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휴가를 막 마치고 훈련한지 겨우 이틀. 그리고 UAE에 도착한 뒤 역시 이틀만에 한국대표팀은 UAE와 첫평가전을 치렀다. 즉 몸상태가 완전치 않은 데다 시차 적응도 못한 상황에서 치른 경기였다. 우리가 이겼으면 물론 가장 좋은 결과였겠지만 졌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비난할 필요가 없다는 얘길 해두고 싶다. 게다가 UAE는 시즌 중이라 UAE 선수들의 컨디션은 우리보다 월등히 좋은 상태였다.
이날 우리대표팀은 공격에서 좌우 불균형이 발생했고 수비 조직력이 불안했으며 협력 플레이가 이뤄지지 못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물론 고쳐야할 문제점이다. 하지만 새로운 선수들이 많이 합류해 처음으로 손발을 맞춘 데다 몸상태까지 좋지 않았으니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현상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내가 UAE전에서 지적하고 싶은 3가지는 전술적으로 잘했다 못했다를 논하기보다현재 우리 선수들의 상태와 그들이 원정에서 배워야할 점 등을 중심으로 정리한 것이다.
1. 토고같은 밀집수비를 결국 뚫지 못했다
우선 주목할 것은 UAE의 플레이 스타일이다. UAE는 선수비 후역습의 카드를 빼들었다. 강팀 한국과 맞서는데 가장 적당한 승부수였다. UAE는 최전방 공격수까지 자기 진영으로 내려와 11명이 모두 수비하는 모습을 여러번 연출했다. 그리고 밀집수비를 하는 팀을 상대로 많은 골을 넣지 못한 한국은 또다시 쓰라린 맛을 봤다. 마무리 미숙 , 정확하고 빠른 패스의 결여 등으로 골을 넣지 못한 것이다.
우리 월드컵 첫 상대는 토고. 토고 또한 선수비 후역습을 하는 팀이라는 점을 팬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토고가 물론 UAE와 똑같은 수비전술을 구사하지는 않겠지만 전체적인 팀컬러는 비슷하다. 게다가 토고는 세네갈을 제치고 월드컵에 나가는 본선진출국. UAE보다 전력이 좋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토고를 꺾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21일 우리와 맞붙는 그리스 또한 선수비 후역습을 하는 대표적인 팀이다. 유로2004에서 이런 전술로 우승까지 일궈냈고 이번 한국전에 출전할 선수들 중 유로2004에 뛴 선수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게다가 오토 레하겔 감독까지 그대로 있으니 플레이 스타일이 유로2004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는 뜻이다. 우리대표팀으로서는 또한번 밀집수비를 하는 팀을 상대로 골을 넣어야하는 과제를 안은 셈이다.
물론 그리스 수비가 UAE보다 강할 것이며, 우리가 잇단 이동으로 인한 피로감과 시차적응에 애를 먹고 있는 것과 달리 그리스는 경기장소인 사우디와 시차가 별로 나지 않기 때문에 컨디션 조절도 우리보다 쉬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우리는 어려운 경기를 해야한다는 뜻이다.
2. 파울도 작전이다. 너무 나이브한 태극전사
두번째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실점장면이다. 실점장면에서 우리 선수들이 뒤에서 오는 선수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도 맞기는 맞다. 그런데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 전에 발생했다.
당시 우리는 프리킥을 얻었다. 프리킥 찬스에서는 키가 큰 수비수들이 UAE 문전으로 가기 마련. 최진철 김동진 김상식 등이 모두 헤딩을 하기 위해 UAE 문전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 수비는 키가 작고 빠른 조윈희, 이천수 등이 잠깐 맡고 있었다. 그런데 프리킥은 그만 실패로 돌아갔고 순간적으로 우리는 볼을 빼앗겼다. 그리고 그 볼은 1~2차례 정확한 패스에 의해 실점으로 연결됐다.
여기서 기억해야하는 점은 세트 플레이 직후 볼을 빼앗길 경우 전방에 있는 누군가가 반드시 파울로 경기를 끊어야한다는 것이다. 수비수들이 공격에 나가 있고 수비는 수비개념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맡고 있는 만큼 일단 파울로 끊어서 우리 수비수들이 들어올 수 있는 시간을 벌어야했다는 것이다(실점 장면을 보면 우리 수비수들은 없고 이호나 조원희만 보인다). 그런데 우리 선수들은 파울을 하지 않은 채 너무 나이브하게 플레이를 했다. 파울도 하나의 작전이라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만한다.
이에 관해 말하고 싶은 것은 역습시 수비를 맡는 선수들의 정신적인 준비다. 수비개념이 떨어지는 선수라고 해도 수비를 해야하는 위치에 있다면 마음 속으로 `여기서 뚫리면 골을 먹는다'는 `디펜스 마지노선'을 그리고 있어야한다. 즉, 경고를 받더라도 골을 먹을 것 같다면 미리 끊어야했다는 점이다. 설사 경고를 받더라도 이는 값어치가 충분한 경고다.
3. 쓸데없는 파울을 하지 마라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후반 막판 최진철이 받은 경고다. 당시 우리는 0-1로 뒤지고 있었고 프리킥을 얻었다. 무조건 동점골을 넣어야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는 수비수들까지 대부분 UAE 문전으로 들어갔다. 물론 우리대표팀 최장신 최진철도 있었다. 최진철은 하지만 상대 선수와 몸싸움을 하는 과정에서 상대선수의 얼굴을 손으로 세게 밀쳤다. 판정은 경고였다. 사실 월드컵 본선이라면, 아니 타이틀이 걸린 경기였다면 퇴장을 시켜도 할말이 없는 순간이었다. 상대가 워낙 밀착수비를 하자 최진철이 짜증을 내면서 과도하게 반응한 것이다. 아무리 흥분되더라고 판정이 불리할 수밖에 없는 원정경기에서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었다.
대표팀은 앞으로 그리스, 핀란드 등과 경기를 치른다. 이동이 많고 훈련을 갓 시작한 만큼 몸상태가 눈에 띄게 빨리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경기를 지켜보는 팬들도 조직력이 나쁘다, 역시 유럽파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다는 식으로 대표팀을 평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많이 실패하고 많이 골을 먹어야만 우리 단점을 제대로 알고 이에 대비할 수 있다. 꾸준히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으면 좋겠다. 우리선수들은 팬들의 인내에 분명 확실한 승리로 보답할 것이다. |