 그 하나님을 땅으로 이끄셨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일이 된거죠?
바로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분의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하나님이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일입니다. 이 위대한 사건을 이루기 위해서 구약성경 39권이 그렇게 기록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성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육체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땅으로 이끄실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시고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육체 안에 감춰져 있던 하나님께서 드러나시고 부활을 통하여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비로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였던 바로 그 축복 그 영을
주심으로 말미암아 ▶ 땅과 하늘을 사람과 하나님을 하나로 연결시키는 일에 성육신 그리스도께서
이를 성취하시고이루셨습니다.
성육신 하신 것은 하늘에서 하나님을 땅으로 이끄신 사건이라면 죽음과 부활을 승천을 통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과 하늘을 하나로 연결하는 사닥다리 역할을 한 것이라고 제가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 그렇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늘과 땅이 하나로 그리스도에 의해서 연결되어서 하나님을 사람 안으로
이끄신 바 되어 내주하시게 됨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라는 이름이 위대한 이름으로 존귀한 이름으로
온 땅에 이렇게뛰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원수가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죠.
그래서 하나님 왕국 안에서의 대적자들 그리고 하나님의 왕국 밖에서의 원수 그리고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이 보수자들 보복자들에 의해서 지금 그렇게 훼방 당하고 방해받고 믿는 성도들의 삶을 기만과 거짓말에
의해서 지금도 그렇게 역사하고 있는 이 어둠의 세력들에 대해서 제가 얘기를 해 드렸습니다.
바로 그러할때 하나님의 권능에 대해서 찬미하는 것을 가장 약한 어린 아이와 젖먹이 들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이 높아지는 일과 세워지는 일을 그들을 통해서 하고 있다 라고 이 시편 8편의 2절
말씀을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1장 16절 말씀에서 이 능력과 권능을 세우셨다는 얘기를 찬미라는 단어로
바꾸셨습니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다.(시편 :8:2)
마태복음:21:16.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서 그의 성육신하심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서 우리에게 예수님의 영 구주의 영을 부어주시기까지 한 이 하나님의 경륜의 원대한 구속의
역사에 가장 높은 완결을 이루신 일을 가장 어리고 가장 약하고 가장 작은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을 통해서
나타내시고 이루셨습니다.
어리고 약하고 적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아이들의 몸짓과 입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찬미를 온전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왕국 안에서 하나님께 대적자로 반역의 정신을 가지고 대적하였던 대적자 그리고 하나님
왕국 밖에서 사람들 앞에서 이간질과 거짓말로 하나님을 비방하게 만든 그 원수들과 그리고 욥기1장에 나오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이간질 시키는 보복자들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주님 앞에 섰는데, 사탄도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7. 주님께서 사탄에게 "어디를 갔다가 오는 길이냐?" 하고 물으셨다. 사탄은 주님께 "땅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오는 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며 하나님 앞에 재앙과 심판을 받게끔 이간질하고 비방하는 그러한 대적자들과 원수와
보수자들 보복자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가장 어리고 가장 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가장 약한 자들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찬미를 온전하게 하고자 한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천국에서의 그러한 어린아이들과 같은 성품을 지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가장 높은 완결이 성취되었다 라는 것은 사단의 세력인
대적자들과 원수와 보복자들 보수자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조롱하고자 한 겁니다.
그렇게 가장 아무것도 아닌 자들을 통해서 에노스와 같은 자들이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자들 그런 자들을 통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가장 높은 완결이신 이루시고 성취한 일을 그들의 입을 통해서 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들
앞에서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조롱하고 너 까불지 마라 너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장중 안에 하나님의 손 안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위대한 계획들이 있다 라는 것을 우주 가운데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탄의 세력인 대적자 들과 원수와 보수자 들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갖고 있지만 하나님도 하나님을
대신한 그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을 통해서 목소리를 대신함으로 말미암아 사단의 세력을 입을 다물게 한다라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구속 역사의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 안에 있는 그렇게 강하고, 힘세고 ,끈질긴 어둠의 주관자 세상의 주관자인 그들을 가장
여리고 연약한 아기들과 젖먹이들 입을 통해서 원수들을 이기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기셨다라는 것입니다.
가장 작고 가장 어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주 연약한 에노스와 같은 그런 자들에 의해서 여호와의 이름이
불려지고 가장 약한 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 곧 하나님에 대한 찬미를 온전하게 하실 수 있는
위대하신 능력이 있으신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이 사단의 세력인 대적자들과 원수와 보수자들의
커다란 그 목소리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수 있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 라고 큰소리로 외치는
그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자물쇠를 채워 잠잠하게 하기 위한 일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시편:8편3절을 보면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성육신 하시고 생애를 사시고 또 부활을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이름이
온 땅에 위대하고 가장 높고 가장 존귀한 이름으로 뛰어나게 되고 주님의 영광이 하늘들 위에 두셨다고
했을 때 하늘과 땅 사이에 대적자들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죠.
그래서 하늘과 땅 사이에 그 인간이 사는 이 세상 이 땅은 엉망진창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분의 위대하고 가장 존귀한 이름이 땅에 있을지라도 땅에는 무질서하고 혼란과 복잡한 여러 가지 문제와
사건들과 그리고 어두움과 혼잡함과 그러한 것들로 가득 차게 됐을 때 바로 하늘을 바라보게 하면서
시편 8편4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라고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방문하여 주십니까 5 주님은 그분을 천사들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그분께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
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창조물과 우주의 신성한 질서를 보았습니다.
어두운 땅에는 문제가 많고 정말 혼란스럽고 엉망진창이지만 밤중에 땅을 바라보게 됐다 라는 것은
여러분 달과 별들을 제가 바라보니란 그 달과 별들을 본 시점이 어두운 밤입니다
밤이라는 것은 세상이 엉망진창이라는 문제가 많다는 것입니다.
혼잡 무질서 어둠으로 가득 찼다라는 얘깁니다.
그 문제가 많고 엉망진창인 어두운 땅에서 하늘들에 있는 달과 별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그 신성한
하나님의 창조물들을 통한 달과 별들의 그런 움직임과 그런 자리매김과 그러한 여러 복잡한 이루 말할 수 없고
헤아릴 수 없는 그런 창조물들 속에서 하나님의 위대하신 신성한 질서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 어둠 가운데 달과 별을 보는 이 시점이 어둠을 상징하고 있는 이것은 엉망진창이고 문제가 많은
이것은 주님의 구속의 목표가 이렇게 문제가 많고 어둡고 말도 못하게 혼잡스럽고 사건이 끊이지 않는 우리가
매일 뉴스를 보게되면 안 좋은 소식으로 99.9%가 그런 어둠과 문제가 많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신성한 달과 별들을 바라보는 것처럼 주님의 원대하신 구속의 역사가 종결될 것임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8편4절에 그 희망 땅을 보면 어둡고 문제거리와 혼란과 엉망진창이지만 그 하늘을 문득 바라보니까 달과 별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만드신 그 창조물들을 통하여 신의 위대한 신성의 위대하심과 전지하심과 전능하신 그 하나님의 계획의 질서를 인식함으로 말미암아 질서정연함 하늘들 위에 보여진 그 달과 별들을 통해서 구속의 그 목표와 과정과 그 역사가 이와 같이 질서 속에서 과정을 통해서 성육신이 이루어질 것을 희망 가운데 보고 있는 것입니다. 4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제가 이 말씀을 깨닫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위대한 비밀의 말씀을 깨닫고 여러분들도 저와 같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정말 감동하고 그분을
진심으로 사랑의 입맞춤으로 사랑하여 주님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을 되내기를
여러분에게 간절히 바랍니다.
땅을 바라보고 있던 엉망진창이고 문제거리가 많은 어둡기만 한 이 땅을 바라보다가 하늘에 달과 별들을
통해서 반짝반짝 빛나는 그러한 빛의 세계를 통해서 희망의 마음을 가져보면서 다윗이 신성한 계시로 빛에
비춤을 받습니다.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을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 관대 주님께서 저를 기억 하시오며 여기에서 나오는 사람은 뭡니까? 타락한 사람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죄악으로 얼룩지고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타락하여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타락한 인생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타락한 인생들을 하나님께서 먼저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저를 기억하시며 사람이 원래는 창조하실 때 그러한 뜻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겠죠? 그러나 선악과 지식의 나무와 생명 나무 가운데 인간을 두시어서 실족 당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이 범죄하여 타락하여서 인간이 타락한 인생이 되어서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고 훼손되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을 간과하시거나 소홀히 하시거나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기억하신 하나님께서 그 타락한 사람을 내버려 둬도 될 판이고 다른 창조물들을 얼마든지 전지 전능하신
그분에 의해서 아담을 대신해서 다른 창조물들을 창조 할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귀하게 여기시고 사람을 기억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기억하시고 방문하신다 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육신 사건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성육신되시기 전부터 사람을 기억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이 타락하여 실족하여 범죄하여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을 미리 아심에 따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지혜가 많으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 따라 혹 이런
일이 있을까봐 창세전에 이미 성육신에 대한 아들 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시기로 작정하고 그 영원안에서 신성
안에서 그리스도께 기름 부음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되신 후에 인성 안에서 사람이 되신 그 예수님 안에서 기름 부음을 또 받게 함으로 말미암아
신성 안에서도 기름을 인성 안에서도 기름을 받게 하여서 하나님과 사람 모두를 만족하게 하고 흡족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구속주와 구원의 주가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사람을 먼저 기억해 주셨습니다.
기억하셨는데 이것은 성육신 되시기 전부터 사람을 기억하셨다라는 것입니다.
성육신 되시기 전부터 그리고 나서 그분은 성육신을 통하여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성육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몸과 육체를 입고 세상에 오셨죠. 피와 살을 가진 사람으로 오시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되죠?
다윗의 씨 다윗의 가문인 다윗의 후손인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10개월 동안 빌려서 그 죄악된 본성을 지닌
여인의 뱃속을 빌려서 거룩한 성령님에 의하여 잉태되어진 바 된 것입니다.
10개월 동안 그 인간의 배 속에 갇히셨다가 베들레헴 떡집에서 출생하심으로 말미암아 성육신을 통해
신성을 지닌 하나님께서 인성을 지닌 사람이 되셨던 것입니다.
신성과 성육신을 통해 신성과 인성 두 가지 종류의 모든 본성을 가지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실 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그리고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임마누엘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신성과 인성 이 두 종류의 본성을 가지기 위하여 신성이신 그분이 인성 안으로 들어오셨던 것입니다.
성육신을 통하여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사람을 먼저 기억하셨던 그분이 성육신을 통해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기억하셨던 것을 결과로 보여주기 위하여 사람을 친히 방문하러 오신 사건이 2천년 전에
오신 아기 예수님이십입니다. 할렐루야
만 유의 주 세상의 왕 이스라엘의 왕이 2천년 전 베들레헴의 마굿간에 생명의 양식이 되기 위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함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것 없는 여물통이 아니면 먹이를 먹을 수 없는 그러한 인생들에게
먹이통 가운데 태어나셔서 스스로 오병이어의 떡이 되셔서 생명 주시는 영이 되시기 위하여 성육신을 통해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친히 사람을 방문하신 사건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기억하여 주시며 사람의 아들이 무엇이기에
주님께서 그를 방문하여 주십니까 라는 이 말씀입니다.
여러분 성육신 되시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사람을 기억하셨는데 성육신을 통해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방문하러 친히 오심으로 말미암아 기억하셨다 라는 인간을 존귀하게 여겼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을 굉장히 존귀하게 여겨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는데 하물며 사람인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되겠습니까?
성육신을 통해 사람을 방문하러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드러낸 것입니다. 바로 이 말은 삼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를 가진 예수님께서는 이 세 분 하나님을 드러낼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그 예수님이 가진 육체는 죄악된 본성을 가진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서 선출된 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성이라는 명분이 없습니다.
그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명분을 갖기 위해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일어나야만 됩니다.
죽었다가 살아나는 일은 인간은 첫 사람 아담의 허리에 산출된 자는 누구도 그 일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만이 죄를 이기고 죽음과 사망을 초월하여 다시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부활이 예수님이요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라고 예수님은 이미 부활의 경험을
하기 전에도 부활의 생명을 가지신 분입니다. 단지 부활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것을 증거로 보여준 것뿐입니다.
예수님이 마르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마르다의 오라비 나사로가 죽었을 때
슬퍼하며 가슴을 치며 애통하는 그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말씀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 자신이
부활이요 부활이 예수님이요 생명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이 생명이라고 이미 증거로 보이셨던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사람 몸속을 빌려서 10개월 동안 있었다라는 이 성육신이라는 것을 통해서
이미 삼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신 사건입니다.
우리에게 오시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기억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기억하고 있기만 하면 뭐합니까 방문하는 일이 필요하죠 이 세 분 하나님은 우주를 관장하는 일 자신이
창조하신 이 세계가 얼마나 넓겠습니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이 커다란 우주를 관장하는 일에 얼마나 바쁘고
얼마나 할 일이 많겠습니까?
그런데 그중에서도 우리를 가장 존귀하게 여기셔서 우리를 기억하고 계셨다라는 것입니다.
기억하고 계시기만 한 것뿐만 아니라 기억하심으로 인하여 그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이 늘 마음속에 채워지고
채지고 채워짐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방문하려고 성육신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성육신하시지 않으셨다면 세 분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하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와 함께 울고 우리와 함께 웃고 특별히 우리의 고통 가운데 함께 고통당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고통 당할 때 여러분의 부모가 그 고통을 대신할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요 우리의 팔다리가 하나 잘라졌을 때 그분은 팔다리 하나가 똑같이 잘려졌던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할 때 그분은 똑같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당하시고 생명을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것으로 보여줬던 것입니다.
우리 거듭난 자들은 예수님의 방문하심을 입은 자들로 하나님의 기억하신 바 된 존귀한 자들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다니는 건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예수님 사랑합니다라는 이런
고백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되어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그분의 마음속에 그분의 어깨 위에
그의 머리에 입력되어진 자 우리 이름이 그분의 어깨 위에 흉패에 손바닥에 다 달려 있습니다
.
손바닥에 못자국과 발바닥에 대못자국과 머리에는 면류관 자국과 그리고 대제사장의 그 가슴 흉패에도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존귀한 자로 기억되어져서 우리 가운데 우리 삶에 우리 환경
가운데 방문하셔서 우리를 주님의 손에 이끌림 바 되어서 교회로 주님의 집으로 인도받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주님의 방문하심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은 지금도 우리를 방문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방문하고 계실까요?
2천년 전에 성육신하신 방식으로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온 것처럼 10개월 동안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우리를 기억하셔서 방문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런 성육신의 방식으로 우리들 삶 가운데
우리들 존재 안으로 친히 방문하십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10개월 동안 빌려서 탄생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33년 반 동안의 생애를 사셨고
그 생애를 사시는 동안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사람들을 만났지 않습니까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주님과 접촉할 수는 있었으나 어떤 사람은 주님을 모시게 되고 어떤 사람은 주님을
거부하게 되어서 주님과 끊어지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보았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주님을 믿고 주님을 영접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되었다면 이천년 전에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신 방식으로 이스라엘 유대인들을 방문했던 것처럼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방문하신다는 것입니다.
2천년 전에 성육신하신 방식으로 방문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 삶 가운데 우리 생활의 방식으로 오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오셔서 33년 반 동안의 인간의 삶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제자들과 사람들을 만나서 구원받을 자를
하나님의 자녀가 될 택한 자들을 택하셔서 구원받게 하셨습니다.
인간 생활의 방식을 통해서 방문하시고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그 사건을 통하여 방문하십니다.
여러분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건 골고다 언덕길에 쓰러지고 넘어지면서 자신을 위해서 슬피우는
여인들에게 정말 간곡한 권면의 말씀들 오른편 왼편 강도와그를 직접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았던 백부장
그의 수발을 들었던 니고데모와 같은 자 아리마데사람 요셉 그의 죽음을 친히 경험한 모든 자들 그 외에도
예수님의 그 무거운 십자가를 끝까지 지고 간 구레네 사람 시몬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까지도
우리들을 친히 방문하셔서 구원의 길로 생명의 길로 방문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부활의 방식으로 부활의 때에 막달라 마리아 앞에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영이라는 예수님의 영을
부어주시기 위해서 막달라 마리아와 교제를 가졌던 그분께서 잠시 나를 만지지 마라 내가 아버지께로
아직 올라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12시간이 채 못 되어서 부활의 첫날 새벽 미명에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무서워서 어찌할 바 몰라 두려워 떨며 공포 가운데 처해 있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방문하심으로 말미암아 위로해 주십니다.
성육신의 방식으로 세상 모두에게 꿈과 빛의 세계를 비춰주신 그분께서 인간의 삶을 통해서아름다운 품성
아름다운 신의 속성인 미덕들을 보여주심으로 말미암아 인성을 지니신 그분의 온전하신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여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까지 구원의 도를 보여주시고 부활을 통하여 제자들에게 그 무서워 두려움에 떠는 그들에게 평화를 제공해 주시고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기대와 희망을 품게 하시고 그리고 강림하심을
통하여 예수님 자신이 그 오순절 다락방에서 120명 속에 함께 임재하고 내주함으로 말미암아 초대교회를
세우시는 일을 그러한 방문의 방법으로 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들 삶 가운데 내가 성경을 읽는 가운데 기도하는
가운데 또는 어떠한 삶의 환경에 처해졌을 때 내가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아파하고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늘 나를 방문하셔서 내 안에 내주하시고 임재하셔서 우리들에게 평안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육신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있었기 때문에 구세주의 탄생이 있었기 때문에 이것이 우리들에게
이러한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만일 주 예수님이 이와 같은 성육신의 사건을 통하여 인간이
되시지 않았다면 인간의 삶을 사시지 않았다면 죽음이라는 그러한 어두움을 통과하지 않았다면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부활의 삶을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다면 예전에 그 예수님은 제자들과 또 만나는 사람 만 만날 수
있는 제한적인 분이셨으나 이제는 그분의 영 예수님의 영을 통해서 누구든지 영접하는 자들 속에 내주하셔서
만나주시는 방문이 가능해 지신 것입니다.
그런 복잡한 성육신의 과정들 잉태되시고 태어나시고 33년 반 동안의 생애를 사시고 골고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올라가셔서 다시 강림하시는 이런 과정들을 거치지 않으셨다면
그 예수님의 영이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우리 영이라는 존재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실
수 있느냐 이 말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영은 곧 그리스도 영이신 예수님께서는 실질적으로 이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왜냐하면 이런 과정들을 거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방문하시기 위해서 하늘에서
곧장 사람의 모습으로 와서 내가 너희 사람 같은 모양이 되어서 너희를 구원하러 왔다라고 얘기한 것이 아니라
친히 방문할 뿐만 아니라 방문하여서 우리와 함께 영원히 살기 위해서 긴 성육신의 과정을 일곱가지라는 이런
긴 통로의 과정과 단계들을 거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방문하셔서 임마누엘 하실 수가 있으신 것입니다.
이 성육신이라는 7가지의 과정은 너무나 긴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길다 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만세 전에 작정되어진 일이기 때문에 창세전에 아버지에 의해서
계획되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길고 복잡한 여정입니다.
성육신이 되기까지 그리고 성육신이라는 이 과정을 거쳐서 죽음과 부활 승천 그리고 다시 주님의 영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이 과정이 있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애씀과 수고 하심과
왜 그러한 일이 있어야만 됐을까요. 우리를 기억하기 때문이며 존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존귀하게 여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우리가 지어진 바 되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 뭐라고 했죠? 그분과 똑같은 신성의 요소 신성의 일부를 소유받게 하여서 신과
하나가 되고 함께하는 삶을 살게 하고자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미리 아심에 따라 우리를 기억해 오셨고
성육신 되시기 전에 기억하셨고 성육신 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방문하셨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영을 통해서 복합되신 그 세 분께서 지금우리와 언제나 함께 계십니다.
그분이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평화를 주기 위하여 자유를 주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임마누엘 하고
계신 것입니다. 만약에 그분이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셨더라면 만약에 그분이 우리를 기억하지
않으시고 방문하지 않으셨더라면 이 성육신이라는 매우 복잡하고도 길고 정말 애씀과 노력과 생명을 다한
몸부림 치는 그런 과정들을 거치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지금 어떠한 존재가 됐을까요?
살다가 죽으면 끝일 것입니다.
아무 희망이 없는 무릇 짐승들과 같은 그러한 혼적인 존재자들이 되어서 아무것도 아닌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서 영원히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그러한 가련한 존재자들이 될 것입니다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방문해 주셔서 거듭난 심령안에 거처 삼으셔서 내주하심으로 말미암아 함께 사셔서 영원한 거처의 새 하늘과 새 땅에 도래하게 될 그 새 예루살렘 성이 되게끔 우리를 만들어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하기 위해서 이러한 일들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을 복잡하고도 말할 수 없는 몸 부림과 이 성육신이라는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피조물인 천사들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었다라고 시편 8장 5절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여러분 지위의 상태가 낮아졌을 때 굉장히 격하됐을 때 사람은 화를 냅니다.
이런 개보다도 못한 놈 짐승보다도 못한 놈 상태가 아주 나빠졌다는 얘기죠. 최악의 경우라는 얘기입니다.
높은 지위를 가졌던 자가 아주 낮은 비천한 지위를 소유했을 때 그 존귀함은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웠습니다. 언제 어느 때 영광을 받으셨죠? 그분이 죽으실 때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부활하실 때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승천은 그것에 대한 결과물이죠.
영광과 존귀를 소유하신 분이 만유의 주가 되셨다라는 것이 바로 승천이겠죠.
영광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영화롭게 되었는데 왜 그렇습니까?
그분의 상태가 천사들보다도 못한 그러한 지경까지 그런 상태까지 내려갔던 그분이 영화로움을 되찾음으로
말미암아 원래 상태보다도 더 위대한 자로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지위가 영광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본래 가지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본래 가지고 계셨던 상태가 비천한 상태의 소유자였으나 왜 그렇습니까?
인간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천사들은 그걸 못하죠. 하나님은 그걸 못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의 삶을 살 수가 있겠어요. 인간의 삶은 인성을 가진 사람만이 살 수가 있는 거예요.
신성을 지닌 그분이 성육신을 통하여 사람 안으로 들어오셔서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비천한 처지로
내려갔다가 죽음을 통하여 그것이 회복이 된 것입니다.
원래 그분이 가지고 있던 지위나 그분의 상태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죽음은 영광을 나타내고
부활은 존귀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본래 가지고 계셨던 상태이고 존귀는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계셨던 지위입니다.
지위와 상태 상태와 지위가 온전해질 뿐만 아니라 더욱더 위대하여 졌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사들보다도 조금 못하게 하시고 여기 조금이라고 얘기했지만 말할 수 없이 비천한 하나님이셨는데
어떻게 비천한 지경 비천한 처지 비천한 상태 인간의 생활 인간의 삶을 살 수가 있다 란 말입니까?
그래서 그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기름 부음 받은 자를 하나님의 경륜의 계획을 수행하시고
이루시기 위한 일을 하시기 위해서 세상에 성육신 하신 그분을 천사들 보다도 낮게 만드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를 후에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더 높게 만유의 주가 되시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천사들보다도 조금 못하게 하시고 여기 쉬운 성경에는 저를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 라고
했는데 저는 뭘 말하고 있죠? 아까 4절에서 말한 그 사람은 타락한 인생들인 아담의 허리에서 산출된 범죄하여 타락한 죽어 멸망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인생들 타락한 인생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께서 인성 안으로 들어와서 사람이 되신 인자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자 예수님을 천사들보다도 조금이 아니라 훨씬 못하게 하셨다 라는 이 말은 여러분 이 사람 예수님이
왜 천사들보다도 조금 못하게 되셨을까요? 여기는 조금이라고 얘기했지만 그 조금이라는 것은 한도 끝도
없는 조금이기 때문에 너무나 너무나 비하되고 격하가 된 낮은 상태에 빠진 그분의 존귀한 이름과 그분의
영광스러운 상태가 영광은 커녕 육신을 입고 죄악된 사람의 몸을 입고 존귀한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나사렛의 예수라는 아주 비아냥거리고 조롱받고 멸시받는 그 동네에 아주 그냥 나쁜 이미지를 가져올 수 있는
그러한 나사렛 출신 예수 그리고 사람 예수님을 보면서 그분의 영광과 존귀함은 도무지 찾아볼래야 도무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예수님을 오해하고 실망하고 떠나버리게 됐던 것입니다.
바로 나사렛 사람으로 오신 그분을 천사들 보다도 못하게 하셨다 라는 것은 그분이 사람 예수님으로
오신 사람의 삶을 사셨기 때문에 천사들보다도 못하게 됐다는 의미이며 사람 생활을 하신 그분을 우리는
인자 예수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여러분 인자 예수님과 사람 예수님은 달라요.
사람 예수님은 외형적으로 보여지는 그분의 모습이라면 성경에 인자로 나타나지고 있는 그 인자의 숨은
의미는 인간의 삶을 사신 사람 예수님의 성육신을 가리키고 있는 겁니다.
사람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삶 인간 생활 사람의 생활 사람의 삶을 사신 그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 하신 그 모습을 우리는 인자 예수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인자라는 뜻은 그분의 존귀한 이름입니다.
존귀한 이름이 아주 격이 낮아진 비천하게 된 모습으로 나타내어 진 것이 나사렛 출신으로 표현됨으로
말미암아 아주 조롱받는 자로 그리고 그분의 영광스러운 상태가 사람의 생활을 통하여 아주 비천하고
말할 수 없이 비루한 상태 비천한 처지에 처 해 진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육신 하심으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의 육신의 부분은 천사보다도 낮다 라고 성경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광의 상태를 지녔던 그분이 가장 낮은 상태의 육신의 모습을 가졌고 존귀한 이름을 가진
그분이 나사렛 출신이라는 이름으로 조롱받는 그러한 자가 된 그분이 인간 생활을 하신 후에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하여 그 모든 것을 포함한 여러분 모든 것을 포함한 것이라는 건 뭐죠? 예수님은 원래 영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존귀의 하나님이셨어요.
여기 시편 8장 5절에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영광의 하나님 존귀의 하나님이셨던 그분이 성육신 하심으로 사람이 되셔서 인자인 육신의 삶을 삶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경험하게 돼었습니다.
죽음을 통해서 그분은 이 모든 영광과 존귀를 다 포함하고 죽으신 것입니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가장 높임을 받은 위대하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죽임을 당하므로
그 영광과 존귀가 모두 수장되어졌던 것입니다.
깜깜함 속에 묻혀졌던 것입니다. 만유를 포함한 죽음이었던 것입니다.
그 만유에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죽음이라는 겁니다.
그 하나님의 모든 것이 들어가 있는 죽음 가운데 두 가지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 영광과 존귀입니다.
근데 영광과 존귀를 품에 안고 죽으셨으나 그분은 실제 영광의 하나님 존귀의 하나님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만유의 주로 인정받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분이 인간 생활 하신 후에 성육신하신 육신으로 오신
그분이 다시 사셨습니다.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영광이 되찾아질 뿐만 아니라 더 영화롭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은 만유를 포함한 죽음이 되었고 그리고 그분이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은
잃어버렸고 훼손되었던 영광 영화로움이 다시 하나님께로부터 인정 받아 더 높임을 받은 영화로운
영광의 주가 되셨고 만유의 주로 하나님의 그리스도로서 인정받게 되었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활을 통하여 그분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그리고 나서 부활하신 40일 후에 500여 문도가 보는
앞에서 승천하심을 통하여 그분이 그 잃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존귀함 원래 존귀하신 하나님이셨던 그분이
나사렛 출신이 됨으로 말미암아 웃음거리가 되고 조롱거리와 손가락질 당하는 신세가 되었던 그분이 승천을
통하여 어떻게 됐습니까? 존귀함을 다시 되찾게 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오히려 더 존귀하게 되었고
영광 스럽게 되었고 오히려 사람 앞에서도 더욱더 영광 스럽게 되었고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부활을 통해서는 그분의 영광이 더욱더 영광스럽게 되었고 하나님과
사람과 우주 앞에 그리고 승천을 통하여 그분이 사람과 우주와 하나님 앞에 더욱더 존귀하게 된 사건이
나사렛 출신이라고 업신여김 받고 사탄에 의해서 짓 밟혀지고 훼손되어지고 망가지고 그분의 영광이 완전히
무참히 깨진 상태에 있었는데 그분이 죽음을 이기고 죄와 사망을 초월하고 다시 살아난 부활 사건을 통하여
구겨지고 찌그러졌던 영광의 상태가 더욱더 밝은 영광의 상태로 이제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우주
앞에 그리고 사탄에 대해서도 온 세상에 대적자들 원수 보수자들 피조물들 생명이 있는 인간들 그리고 동등됨을 취하고 하나님 앞에 보냄을 받았던 하나님 앞에서도 그분의 영화로움과 영광과 그분의 존귀하신 이름이 더욱더 빛나고 영화롭게 되고 영광스럽게 되었다 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영화로운 영광이 더욱더 나타나게 됨으로 말미암아 더욱더 완전하고 더욱더 온전하고 더욱더
분명하게 세상 만유 가운데 모두 인정받게 하셔서 시편 8편6절에 그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그래서 승천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만유의 주가 되신 것입니다.
존귀한 이름을 되찾았기 때문에 부활을 통하여 영광을 회복한 정도가 아니라 더욱더 완전한 영광을 소유하고
존귀한 이름을 더욱더 온전하게 분명하게 확실하게 소유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인정받으며 만물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라는 하나님의 인정하심에 따라 그분을 더욱더 영광스럽게 하고 더욱더
존귀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성육신 하신 인자 예수님의 발 아래 두게 되셨던 것입니다.할렐루야
2천년전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은 이러한 위대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인간 생활을 하심으로 말미암아 인자 예수가 되신 그 예수님께서는 부활을 통하여 영광을 더욱더
영광스럽게 하였고 부활 안에서 인자 예수님은 더욱더 영화롭게 되셨고 40일 후에 500여 문도들이 보는
가운데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그 승천을 통하여 더욱더 하나님 앞에 존귀하게 되므로 세상 만물을 바로
인자 예수님의 발 아래두셔서 꿇어 엎드리게 하셨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셨다 라는 얘기는 부활과 승천 그 두 가지의 과정을 모두 다 포함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승천 이전에 뭐가 있었죠? 부활이 있었죠. 부활 이전에는 뭐가 있었죠? 죽음이 있었겠죠.
죽음 이전에 뭐가 있었죠? 33년 반 동안에 인간의 삶 인간의 생활이 있었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그 생애가 없었다면 죽음도 없었고요 죽음이 없었다면 부활도 없었고요
부활이 없었으면 승천도 없었고요 다시 예수님의 영이 이 땅에 강림하시는 그런 사건도 없었을테고
오순절 다락방 역사가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승천은 부활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요 부활은 죽음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요 죽음은 33년 반 동안의 인자 예수님의 생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애가 있었던 것은 인간이 되심으로 말미암아 성육신하심으로 말미암아 벌어진 사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과 인간 생활이 없었다면 그분은 죽으실 자격이 없으신 것입니다.
인자 예수님은 다른 말로 죽으실 자격을 갖기 위한 과정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죽기 위한 자격과 요건을 갖추기 위한 삶의 과정이 그 인자 예수님인 것입니다.
그 인자 예수님의 삶의 과정은 많은 쓰라림과 아픔과 애환과 찢어짐이 있습니다.
왜냐면 영광이 무참히 가려지고 그분의 존귀한 이름이 무참히 짓밟혀지고 훼손되는
이런 천사들보다도 못한 일을 경험한 것이 인자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왜 인자 예수님을 사셨어야 되나요? 죽으실 자격을 가지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인자 예수님이 되지 않으면 성육신과 33년 반 동안의 인간 생활을 소유하지 않으면
십자가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실 수가 없습니다.
아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간 구레네 시몬 이 사람은 군인인데 예수님께서 그와 같은 방법으로
방문하셨기 때문에 그가 나중에 장로가 되고 사도 바울 선생님을 안수를 하고 그 아들들이 함께 감독이
되어서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자들로 나타나잖아요.
▶구레네의 시몬과 그의 아들 아렉산더와 루포에 대한 첨부 설명입니다.
구레네는 지금의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인 트리폴리 지방으로 예루살렘으로부터는 상당히 먼 곳에 위치한 지역이다. 그러나 당시 로마 다음으로 제 2의 도시였던 알렉산드리아와 그 인근에 위찬 구레네에는 많은 다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어떤 경위인지는 몰라도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라 하는 이가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다. 그는 우연찮게 한 죄수의 십자가 처형 행렬을 목도하게 되었다. 당시 십자가 처형의 방식이 그러했듯이, 그 죄수는 끔찍한 고문을 당한 뒤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직접 지고 형장까지 가야했다. 형장까지 가는 도중 그 죄수가 지쳐 쓰러져 일러나지 못하자, 구경꾼들 틈에 끼어 그 신기한 행렬 과정을 지켜보던 시몬을 한 로마 군인이 잡아다가 그의 십자가를 대신 지게 하였다. 마가는 이 장면을 단 한 구절로 스치듯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길에, 그 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로서, 구레네 사람 시몬이었다. 그들은 강제로 예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다.” 구레네에서 올라온 시몬이 지게 된 나무 형틀은 인류 구원이 정점이 된 바로 예수가 지고 가신 십자가였다. 알렉산더와 루포가 누구였기에 시몬은 그들의 아버지로 소개하고 있는가? 로마서에서 사도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하면서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라”로 말한다. 로마서에 소개된 그 이름 “루포”는 우리에게 로마서가 기록된 시점으로부터 약 30년 전 십자가 행렬 현장에 있다가 예수 대신 억지로 십자가를 졌던 시몬을 기억나게 한다. 로마서에 소개된 루포와 그의 어머니는 구레네 시몬의 아들이었고 그의 아내였다. 예수의 십자가 처형으로부터 한 세대가 흘러, 시몬의 아들 루포는 사도 바울로부터 문안 받는 인물이 되었고, 그의 어머니(즉 시몬의 아내)는 바울이 영적 어머니로 언급할 만큼 초기 기독교 역사 속에서 존경받는 인물이 되었다.
당시 예수가 지고 가셨던 그 십자가의 의미를 모른 채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던 시몬은 은연 중 인류 구속 사건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 그 구원의 드라마에 그의 아들들이 참여 하고 있었으니 시몬은 부지중 복 받은 자가 아닌가?
-이상명 교수(미주 장로회신약대 신약학)- 미주 중앙일보의 성서인물열전 중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은 주님께서 분명한 방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문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영으로 여러분들 삶에 내주하실 뿐만 아니라
여러분들 존재 안으로 들어가셔서 함께 임마누엘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여러분은 위대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자들이에요. 신의 아들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니에요. 지위가 좀 없으면 어떠합니까 예수님도 그런 삶을 사셨는데요.
지위가 가장 높으셨던 그분이 가장 낮은 인성을 가지고 그 죄악된 본성을 입은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33년 반 동안의 삶을 사시고 그분의 영광이 완전히 덮어진 채 그분의 존귀한 이름이 완전히 무참하게
상실되고 무참히 짓밟혀진 채 그런 삶을 그분이 사시고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하여 원래 상태보다도 더
확실하고 완전하고도 온전하게 영광과 존귀한 이름을 소유했던 것처럼 여러분 이 세상에서 삶은 잠깐뿐입니다.
많이 살아야 팔십 구십 평생이겠죠. 저도 나이가 지금 벌써 나이가 육십칠세네요.
55년생이니까 제가 많이 살아야 하나님께서 생명을 허락하신다면 10년 15년 예 여러분 불평하지 마세요.
최대한 주님의 영광과 주님의 존귀한 이름을 위해서 사시면 됩니다. 그것이 뭡니까?
주님께서 인자 예수님으로서 생애를 사신 가운데 하나님의 속성 하나님의 품성인 아름다운 삶의 미덕들을
다 쏟아내고 가셨어요.
그분이 사람들을 만날 때 마다 그 친절함과 온유하심과 그분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은 말도 못해요.
꼭 여러분들과 그러한 교제를 나누기를 간절히 고대합니다.
인자 예수님으로 사셔서 그분의 영광과 존귀한 이름을 빼앗겨 버린 것처럼 상실되어 버린 삶을 인자
예수님으로 사셨던 것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들에게 생명 주시는 영을 갖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하게 하기 위해서 죽으실 자격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33년 반 동안에 인간 생활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장차 그분을 뵈올 때 인자 예수님을 뵐 것입니다.
그분의 인자 예수님의 33년 반 동안에 그 생애와 죽음과 부활과 승천 그 안에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모든 삶이 그 안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인자 예수님을 볼 것입니다.
아마 그분의 손과 발에 난 대못 자국이 그리고 옆구리에 창에 찔린 창자국을 아마 볼것입니다.
왜냐하면 33년 반 동안에 인간의 생활을 사신 그분이 우리를 마중할 테니까요.
예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인자 예수가 되심으로
말미암아 죽으시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자의적으로 자발적으로 그 죽음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죽을 자격을 갖기 위해서 인자 예수님으로서
삶을 사셨던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되셔서 33년 반 동안의 인생을 사심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존귀한 본래 가지셨던 존귀와 영광이 훼손되고 상실되어 버리고 잃어버린 바 되어졌던 것입니다.
죽음 안에 완전히 묻혀졌던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 안에는 이런 모든 것들이 다 포함돼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육신 하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되셔서 33년 반 동안의 인간의 삶을 사시고 그리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음을 당하시고 3일 후에 부활하시고 40일 뒤에 승천하심으로 말미암아
존귀하게 되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이러한 세 분 하나님들이 아버지와 아들 하나님과 영 하나님
그분들께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서 함께 하셨던 그분들이 부활과 죽음을 통하여서 해방이 되었고
세 분 하나님이 드러나게 되었단 얘기죠.
예수님의 육체 안에 인성 안에 꼭꼭 감취지고 꼭꼭 숨겨져 있던 그분이 그 찢겨짐으로 말미암아 십자가를
통해서 완전히 벗겨짐으로 말미암아 생명이 해방되어서 신성한 세 분 하나님이 이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실 수 있도록 해방이 되어졌습니다.
3일 후에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생명 주시는 영으로서 생명을 분배할 수 있는 기틀을 가지게
되었던 겁니다. 이와 같은 세 분 하나님이 인자 예수님을 통하여 그 인자 예수님 안에 세 분 하나님이
그런 복잡한 단계와 과정들을 거침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지금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신 그분을 보면서
그분이 소유한 영광과 그분이 소유한 존귀는 우리들에게 분배해 주시기 위한 영광과 존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존귀한 이름 새 이름이죠. 계시록에 나오고 있는 이름이죠.
우리에게 주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명분을 가진 하나님의 왕국을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
그런 영광 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심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것들을 통치하는 자로 여러분 이 시편 8장6~8절에 통치의 장면이 나오는데
원래 이것은 아담에게 부여했던 통치의 장면입니다.
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7곧 모든 우양과 들짐승이며 8공중의 새와 바다의 어족과 해로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러분 창세기 1장 26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러분 이 통치하게 하는 일을 첫 사람인 아담을 통하여 부여했던 통치의 이 권위와 영광이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자 예수님으로서 삶을 사시고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영화롭게
되고 더욱더 존귀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이 모든 것을 발 아래 두어서 통치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9절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라고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바로 이러한 일들이 주님께서 발 아래 두어 모든 것들을 통치하게 되는 이런 일들이 천년 왕국을 통해서 왕들이 된 그러한 자들에게 천년왕국에서 다시 회복되어서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영광과 존귀함으로 말미암아
첫 사람 아담이 잃어버린 그 영광과 존귀함을 하나님을 표현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드러내는 대표자로서의 삶이 회복되어서 왕으로서의 주님 대신에 이런 일을 통치하게 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시편 8편은 너무나 짧은 내용이지만 인자 예수님의 생애가 기록돼 있는 거예요.
인자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의 삶이 인간의 생활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있어요.
인간이 되신 예수님의 삶이이 있어요. 33년 반 동안의 인자 예수님의 생애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언덕에서 죽음이 있습니다. 여러분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이 말씀 안에는 그런 게 다 들어 있습니다.
특별히 4절 5절 이 말씀 가운데는 예수 그스도의 죽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우리의 만유의 주가
되셔서 그리스도 되신 구속주가 되시고 구원의 주가 되심과 온 우주의 만유의 주로서 유일한 통치자 왕중의 왕
이스라엘의 왕 만왕의 왕 여러분 교회에 가면은 찬양을 부를때 만왕의 왕 이스라엘 왕에 대해서 노래를 하죠.
예 그제서야 성육신과 인자 예수님으로서의 인간 생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왕
왕중의 왕이 되신 것이고 영광과 존귀함으로 관을 씌우심 받은 것이지 여러분 이러한 분명한 사실을 알지
못하면 그분이 언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움받아서 만유의 주가 되셔서 모든 만물들을 발 아래 두게
되었는지를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분이 경험한 이런 것을 천년 왕국을 통해서 천 년 동안 모든 피조물들
창세기 1장을 통해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을 통하여 모든 것들을 통치하게 합시다 라는 1장 26절 말씀이 이루어질 날이 천년 왕국을 통해서
천 년 동안 그러한 것들을 모두 다스리고 통치할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이것이 시편 8편에 있는 신성한 하나님의 관념에 따른 계시의 빛의 정신인 것입니다.
시편 8편의 마지막 구절이 여호와 저희 주님 주님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뛰어난지요.
다윗은 하늘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땅이 하늘만큼 높이 될 것이라는 바로
계시록 21장 1절과2절과 10절 말씀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이 새 하늘과 새 땅 하늘에서 내려올 이 새 예루살렘 성은 땅이 하늘만큼 뛰어난 땅이 될 것이
왜냐하면 땅에서 인자 예수님의 생애가 33년 반 동안의 생애 성육신을 통하여 생애를 사시고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 이 땅에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성취된 것 또한 이 헌 땅과 옛 피조물은 다 불로 태워지고
새로운 세계에 속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셔서 하나님이 그 예루살렘 성을 이 땅 위에 내려오게 하셔서
우리와 함께 거처 삼아 살게 하실 것입니다.
예 다윗을 통하여 보여준 것이 하늘에서는 주님의 영광이 땅에서는 바로 주님의 뛰어난 이름이
영광이라는 것은 바로 주님이 이 땅에 살면서 부활을 통하여서 이루어진 그 일 그리고 땅에 그 존귀한 이름
존귀한 이름이 새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그 모든 자들에게 이렇게 나타나 보여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것은 엉망진창이고 어둡고 문제 거리가 많고 무질서하고 혼잡한
이 땅이지만 장차 이 땅이 새로운 땅 새 하늘로 변화되어서 완전히 주님의 존귀함과 주님의 영광만이
보여지는 그러한 새 예루살렘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18:3)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마태:12:32) 오늘 말씀 정리를 하면서 왜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지 왜 성령을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지 못하는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마태복음 18장 말씀이 이제 조금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결코 에노스 같은 자가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뵈올수 없고 성령님을 거스르면 사하심을 받지못하는 것은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치시면서 까지 그렇게 본래 가지셨던 하나님의 영광과 존귀를 뒤로하시고 너무나 초라하고 비천한 성육신의 생애와 죽으실수 없는 분이 죽으시기 위해 오심과 그 요건을 갖추기 위해 사람이 되어 오신 그러한 애씀과 쓰라림과 고통으로 죽음과 사망을 초월하셔서 우리에게 만들어주신 귀한 선물을 존귀히 여기지 않고 소홀히 여겼기 때문인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말씀을 알게 하신 주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를 올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