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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당파(黨派)
예수 당시 유대에도 많은 당파가 있었다. 그중 중요한 것만 하여도 5, 6개를 꼽을 수 있으니, 즉 바리새파·사두개파·헤롯당·에세네파·젤롯파(열광파) 등이다.
바리새파: 이들은 국수 보존(國粹保存)을 주장한 보수파로서, 사회적으로는 로마 제국에 대하여 적개심을 고무하는 한편 민중의 이익을 도모하여 소위 평민의 지지를 받았으며, 종교적으로는 옷단에까지 율법을 기록한 엄격한 율법주의자들로, 유명한 역사가 요세푸스가 그들을 그리스 스토아파와 비교하여 특히 그 도덕적인 점을 지적한 일파다.
사두개파: 이들은 소위 진보주의자로 자처하며 외국 사상, 특히 그리스 문화를 도입하여 정치적 이익과 이를 융합하려고 한 자들로서, 그 명칭이 다윗 시대의 유명한 제사장 사독(Zadok)에 기인하는 바와 같이 당시 사제직(司祭職)에 있던 종교가가 중심이었으나, 사원 종교가(寺院宗敎家)의 상례(常例)대로 민족의 상층부에 세력을 가진 일종의 귀족적 정당으로, 따라서 현세주의와 향락주의의 소굴이었다. 예수는 그들을 부패를 상징하는 ‘누룩’으로 명명하였다.
헤롯당: 유대에 대한 로마의 지배권에 만족하고, 따라서 고대 역사상에서도 드물게 보는 암살·음탕·권모를 자행한 헤롯 왕조를 지지하며, 더욱이 예수 당시에는 형제 빌립의 처를 빼앗은 추악(醜惡)으로 세례 요한의 규탄을 받았고, 의인(義人)의 목을 자른 방종 무지한, 갈릴리 분봉왕(分封王)이며 헤롯의 차남인 안티파스를 유대 전토의 국왕으로 추대하려던 일파다.
에세네파: 이는 종교 계급을 망라한 사두개파가 그리스 문명에 압도적으로 매혹되어 부패, 타락의 일로를 걸을 때, 조수(潮水)같이 밀려오는 세속주의에서 유대의 신앙적 유산인 모세 율법을 수호하기 위하여 사해 서안(死海西岸)에서 4, 5천 명 이상이 모여 전쟁과 노예 제도를 금하고 공산 사회 조직 밑에 금욕과 재결(齋潔)에 몰두하던 무리이다.
젤롯파(열광파): 성서에서는 열심당으로 불리고 있으며 에더샤임(Edersheim) 박사가 ‘국민당’이라고 칭한, 유대국의 외국 예속에 분개하여 무력으로 독립을 탈취하려던 일파로, 기원 6~7년경에는 로마 제국의 호적 조사에 반대하여 수도 예루살렘에서 로마군을 맞아 용전(勇戰)한 자들이다.
그러면 예수와 이상 여러 당파와의 관계는 어떠했는가? 그는 바리새주의의 국수파였던가, 사두개파의 현세주의자였던가, 헤롯당의 매국노였던가, 에세네파의 공산 생활에 취하였던가, 열심당의 혁명 투사였던가? 아니다, 그는 이 명예스러운 칭호의 어느 하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타파(他派)는 말할 것도 없고, 이상 제파(諸派) 가운데서 그래도 어느 정도 그 소행이 도덕적이라 하여 국민의 신뢰와 동정을 받은 율법파였던 바리새파에 대한 그의 심한 질책이 이를 증명한다.
“… 화 있을진저, 위선자 바리새인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안에는 탐욕과 방탕이 가득하도다. 눈먼 자들아,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여야 겉도 깨끗하게 되리라. … 회칠한 무덤 같은 너희여, 겉으로는 아름다우나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너희의 위선과 불의가 예언자의 무덤을 수축하고 의인(義人)의 비석을 장식하며,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우리는 예언자의 피를 흘리지 않았으리라’ 하는 너 바리새인아, 그러면 너희가 예언자를 죽인 자의 자손인 것을 스스로 증거하는구나.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量)을 채워라.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사가랴의 피까지 이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이 세대로 돌아가리라.” (마태 23장)
그러면 예수는 자신의 당파를 조직하였던가? 아니다, 그는 전도 출발 3년도 못 가 당시 로마의 최극악형인 십자가형을 당하도록 그의 복음을 힘차게 외쳤으나, 그의 당파란 양손으로 꼽을 정도인 열두 사람밖에 안 되었으며, 더욱이 그중 유다는 은 30냥에 그를 적에게 넘겨주었고, 수제자 베드로는 세 번 그를 부인하였고, 또 그의 체포 장면에서 옷까지 벗어 버리고 도주하는 추태를 연출한 자도 있었으니, 이것이 무슨 당파가 될 수 있는가.
그러면 일반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로마 총독이 그의 재판에서 무죄를 주장하여 석방하려고 했을 때, 폭동으로 수감 중인 열심당 수령 바라바를 석방하고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반강압적으로 총독을 향하여 절규하며 예수를 죽게 한 무리는 실로 수도 예루살렘의 민중이었다.
그렇다, 그는 과연 완전히 모든 당파와 모든 국민의 적이었던 것이다. 그를 죽이기 위하여서는 평소 개와 고양이같이 물고 차고 찢고 하던 모든 당파와 그리고 모든 국민이 서슴지 않고 일치협력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유대 전 국가, 전 국민이 그를 죄인이라 하여 죽인 데는 사실 인간적으로 보아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다. 즉, 그는 모든 당파와 모든 국민을 향하여 그들이 죄인인 것을 선언하고, 그리고 그들이 그 죄에서 떠나지 않는 한 그들은 조만간 개인적으로, 국가적으로 다 멸망할 것을 선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선언하였다, 너희는 다 살인자라고. 너희는 형제를 미워하고 원망하고 시기하니까. 너희는 다 간음자라고. 사람을 보면 암나귀 모양으로 음욕만 품으니까. 다 강도라고. 돈과 물질에 눈이 어두워 다 그것을 탐하고 섬기니까. ……너희들은 다 멸망할 자들이다. 신(神)을 부정하고 양심을 거역하니까.
십자가를 앞에 놓고 그를 위해 슬피 우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향하여 그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그는 벌써 40년 후에 로마군에 의한 수도 예루살렘의 붕괴를 통하여 그들 위에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예견하였던 것이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
그리고 이것이 분명히 그에게 십자가의 죽음을 자초(自招)하게 했던 것이다.
(1946년 11월 제1호)
「예수와 당파」의 사상사적 의미와 배경
노평구의 「예수와 당파」는 1세기 역사 서술의 외피를 두르고 있으나, 실제로는 1946년 11월 해방 정국의 각축전을 벌이던 남한의 정당과 정파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비판한 우화적 시국론이다. 이 글의 기저에는 치밀한 근대 성서학적 토대와 함께, 해방 직후의 정치적 혼란을 향한 서늘한 예언자적 비판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첫째, 에더샤임(Alfred Edersheim)의 실증적 연구와 무교회주의적 성서 연구 방법론의 결합이다. 노평구가 열심당을 논하며 거론한 에더샤임(1825~1889)은 오스트리아 빈 출신의 유대인으로, 기독교로 개종한 뒤 영국 스코틀랜드 자유교회 및 성공회 성직자이자 옥스퍼드 대학교 강사로 활동한 권위 있는 성서역사학자이다. 그의 필생의 역작인 『메시아 예수의 생애와 시대(The Life and Times of Jesus the Messiah)』(1883)와 『예수 시대의 유대 사회생활(Sketches of Jewish Social Life in the Days of Christ)』(1876)은 탈무드와 미드라시 등 방대한 유대 랍비 문헌을 복음서 연구에 본격 도입하여 1세기 유대 사회의 관습, 제의, 정치 분파를 실증적으로 복원해 낸 고전이다. 에더샤임은 복음서의 ‘열심당(Zealots)’을 로마 제국의 지배에 맞서 민족적 독립과 배타적 국가주의를 기치로 내건 ‘극단적 민족주의 정당(National Party)’, 즉 ‘국민당’으로 규정했는데, 노평구가 본문에서 “에더샤임 박사가 국민당이라고 칭한 제로테스의 열광파”라고 명시한 것은 바로 이 에더샤임의 학문적 성과를 직접 원용한 것이다.
이러한 수용은 노평구의 학맥과 직결된다. 그는 김교신의 주선으로 1936년부터 일본 도쿄에서 우치무라 간조의 수제자인 쓰카모토 도라지(塚本虎二)와 야나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에게 성서를 배웠는데, 당시 쓰카모토는 복음서의 원의(原義)를 밝히기 위해 19세기 독일·영미권의 고등비평과 역사적 예수 연구 성과를 폭넓게 섭렵하고 있었으며 에더샤임의 저작 역시 필수 기본서로 활용되고 있었다. 노평구는 창간사에서 밝혔듯 성서를 맹목적 도그마로 보지 않고 “현대 과학의 쾌도를 들어 고등비평적으로도 연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했다. 에더샤임의 실증적 연구를 끌어와 당파들의 역사적 실체를 규명한 것은 교조적 교리주의에 갇히지 않고 치밀한 역사비평적 기초 위에서 텍스트를 읽어내려 했던 무교회주의 특유의 학문적 지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 1세기 유대 5대 당파를 통한 1946년 해방 정국 정치 지형의 1:1 투사와 통렬한 시국 비판이다. 노평구가 열거한 5대 당파는 당시 남한 사회를 분열시키던 주요 정치 세력과 정확히 일치한다.
바리새파는 ‘국수 보존(國粹保存)’을 외치며 민중의 지지를 얻는 보수 율법주의자로서, 현실에서는 김구와 임시정부 요인들이 중심이 된 한국독립당(한독당) 및 우익 민족주의 보수파에 대응한다. 이들은 완전 자주독립과 민족정기를 표방하며 국민적 정통성과 도덕적 지지를 받았으나, 노평구의 시각에서는 현실 정치의 구체적 혁신과 내면적 회개 없이 민족주의적 명분론과 과거 독립운동의 공로에만 기대어 권력 투쟁을 벌이는 ‘명분주의적 바리새인’에 불과했다.
사두개파는 그리스 문화를 도입하여 정치적 실리를 챙기는 사원 종교가이자 현세주의와 향락의 소굴인 귀족 정당으로, 한국민주당(한민당) 및 친일 관료·지주·자본가 세력을 가리킨다. 일제강점기 기득권을 누렸던 지주와 자본가, 미군정의 비호 아래 행정 실권을 쥔 한민당은 겉으로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친미 노선을 내세웠으나 본질적으로는 기득권 수호와 권력 독점에 몰두한 ‘정경유착의 귀족 정당’이었으며, 이는 성전 권력을 쥐고 현실 정치와 결탁한 사두개파와 판박이였다.
헤롯당은 외세인 로마의 지배에 만족하며 암살과 권모술수를 자행하는 괴뢰 왕조 지지 세력으로, 미군정의 혼란을 틈타 일제 부역의 과거를 세탁하고 권력자의 뒤에 붙어 암살과 정치 협박을 일삼던 친일 부역 잔당 및 외세 결탁 정치 모리배를 직격한 것이다.
에세네파는 세속을 피해 사해 서안에서 전쟁과 사유재산을 금하고 공산·금욕 생활을 하던 은둔 무리로서, 해방 정국의 혼란과 좌우 충돌을 혐오하여 산간이나 농촌으로 들어가 신앙 공동체를 형성하려 했던 일부 기독교 이상촌 운동 및 탈세속적 은둔 종교 집단을 뜻한다. 노평구는 이들의 도덕적 순결성은 인정하면서도, 역사의 격랑 속에서 민족 전체를 향해 예언자적 소리를 내지 못하고 현실에서 도피하는 소극성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열심당(젤롯파)은 외국 예속에 분개하여 무력 투쟁과 테러로 독립을 탈취하려던 무장 혁명파로서, 반제국주의 무장봉기와 계급 혁명을 외치며 파업, 시위, 테러, 그리고 조선정판사 지폐 위조까지 불사하던 조선공산당(남로당) 및 이에 맞서 백색 테러를 자행하던 극우 청년단에 정확히 대응한다. 무력과 폭력으로 이상 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고 믿는 ‘열광적 혁명주의’를 예루살렘의 멸망을 불러온 열심당의 광기로 규정한 것이다.
셋째, ‘모든 당파의 적’으로서의 예수와 타협 없는 단독자의 길이다. 정치권력과 대중은 늘 타협과 편 가르기를 요구하지만, 예수는 이 명예스러운 칭호의 어느 하나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인간 내면의 숨은 죄(형제에 대한 미움=살인, 음욕=간음, 탐욕=강도)를 직격하여 모든 인간이 신 앞에서 죄인임을 선언했다. 그 결과 평소에는 개와 고양이처럼 물고 뜯던 바리새파, 사두개파, 헤롯당, 그리고 선동당한 민중까지 온 당파가 일치협력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노평구는 참된 신앙인이란 특정 정치 정파의 편을 들어 권력을 쟁취하는 자가 아니라, 모든 정파와 권력의 위선을 양심과 도덕의 잣대로 통렬히 고발함으로써 기꺼이 ‘모든 당파의 적’이 될 각오를 한 고독한 단독자여야 함을 역설한다.
넷째, 도덕적 각성 없는 독립에 대한 ‘역사 심판’의 엄중한 경고다. 글의 결말은 서늘한 예언자적 경고로 끝을 맺는다. 1세기 유대인들이 내면의 회개 없이 정치적 독립과 당파적 권력욕에만 매몰되었을 때, 결국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불타 무너지는 파국을 맞았다.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가며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통곡한 것은 바로 이 역사의 심판을 내다보았기 때문이다. 노평구는 해방된 조선 역시 국민적 도덕 각성과 영적 쇄신 없이 당파 싸움과 정치적 광란만 지속한다면, 멸망당한 예루살렘처럼 역사의 법정 앞에서 자멸할 것이라는 엄중한 종말론적 경고를 던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